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17년 여름, 아동전문간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임상에서의 역량 강화를 위해 선택한 과정이었다. 상근직으로 근무하면서 야간에 수업을 듣는 것도, 조직 구성원들의 배려를 받아 off를 받고 실습을 다니는 것도, 여러모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와중에 첫째를 임신하고 출산했고, 남편과 친정 엄마의 배려를 받아가며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에 공부를 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 전문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을 취득한다고 특별히 어떤 인센티브가 생기는 건 없었다. 실은 알고 시작하긴 했다. 너무 힘들 때는 내가 진짜 뭘 위해 이 고생을 하나 싶어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지만, 환자에게 조금 더 이로운 돌봄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는, 분명히 어딘가는 써먹을 데가 생기리라는 초심으로 버텼고, 결국 끝은 났다.
경제적 차원에서 따져보면, 전문간호사 과정을 하는 간호사들은 어리석다. 쓰는 돈과 시간을 생각해보면, 도저히 수지타산이 안 나온다 (여전히 나는 그때 받은 대출 3000만원 중 1100만원이 남아있다). 조직적 차원에서의 경제적 보상도 없을 뿐 아니라, 심리적 보상도 딱히 없다. 실은 그건 그래도 참을 수 있는데, 훈련되고 배운 걸 제대로 쓸 수 없다는 건, 이 과정 자체의 존속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심지어 국가와 국민은 이렇게 준비된 인력을 아까워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그저 간호사의 처우 개선과 국민 건강 증진 만을 목적으로 한 간호법조차 국가와 국민에게 외면 당했는데 전문간호사는 무슨… 그러나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간호 협회나 학교는 이 과정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혹자는 전문간호사 과정 자체가 국내에서 기형적으로 출발하였으니 자연도태 될 거라고 했단다. 미국에서는 전문간호사가 그 존재의 필요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합의를 바탕으로 출발하였지만, 국내에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전문간호사가 생긴 1960년대에는, 미국의 시골이나 도심의 슬럼가 등에서 일차의료를 제공할 의사가 매우 부족했고, 이에 대한 요구가 매우 컸었다. 이에 아동 간호사였던 로레타 포드(Loretta Ford)가 동료 의사 헨리 실버(Henry Silver)와 함께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해법으로 간호사 주도 일차 의료를 제시하였고, 콜로라도 대학교에 최초의 전문간호사 인증 과정을 개설하였다(joyce J, Fitzpatrick).
이후 1974년에 미국간호협회는 일차의료 전문간호사 협의회 (Council of Primary care Nurse Practitioners)를 창설하여 미국 의료체계 내 전문간호사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자 하였고, 1985년에는 미국 전문간호사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Nurse Practitioners)를 설립했으며, 1989년에는 미국 전문간호사 아카데미 저널(Journal of American Academy of Nurse Practitioners)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1993년에는 전체 미국의 전문간호사 리더 회의를 개최하여 전문간호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치적 목소리를 함께 내기로 결의하였고, 결국 1997년에 이르러 연방 균형예산법을 통해 전문간호사의 진료비 직접 환급법(Direct reimbursement)을 획득하였다. 물론 미국에서도 초기 교육과정 및 실무 수행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농어촌 지역 등 인력이 부족한 곳에서 의료 체계 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에 지금까지 미국에는 약 355,000명의 이상의 전문간호사가 배출되었고, 이들은 현재 일차 의료인력의 1/3 이상을 차지하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joyce J, Fitzpatrick).
