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 당기기. 진땀 납니다.

고무줄 당기기.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졌습니다.
이긴 친구가 제 팔에 고무줄의 한쪽을 갔다댄 후 나머지 한쪽을 팽팽하게 잡아당깁니다.
아.. 아무리 벌칙이라긴 하지만..
팔 뿐만 아니라 온몸이 후덜거립니다.
이미 머리엔 땀이 삐질..

언제 고무줄을 놓을지 모르는 긴장감..
결국 그 얇디 얇은 고무줄에 세게 한번 당하고 엄청 고통스러워하지만,
그래도 또 가위바위보를 합니다.
고무줄 당기기.
연애를 할 때 고무줄 당기기의 기술이 있어야한다고들 하지요..??
솔직히 저는 그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좋으면 좋은거고 싫으면 싫은거지, 왜 고무줄 당기기를 해서 진땀 빼게 만드는지..!!

제게 고무줄 당기려는 사람도 맘에 안들고, 저도 고무줄, 당기려고 시도조차 안한답니다.

그렇게 감정을 소비하는 것부터 맘에 안들뿐더러, 실은 고무줄을 당기는 방법을 잘 모르기도 하구요ㅠㅠ

그런데 한가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고무줄 당기기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긴장상태에 있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헐헐~~

그가 고무줄 당기기를 시도하고 있는지 어쩐지는 몰라도, 왠지 고무줄 당기기와 비슷한 상황(예 : 아무런 예고없이 갑자기 연락이 안됨, 말이 줄었음, 그러다 다시 연락도 잘되고, 분위기도 좋아짐 등등)을 겪었을 때를 기억해보면, 확실히 온 마음이 그에게만 집중되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무줄 당기기.
실은 요즘 왠지 하나님이 고무줄 당기기를 하고계시는 느낌입니다..

“하나님!! 이 긴장감.. 도대체 어떻게 설명되는지요. 이거, 고무줄 당기기도 아니고!!!!”

정말 이런 긴장감은 너무 낯설어서 어떻게 해결시켜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긴장감이냐면..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귀한 딸이야. 나는 특별해. 나는 늘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어. 하나님과 함께 하기는 정말 즐거워. 하나님도 기뻐하고 계실거야.”
VS
“너 너무 교만한거 아니니?? 넌 아무리 그래봐야 죄인이야. 니가 뭐길래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니??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 또한 습관처럼 되버린건 아니구?? 아무리 그래도 넌 죄인이야. 최소한 그 무시무시한 교만죄!!”

아.. 정말 이 둘의 긴장감 사이에서 정말 괴롭습니다.

요즘 여전히 하용조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를 보고 있는데.. 거의 비몽사몽으로 들은 것 같은데도..아주 그냥 절 뒤집어 놓습니다. 정말 “로마서”, “로마서”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50여일의 장정이 완전 끝난 후에야 진정한 감동과 기쁨으로 “아!! 진짜 이것이 로마서구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꼭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참..불편합니다..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있다라는 만족감, 기쁨, 그리고 높아지는 자존감.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다는 민망함, 우울, 그리고 낮아지는 자존감.

그나마 예수님이 이 중간에 계셔서 이 고무줄이 겨우 끊어지지 않고, 어느 한쪽으로도 튕겨 나가지 않고 있다는 건 알지만..아.. 그래도 이 긴장감은 참 진땀빼게 만듭니다.
음..

이번 2008년..한해동안 하나님을 좀 더 깊이 알게되면서, 어느 순간 한가지 결심한 것이 있었는데..

“내가 겪고 내가 아는 하나님만 말하자!! 내가 지킬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 조언하려고 하지도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어느순간 보니, 제가 입으로 말하고 있는 것과 저의 모습이 너무 다르더군요. 제 가식스러운 모습이 참 역겨워서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었습니다.

이 이후의 시간은 짧았지만..그 사이에 눈치챌 수 있었던 한가지 놀라웠던 사실은, 제가 진짜 아는 하나님과 제가 직접 경험한 말씀들만을 말하고 나누더라도, 정말 뭔가 다르더라구요. 일단 제 스스로가 자신있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또한 뭔가 편안해 보였습니다. 뭔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따뜻함도 그 대화가운데 느껴졌구요.

이렇게 나름대로 “종교인”이라는 껍질을 벗어내려고 시도해왔었는데..
혹시라도 내가 아직 “종교인”의 탈을 쓰고 있는건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기시작하면서.. 그래서 예수님을 향한 참 사랑과 감사 없이, 죄인으로서의 그 회개의 진정한 감격 없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의식”만 가지고 사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면서..이 긴장감은 점점 절정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견디기 어려운 긴장감을 통해 더 하나님께로 집중하게 하시는 하나님 그분을 발견하고는, 혹시
그분이 지금 고무줄 당기기를 하고 계시는건가
라는 유치한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실은 이 때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답니다.

아.. 지금으로서는 로마서의 50여일의 여정이 참 멀게만 느껴집니다. 이런 긴장감을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런지…

그래도 이 긴장감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사랑의 지혜로운 전략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매일 한발자국씩 나아가보려구요..아자아자!!!

하나님.
저 하나님께서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의 딸 맞지요..??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되는거지요..?? 그걸 기뻐해도 되는 거지요..??

실은 그것만큼 자랑스러운 것과 그것만큼 기쁜게 없는데.. 이것이 절 교만하게 만든건 아니었나를 다시 돌아보고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 솔직히 예수님 당신의 그 피흘리신 고통에 매일 진정으로 감사하지 못했거든요.

그보다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저의 Best friend가 되어주신 그 사실을 그저 더 기뻐하고 누리고 있었거든요.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은 그 회개하는 마음과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뻐하는 마음.. 어떻게 보면 이 극단적인 두가지의 마음 가운데서 긴장감을 지키고 있는게 생각보다 많이 힘드네요.

그래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을께요. 늘 저와 함께해주시는 하나님 당신을 생각하며, 늘 저를 사랑해주시는 하나님 당신을 생각하며 한발자국씩 하나님께로 나아갈께요. 꼭 저와 함께해주세요^^ 아!! 그리고 그나저나 하나님. 이상하게 어금니가 조금씩 시리네요..?? 이거 썪은거면 골치아픈데..ㅠㅠ

하나님. 한국 돌아갈때까지는 치과갈 일 없게 해주세요..ㅠㅠ 히잉..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08년.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사랑하니까 헤어지는건.

8년 연애해서 결혼하신 우리 목사님. 그 기간 가운데에도 6개월의 헤어짐 기간이 있었다는데, 바로 목사님께서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하셨을 때었다고 한다.

