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위경련 경험에 대한 현상학적 체험 분석

도입

급성 위경련이 왔다.

현상학적 질적연구를 공부하고 있는 입장에서, 현상학적으로 나의 경험을 되돌아보기로 했다. 이남인(2005)에 의하면, 연구자와 연구참여자가 동일한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의 “해석”보다 높은 수준의 명증성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결국 이것이 객관성을 담보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때, 다른 경험자의 상호주관적 검증이 있을 경우 그 객관성을 높일 수 있게 된다. 다른 위경련 체험자들의 경험들이 여기에 덧붙여지길 바라본다.

이 글은 위경련이 발생하고, 사그러든 날 밤에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위경련 경험

어제부터 감기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오늘새벽부터 오한이 들었고, 열은 38.4-6을 왔다갔다 했다. 열이 나도 오한이 없으면 그래도 좀 살만했다. 다행히 오늘 진료는 휴진이고, 치료 예약된 환자만 두어명 있어서, 약먹고 버티면 크게 어렵지 않은 여유로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다만 약 먹고 오한이 떨어지는 것은 3시간을 못버텼다. 컨디션이 영 아닌것 같았다. 그런데 그와중에 배는 또 고파서, 오한이 떨어졌을 때 뭐라도 먹자 하고 비타민 충전한답시고 샐러드를 먹고, 뭔가 아쉬워서 빵도 먹었는데..그게 문제였던 것 같다.

처음엔 “어 뭐지? 체했나?” 싶었다.

원래 난 피곤할 때 뭘 먹으면 윗배가 빵빵하게 부풀면서 아프다. 난 원래 이 상태를 체했다고 표현하는데 이때는 바로 누우면 좀 나아지곤 했다. 그래서 동료 간호사에게 잠깐만 누워있을께 하고 누웠는데 이상했다.  이건 어떤 자세도 통하지 않았다. 한참 자세를 찾고 있는데 통증은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고, 서랍안에 넣어 두었던 위경련약이 생각났다. 라미나지액이라는 약인데, 이전에 위경련 있었을 때 의사선생님이 이건 본인도 프랩해놓고 급할때 먹는다고 하셨던 약이다. 책상앞에서 쪼그려 앉아 우겨 넣었다.

그리고 다시 침대로 갔는데 그 침대가 내가 올라가기에 너무 높아보이기 시작했다. 도저히 저 불안한 침대에서 쪼그려 누워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바닥에 쪼그려 엎드렸다. 안보이는 곳이니 상관 없었다. 그렇게 쪼그려 엎드려있었는데, 옆 베드에서 치료를 받는 아이가 도착했다. 이제 보여질 수밖에 없을것 같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침대 위로 올라갔다. 여전히 나에게 편한 자세는 없었지만, 그나마 엎드려 쪼그려 누워있을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점점 나의 호흡은 가빠지기 시작했고, 옆의 베드에 누워있는 아이와 보호자가 알아챌것 같이 끙끙 거렸다. 어쩔수가 없었다. 눈치채게 하고싶지 않았지만 지금 그런걸 따질수는 없었다. 온몸에서 땀이 척척하게 스며나왔다. 상의부터 하의까지 모든 옷이 순식간에 축축하게 젖는게 느껴졌고, 이 통증은 좀처럼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그래서 개미같은 목소리를 겨우 내어 동료 간호사에게 “주사실에 맞을만 한게 있나 연락 좀 해줘” 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 엎드려 끙끙 앓고 있었는데 동료간호사가 나에게 와서 다시 물어봤다. 난 목소리를 낸다고 했는데 거의 안들렸었나보다. 내가 주사실…하고 웅얼거리자 알겠다는 듯이 급하게  나갔다. 그러더니 시니어 선생님을 데리고 왔다.

시니어 선생님이 쪼그려 누운 내 뒤에서 따뜻한 물을 좀 먹어보지 않겠냐고 권하셨던 것 같고, 나는 아무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이것은 무슨 통증일까. 괜찮아지긴 하는걸까. 빨리 약.. 약..

