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임의 추억..?

(2022.07.20. 티스토리 블로그 기록물)

그냥 아주 연한 핑크빛 액체였습니다.

왜 핑크빛일까..

병원에 전화하여 상태를 이야기했더니 또 반복되거나, 피가 다량으로 나오면 바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큰 걱정 안하고 있었는데, 그날 오후, 연한 핑크빛 액체가 왈칵 하고 또 나왔습니다.

그리고 전 그 날 (10주+1)부터 눕눕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 융모막하 혈종 진단

초음파를 이리 저리 보던 전공의 선생님은 뭔가 의아하다는 듯이 계속 이리저리 초음파를 돌려 보았습니다.

저는 뭐, 별거 있겠나 싶은 마음으로 별로 긴장도 하지 않고 누워있었는데,

전공의 선생님은 분명 심상치 않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라는 듯, 안도감을 주려고 애쓰는 목소리로 입을 떼었습니다.

최근에 혹시 무리하신 일이 있으실까요?
여기에 기존에 없던 피고임이 생겼어요.
교수님께서 확인해주셔야 하겠지만, 좀 쉬셔야 할 수도 있을것 같아요.

쉰다?

응?

얼마나?

도통 제가 감을 못잡고 있자, 잠시 누워있으라고, 교수님과 연락되는대로 알려주겠노라고 하고 전공의선생님은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교수님이 외래 진료를 보고 계시는데 일단 그쪽에서 직접 소견을 듣는게 낫겠다 하여 외래 진료실로 이동했습니다.

 

 

교수님께서도 매우 당황하시며, 이건 당신이 직접 말씀하셔야 할것 같아서 외래로 오라고 했다며, 도대체 2주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하셨습니다.

멀쩡했던 자궁이 2주 사이에 반이나 떨어졌다고.

네..?

그 때부턴 교수님의 목소리가 웅웅 하고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무조건 쉬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일단 무조건 버텨야 합니다.
일찍 나와버리면.. 너무 고생스럽습니다. 그건 안되지 않겠습니까..?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습니다.

몸이 무너질듯 힘이 들다가 9주차 정도 되었을 때 좀 나아지면서 기분이 좋아져서.

그저 기분이 너무 좋고 상쾌해져서 1박2일 강화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오긴 했었는데..

특별히 무리한건 전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문제라면 문제였을것 같습니다.

임신 초기엔 정말 극 조심 해야하는게 맞나봅니다. 제가 제 몸을 너무 과신했다 싶었습니다. 

2. 병가 시작

저는 이미 현실감을 잃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교수님.
좀 쉬다보면 나아질 수 있을까요?
지금 아예 휴직을 해야하는 상황인가요?

가능하면 휴직을 하는게 낫겠습니다.
좀 나아졌다 싶으면 이미 임신 후반기라, 몸이 많이 힘들수 있습니다.
의사에 따라 지금 시점에 쉴 필요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으나,
분만실에서 워낙 힘든 경우들을 봐왔기 때문에 전 무조건 쉬시라고 권합니다.

이건 뭐.. 그야말로 청천벽력..

첫째 때도 육아휴직도 안하고 버텼는데..

부서에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하나..

나의 향후 미래는 어떻게 되려나…

당장 휴직을 하기엔 처리해야할 일이 산적했고, 저의 출산 후 복직 후 미래가 불확실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한달 간의 병가기간을 갖고 그 이후 상태에 따라 추가 병가, 혹은 휴직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였습니다.

3. 눕눕 시작 (누워있고, 누워있고, 또 누워있고, 계속 누워있고…)

집에서 본격적으로 24시간 중 22시간은 누워있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밥먹을 때, 화장실 갈때만 빼고 계속 누워있었습니다.

그랬더니 한 3-4일 정도 후부터는 허리가 끊어지듯이 아팠습니다. 너무 누워있었더니 없던 허리통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정도 지나니 손목이 끊어지듯 아팠습니다. 누워서 핸드폰만 보다보니 손목통증도 얻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누워서 책이나 핸드폰을 볼 수 있는 독서대도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일명 눕서대 (누워서 보는 독서대)

 

못봤던 드라마, 예능들을 섭렵해가봐, 더이상 지겨워서 못보겠다 싶을때까지 본것 같습니다.

잠도 그렇게 오래 자본적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허리는 부서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언제 이렇게 쉬겠냐 생각하며 쉬는데 집중했습니다.

누워있을때 어느쪽으로 누워있어야 하나, 몸통은 들어도 되나 너무 고민이 많이 되었는데, 결국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바닥에 등을 대고 눕거나, 양 옆으로 돌려가면서 눕거나 하는 자세로 누워있었습니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11주+6), 초음파 검사 결과 1/2 정도는 흡수가 되서 좋아졌다고 확인되었습니다!!

4. 눕눕은 언제까지??

이렇게 누워만 있으니 나쁠일은 없겠다, 좋아질 일만 있겠다 싶었는데…

다시 약간의 출혈이 다시 뭍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딱 보니 갈색혈이라 그냥 고여있던게 나오는거겠지 싶어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예정일에 내원했는데, 교수님 의견은 좀 달랐습니다.

별로 좋은 징후가 아니며, 이러다가 자궁 경부가 훅 짧아지는 경우가 있어서 예의주시 해야한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더 쉴 것을 권하셨고, 결국 병가를 더 연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총 2달 정도 꼼짝없이 누워있었더니,

누워있는게 이제 더이상 지겹지도 아프지도 않고 익숙해졌을 때 쯤 고였던 피가 거의 다 흡수가 되었습니다.

이제 과제는 병가 종료까지 남은 한달을 어떻게 쉬느냐였는데..

병가 후 갑작스러운 활동이 또 무리가 될까봐서 아주 조금씩 움직여보기 시작했습니다.

거실에서 유튜브를 보며 요가를 따라하기도 했고, 아이 유치원 하원을 직접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몸을 움직여 회복시켜가며 총  3달의 안정가료 끝에 (22주)

피고임은 거의 다 없어졌고,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도 되겠다고 진단되었습니다.

그리고 건강하게 뱃속의 아이와 함께 복직하여, 무려 39주까지 아주 무탈하게 근무 하고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

1. 임신 극초기에 여행은 삼가는게 좋겠습니다.

2. 피고임에는 절대 안정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3개월 정도의 안정이 필요했습니다.

3. 피고임이 있을 때 눕눕의 자세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쉰다는게 중요할 뿐.

4. 피고임은 어쩌면 뱃속의 아가가 하는 첫번째 효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가 온전히 쉴 수 있도록 지켜주니까요.

(2022.07.20. 티스토리 블로그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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