사모님은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실 수 없었고(장로교에서는 사모가 직업을 따로 가질수가 없었고, 사모님께서는 그토록 하고싶어하시는 교사를 하시기 위해 새로 공부해서 학교에 들어가셨었기 때문에..)목사님께서는 사모님께 그 어려운 사모의 길을 강요하실 수 없었다고 한다.

너무 사랑하기에, 사모님의 앞길을 막으실 수가 없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목사님은 “사랑하니까 헤어지는거야.”라는 말을 이해하신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나의 스토리와 비슷했다.

그런데 그 뒤에 엄청난 반전이..

6개월 후에 사모님께서 돌아오셨다고 한다. 교사를 못하더라도 목사님과 함께 하시겠다고..

목사님은 사모님을 꼬옥 안아주셨고, 하나님과 협상을 하셨다고 한다.

“저는 무조건 제 아내, 그토록 하고싶어 하던 선생님 시킬 겁니다!!”

“사랑하니까 헤어지는거야.” 라는 말을 듣는 상대방은, 그래도 만약 그가 정말 날 사랑한다면 나를 붙잡아주길, 나에게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확증해주길 바란다는 목사님의 말씀.. 너무나도 공감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는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것”은 진짜 사랑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하셨다.

실제로는 자기가 그 사랑을 감당할 용기와 자신이 없어서라고 헤어지는 것이라고 하셨다.

목사님은 아신댔다. 목사님은 자신이 먼저 사랑하는 사모님을 붙잡지 못한 것에 대해서 늘 항상 마음 한구석에 늘 사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하셨다.

나도 이제 좀 알것 같았다.

아니.. 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또 헤메고 있으니, 하나님이 어찌나 친절히 다시 정리 시켜주시던지.. 그것도 설교 말씀을 통해서..

나의 앞길을 감히 포기하지 못하고 오빠에게 돌아가지 못한 나나,

나의 삶과 비전을 온전히 존중해줄 자신이 없어 나를 놓아버린 오빠나,

둘 다 겁쟁이었고 사랑의 초보자였음을.

(2008년.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2020년대에 임신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경험하게 하는가? 임신 여성의 적응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논문 리뷰)

소개

본 연구는 국내의 여성이 임신에 적응해가는 현상에 대한 탐색 연구로, 임신 적응의 본질적 구조와 의미를 밝히기 위해 시행되었다.

연구 방법

  1. 연구 참여자: 임신 29주에서 39주 사이의 건강한 임산부 10명
  2. 자료 수집: 전화 인터뷰(임신과 관련된 전반적인 생각, 느낌, 기분, 감정, 생활사건, 일상생활, 배우자 및 태아와의 관계, 감정 및 어려움을 조절하는 방법 등)
    • 인터뷰 기간: 2018년 8월21일~2019년 4월 26일
  3. 자료 분석: Giorgi의 기술적 현상학
    • 1단계: 전체적 맥락과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참여자 진술의 텍스트를 여러번 정독
    • 2단계: 연구자의 학문적 관점에서 참여자가 진술한 현상에 대한 의마단위 구분
    • 3단계: 나누어진 의미단위를 조합하여 주제화한 후, 연구자의 학문적 관심에 따라 ‘학문적 용어’로 변형.
    • 4단계: 도출된 각 중심의미를 통합 및 분류하고, 참여자의 관점에서 파악한 경험의 의미단위를 핵심상황으로 분류 및 체계화하여 상황적 구조를 기술함.
    • 5단계: 상황적 구조 기술문을 통합하여 전체 참여자의 관점에서 파악된 경험의 의미인 일반적 구조를 기술함.
  4. 연구자 준비
    • 제 1저자: 모성간호학 석사 및 박사, 질적연구 분석 및 연구방법론 수업 이수, 지역사회 여성의 산전 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중재 경험 있음.
  5. 연구 타당성 확보: Guba와 Lincoln 와 Sandelowki의 엄밀성 확보 기준을 따름.

연구 결과

  1. 임신을 인지했을 때
    • 임신으로 인한 불안과 부담감, 당황스러움
      • 계획적으로 임신하였음에도 걱정, 심란함, 무서움.
      • 임신으로 아기에게 아내를 빼앗길 것을 걱정하는 남편.
      • 비계획 임신으로 부담, 놀람, 당황스러운 마음
    • 가족과 친구의 기쁨과 축하로 괜찮아짐
  2. 임신으로 여러 상황이 변화해 나갈 때
    • 신체적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
      • 오랜 입덧의 고통을 홀로 견딤
      • 임신 유지와 출산을 위한 건강 관리
      • 임신에 적응하기 위해 산모교실 참여
    • 임신으로 인한 심리적 어려움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
      • 임신으로 인한 부정적 감정을 억제하려는 마인드 컨트롤
      •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는 가족의 지지
      • 사회 망을 통한 심리적 지지 획득
    •  임신으로 인한 재정 부담과 역할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
      • 임신, 출산에 필요한 재정적 부담감
      • 일과 아기 중에서 아기를 선택한 의식의 전환
    • 태아와 관계 맺기
      • 태아의 존재를 인정하고 태동에 의미를 부여함
      • 태아에게 엄마보다 더 적극적인 아빠
    • 아기를 중심으로 새로운 부부관계 적응
      • 부모 역할을 위한 동반자
      • 부부 간에 이해와 배려로 맞춰감
      • 아내를 더욱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남편
        • 남편의 위로와 공감이 필요함
  3. 출산이 다가올 때
    • 출산에 대한 막막함
      • 자연분만에 확신 없음
      • 부부가 함께 출산을 준비함
    • 출산에 대한 두려움
      • 임신 여성의 출산 두려움
      • 배우자의 출산 두려움
      • 출산 두려움 완화를 위한 산전 교육 참여
  4. 산욕기를 준비할 때
    • 도움이 필요한 산후 조리와 수유계획
      • 산후조리 계획을 세움
      • 자신없는 모유 수유
  5. 육아 대책을 세울 때
    • 상상 이상으로 벅차게 다가오는 육아
      • 육아 현실에 대비하지 않은 부모 역할의 막막함과 벅참
      • 독박 육아로 앞이 캄캄함
      • 믿을 만한 정보의 부족과 산전 교육의 실질적 도움
    • 아빠의 육아 참여 의지
      • 아빠들의 육아에 대한 의지와 걱정
      • 아빠의 육아 담당
      • 남편의 아기 돌봄과 애착 형성에 대한 아내의 바램
    • 직장 맘의 경력 단절과 육아에 대한 부담
      • 직장 맘의 경력 단절의 숨막힘과 우울
      • 직장의 업무 조장과 배려 필요

리뷰 소감

본 연구는 일반적인 여성이 임신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것을 Giorgi의 현상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여 탐색한 연구로, 임신을 한번이라도 직접 경험한 여성에게는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것 같은 사실들의 나열로 보일 수 있겠으나,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임신에의 적응 현상을 이해 하는데 근거가 되어줄 것으로 보인다.