급하게 외래의 진료를 잡아주었고, 대기가 3번째라고 하였었다. 그런데 난 몇보 앞의 진료실을 갈 자신이 없었다. 그냥 약.. 빨리 약..

도대체 이 통증은 무엇있가..? 이건 통증 scale 10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이런 통증을 자주 겪을수 있다는 암환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까.. 그들의 통증은 조절이 되긴 할까 라는 연민 아닌 공감을 느꼈다. 이러곤 도저히 살수 없다. 위에 구멍이라도 내고 싶을 정도로 아픈 이 통증은 참을 수 있는 통증이 아니다. 극도의 생리통일때는 자궁을 떼버리고 싶었고, 오늘은 위에 빨대를 꽂고 싶었다.

거의 혼절 직전에 이르렀는데, 교수님이 너무 급해보인다고 일단 약 먼저 처방해주었다 하였다.일단 다행이긴 했는데 내가 과연 주사실로 갈 수 있을까.. 도저히 난 거기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침대 앞에 휠체어가 준비되어 있었다. 고마웠지만 고마움을 챙겨 말할 새도 없었다. 일단 이건 타야겠지.. 휠체어 타려고 겨우 비틀거려 내려왔는데 그제서야 내 머리카락도 다 젖어있었다는 걸 알았다. 겨우 비틀거리며 휠체어에 앉았고, 다리를 들어 발받침 위에 발을 올렸고, 난 허벅지에 쪼그려 엎드렸다 .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이동시켜주기 시작했다.

갑자기 너무 추웠다. 복도로 나온것 같았다. 온몸이 땀에 젖어있어서 그런거였겠지만 너무 추웠다. 한편 시원한것 같기도 했다. 열이 식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속이 울렁거리가 시작했다. 아무래도 침이 고이려고 하는게 심상치 않았다. 주사실은 얼마나 남은걸까 하고 올려보았더니 한 3m 남았더라. 그래서 말했다. “아무래도 토할것 같어..”

“어, 토할것 같으세요?”라는 긴박한 목소리가 들리며  주사실에 safe하듯이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여러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와줬고, 토할것 같다는 얘기에 바로 쓰래기통을 집어 주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난 받자마자 토를 했다. 위가 쥐어 짜지면서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아까 먹었던 카스테라가 아직 소화가 덜 된 것 같았다. 걸죽한 반죽이 되어 입을 통해 밀려 나왔다. 그렇게 쓰래기통을 부여잡고 토를 했고, 나는 재빨리 침상곁으로 옮겨졌다.

토를 하고나니 약간은 나아진것 같았다. 주사실 선생님들께서 나를 따뜻하게 돌봐주셨다. 어떤 자세가 편하냐고, 편한 자세로 있으시라고하며 돌봐주셨다. 물티슈도 주시고 휴지도 주셨다. 침상에 올라가서 눕는게 낫겠다 싶어 올라갔고, 토를 해서 그런가 이제는 옆으로 쪼그려 누울 수 있었다. 도저히 눈은 뜰수 없었는데 그 사이에 iv가 안아프게 놓여졌고,  처음에는 프리판이 들어간다 하였다. 약이 들어가니 일단 안심이 되었다. 단단했던 위도 조금씩 긴장을 풀려는게 느껴졌다.

아까 남편에게 “와줘…”라는 단발마의 비명을 담은 카톡을 보냈었는데 그 이후에 내가 전화도 못받고 카톡도 못받고 있으니 동료 간호사와 통화한후 부랴부랴 주사실로 왔다. 어쩔줄 몰라하며 앉아있다가 밖에 나갔다 왔는데, 시부모님께 오늘 밤에 아이들을 봐주시길 부탁해준 것이었다. 그럴필요까진 없을것 같은데.. 도저히 안되어보였나보다.. 그래도 일단 집에가서 푹 쉴수 있다는게 안도감을 주었다.

그렇게 한참 누워있었는데 다른 약이 하나 더 달리고, 그게 다 들어간 후에는 수액을 달아주셨다. 수액까지 달리니 이제 거의 다 된것 같았다. 나는 바로 누울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퇴근할 때가 된건지 동료 간호사가 “괜찮으세요?”하고 와주었다. 이제 일어날 수 있었다. 같이 돌아가기로 했다.

