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피아노와 교회

(2019.2.3. 네이버 블로그 기록물)

피아노는 아마도 국민학교 1학년 즈음부터 배우기 시작했던 것 같다. 가동 상가 2층의 엄선생 피아노. 동그라미 5개 채워가며 바이엘을 떼고, 체르니 100, 30, 40을 땔 때쯤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의 첫 교회는 교인이 100명 남짓의 작은 교회였다. 목사님의 딸 중 한명은 피아노 반주를 적당하게 하고 있었고 한명은 성가대 지휘를 했다. 교회에 나간지 얼마 안되어 난 목사님 딸을 대신하여 성가대 반주자로 세워지기 위해 속성으로 세례를 받게 되었다. 수줍음이 많았던 중학생 시절, 반주를 적당히만 해도 ‘오오~~’ 하면서 온갖 환호을 보내던 그 오빠들 덕분에 성가대 반주를 재밌게, 꾸준히 했던것 같다.

나의 청소년기를 꽉 채운 교회생활, 객관적으로 돌아보면 나의 신앙이 곧게 세워지기엔 몇십프로 쯤 상당히 부족한 세속적(?)인 교회생활이었다. 차마 들추기 어려운 몇가지 기억만 세어보아도,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를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아무리 험한 곳에서 날푼이처럼 있어도 하나님 그늘 안에만 있다면 그분은 어떻게든 우리네 인생에 아름답게 간섭 하신다는 것을.

나는 세속적인 교회생활을 하면서도 피아노 반주를 생활같이 하였고, 그 기간동안 신앙이라는 것을 담게 되었던것 같다. 20대 시절 치열하게 나의 신앙의 방향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고, 절대로 떠날 수 없을것만 같던 그 교회를 가정의 이사라는 이벤트로 겨우 떠나게 되었으며, 결국 나의 신앙의 보금자리와도 같은 교회를 찾게 되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을 따라 가게 된 교회. 그곳에서 처음 뵙게된 인생의 멘토, 오대식 목사님. 그분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혼돈 상태였던 나의 신앙의 기준과 질서가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격적으로 존경하는 목사님을 통해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큰 축복이다. 그분의 말씀만 들으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면, 그건 그냥 세속어로 꿀빠는 일인것만 같다.

그런데 운명과도 같이 파주에 높은뜻 교회를 개척하셨다. 나의 목사님은 덕소교회를 지키시지만. 집에서 10분거리에 세워지는 높은뜻 정신. 우린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파주교회로 발걸음을 하게 되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반주를 하게 되었다.

남편은 우리의 목사님을 떠나는 느낌을 시집가는 기분에 비유하였다. 확실한 건 둘 다 결혼하면서 독립할 때보다 더 강한 이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연스러운 일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을것임을 인정할수밖에 없으며, 그 ‘때 탄’ 반주경험을 이렇게 높은뜻 교회에서 사용하심에 감사할수밖에 없다.

뿌려진 씨앗이 되어 열매를 맺어, 시집 잘 갔다 칭찬 받는 우리 가정이 되길 바란다.

(2019.2.3. 네이버 블로그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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