연구에서 도출한 임신 적응과정에서의 본질에서 신체적인 적응 과정은 잘 드러나지 않은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지만, 정서적, 사회적인 차원은 잘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직장 맘”이라는 단어를 본질로 도출했고 이것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만 보아도, 이 연구가 2020년대 여성의 임신 적응에서의 사회적, 언어적 현상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2050년대에는 지금의 이 연구가 드러내는 임신 적응 현상이 생경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나, 지금 이 시대를 살며 임신을 두 번 경험한 나로서는, 이 논문이 현상을 잘 반영했다고 평가한다.

Reference

고민선, 김지순, & 안숙희. (2020). 임신 여성의 적응에 관한 Giorgi 의 기술적 현상학 연구Korean J Women Health Nurs26(4), 346-357.

사랑하는 당신앞에 거룩하게 서게되길..

사랑하면 예뻐집니다.
사랑하면 멋있어집니다.
사랑하면 더 많은 웃음으로 밝아질 뿐 더러, 사랑하는 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 정말 민감하게 됩니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는 거울 한번 더 보게 되고.. 그(녀)와의 전화통화 목소리는 바뀝니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는, 다른 이의 귀찮았던 부탁도 별거 아닌양 기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녀)의 사랑이 언제나 나를 지켜주고 있는 것 같이 그(녀)가 옆에 없어도 여전히 나는 예쁘고 멋있습니다.

점점 상대방의 모습이 변합니다.
헝클어진 머리.. 깔끔하지 못한 옷..
외모 뿐만 아니라, 말투도 점점 거칠어집니다.
이 사람 변했습니다.
여전히 날 사랑하긴 하는 건가 의심스럽습니다.
편해져서 그렇다고 하긴 하는데..
예전의 그 사랑은 없어진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집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점차..
아주 조금씩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아주 바위를 뚫어버리기까지 되어버립니다.
교회와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예배후, 나름대로 건전하게 차마시러 갔다가 남 얘기, 제 자랑만 실컷 합니다.
교회와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예배후, 집에와서 드라마에 심취하여 정신 못차립니다.
교회와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예배후, 뒤풀이로 술마시러 갑니다.

처음엔 하나님이 좀 신경 쓰였는데..
점차..
한번..두번..무시하다 보니..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나의 사랑, 나의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바라보고 계실지는..전혀 신경쓰이지 않게 됩니다.
그래도 여전히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시겠지..
그러나 이 때 하나님은 우십니다.

날 아직도 사랑하긴 하는거니..??

현명한 여성, 현명한 남성이라면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열정이라는 사랑이 식는다 할지라도 그를 향한 나의 사랑을 약속했기에 여전히 자신을 아름답고 멋있게 지킵니다.

여전히 그 앞에서 예쁘게 , 멋있게 보이고 싶어하고, 여전히 그 앞에서 최고의 여인, 최고의 남성이고 싶어합니다.

그렇게 상대방을 향한 민감함을 지키며 그를 향한 설레임의 사랑도 지키게 됩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한결같은 사랑을 기다리고 계시지 않을까요..??
한결같이 그에게 사랑받으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을 기다리고 계시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 또한 이 사랑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예쁘게 보일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를 향한 나의 사랑을 지킬 수 있을까??

거룩함..
분별됨..

문득… 나는 임자있는 몸이야!!! 라고 자신있게 선포하며 우리 스스로를 거룩하게 분별시키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을 보고 기뻐하실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 때, 그를 향한 우리의 사랑도 한결같이 지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 이 시대를 함께 사는, 하나님께 매인 모든 그리스도인 청년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 마치 저의 친한 친구인 것 처럼 가깝게만 느껴집니다.. 그래서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되든 뭔가 금방 통할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 어설픈 글들을 정기적으로 읽어주시는 분들 또한 이미 제게는 가까운 친구같이 느껴집니다)

전 저의 믿음의 친구되시는 여러분과 함께 꼭 한가지 약속하고 싶은게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 거룩함을 지키는 것입니다. 거룩함으로 분별됨으로 하나님께 변하지 않는 사랑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세상사람들 보기에 우스워보인다 할지라도, 그리고 재미없고 멍청해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사랑만큼은 놓칠수 없다라는 뜨거운 열정으로 결심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대가..너무 아픕니다.. 너무 쓰라립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하는 그분 앞에 거룩하게 서기로 결심했으면 좋겠습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디모데 후서 2:20-22

하나님..
우리가 분별되길 원합니다. 당신앞에 거룩한 산 제사가 되길 원합니다. 깨끗한 그릇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 스스로를 분별하여 당신 앞에 드리길 원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망이고 우리의 참 기쁨임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신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분별되지 못하고 세상과 다를바 없이 살아온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옵소서. 그리고 지금도 그리스도인이라는 딱지를 붙여 놓고도 그 죄가운데 뒹굴고 있는 청년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하나님. 당신 앞에 분별되는 그리스도인 청년들이 매일같이 늘어나게 하시고, 당신의 사랑안에 거하는 청년들이 이 땅 위에 가득 넘치게 하옵소서. 아버지. 이 패역한 시대 가운데 당신의 거룩함으로 무장한 청년들을 당신의 일꾼으로 삼아 주옵소서. 이 시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는 더럽고 연약하나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케 되었음을 믿습니다. 또한 우리의 분별되고자 하는 결심을 당신이 기뻐하실것도 압니다. 우린 온전히 당신께 기쁨이 되기만을 원합니다. 복주시고 새롭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08년.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나의 사랑하는 분, 예수.

오늘은 제가 정말 사랑하는 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 그분 이야기를 하려고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레네요.

그분의 이름은 여러분도 한번쯤은 들어 보셨을 거에요.

예수.

연애를 하면 막 자랑을 하고 싶어지죠??
아무리 푼수 소리를 들어도, 사랑하는 이는 마구 자랑하고 싶어지기 마련입니다.
제게 있어 이 사랑은 예수님입니다.

음.. 전 예수 그 이름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편안함, 따뜻함을 느낍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투정을 부리든 잠잠히 따뜻하게 웃어주며 절 바라봐줄 것 만 같은 예수님앞에서
저는 한없이 어린아이가 된답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사설이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미리 생각하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느끼는 그대로, 생각하는 그대로를 표현할수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것들조차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투정을 부리든, 잠잠히 따뜻하게 사랑으로 절 바라봐줄 예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님은 저의 가장 든든한 빽입니다.
지금까지 저와 함께 동행하시면서 모든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예비해두셨었고, 앞으로도 또한 그리하실 그분때문에 전 아무 걱정도 없습니다. 그분은 정말 최고입니다!!!
제겐 정말 예수님외에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예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너의 삶가운데 무엇을 어떻게 예비하셨길래..?
일일히 나열하기에 정말 수도 없을뿐더러, 제가 이해하는 수준으로 표현했다가 아주 유치해져버릴까봐, 그리고 제가 자칫 잘못 이야기 했다 제 자랑이 되어버릴수도 있을 것 같아 삼가겠습니다. 그분께서 하신 것들이 자연스럽게 향기가 되기만을 소망합니다.

