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다행히 방학.
덕통사고가 났다.
덕통사고.
이번에 일종의 “덕후”가 되면서 알게된 용어이다. 덕통사고란 교통사고처럼 예상치 못하게 덕후가 되어버리는 일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연인 즉은, 최근 “싱어게인3″를 보다가 홍이삭 가수의 팬이 된 것이다 (이런 건 덕밍아웃이라고 한단다).
싱어게인(Sing Again)은 그동안 대중의 관심을 못 받아온 가수들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인데, 그러다 보니 다양한 인생의 서사를 가진 가수들이 나와서 그들의 이야기와 노래를 풀어나간다. 무명이라고 스스로를 칭한다 할지라도 가수는 가수니 노래는 얼마나 잘하겠는가? 그런데 심지어 오디션을 통과한 후이니, TV에 출연한 가수들의 노래 실력은 다들 최고였다.
결국 이 과정의 승패는 누가 조금 더 노래를 더 잘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느냐의 문제였고, 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바로 홍이삭 가수였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알게된 것은 남편 덕분이었다.
“자기야. 요즘 싱어게인 3 다시 하는데, 홍이삭이라는 가수가 나와.”
처음에는 그냥 좀 시큰둥했다. 그냥 뭐.. 그렇구나.. 정도?
“이곡 들으면 바로 알걸?”
출근길 아침 잠은 한숨이라도 아쉬우니 조수석에 앉았을 때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려는 찰라, 남편이 “하나님의 세계”를 틀었다.
‘(비몽사몽간에)음.. 좀 익숙한 곡인데..? 이건 CCM 아니었나? CCM 가수가 싱어게인을 나온다고?’
좀 의아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하던 차에 남편은 홍이삭 가수의 클립을 몇 개 틀어서 보여줬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와 남편은 목요일만 기다리며 본방을 사수하게 되었다.
홍이삭이라는 사람은 침착하지만 사교적이었고, 모범생 같지만 유머도 있었다. 무엇보다 노래 실력도 참 좋고, 외모도 준수하고, 참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을 상한 우유같다 비유하였다. 그는 ‘왜 아직 난 이 모양일까’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보였고, 지쳐보였다.
그런데 이는 상당히 기시감 있는 슬픔과 원망이었다.
내 짝꿍.
그는 아주 괜찮은 사람이고 능력도 많다. 일은 기본적으로 아주 스마트하게 처리하고, 아는 것도 많고, 감초 같은 유머도 탑재했다. 현재 있는 곳을 하나님이 부르신 곳이라 믿고, 할수 있는 한 성경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조직에서든 칭찬과 인정을 받아왔다. 그런데 그런 그가 정작 승진 시험에서는 3번이나 떨어졌다. 매 순간 정말 열심을 다했고, 실제로 조직에 여러 성과로써 기여도 하였으나, “탈락”을 3번이나 한다는 것은 이성과 감성이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그는 처절한 패배감을 느끼며 자기 존재의 가치에 대해 질문했고, 하나님을 원망했다.
“나 이번이 마지막 시험이야. 이번에도 안되면, 앞으로는 그냥 안 볼거야. 그렇게 소박한 반항을 할거야. 승진 안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반항이야.”
그는 회사를 위해 많은 고민과 실천을 해온 사람이다. 그런 그가 승진을 안 하는 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 반항이긴 하다.
홍이삭.
그는 알고보니 ccm 가수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선교사 자녀로서 기독교의 울타리 안에서 성장해온 그는 그 울타리를 벗어나 이 세상에 굳건히 발을 딛고 제대로 승부해보길 선택한 이 세상의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활용하여 세상에서 그의 음악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했고, 몸사리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그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차례 패배감을 겪어야만 했고, 결국 점차 소진됐다. 그리고 그는 상한 우유와도 같은 자기 자신의 유통기한을 확인하고자 싱어게인에 출연했다. 아마 그는 그 우유를 더 마시는 이가 없다면 지금까지 믿어온 자신의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이제는 폐기시키겠다 결심하고 나왔을런지도 모르겠다.
남편이나 홍이삭가수나 그냥 있는 그대로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그 자신을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만족해도 될 사람. 세상에서 뜻대로 펼쳐지지 않는 앞길에 좌절하며 스스로를 괴롭힌다는건 슬픈 일이지만, 그의 가슴 안에 주어진 승부욕과 열정 또한 하나님이 주신 성품이겠지.
어쨌든 나는 그래서 홍이삭 가수를 응원하기로 했다. 음악도 좋지만 애틋하다.
남편의 앞 길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 그리고 홍이삭 가수를 위해서는 그의 음악을 자주 듣고, 홍이삭 가수의 콘텐츠에 “좋아요” 누르기.
홍이삭 가수에게 내적친밀감을 느끼며 홍이삭 가수를 거의 자신의 페르소나처럼 느끼고 있는 남편도 다행히 나의 덕통사고를 지켜보면서도 아주 기분 나빠보이진 않는다. 가끔은 내가 홍이삭이니 토스트니 이야기를 할 때면 소수빈과 수수깡 얘기로 반사를 보내긴 하지만, 이미 우리에게 홍이삭 가수는 응원해주고 싶은..이미 오랫동안 알아왔던 친구 같이 느끼게 되었다.
잘됐으면 좋겠다.
남편도, 홍이삭도,
그리고 이 세상에 발을 디디고, 배운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