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판단

(2019.07.30. 페이스북 기록물)

판단: 개개의 사실이나 의문에 대하여 단정하는 작용

오늘 내게 주어진 업무 중 가장 당혹스러웠던 업무는 입원중인 청소년 환자인 K에게 자가 도뇨를 교육해달라는 과제였다. 내게 업무를 전달하며 부탁한 이도 나의 황당함을 미리 감지했는지 “아무래도 안되긴 하겠지만, 시도는 해봐야 할것 같으니 부탁한다.”라며 어차피 버리게 될것 같은 시간에 미리 사과하는 듯 했다.

내가 그 아이를 경험해본 적은 한차례 있었는데 도저히 의사소통이 안되는 것 같아 보였다.

눈빛은 허공을 바라보거나 눈마주침을 피했고, 질문에는 전혀 리액션이 없었고, 뭔가 말을 하는 듯 할때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이의 상태를 검사하기 위해 “기침 해볼래?”, “배에 힘 줘볼래?” 등의 행동을 요청할때는 전혀 반응하지 않고 기분 나쁘다는 듯이 몸을 비틀곤 했다.

그런데 그 아이에게 스스로 도뇨하는 법을 알려주라는 것이었다.

될까..?

자가도뇨 교육을 하더라도 3-4주 정도 계획을 잡고 점진적으로 하나씩 해나가야겠다 마음을 먹은 후 매주 성취해나가야 할 단계를 적어 프린트해놓고 아이와 엄마를 맞이했다.

그런데 아이의 엄마가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말씀하시길, 학교에선 본인이 혼자 한다고 들으셨다는 것이었다. 집에서는 혼자 절대로 안해서 진짜 하는 것은 못보긴 했지만..

난 놀라서 ‘여러’차례 “보조 교사 선생님이 해주시는게 아니라구요? 정말 본인이 한다고 들으셨어요?”라고 되물었다. 난 K뿐만 아니라 엄마의 느린 톤의 목소리로 엄마까지 이미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후, 아이는 매우 느린 속도긴 하였지만 정확하게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자가도뇨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카테터는 어떻게 준비하고, 윤활젤리는 어떻게 짜두고, 장갑은 어떻게 준비해두고, 기저귀는 어떻게 풀러서 준비해두고.. 느리지만 분명한 자신만의 프로세스가 있었다.

엄마도 ‘”너 장갑 끝은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잖아~ 엄마 그렇게 안하잖아.” 라며 도뇨관을 잡게되는 손의 청결에 대해 느리지만 정확한 지적의 목소리를 내며 아이를 교육했다.

“K! 정말 잘하네! 바로 그거야. 그렇게 앞으로도 꾸준히 집에서도 해봐야해!!.”라며 감동해하는 나의 얼굴을 보는 엄마의 얼굴에서도 안도감을, 아이의 눈빛에서도 부드러움을 감지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남은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였다. 나의 어줍잖은 판단으로 아이가 홀로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한번의 기회를 소멸시킬뻔 했다. 진심으로 부끄러웠다. 내가 뭐길래 겉모습으로 수준을 판단하는가. 내가 정말 싫어하는 성질인데, 나에게서 오늘 또 발견했다.

의료진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경계해야 할 성질이다.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답게 여러분은 사람의 겉모양만 보지마십시오.
야고보서 2:1 KLB

(2019.07.30. 페이스북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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