하여간.. 정말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직접 겪어 보시라는 거에요.

이런 최고의 후원자이자 사랑이신 예수님앞에 있는 그대로 다가가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노라면.. 어느순간 마음가운데 잔잔한 쓰라림이 느껴집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그분의 사랑 때문에 제 마음이 쓰립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하철로 뛰어들어 한 사람을 구하고 대신 죽은 이를 칭송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강으로 뛰어들어 한 사람을 구하고 대신 죽은 이를 영웅이라 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여 살게된 그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됩니다.
나를 위해 대신 죽어준 그 사람의 희생을 생각할 때..이 세상 그저 헛되이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그런 죽을 위기, 아니 그보다 더 무서운 위기속에서 구출되었다는 것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신을 위해 죽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분명히 이 생명을 구해주려고 죽었는데, 전혀 알아봐주지 않음을 알았을 때의 허탈감과 실망감..
지금이라도 날 알아주길 바라는 기대감, 그리고 기다림..
예수님의 그 외로운 사랑이 느껴져서 마음이 쓰립니다.

그래서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예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참 얄밉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한 곳에 있는 사람들은 안타깝고 불쌍하지만..
예수의 이름을 들어왔고, 또 더 알려면 알 수 있는 곳에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정말 얄밉습니다.

가끔씩은 예수님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도저히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 따른다는 사람들이 잘 해야지 예수도 믿지..!!

오늘은 예수 따른다는 사람들 얘기 말고 예수님 이야기만 하려고 합니다.
예수.. 그분은 우리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분입니다. 우리가 따를 수밖에 없는 분입니다.
100년도 안되는 이 인생에 대해 한번 깊게 생각해보신 분들이라면, 언젠가 한번쯤은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생각해보셨을거에요.

그건 내일이 아니라 지금입니다. 미루지 마세요. 100년이 30년일 수도 있고 20년일수도 있습니다.

제 사랑 예수님..
전 제 삶의 행복이신 예수님을 자랑하고 또 자랑하고 싶습니다.
전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천국”이 어떤 곳일지 약간은 알게된 것 같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은 천국을 사는 삶입니다.
아!! 오늘은 우리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것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유훗~

사랑하는 연인들이 하는 말 있죠..?? “태어나줘서 고마워.”
전 예수님께 이렇게 고백하렵니다.

“태어나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예수님.”

(2008년.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꽃밭보다 광야가 좋습니다.

지금 전 꽃밭에 있습니다.

넓고 푸른 잔디도 있고, 꽃도 있고, 나무도 있고, 나비도 있고, 아침이슬도 있고, 아이들의 웃음도 있고, 아름다운 노래도 있고.. 이 꽃밭을 망쳐놓을 수 있는 것들만 빼고 모두 다 있는 풍요로운 꽃밭에 있습니다.

이전에 제가 있어온 곳에서도 그곳은 무서운 공격따윈 없는 꽃밭같은 곳이라 생각했었는데, 이곳은 완전히 꽃밭입니다.

이 꽃밭에서 살기란, 정말 쉽습니다.

넓고 아름다운 집에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로 잠을 깨고, 가볍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피아노를 치거나 책을 읽으며 무료함을 달래고, 가까운 곳에 위치한 활기찬 베이커리에서 커피를 즐기고, 풍성한 점심과 저녁식사을 누린후, 운동을 하며 기분좋게 땀을 빼주고..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마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풍성한 식사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고, 여름에는 시원한 곳으로 겨울에는 따뜻한 곳으로 휴가를 떠나고..
서로가 서로를 예의있게 존중해주고, 비난과 무시는 찾아볼 수 없고..

별로 하는 일 없이 매주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의 급여를 받고, 의식주는 워낙 걱정할 필요도 없고..

부끄럽지만 이게 제 꽃밭 일기입니다.

이런 꽃밭속에 있으면 이 울타리 밖으로는 절대 나가고 싶지 않아집니다.

울타리 밖의 세상은 별로 보고싶지도 않습니다.

알면 골치아플 뿐이니까..

그냥 잠잠히 이 꽃밭안에서 노래나 부르고 싶어집니다.

전 이게 무섭습니다. 세상은 시끄럽습니다. 세상은 아파합니다.

그러나..

제가 있는 곳은 너무나도 고요합니다. 너무나도 평화롭습니다. 이런 곳에 있으면 세상 걱정은 다 남일입니다. 별로 그 무거운 짐들을 함께 지고싶어지지 않아지지요.

그래서..

제 마음의 욕심때문에 이 허락된 축복들을 저주처럼 사용하게 될까봐..그래서 두렵습니다. 그리고 이미..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 꽃밭 가운데서도 시들시들해져버린 제 영혼을 발견해버렸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다는 건, 단 1년이라도 누릴 수 있다는 건 정말10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정말 매일매일 감사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감사하지도 못하고 있지만요..)

그런데..배부른 소리 한다 하실수도 있지만..결국 전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난 꽃밭보다는 광야타입이다!!!

이런 꽃밭에 있으면서도, 제 영혼은 이 꽃밭보다 훨씬 넓은 그 광야 가운데 속하길 원해했고, 이 꽃밭속에 나도모르게 안주하려고 하다가도, 죽어가는 제 영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금식이라도 하며 다시 광야 사람같은 마음을 갖기 원해 했습니다.

물론 순간순간의 꽃향기를 즐기고 충분히 누리기도 했지요. 즐거웠지요.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그냥 전 이게 제 타입이 아닌거 같아요. 마음과 몸은 즐거워했을진 몰라도, 확실히 제 영은 시들시들해졌거든요. 살아있다기 보다 죽어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아..그 죽어있는 느낌은.. 정말 견디기 어렵습니다..

이곳에 있으면서도 날카롭고 민감하게 하나님과 교제했었던 순간을 생각해보면, 제 스스로를 절제하고 연약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무릎 꿇었었을 때였습니다. 그것도 제가 선택해서 할 수 있던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셨었던 거였죠. 생각해보면 그렇게 처절히 낮아진 심령을 가지고 있었을때, 실은 가장 살아있고 가장 즐거웠고 가장 행복했었던것 같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제가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이런 꽃밭에서 먹여주시고 재워주시고 평안함을 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만약 어떤 광야를 경험한다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과, 이 순간 겪어야 했던 영적 어려움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어쨌든!!
전 꽃밭보다 광야가 좋습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아, 꽃밭속에 누워 뒹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번쩍 일어서서 울타리 밖의 광야를 바라보며 앞으로 전진해나갈 채비를 하렵니다!!

