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워킹맘

아주 가끔 힘들때가 있다.

단단한 자존감과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 덕분에 좀처럼 쉽게 지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가끔씩 깊은 우울이 찾아온다.

아무것도 할 힘이 안나는 상태.

잠잠히 돌아보니 엄마 윤혜와 직장인 윤혜 사이의 안정감이 흔들릴때 발생하는 일인듯 하다.

엄마 윤혜 만으로 살아본 시간이 얼마 없었다. 출산 휴가 기간인 3개월이 전부다. 그나마 그 기간에도 대학원 실습 차 병원에 와서 시간 맞춰 유축을 해야하곤 했었다. 온전히 엄마만으로 살아본 기간은 거의 없다.

그래서 나에게는 퇴근 후 저녁시간과 주말이 너무 중요하다. 퇴근 후 서우가 잠들때까지 주어지는 2시간, 그리고 주말에 함께 하도록 주어지는 약 14시간. 일주일에 서우에게만 집중할수 있는 시간은 고작 38시간이다. 난 그것이 침범될 때 힘들다.

최근 갑작스레 근무 패턴이 바뀌며 3주에 한번 토요근무를 하게 되었고, 학회나 병원 행사 때문에 토요일에 집을 비워야 할 일들이 유난히 몰렸었다. 엄마 윤혜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과 서우에 대한 마음만 아니었다면 나에게 큰 스트레스원이 아니었을 것들인데.. 지금은 나의 균형을 깨뜨리는 스트레스원으로 작동한다.

스트레스를 이성으로 버티며 극복했다 여기고 지내다가도, 서우의 갑작스런 고열같은 상황은 깊은 우울감을 촉발시키고 만다. 그리고 같은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무엇이 중요해? 지금 행복해?’

분명히 행복하고 충분히 만족했었던것 같은데. 그랬던 기억만 남고 마음은 공허하다.

무기력한 상태를 좀처럼 즐기지 못하는 나는 어쨌든 바쁘게 뭔가를 하기는 하지만, ‘에너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마치 숨쉬기 어려울 때 공기를 생각하게 되듯이.

현재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내가 내세울수 있는 답은 아니다. ‘적당히 포기할건 포기하고’에서 포기의 대상이 아이가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엄마 윤혜와 직장인 윤혜의 균형을 맞추고 싶다.

(2019.7.25. 페이스북 기록물)

기록

기록

수년 전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기억이 저장된 시냅스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기록’ 덕분일 것이다.

방광요도재활실 20년사 발행을 준비하며 한상원 교수님으로 부터 전달받은 수많은 기록을 보며 여러모로 느끼는 바가 많다. 그 기록에는 20년 전의 생각과 삶이 고스란이 담겨 있었다.

기록은 내가 살아온 흔적이 되고, 그 흔적은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잘 다듬어진 수필이든, 흘겨 쓴 메모이든.

그리고 기록보다도 중요한 것은 체계적인 저장 방식이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는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이 너무 많다.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것 뿐이지.

나도 나름 기록이란것을 하긴 했었다. 주로 싸이월드였는데 유행이 지난 후 네이버로 잠시 넘어왔고 생각을 글로 정리할 여유가 없어지며 최근 몇년간은 서우 사진으로 모든 기록을 대신하고 있다. 사진은 무엇을 했는지와 감정을 기억하게 하지만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는 자세하게 보여주지 않아 아쉽다.

다시금 기록이라는 것을 하며 나의 발자취를 잘 보관해두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2019.7.24. 페이스북 기록물)

남편의 석사학위

남편의 석사논문이 드디어 책으로 완성됐다.

처음 세브란스에 이직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우신 세브란스에 정직하고 건강한 하나님의 일꾼 한명 들이시라고 간구했었다.

병원에 막상 입사하니 의사도, 간호사도 아닌 존재로서 무슨일을 할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고, 결국 답을 내리지 못한채 즐겁게 할 수 있는 공부를 하며 찾아보기로 잠시 결정을 뒤로 미뤘었다.

그리고 논문의 과정, 안할수도 있었지만 하겠다고 선택했다. 이 과정을 지나가야만 할것 같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정말 괴롭게, 힘들게 완성했다.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사는, 누구보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 그 안의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고 사귐을 결정했었다. 10년전에.