국내에는 미국 전문간호사의 등장 약 10년 후인 1973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50년 전, 전문간호사의 전신인 분야별 간호사가 등장하였다(의료법 제56조). 초기에 제정된 전문 분야는 보건, 마취, 정신, 그리고 가정 분야였으나 2003년에 감염관리, 산업, 응급, 노인, 중환자, 호스피스가 추가되었고, 2006년에는 종양, 아동, 임상이 추가되어 현재까지 총 13개 분야의 전문간호사가 양성되고 있다. 국내의 전문간호사 교육과정은 일반대학원이나 특수대학원에서 33학점~38학점의 석사 과정을 이수해야 하고, 이에는 300시간 이상의 임상 실습이 포함된다. 심지어 미국과는 달리(마취 전문간호사 과정 제외), 전문간호사 과정 이전에 해당 분야에서 3년 이상의 임상 경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2005년 이후부터는 보건복지부 소관으로 전문간호사 자격시험이 시행되어 간호연구, 간호이론, 약리, 병리, 상급건강사정, 전문간호사의 역할 및 정책 등 공통과목에 대한 40문항과 개별 전공 별 상급 전문간호 전공과목 110문항에 대한 1차 시험을 통과하고, 2차로 사례 기반 서술형 필시시험을 통과해야지만 그 자격이 부여된다.
하지만 한국은 시대적 요구를 대비하며 다소 많이 앞서 나가는 차원으로 전문간호사를 도입했고, 이를 의료 시스템과 통합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개별 의료기관에서는 이미 양성된 전문간호사를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을 몰랐고,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인력인 임상전담간호사(PA, CNS, CPN 등등)가 개별 의사의 필요에 따라 우후죽순으로 채용되고 훈련되기 시작했다. 이는 국민적 요구는 아니었으나, 기피과의 존속을 위한 병원의 생존 방식이었기에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는 어쨌든 수많은 병원의 외과의사들은 임상전담간호사 없는 진료와 수술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임상전담간호사와 오랜 시간 협력관계를 이루어 왔고, 임상전담간호사는 웬만한 전공의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훨씬 안정적으로 의사를 지원하고 있다. 오히려 전공의를 교육할 정도이다. 하지만 전문간호사는 전문간호사대로 1만 7천여명이 양성되었으나, 자격증만 있지 할 수 있는 역할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1/4만이 나름의 역할을 개척하여 수행하고 있다.
나는 전문간호사이기도 하지만, 전담간호사이기도 했다.
근무 중인 전담간호사들을 모아 수차례 간담회를 하며 전문간호사 과정을 강권하다 좌절한 조직의 리더십도 목격한 바 있고, 전문간호사의 존재에 대한 별다른 인식 없이 그냥 병원의 필요에 따라 간호사라면 일단 공급하는 것에 주력을 다하던 리더십을 목격하기도 했다. 올해 간호법이 좌절되었을 때, 출근해서 준법투쟁을 하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는 음지의 간호사들의 분노를 목격하기도 했다.
“보통 선험국의 제도와 정책을 우리가 가져오잖아요.
가져올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현실에 적합하게 modify해서 가져와서 그것을 적용해야 된다는거에요. 이게 가장 중요한 겁니다. 외국에서, 그 나라에서, 그 제도가 얼마나 필요했고, 활성화되었는지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 이건 모든 정책이나 제도에 있어서 동일하거든요. […] transfer theory에서 제일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 현실에 맞게끔 우리 보건의료 환경과 시스템에 맞게끔 그 제도를 가져와야 된다는 거에요.
근데 과연 간호계에서 이 전문 간호사 제도를 미국의 NP 제도를 단순히 모방한 것에 그친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저는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 현실에 적합하게 이 제도가 설계되었는지, 그리고 활용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물론 현장에서 일하고 계신 전문 간호사분들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계시고, 어느정도 임상적인 효과도 가지고 있고, 그런게 입증되어 있다는 건 알고는 있습니다. [..] 하지만 아직은 전문간호사 제도가 간호계나 우리 국가 정보가 요구하는 기대만큼으로 활성화 돼 있거나 발전되어 있지는 못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게 비단 간호계만의 문제는 아니고,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한 책임도 있을거라고 생각을 해요”
[…]
“우리 전문간호사는 법적으로 제도화가 됐잖아요. 근데 법적으로 제도화가 안됐지만 우리나라 병원 임상 현장에는 전담간호사라는게 또 있어요. 그쵸? 그리고 체외순환사가 있습니다. 학회라든지 협회에서 certification을 발급하는 체외순환사가 또 있어요. […]전문간호사는 뭐고, 전담간호사는 뭐고, 또 각 병원에서 CNS, CPN 이라고 부르는 다양한 방식의 운영이 있잖아요? 과연 이게 어떻게 학문적으로나 임상적으로나 차별화가 되죠? 무엇이 다른가요?