하나님.
제게 지금 이 순간을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 저같은 아이도 번쩍 들어서 이런 꽃밭에 놓으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그리고 먹고 자고 입을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임을 분명하게 알게하심을 감사합니다. 당신의 공급 덕분에 행복하게 꽃밭생활을 누리고 있어요. 하나님. 이건 모두 하나님 덕분이에요.

그런데 하나님!!!
전 꽃밭보다 광야가 좋아요.

세상가운데, 꽃밭은 1평, 광야는 100만평입니다. 꽃밭가운데 사는 사람은 1명, 광야가운데 사는 사람은 100만명입니다.

전 이 1명이 되기보다, 그 100만명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이 100만명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웃으며 걷고 싶습니다. 제 마음과 영 가운데 있었던 이러한 소망을 알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제가 당신이 제게 주신 축복을 감사하고 기쁘게 받아들여 당신을 찬양하고 찬양하되, 저의 마음의 정욕이 이것을 헛되이 사용하여 저주처럼 사용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게 분명한 통찰력과 지혜를 허락해주세요. 제게 남은 이 꽃밭에서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남은 시간동안에 정신 분명히 차리고, 당신이 허락하신 것들을 지혜롭게 되길 원합니다.

저는 당신의 것, 제 모든 소유도 당신의 것.
아버지. 당신 뜻대로 사용하세요.
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08년.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오늘 죽는다 해도 후회하지 않기 위하여 (2)

전 오늘 죽는다 해도 후회하지 않기 위하여 오늘 하루도 하나님과 사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생이 끝나 하늘 나라에 갔을 때
하나님 그 분이 낯설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분이 절 낯설어 하시지 않을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내일 하루도, 내일 모래 하루도..
매일매일 그분과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분과 매일매일 함께 한다면
눈을 감게되는 그 순간이 두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눈을 감는 그 이후의 생이 전혀 낯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이 생에서 하나님과 교제했던 것처럼 하나님과 계속 교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다만 더 좋은게 있다면, 지금은 그분이 아주 희미하지만, 그리고 아주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 때에는 그분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할 것이고, 그 때는 그분을 온전히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Now we see but a poor reflection as in a mirror; them we shall see face to face. Now I know in part; them I shall know fully, even as I am fully known. 1 Corinthians 13: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린도 전서 13:12

실은 이렇게 바로 생각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를 정말 충실하게 살아야겠다. 내일 죽을 수도 있는건데 내가 일년치 계획을 짜놓고 꿈꾼다 한들 무슨 소용이야..”라고만 생각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럼 하나님이 보시기에 충실한 하루는 무엇일까??
매일같이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를 두려워하며 사람들을 전도하는 것일까??
내게 주어진 공부와 일을 미루지 않고 하는 것일까??
어떻게 오늘 하루를 살아야
오늘 당장 하나님을 면대면으로 마주한다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날 반겨주실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칭찬 들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나온 결론이 이것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과 사랑하며 살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받고, 하루종일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자.
공부 할때도 하나님과 교제하고, 운전 할때도 하나님과 교제하고, 밥먹을 때도 하나님과 교제하고, 운동할 때도 하나님과 교제하고, 친구와 만날 때도 하나님과 교제하고, 피아노 칠때도 하나님과 교제하고, 글 쓸때도 하나님과 교제하고.. 계속.. 하나님과 계속 같이 다니자.
왠지 그러면, 제가 지금 당장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서게된다 할지라도 어색함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색함은요 무슨..
오히려 정말 “드디어 만났구나!!”하고 기쁨을 못이기지 않을까요..??
헤헷.. 이런 생각이 번뜩 떠오르자 전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어요.

엄마가 제게 언젠가 하신 말씀이 생각났거든요.
제가 한번 엄마한테
“엄마..정말 하나님은 왜이렇게 나한테 축복만 주시는 걸까..? 목사님들도 그렇고 꼭 하시는 말씀이 훈련을 받은만큼 성장한다는데..하나님은 날 훈련시키시지 않는 것 같아..ㅠㅠ 나도 성장하고 싶은데 말이야. 날 사랑하시는 것 같긴 한데.. 계속 그냥 이렇게 축복만 주시는 거 보면 좀 잘 모르겠기도 하고..”

라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더니(어떻게 보면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심각한 문제였답니다. 지금도 가끔 고민되는..)

그랬더니 엄마가 이러시더라구요.

“엄마가 보기에 넌 앵두같아. (참고로 앵두는 우리집 강아지 이름입니다. 우리 아빠를 제일 좋아하죠.) 아빠한테 앵두 하는거 봐. 그리고 아빠가 앵두한테 하는거 봐. 앵두는 매일 아빠한테 바짝 붙어서 애교부리고, 아빠 앞에서는 바짝 기잖아. 너도 하나님께 그러니 하나님이 어떻게 혼을 내시겠니..?”

앵두.. 가끔보면 정말 얄미운데..ㅋㅋ
가끔 아빠가 앵두한테 아는 것만큼 저희에게 해줬으면 할 때가 정말 많았거든요..흑..

그래도 엄마한테 이런 얘기를 들으니까 왠지 기분이 좋더라구요.
하나님도 날 그렇게 사랑해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에요..

어쨌든 이렇게 어떻게든 하나님께 예뻐보이고 싶어하는 제 모습을 돌아보니..
아빠만 보면 납작 업드려져서 애교부리던, 참 줏대 없어뵈던 앵두와 제가 겹쳐지면서
절로 피식 웃어버리게 되더군요..

아.. 전 왜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걸까요..?
정말 이거야 말로 은혜인것 같아요.
아.. 아무래도 하나님과 사랑하면서 좋은 점을 한번 글로 남겨야 할것 같네요..헤헷^^

어쨌든 결론은!!
전 오늘 하루도 하나님과 사랑하려고 했구요..
내일 하루도 하나님과 사랑하는 하루를 살려구요.
그러면 오늘 죽는다 해도 두렵지도, 후회되지도 않을 것 같아요.
그럼 비전 없이 살거냐구요??
적어도 죽기 전에 후회 없기 위해선, 그래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겠냐구요..??

음.. 글쎄요.
비전과 성실은 하나님과 사랑할 때 풍겨지는 자연스러운 향기가 아닐까요..?
전 아직 “비전과 성실은 하나님과 사랑할 때 풍겨지는 자연스러운 향기 입니다!!!”라고 말할만한 처지는 안되지만..
부부가 닮고 친구가 닮듯이..
하나님과 매일같이 함께 할 때 그분을 닮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그분의 성품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되지 않을까 하고 수줍어 하며 한번 기대해봅니다.