확실히 이젠 걸을 수 있었고, 옷은 여전히 척척했지만 아까만큼 춥진 않았다. 몸에 힘은 없었지만 아프지 않으니 되었다.

남편은 아픈데 죽을 먹어야지 왜 샐러드랑 밀가루를 먹었냐고 안타까워했다. 속은 괜찮을줄 알았지… 아플 때 죽을 먹으란 건 조상의 지혜인듯 하다.

현상학적 체험 분석 (사실적 현상학적 심리학적 체험연구)

감기바이러스로 인해 힘겨웠던 몸(주체)에서 발생한 급성 위경련(체험의 대상) 가운데 나는 나의 온 신경이 복부의 통증을 향해 있었음을 경험했다. 나의 위장은 부풀었고, 비틀렸고, 여러개의 칼이 사방에서 찌르는 것 같았으며, 해결되지 않은 통증에 온몸의 세포가 땀을 내며 발악을 했다(신체성). 1초는 5초같이 느리게 갔고(시간성), 겨우 힘을 내어 쪼그려 누워 나의 배를 스스로 문지르는 것은 좁은 굴 속에서 혼자 사투를 벌이는 것 같았으며, 특히 그 좁은 침대는 너무 높아보였고 불안했다 (공간성). 그 가운데 나를 들여다봐주는 사람들(동료 &시니어 간호사 선생님, 주사실 선생님, 남편, 시부모님)은 안도감을 주었고, 진심으로 감사했다(관계성).

멀미 때문이었는지 위장의 마지막 발악이었는지  구토를 한 이후에 통증은 약간 나아졌고, 주사제를 맞고나서 30여분이 경과했을 땐 확실히 편해져서 더 이상 위에 나의 신경이 집중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날에는 온몸에 근육통이 생겨서 반신욕을 해야했다(시간에 따른 전개).

나는 위경련의 상황에서 병원안에 있는 나의 검사실 구석 침대에 쪼그려서 배를 부여잡으며 119를 불러야하나 잠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럼 분명 우리병원의 응급실로 데려다줄텐데, 응급실에선 나를 받아줄까 염려 해야했다. 또 여기서 거기 가자고 119 부르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고 포기했다. 그리고 주위의 간호사에게 도움을 청했고, 가까운 병원 시스템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진경제만 맞으면 좀 나아질 수 있는건데.. 집에 있었가면 어떻게 했을까? 낮이라면 동네 내과를 갔겠지.. 밤이라면 어떻게 해야했을까.. 2차병원 응급실에서는 받아줬을까..나는 운이 좋게 다행이었지만, 요즘같은 상황이면 염려가 많아질 것 같았다. 아픈것도 서러운데 어딜가야 하나 고민해야 하는 건 억울한 일이다(사회성, 역사성).

급성 위경련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통증이었으며,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고, 이런 통증을 자주 경험하는 이들에 대한 애달픔을 알게 됐다. 한편 그 통증이 지나간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똑같은 일상이 되었고,  조절이 되는 통증이라는 것에 감사했다. 그러나 나는 이 통증이 사그러진 이후 “암성 통증”과 “만성 통증” 경험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이런 통증을 간헐적으로든 수시로든 지속적으로라든 경험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면.. 정말 무서울 것이다. 그리고 급작스럽지만 기도제목이 하나 더 생겼다. 나중에 하늘나라에 갈 땐 가더라도 통증 없이 가게 해달라고. 그만큼 무서운 통증이었다(위경련의 의미).

이건 위경련 “통증 스케일 10″이라는 숫자 이면에 있을 수 있는 하나의 의미있는 현상일 것이다.

고찰

구체적인 고찰까지 하기엔 여유가 없다. 다만, 이렇게 글을 써봄으로써 위경련 현상을 그 현상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본질적 요소의 차원으로 들여다보는 것을 연습해보았다 할 수 있겠다. 추후 조금 더 고찰해볼 수 있으면 그 때 추가하기로 해본다.

참고문헌

이남인(2005). 현상학과 질적연구: 응용현상학의 한 지평.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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