의사들이 의과에서는 국시를 통해 의사 면허를 따오면 다시 인턴, 레지던트 수련과정을 통해서 26개 전문과목의 전문의를 갑니다. 그러면 이 26개 전문과목 내에서 또 세부 분과 전문의가 나눠져요. 또 세부 분과 전문의에서 또 세부 분과 전문의가 또 나눠지고, 또 각 임상학회별로 인증 의사 제도가 이렇게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카테고리가화가 어느정도 잘 형성이 되어 있고, 세분화가 되면서 각각 분야별로 전문성과 특수성을 발달시켜나가고 있잖아요.
근데 우리 간호 현장에서 전문 간호사는 그러한지..? 그리고 전문간호사, 전담간호사, 체외순환사, 도대체 어떻게 관계가 설정이 되고 있나요? 좀 전반적으로 전문간호사 뿐만 아니라 임상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전담간호사, CPN, CNS, 체외순환사 이런 영역을 총체적으로 한번 바라봐야되는거 아닌가요? 그리고 관계에 있어서 학문적으로나 임상적으로 서로 체계화가 되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저는 이러한 측면에서 파괴적인 발전방안이 필요하다고 봐요. 전문간호사 수가 이렇게 많아야 되는건지? 그리고 각각이 정말 현장에 터를 잡고 있는건지? […]
정부가 이거를 앞장서서 통폐합을 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나설수는 없어요. 전문간호사의 영역은 정말 간호계의 전문성에 터잡은 영역이기 때문에 간호계가 앞장서서 오늘 이 자리 토론회를 시작으로 해서 전문간호사 제도를 어떻게 정비를 할 것인지, 그리고 임상 현장에서 쓰여지고 있는 전담간호사와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할 것인 것, 전체적으로 한번 바라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게 선행이 되고 나서 제도가 정비가 되고 난 다음에 임상현장에서 분명히 성과가 나올 거라고 봐요. 임상적인 성과가 나온다면 정부가 그 다음에 이에 대한 보상체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또 제도를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 분명히 고민을 해야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1월에 정부에서 필수의료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했을 때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체외순환인력 등 이런 인력에 대해서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팀 단위 보상체계를 확립하겠다고 이미 발표를 했습니다. 발표를 했는데 보상체계를 저희가 중장기적으로 만들거에요. 왜 중장기적으로라는 표현을 썼냐 하면,선행조건이 있습니다. 전문간호사제도 자체가 먼저 정비가 돼야돼요.
간호계 스스로 현장에서 쓰여지는 전담간호사, CPN, CNS, 체외순환사 이런 모든 영역들을 함께 다 펼쳐놓고 정리를 한번 해봐주세요. 그 다음에 정부에서는 이거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 그리고 건강보험 수가로 어떻게 보상을 해드릴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겠습니다.
제가 정말 부탁드리고 싶은 영역인 전문간호사 이 부분에 대해서 간호계가 스스로 고민해주시고 발전방안을 내놓아 주시면 정부로서는 너무 감사하겠습니다(임강섭 간호정책과장).”
필요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그 법적 존재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던 그 시작은 50여년이 지난 지금 풀기 어려운 혼탁한 지형을 만들어냈고, 이에 대해서는 보건복지부와 간호협회가 모두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아래와 같이 다소 비겁한 입장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를 설득해내는 것 또한 간호계의 역량일 것이다.