그래서 전!! 오늘 죽어도 후회하지 않기 위하여 오늘도 하나님과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죽어도 후회하지 않기 위하여 무엇을 하시겠어요..??

하나님. 나의 사랑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저 나름대로 애썼는데 좀 느끼셨나요??
매일같이 제가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려고 하면, 참 시기질투하는 녀석들이 많아서..그놈들이 계속 방해공작을 피우짆아요..ㅠㅠ라는건
좀 핑계구요.. 그거에 넘어가는 건 늘 항상 저죠….ㅠㅠ
방해공작 따위 싹 다 무시하고 하나님이랑 계속 데이트하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죄송해요 하나님.
그래도 많이 나아지지 않았어요?? 헤헷^^
하나님.
천국이 어떨지는 알지 못하지만..
전 그저 당신을 볼수 있고, 당신 품에 안길수 있고, 계속 계속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 천국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는 건, 지금이나 죽은 후나 하나님이나 저나 크게 변할 것 같지 않다는 건데..그래서 천국 또한 이 생에서의 연장선상에 있을 것 같다는 건데.. 제 생각이 맞나요..?? 천국과 현세에 대한 통찰력을 허락해주세요..
어쨌든 지금으로선 말이죠,
오늘 죽어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아니 오히려 당신을 본다는 기쁨으로 가득차 어쩔줄 몰라하기 위해서 전 오늘도 내일도 매일 당신과 함께 교제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 고백 어떠세요?? 헤헷^^
나의 사랑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08년.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오늘 죽는다 해도 후회하지 않기 위하여(1)

한 6개월정도 전쯤이었을까요..?
한번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친구가 이런 질문을 모두에게 던졌습니다.

만약 너희에게 6개월밖에 살수있는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면 뭐는 꼭 하고 싶어??
이거 뭐야..분위기 심각해지잖아.. 라며 처음에는 모두들 시큰둥 했지만..
이 질문은 제게있어 생각보다 상당히 심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곰곰히 한번 생각해봤어요.

정말 내게 6개월밖에 남아있지 않다면 뭐는 꼭 하고 싶을까..?
그 때 저는..
부끄럽지만 아직 헤어진 옛 연인을 지우지 못한 상태였는지, 옛사랑의 이름 석자만이 머리속을 맴돌더군요ㅠㅠ.

아주 당연히 그에게로 갈것 같더라구요..

그것말고는 더 중요한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제게 정말 충격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그와의 헤어짐의 이유..
사랑이 식어서도 아니었고..(적어도 제게 있어서는..ㅜㅜ)
성격적 차이가 있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이해가 되실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비전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음..솔직히 그때 당시에 어떤 뚜렷한 비전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동안 하나님께서 그를 인도하시는 방향과 저를 인도하시는 방향이 정말 다름을 서로가 뼈아프도록 느껴왔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저를 구속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고,
저는 하나님안에서 자유롭게 날고있지 못하다는 답답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지만 헤어짐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분명하게 있었습니다.
그런데..이게 뭐야..

6개월밖에 안남았다면..
당연히 그에게 갈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습니다.
비전이고 뭐고간에.. 인생 정말 한치 앞도 모르는데..
왜 내가 비전 비전 그러면서 사랑을 우숩게 생각했을까..
하나님은 어떻게든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시는데..
내가 이미 하나님의 비전을 알고있는양, 비전 운운하며 헤어짐을 선택했을까..
죽음을 앞뒀다고 생각해보니 중요한건 사랑인데 말이야..
내게있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인것 같은데 말이야..ㅠㅠ
그리고 솔직히 다시 그에게로 돌아가야겠다 다짐까지 했었습니다..
돌아가면 그자리에 분명히 있을줄 알고..

전 제 부족했던, 용기없던 사랑에 ‘헌신’이라는 양념만 포함된다면 다시 그 사랑을 예쁘게 지킬 수 있을줄 알았는데.. 이미 하나님께선 그를 제가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인도해가셨더군요..전 충격속에서 그 옛사랑을 완전히 제게서 떼어내버려야하는 혹독한 시간을 가져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이후에 제게 분명해진 것이 있습니다.

오늘 죽는다 할지라도 후회하고싶지 않다. “하나님..제가 이거 하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절 너무 빨리 부르셨어요..저 정말 그거 하려고 기도하며 준비했던거 아시잖아요..” 라고 핑계를 대며 후회하고싶지 않다.
오늘 죽는다 할지라도 후회하고싶지 않다.

비전이라는거..정말 사람이 아무리 세워봤자, 오늘 죽으면 끝인걸요.
비전을 두고 달려가는거..
정말 중요하지만..오늘 죽어버리면 도착도 못하고 끝나버리는걸요.

제가 이 말을 이리 쉽게 하는 것 같지만..
전 제 스스로를 “비전의 청년, 꿈의 청년”이다 감히 칭할 정도로, 비전과 꿈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한 사람입니다. 비전과 꿈이라는 것 때문에 사랑까지도 포기할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별로 자랑은 아니지만..ㅠㅠ).

절 움직이는 건 다른 어떤것도 아니라 비전, 꿈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절 움직이지 못하고 동요시키지 못합니다.
제가 무엇을 하고 있다면, 그건 그곳에 비전과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절 자극시키고 움직이는건 오직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꿈입니다.

그런데..
정말 오늘 죽어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살아야할까라는 제 스스로의 질문에
전 “죽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이 주신 그 꿈을 좇아가라.”라고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그대신 전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과 사랑해라.”
-다음에 계속

(2008년.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장루가 있는 여성의 임신 경험 (논문 리뷰)

소개

‘장루를 가진 상태에서 임신이 가능할까?’

‘나는 괜찮을까? 아이는?’

아마도 이는 장루를 가진 많은 젊은 여성들의 고민이리라.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거의 연구가 되지 않아왔기에 의료진들조차 이들에게 어떤 조언도 쉽게 해주지 못했을 것이고, 장루가 있는 많은 여성들은 혼자 씨름했어야 했을 것이다. 이에 호주의 Ian Whiteley와 Janice Gullick은 이들의 경험과 인식을 분석하기로 하였다.

연구 방법

본 연구의 대상자는 크론병과 같은 염증성 장질환이나 가족성 선종성 용종증으로 인해 장절제술을 받고 장루를 가진 채 임신한 경험이 있는 여성으로, 호주 내 2개 대학병원의 장루 클리닉을 통해 모집하였다.

