꽃밭보다 광야가 좋습니다.

(2008년.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지금 전 꽃밭에 있습니다.

넓고 푸른 잔디도 있고, 꽃도 있고, 나무도 있고, 나비도 있고, 아침이슬도 있고, 아이들의 웃음도 있고, 아름다운 노래도 있고.. 이 꽃밭을 망쳐놓을 수 있는 것들만 빼고 모두 다 있는 풍요로운 꽃밭에 있습니다.

이전에 제가 있어온 곳에서도 그곳은 무서운 공격따윈 없는 꽃밭같은 곳이라 생각했었는데, 이곳은 완전히 꽃밭입니다.

이 꽃밭에서 살기란, 정말 쉽습니다.

넓고 아름다운 집에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로 잠을 깨고, 가볍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피아노를 치거나 책을 읽으며 무료함을 달래고, 가까운 곳에 위치한 활기찬 베이커리에서 커피를 즐기고, 풍성한 점심과 저녁식사을 누린후, 운동을 하며 기분좋게 땀을 빼주고..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마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풍성한 식사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고, 여름에는 시원한 곳으로 겨울에는 따뜻한 곳으로 휴가를 떠나고..
서로가 서로를 예의있게 존중해주고, 비난과 무시는 찾아볼 수 없고..

별로 하는 일 없이 매주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의 급여를 받고, 의식주는 워낙 걱정할 필요도 없고..

부끄럽지만 이게 제 꽃밭 일기입니다.

이런 꽃밭속에 있으면 이 울타리 밖으로는 절대 나가고 싶지 않아집니다.

울타리 밖의 세상은 별로 보고싶지도 않습니다.

알면 골치아플 뿐이니까..

그냥 잠잠히 이 꽃밭안에서 노래나 부르고 싶어집니다.

전 이게 무섭습니다. 세상은 시끄럽습니다. 세상은 아파합니다.

그러나..

제가 있는 곳은 너무나도 고요합니다. 너무나도 평화롭습니다. 이런 곳에 있으면 세상 걱정은 다 남일입니다. 별로 그 무거운 짐들을 함께 지고싶어지지 않아지지요.

그래서..

제 마음의 욕심때문에 이 허락된 축복들을 저주처럼 사용하게 될까봐..그래서 두렵습니다. 그리고 이미..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 꽃밭 가운데서도 시들시들해져버린 제 영혼을 발견해버렸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다는 건, 단 1년이라도 누릴 수 있다는 건 정말10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정말 매일매일 감사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감사하지도 못하고 있지만요..)

그런데..배부른 소리 한다 하실수도 있지만..결국 전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난 꽃밭보다는 광야타입이다!!!

이런 꽃밭에 있으면서도, 제 영혼은 이 꽃밭보다 훨씬 넓은 그 광야 가운데 속하길 원해했고, 이 꽃밭속에 나도모르게 안주하려고 하다가도, 죽어가는 제 영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금식이라도 하며 다시 광야 사람같은 마음을 갖기 원해 했습니다.

물론 순간순간의 꽃향기를 즐기고 충분히 누리기도 했지요. 즐거웠지요.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그냥 전 이게 제 타입이 아닌거 같아요. 마음과 몸은 즐거워했을진 몰라도, 확실히 제 영은 시들시들해졌거든요. 살아있다기 보다 죽어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아..그 죽어있는 느낌은.. 정말 견디기 어렵습니다..

이곳에 있으면서도 날카롭고 민감하게 하나님과 교제했었던 순간을 생각해보면, 제 스스로를 절제하고 연약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무릎 꿇었었을 때였습니다. 그것도 제가 선택해서 할 수 있던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셨었던 거였죠. 생각해보면 그렇게 처절히 낮아진 심령을 가지고 있었을때, 실은 가장 살아있고 가장 즐거웠고 가장 행복했었던것 같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제가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이런 꽃밭에서 먹여주시고 재워주시고 평안함을 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만약 어떤 광야를 경험한다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과, 이 순간 겪어야 했던 영적 어려움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어쨌든!!
전 꽃밭보다 광야가 좋습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아, 꽃밭속에 누워 뒹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번쩍 일어서서 울타리 밖의 광야를 바라보며 앞으로 전진해나갈 채비를 하렵니다!!

 

하나님.
제게 지금 이 순간을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 저같은 아이도 번쩍 들어서 이런 꽃밭에 놓으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그리고 먹고 자고 입을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임을 분명하게 알게하심을 감사합니다. 당신의 공급 덕분에 행복하게 꽃밭생활을 누리고 있어요. 하나님. 이건 모두 하나님 덕분이에요.

그런데 하나님!!!
전 꽃밭보다 광야가 좋아요.

세상가운데, 꽃밭은 1평, 광야는 100만평입니다. 꽃밭가운데 사는 사람은 1명, 광야가운데 사는 사람은 100만명입니다.

전 이 1명이 되기보다, 그 100만명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이 100만명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웃으며 걷고 싶습니다. 제 마음과 영 가운데 있었던 이러한 소망을 알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제가 당신이 제게 주신 축복을 감사하고 기쁘게 받아들여 당신을 찬양하고 찬양하되, 저의 마음의 정욕이 이것을 헛되이 사용하여 저주처럼 사용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게 분명한 통찰력과 지혜를 허락해주세요. 제게 남은 이 꽃밭에서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남은 시간동안에 정신 분명히 차리고, 당신이 허락하신 것들을 지혜롭게 되길 원합니다.

저는 당신의 것, 제 모든 소유도 당신의 것.
아버지. 당신 뜻대로 사용하세요.
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08년.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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