간호계는 스스로 그 내부의 생태계를 어떻게 정돈할지를 고민하고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대한민국의 모든 간호사는 하나의 조직, 바로 대한간호협회가 관리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가 이미 주어진 그 조직력을 십분 활용하여 간호사의 체계를 바로잡고,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그 조직력을 사용한다면 분명히 그 엉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아마 1차로 정비해야 할 문제는 전문간호사와 임상전담간호사의 관계일 것이다. 전문간호사를 위한 석사과정을 마치지 않았으나 실제로 근무하고 있는 임상전담간호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을 전문간호사라는 제도 안에 포용할 적절한 과정과 계도기간을 마련하고, 그 자격을 인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모든 간호사가 체계적으로 준비된 과정을 이수했을 때만이 해당 역할을 할 수 있게끔 대한간호협회 차원에서의 통제와 협조요청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가운데 발생하는 갈등을 풀어내는 건 어느 누구도 아닌 간호협회만이 할 수 있다. 주도권은 기관이 아닌 간호협회가 잡고 있어야 한다. 간호사들은 리더십을 기다린다.
그리고 정부는 그동안 준비시킨 고급 간호인력들을 어떻게 적재적소에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비단 국내의 간호계가 전문간호사를 대형병원의 의료시스템과 결합시키는 데 실패하기는 하였으나, 지금 우리가 피부로 경험하는 현실은 대형병원에서 외과의의 부족에 그치지 않는다.
간단한 진료와 약처방을 위한 소아과 오픈런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가? 오지에서 국방을 지키며 출타가 어려운 군인은 언제까지 약을 쪼개 먹어야 하는가? 이제는 외과 뿐 아니라 소아과 내과 불문하고 병동을 지키는 임상전문간호사들이 산적해 있는데, 그들의 대리처방, 대리기록, 대리 처치는 언제까지 그냥 묵과할 것인가?
NP제도를 미국에서 단순히 모방해서 들여왔다고 간호계를 탓하는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비겁하다. 여전히 전문간호사의 자격은 보건복지부가 인증해주고 있지 않은가? 의료법에 전문간호사는 여전히 명시되어 있지 않은가? 분명히 의료법에 전문간호사를 명시한 이유와, 여전히 존속시키고 배출하는 이유가 있지 않은가? 그에 대해 해명하고, 제자리를 찾게끔 제도 정비를 할 태세를 갖추는 것은 바로 정부의 몫이다. 게다가 간호사는 을이 아닌가? 이러한 입지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용인되는 배경이 된다. 아주 비관적이진 않은 지점은 다음과 같다.
“전문 간호사 제도는 아주 중요해요.
우리 간호사가 경력을 쌓으면서 전문성을 함양하면서 임상 현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도록 Clinical Pathway를 제공하고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받으면서 의료기관 내에서 그리고 국가에서 적절한 보상을 받으면서 일할 수 있도록 그런 환경을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게 간호계, 병원 현장, 그리고 국가적으로 아주 중요합니다. 그것은 간호사 개개인에 있어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환자의 임상적인 치료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제도예요. 이 제도를 우리가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 파괴적 고민을 한번 해봐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지금 아주 제 평소와 다르게 아주 순한 표현을 쓰고 있는데요. 발전적 고민 파괴적 측면에서의 발전적 고민을 해봐야 된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임강섭 간호정책과장).”
우리는 그저 간호가 필요한 대상자에게 마땅히 필요한 전문적 돌봄을 우리의 삶으로 제공하고자 하는 의료인이 되길 선택했을 뿐이다. 우리는 준비되어 있고, 세상에서 제대로 사용되어지길 기다리고 있다.
전문간호사 개개인의 시간과 물질의 희생보다 비극적인 국가적인 희생, 국민 건강 사수를 위한 의료시스템의 한계점 봉착이 머지않아 도래할 수도 있다.
대한간호협회 100주년 기념 한미 학술대회 [선험국의 전문간호사제도 고찰을 통한 한국 전문간호사제도 발전 방안 모색]에 참여하여 아래의 연자 및 패널의 강의 및 논의를 들은 후의 소감문임.
연자
Joyce J. Fitzpatrick (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 Distinguished Professor)
Haeok Lee(New York University, Professor)
유양숙 (가톨릭대학교 교수)
강윤희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패널토의 패널
강영아 (임상전문간호사)
김혜연 (노인전문간호사)
탁영란( 대한간호협회 제1부회장)
임강섭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