데이터 수집은 전화 및 대면으로의 심층 인터뷰로 이루어졌고, 주요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1. 어떻게 임신을 하게 되었나요?
  2. 임신 중 경험한 것들을 말씀해주시겠어요?
  3. 장루 관련된 합병증이 있었다면 어떤 것들이었나요?
  4. 장루를 가진 채로 임신하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셨었나요?
  5. 임신 중 병원에서의 경험은 어땠나요?
  6. 임신 중 염증성 장질환을 가지고 있다는건 어떤 의미였나요?
  7. 임신 중 복부가 커지는 것에 대해 가졌던 염려가 있었나요?
  8. 임신 중 건강과 관련하여 가장 도움이 되었던 사람은 누구였나요?
  9. 임신 중 지지적인 사람이 있었나요? 그와의 경험은 어땠나요?

데이터 분석은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관점에서 해석을 함으로써 이루어졌고, Friederich Ast의 원형적인 접근법에 따라 한 사람의 일화를 이야기 전체에 대비하여 해석하거나, 전체의 이야기를 한 사람의 이야기에 대비하여 해석하였다. 실제로 본 연구의 분석 결과 도출된 테마 자체가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관점에서 도출되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현상학적 간호연구의 엄밀성을 위해 저자들은 Witt and Ploeg의 (2005) framework for rigour in phenomenological nursing research를 염두에 두며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Consolidated Criteria for reporting qualitative research(COREQ)를 기준에 두고 연구를 보고했다.

  • De Witt, L., & Ploeg, J. (2006). Critical appraisal of rigour in interpretive phenomenological nursing research. Journal of advanced nursing55(2), 215-229.

연구자들은 사전에 예측하고 있는 연구 결과에 대하여 미리 기술해둠으로써 어떤 선입견이 있었는지를 검토하였다(‘참여자들은 임신에 대한 불안이 있을 것이다’, ‘여성들은 장루 관련 합병증에 신경을 많이 쓸 것이다’ 등).

연구 결과

1. 지옥 같았던 염증성 장질환

염증성 장 질환은 굉장히 괴로운 일이었고 여성들의 임신 경험의 밑바탕이 되었다. 참여자 중 6명은 염증성 장 질환이 매우 소모적이었기에, 장루를 갖기 전에는 임신을 차마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였다.

“진짜 정말 괴로웠어요. 하루에 스무번씩 변기에 앉아야 했고, 그때마다 울면서 기도했어요. 이 통증이 빨리 해결되기만을요. 그래서 결국 수술을 받았고, 전 훨씬 나아졌어요. “

한편 극복력이 생기기도 했다. “지옥을 가지만 결국 돌아오기도 하니, 어쨌든 아이는 갖고 싶었어요”

2. 생명줄 같은 장루

염증성 장 질환의 지옥과 같은 시간을 보낸 여성들에게는 장루가 생명줄 같이 여겨졌다. 메를로-퐁티가 인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그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자신을 인식한다고 한 것 같이, 질병의 고통은 장루를 형성함으로 인해 나아졌고, 그 결과 자신을 ‘아픈 존재’에서 ‘살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지게 했다.

“난 크론병이 있으니 절대 임신을 못할 것 같았고, 임신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임신을 하면 저 자신도 못 돌볼 것이고, 아이도 못챙길것 같았거든요. 난 모든 약을 다 먹었고, 그건 아이에게 영향을 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아이는 나로부터 영양을 공급 받지 못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수술을 받고 나니, 이제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3. 정상이고 싶은 마음.

참여자들에게 “정상”은 자연적으로 임신하는 것이고, 임신 중 문제가 없는 것이었으며, 임신 중 그들 및 그들의 아이의 건강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메를로-퐁티가 인간은 의식적인 존재로서 자연과 문화적 세계 속으로 스스로를 투영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이해를 얻는다고 한 것 같이, 모성은 그들에게 사회적으로 “정상”이게 하는 것이었고, 그들은 임신을 함으로써 정상이길 원했다.

무려 일곱번의 유산을 경험한 한 참여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루를 가지고 있는건 문제가 안됐어요. 아이를 또 잃을 것이 두려웠죠. 임신을 한 후에야 정상이라고 느껴졌어요. 또 아이를 잃을 것이 무서웠어요.”

4. 미궁 속 임신 경험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산부인과 의사를 포함하여 경력이 많은 의사조차 그들에게 그들의 임신 가능성에 대해 분명한 이야기를 해주지 못했고, 장루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도 말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자연분만이 가능할지 제왕절개가 필요할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얘기를 듣지 못했다. 일단 경험을 해야 그제서야 가까운 세계가 된다고 한 메를로-퐁티와 같이, 임신은 그들에겐 미궁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했다.

세번째 임신 중 쌍둥이 중 한 명을 뱃속에서 잃은 한 참여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 주변의 누구도 장루와 임신에 대해 몰랐기에 저의 임신은 고위험으로 여겨지게 되었고..[마지막 아이가 사산되었을 때..]저는 이건 제 잘못이라고 느껴졌고, 내 몸이 뭔가 잘못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당연히 누구도 이에 대해 대답해주지 못했어요. 이건 크론병때문인가요, 아니면 장루때문인가요?”

5. 공간을 공유하는 태아와 질병

참여자들에게 뱃속의 아기는 소중했고, 그래서 배는 더 질병 같았다. 인식은 ‘가치의 통일’이며, 현실적으로 직면함으로써 드러나는 것 같이 (메를로 퐁티), 아기는 문제가 있는 곳 안에서 그 문제와 함께 키워야 하는 것 같이 인식되었고, 매일 장 질환과 함께 싸우며 임신하는 것에 대해 느끼게 되는 삶을 살게 했다.

한편, 어떤 참여자는 대장을 제거하고 장루를 형성하는 수술을 하고 나서 아기를 위한 공간이 더 많아졌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제 임신은 생각보다 편했는데, 아마도 장이 없어서 아이가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더 넒어서 그런 것 같아요.”

6. 어두운 터널 같던 임신 기간

임신 기간은 여러 합병증을 감내하며 살아 내야 하는 기간이었다. 혹여라도 임신 중 뭔가 잘못되었을 때의 시간은 매우 느리게 갔고, 두려움이란 것이 모든 경험의 전경이 되었다. 그 기간은 오롯이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다.

“5주차는 지옥같았어요. 그래도.. 돌아올 수 있을거라 믿었어요. 전 제 삶을 걱정하지 않았어요. 아이 생각 뿐이었어요.  하지만 어두운 터널 속에 있는 것 같았고, 빨리 나가고 싶었어요. “

한편, 장루를 가진 임신 경험이 항상 부정적이었던 건 아니었다. 어떤 참여자는 장루를 가진 후의 첫 두 번의 임신을 매우 편하고 아름다웠던 경험으로 기억했으며, 어떤 참여자는 오히려 임신 중 더 건강한 것 같이 느꼈다고 하였다.