그는 여전히 물음표 달린 앞길에 답답해하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그를 사용하고 계시며, 길을 예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

남편 수고했옹♡♡♡

(2019.7.6. 페이스북 기록물)

소유욕 VS 균형

난 평소에 별로 가지고 싶은게 없다. 남편이 가끔 나에게 선물해주기 위해 뭐가 필요하냐고, 뭐가 가지고 싶냐고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매우 난감하다. 정말 별로 필요한게 없기 때문이다. 그냥 가끔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그걸 그냥 살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평소에 크게 꿈을 갖지도 않았다. 20대 때는 치열하게 고민도 하고 꿈이라고 설정해보기도 했으나, 요즘은 내 꿈은 오늘을 잘 사는 것으로 설정하고 매일의 삶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때가 되면 기회가 다가오고 길이 열리더라는 것을 삶으로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역량을 내가 오늘 최대한으로 사용하고 발전시키는 것, 그것이 내 꿈이라면 꿈이었다.

어쩌면 그 덕분인건지, 오랜만에 내 마음을 뜨겁게 하고 나의 관심을 사로잡는 기회가 보였다. 정말 가지고 싶고, 잡고 싶었다. 어쩌면 30대 중반까지 도대체 ‘사랑’이 뭐야? 하며 이성에 전혀 관심없던 청년이 갑자기 연애에 빠지고 결혼을 결정하고 싶어하는게 이런 기분일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무작정 달려가기에는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를 잡고 서있는 아이가 보인다. 이미 나름 많은 희생을 하고 있는 딸이다. 그리고 지금 상당히 균형을 잘 맞춘 삶을 살고 있어서 누가봐도 “왜?” 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지금과 같은 균형감을 잃지않고 하고 싶은걸 주저함 없이 하고싶다. 근데 내가 아는 나는, 몰입하면 주변을 잘 못돌아본다. 이것이 실은 내가 가장 우려하는 점이다.

엄마로서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매일의 짧은 시간만큼은,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꼭 지켜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자랑스러운 엄마라 해도, 곁을 지켜주지 않는 엄마는 항상 아쉬울테니..

그래서 나의 눈길을 끄는 반짝이는 보석에게 알려줬다. 난 이런 사람이라고. 약간 안어울릴수 있을수 있다고. 말해주고도 후회막심. 그래도 그 보석이 날 주인으로 알아 본다면 주저하지 않고 다가오겠지. 아니라면 아쉽겠지만.

(2019.10.09.페이스북 기록물)

덕업일치業一致

남편이 요근래 매일 같이 언급하던 삶의 모양.

덕업일치의 삶을 살고 싶다고 매일같이 괴로워했는데 도대체 여기서 ‘덕’이 뭘 말하는 걸까 찾아봤더니 세상에, 덕후(오타쿠)의 덕질의 ‘덕’ 이었다.

결국 남편은 스피노자의 삶에서 답을 찾았다며 위로받고 있기는 하지만, 난 정말 남편이 덕업일치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정말 즐겁게 빠져서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온몸을 던졌으면 좋겠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돌아보면, 꽤 덕업일치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내가 몸 담을 수 있는 바운더리 안에서 나의 성향과 강점을 최대한 잘 살릴 수 있는, 나름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것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의 영역을 잘 가꿔야지라고만 생각하던 중, 새롭게 가슴 설레게 하는 도전거리가 튀어나왔다. 기회라는 생각이 되고, 뛰어들어보고 싶다. 누가봐도 덕업일치 한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있어왔지만, 나 스스로는 진정성있게 100프로 그렇다고 이야기 하진 못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도해오신 삶을 돌이켜보았을 때, 나의 이런 설레는 마음이 역마살인건지 아니면 하나님의 주시는 소망인지 잘 분간이 안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최대한 침착하고 잠잠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한걸음씩 조심스럽게 나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이 길이 그분의 뜻이 아니라면 꼭 막아주시길, 그러나 그분이 주신 기회라면 잘 감당 할 수 있길.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덕업일치 삶으로의 초대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만약 아니라 해도, 잠시동안이나마 새로운 시각으로 병원을 바라보게 되었던 이 경험이 나에게 큰 자산으로 남을 것 같다.

(2019.10.4. 페이스북 기록물)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