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전담간호사와 전문간호사

임상전담간호사라는 존재(국내에서는 일명 PA로 불리는 존재)가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음지에서 일하다 조금씩 스멀스멀 드러나더니 이번에 시범 사업이라는 명목 하에 완전히 양지로 드러났다.

그동안 뜨거운 감자 같아서 여기서도 저기서도 얼버무리고 있던 임상전담간호사가 이제 한국 의료계를 안정화 시키는 Key로 작용을 할지, 아니면 현재의 이슈가 안정화 되면 다시 그냥 뜨거운 감자 신세가 될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나는 비교적 초창기에 임상전담간호사의 역할을 약 4년간 했다. 당시 비뇨의학과는 전공의 미달로 인해 어려운 미래를 예측하고 있었고, 나는 적성에 맞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던 수술실을 나오는 것이 급했던지라 새로운 인력에게 무슨 일을 시켜야 할지 결정도 못한 채 급하게 공고부터 낸 과로 겁 없이 이동을 했다.

막상 가봤더니, 전공의 1년 차 TO가 총 6명이었는데 그 중 1명만 일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2년 차는 2명이었나..? 요즘은 상상이 안되지만 그 때는 그렇게 비뇨기과가 인기가 없었다.

한참 임상전담간호사로 근무하던 중 간호 부원장님의 소집이 있었다. 모든 임상전담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간담회였는데, 그 곳에서 부원장님은 전문간호사 자격이 있는 간호사들이 임상전담간호사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주셨다.

일반간호사의 경력 사다리와 전문간호사의 경력 사다리를 별도로 구축하여, 전문간호사를 체계적인 시스템 내에서, 궁극적으로는 합법적으로 관리하고자 하였던 간호 부원장님의 소신과 미래 비전은 확고했고, 따름직 하였다. 하지만 당시 부원장님의 호소력 짙었던 목소리는 메아리에 그쳤다.

청사진을 보여주시기 전, 부원장님은 만반의 준비를 하셨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병원 및 국내 의료계로부터의 상당한 저항이 예상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단 전문간호사라는 인력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이것은 권한의 허용 및 비용과 직결되는 문제가 되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3년의 석사 과정을 마친 후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하는 두 번에 걸친 자격 시험을 통과해야만 될 수 있는 전문간호사는 지속적으로 배출되고 있었으나 이들을 흡수할 수 있는 체계는 없었고, 병원의 많은 부서에서는 전공의를 대체할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특정한 자격이 없는 간호사들을 무작정 채우기보다는 석사과정을 마치고 보건복지부로부터 전문간호사 자격을 인정받은 이들을 그 자리에 채우고, 그들의 역할을 시스템 안에서 인정함으로써 근거를 만들어 미래를 그리고자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선봉장에 나설 준비가 되어있던 무적 장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앞세워 함께 돌진해 나아갈 군사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당시 간담회에서 부원장님으로부터 그 뜨거운 청사진을 들은 후, 객석에서 나온 질문 중 하나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럼 이미 일반대학원 석사를 한 경우는 어떻게 되나요?”

내가 생각하기엔 이것이 그 때의 한계다.

오늘 전문간호사협회로부터 정책 브리핑 메일링을 받았다.

대 찬성이다. 진료지원 인력을 전문간호사제도로 흡수하는 것.

그런데, 진료지원인력 중 전문간호사 자격이 없는 경우 유예기간(2~3년)을 부여하여 법률적 안전성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한다라는 대목에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점이 보인다.

첫째로, 임상전담간호사가 특정 기간 내에 시간과 비용을 들여 훈련을 별도로 받아 전문간호사가 되면 개개인 간호사에게 돌아가는 보상이 명확히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리고 많은 간호사들은 지금까지 순수하게 1)자신의 자기 발전, 혹은 2) 환자에게 좀 더 나은 간호를 제공하고자 하는 의지 만으로 그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전문간호사가 됐다. 하지만 국내에 천 명 이상으로 늘어난 임상전담간호사에게 어떠한 상응하는 보상도 없이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일하기 위해 별도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 전문간호사 과정을 이수하라고 한다면.. 과연 통할까 싶다.

둘째로, 만약 전문간호행위에 대한 수가체계나 보상체계가 명확하게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유예기간을 시작하고, 그 기간 내에 현재의 전문간호사과정을 통한 전문간호사 자격을 득할 것을 권고한다면, 그 교육과정을 이수할 비용은 누가 부담해야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결국 주어질 보상도 없는데 시간 뿐 아니라 3000만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서 교육과정을 이수하라고 하면 누가 하겠는가? 적어도 이들을 고용하는 병원에서 장학금이라고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국가에서도 이를 위해 비용적으로도 철저하게 지원 해야 하지 않겠는가?

셋째로, 법률적 안전성을 획득할 수 있는 공식적 기회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 현재의 전문간호사 교육과정 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현재는 전시상황과 같다. 이럴 때는 무엇보다 신속하게 인력을 준비시켜서 투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국내의 전문간호사 과정은 현재 일하고 있는 천여명 이상의 임상전담간호사를 2-3년 이내에 절대 흡수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 근무하고 있는 임상전담간호사로 한정하여 “신속 교육과정”을 별도로 마련해서, 그 유예기간에만 한정적으로 운용하여 전문간호사 자격 주는 방식을 검토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동시에, 현재 전문간호사 교육과정은 수술지원에 대한 교육은 거의 포함하고 있지 않다. 수술실 PA에 대한 교육과정에 대한 개발이 매우 시급하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현재의 전문간호사의 분과를 어떻게 체계적이면서 간략하게 통합할지에 대한 대안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또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제시해야 할 것이다.

베를린 장벽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때에.

전문간호사들이 합법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 내에서 그 전문간호를 제공하게 될 날이 내일이 될지, 10년 후가 될지.. 가늠이 안되지만, 분명히 언젠가는 오리라 믿는다.

갑자기인것 같지만 전혀 갑자기가 아니었던 그 장벽 같이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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