“그 때 전 정말 최상이었요. 제게 에너지는 넘쳤고, 문제가 없는 임산부인 것 같았아요.”

7. 신뢰할 수 없던 몸

많은 참여자들은 그들의 몸을 믿을 수 없었고, 이런 불신은 그들의 질환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참여자들은 그들의 몸이 임신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임신을 감내할 수 있을지 두려웠고, 아이가 충분히 영양 공급을 받을 수 있을지, 그리고 그들의 질환에 아이에게 영향을 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였다.

그리고 장루도 걱정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 어느 정도의 장루 문제가 발생하였다. 심각한 경우에는 장이 빠져나와 임신 중 수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아주 심각하지 않은 문제로 장루 크기나 모양 변화 등이었으며 대부분 돌아왔다. 복부가 늘어나면서 파우치 옆으로 새는 일들이 있었는데, 이는 파우치를 단단하게 붙이거나, 허리까지 올라오는 속옷이나 하의를 최대한 밀착해서 입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한줄평

본 연구는 장루가 있는 여성의 임신 경험을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의 관점에서 생생하게 드러냄으로써 이들에 대한 의료진의 이해를 돕고, 향후 중재 개발 및 계획의 근거가 될 것으로 판단됨.

본 연구가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에 기반하고 있으나, 신체의 현상학이 아주 잘 드러나는 연구는 아닌것으로 느껴짐. 신체의 현상학관점에서 장루를 가진 채 임신을 한 여성의 주관적 신체 경험에 대한 탐색 결과가 세밀하게 드러났으면 개인적으로는 더 흥미롭게 읽었을 것 같음.

Whiteley, I., & Gullick, J. (2018). The embodied experience of pregnancy with an ileostomy. Journal of clinical nursing27(21-22), 3931–3944. https://doi.org/10.1111/jocn.14601

머슴이 말이 많다

머슴.
머슴은 생각이 있으면 안됩니다.
머슴이 자기주장을 하는 그 순간부터, 그는 더이상 훌륭한 종이 아닙니다.
그는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머슴은 생각도, 말도 없습니다.
오로지 순종만 있습니다.
시키는 건 무조건 따릅니다.
이유를 묻지 않습니다.
이것이 훌륭한 머슴입니다.

머슴.

이거 바보 아니야..??
그런데 이것이 참된 종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Paul, a servant of Christ Jesus, called to be an apostle and set apart for the gospel of God. Romans 1:1.

얼마전 교회의 성경퀴즈대회에 참석했다가 제 자신의 성경지식수준에 충격을 받아 성경공부를 좀 구체적으로 해야겠다 생각해왔는데, 오늘 하용조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2002년도의 하용조 목사님..확실히 젊으시구만..ㅋㅋ”

이런 푼수같은 생각을 하면서 로마서 강해를 듣기 시작했는데..

이 바보같은 훌륭한 머슴이야기를 듣는 순간..!! 휘유~더이상 설교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바울은 자기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지금까지 제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제대로 된 머슴은 생각도, 말도 없답니다.

오로지 순종만 있답니다.

시키는 건 무조건 따른답니다.

이유를 묻지 않는답니다.

이것이 훌륭한 머슴이랍니다.

몰랐던게 아닌데..

분명히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들으며,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몇번이나 되새겼었는데..

전 결코 훌륭한 머슴이 아니었었습니다.

오히려 멀어져 가는 길을 일부러 선택해왔던것 같습니다.

음..
제가 고등학교때부터 제 자신에 대해 알아차린게 있었는데..
제가 좀 어리버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리버리하다는 그 사실자체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는데..
농담진담도 못알아 듣는건 좀 어렵더군요.
제가 농담을 잘 하지 못하는 건 좀 스트레스를 받아도 괜찮았는데..(그냥 듣고 웃는 건 잘 하니까~)

농담진담을 구별하지 못하는건.. 정말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제 부족한 센스때문에 대화가 끊길때가 많았거든요..ㅠㅠ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저는 모든 대화를 심각하게만 몰고 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제가 워낙 세상것에 별로 관심이 없고..(연애인이나 옷, 화장 이런것들에요~) 아는 건 나름대로 하나님밖에 없어서, 저와의 대화는 주로 믿음생활에 관련된 걸로만 연결되곤 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런 대화를 나눠야만 뭔가 이야기를 한 것 같다는 만족감을 느꼈는데, 대부분의 친구들은 이런 대화를 부담스럽게 느끼더라구요..ㅜㅜ

그런데 어쩝니까.. 아는게 이거밖에 없는데..

그래서 제게 연애인이나 옷, 화장, 가십거리 이런것들은 일종의 학습대상이었습니다. 여전히 그렇기도 하구요..

어쨌든!! 이래저래 이런것들을 모르고 대화에 끼지 못하는 그 소외감, 농담진담을 알아듣지 못할 때 암묵적으로 무시되는 것 같은 그 비참함.. 위의 학습거리에 대한 학습의욕부진..결국 전 이런 의미없는 감정들을 유발시키는 저의 어리버리함을 나름대로 탈피해보고자, 제 나름대로의 생각과 논리를 분명히 해야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은 블로그에 글을 올리게 시작한 것도 이러한 맥락 가운데 있었습니다. 글을 쓰다보면 엉켜있던 생각들이 풀리고 정리가 되더라구요. 한번 써본 내용은 완전히 제 생각이 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제 생각이 너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내가 옳아!! 내 생각이 맞아!! 이 길로 가야해!!” 라고 주장하게 될 만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져버렸습니다.

머슴이 참..
말이 많아져 버렸습니다..ㅠㅠ

이 머습이 본연의 신분을 잊고, 자기 생각과 고집을 세우며 자기주장 하다가 주인이 있어야 할 자리까지 완전히 차지하려고 나대게 될까봐 걱정됩니다.

떼찌!!
머슴이 말이 많다!!!

하나님..
제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것.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전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정말 전 하나님밖에 없기에.. 하나님 당신께 만큼은 최고로 인정받고싶기에 꼭 훌륭한 종이 되고싶어요. 훌륭한 종이 되기로 선택하고 싶어요.

네.. 하나님. 그렇게 선택하겠습니다. 그렇게 살겠습니다. 비워보겠습니다. 지워보겠습니다.
제 자신을 머슴같이 종같이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살아보겠습니다.

하나님. 그런데 꼭 도와주셔야 해요. 아직 진짜 잘 모르겠어요. 어떤게 진짜 머슴같이 종같이 사는것인지..

앞으로의 로마서 강해듣는 시간들이 기대되요.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길 기대합니다. 하나님. 사랑해요. 제겐 하나님 당신밖에 없는거 아시죠?? ㅠㅠ

제 삶의 이유와 사랑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08년.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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