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현상학적 질적연구란 (1): 심층인터뷰를 앞두고

현상학적 질적연구 심층인터뷰를 앞둔 기대감

드디어 박사과정 연구계획서의 IRB 승인을 받아 심층인터뷰에 돌입하게 되었다. 다음주부터 본격적으로 나의 현상학적 질적연구를 위한 인터뷰가 시작되는데, 정말 무척이나 기대된다. 왜냐하면 이 과정은 나를 제대로 훈련 시킬 기회이기 때문이다. 간호사로서 대상자를 더 잘 이해하는 방법을 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간호사에게 현상학적 관점이 왜 중요한가

난 현상학을 공부하면서 현상학이야 말로 간호사들이 알아야 할 철학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간호사는 대상자의 “삶”을 돌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 여러가지를 훈련받는다. 해부생리, 병태생리, 약리 등 지식적인 것 & 주사, 드레싱 등 임상에서 필요한 술기 등 뿐 아니라 대상자와 의사소통을 효과적으로 하는 것 까지도 훈련받는다.

대상자와의 의사소통은 나의 대상자를 잘 돌보기 위해서 정말 필요하다. 숙련된 간호사라고 하여 대상자의 표정만 보고, 몸짓만 보고, 그의 필요를 다 알아차릴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만약 간호사가 현상학적 관점을 장착하고 대상자와 의사소통을 한다면, 그에게 정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현상학적 관점은 짧게 정리해보자면, 1)내가 이미 나의 대상자가 경험하고 있는 그 상황에 대한 나름의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잠시 그것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는 내려놓고, 2) 실제로는 그 근거가 구축되기 이전에 이미 존재했을 대상자의 경험 그 자체에 진정성 있게 다가가고자 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린 Evidence based 된 실무(근거-기반 실무)를 하도록 훈련받았다.

이는 우리가 간호를 수행할 때 이미 확인된 구체적인 근거에 따라 간호를 제공함으로써, 대상자에게 가장 효과적방식을 자신 있게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이 evidence는 우리 ‘간호 실무’의 과학적 근거이며, ‘간호학’ 존재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Evidence-based practice는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너무 그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다보면, 나름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바로 내 앞에 있는 나의 대상자 그 자체는 간과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바일 헬스케어라는 방식이 자가관리에 도움이 된다라는 근거가 축적됨에 따라, 대상자에게 모바일 헬스케어 프로그램을 권하였다고 치자.그런데 대상자는 좀처럼 그걸 사용도 안하고, 자가 관리는 여전히 잘 되지 않는다. 그럼 일단 그 대상자는 compliance가 낮은 대상자로 규정 되기 쉽다.

그런데 그 대상자가 알고 보니 자기 핸드폰이 없다거나, 학교에 있을 때는 핸드폰을 꺼놔야 한다거나, 핸드폰으로 통해 노출되는 특정 이미지나 문구가 신경쓰여서 밖에서는 어플을 킬수 조차 없었다거나, 헬스케어를 한다고 핸드폰을 켰다가 다른 게임에 눈이가서 그 게임만 했다거나, 손가락이 너무 두꺼워서 제대로 터치를 못했다거나, 핸드폰 알림 소리를 들을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란다거나, 이런것까지 해야하나하고 자기비관속에 있다거나.. 등등등.. 너무나도 많은 주관적 경험이 있을 수 있다.

이 때, 현상학적 관점을 장착한 의사소통은 앞서 언급 하였듯이 나의 대상자가 그 경험을 ‘어떻게 주관적으로’ 경험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이 때 이미 과학적으로 효과적이라고 판명된 근거들은 잠시 괄호 안에 묶어둔다. 이건 결코 그 근거가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에는 오롯이 나의 관심을 과학적 근거보다 대상자의 경험, 대상자가 부여하고 있는 의미에 맞추려는 의지적인 태도변경이다. 이미 확인된 근거를 대상자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는 그 다음 스텝이 된다.

대상자의 삶은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대상자를 단순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오직 ‘근거 중심 간호’만의 강조일 수 있다.

간호가 예술이자 과학이라면, ‘근거-중심 간호’ 만큼 ‘대상자 경험-중심 간호’라는 구호가 함께 가야 할 것라고 생각한다.

현상학적 관점 장착 의사소통 트레이닝의 기회

하지만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는 임상 속에서, 대상자의 주관적 경험에 대해 탐색해 볼 기회는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나름의 공식적인 연구 기회를 통해 의지적으로 현상학적 관점을 장착하여 심층인터뷰를 한다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엄청난 의사소통 훈련과정이지 않겠는가?

난 이 과정이 결국 나에게 효과적으로 현상학적으로 의사소통하는 기술을 체화시켜줘서 언젠가는 바쁜 현장에서도 바로바로 발휘할 수 있는 테크닉이 되지 않을까..라는 나름의 기대가 있다. 아자아자아자리~

후설. 논리연구. 4절. 심리학주의의 경험론적 귀결

후설의 논리연구 1권의 4절을 정리하며 공부하였다.

21. 심리학주의자의 관점과 그 논박에서 두 가지 경험론적 귀결의 특징

심리학은 사실 학문이며 경험에서 나온 학문이라는데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그런데 이 사실은 심리학이 정밀하다기 보다는 모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그런데 심리학의 법칙이 정밀성을 결여했다면, 그리고 논리학이 심리학을 기반으로 한다면, 논리학도 모호해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논리법칙은 절대적으로 정밀한 것이 아닌가?
  • 혹시 심리학이 정밀한 자연법칙에 근거했다고 주장하고 있는가? 심리학이 어떤 법칙을 정당화 할 수 있는 방법은 개별적 사실에서 귀납 하는 것 뿐인데, 이는 정밀한 것이 아니라 ‘비교적 높은 개연성’만 정초하지 않는가?정당화 된 것은 개연성이지 법칙이 아니다.

물론 심리학 등을 포함하는 사실 과학은 그 과학에서 제시하고 있는 모든 법칙이 타당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른 여러 가능성들이 그 사실 과학 내에서 충분히 용인된다.

하지만 이렇듯 사실과학에서 정당한 “가능성”은 논리학에서는 “불합리”할 뿐이다.

22. 고립되어 작동해 이성적 사유를 일으키는 추정적 자연법칙인 사유법칙 (독해하기 어려운 꼭지)

인간은 사유하는 자이며 이는 자연법칙이다.

그런데 인간의 올바른 사유 작용을 정의하는 적합성의 본질은 어떤 심리적 영향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곳에 놓여있어야 한다. 하지만 심리학에서 개연성의 형식으로 주어지는 사유법칙은 어떤 것도 확실한 것으로 판정할 수 없다.

또한 ‘판단’ 자체와 ‘판단의 내용’으로서의 법칙은 엄연히 다르다. 즉 법칙과 법칙에 대한 인식작용은 다르다. 이념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은 다르다!

논리 법칙이 사유를 인과적으로 지배한다고 하여, 이를 사유작용의 인과법칙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심리학주의 논리학자는

  • 이념적 법칙과 실재적 법칙은 다르고
  • 규범화하는 규제와 인과적 규제는 다르며
  • 논리적 필요성과 실재적 필연성도 다르고
  • 논리적 근거와 실재적 근거도 다르다

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23. 심리학주의의 세 번째 귀결과 그 논박

  • 논리법칙이 그 인식의 원천을 심리학적 사실성에 가진다고 주장하는가?

이는 절대적으로 옳지 않다.

만약 논리법칙이 심리학적 사실을 규범적으로 전환한 것이라면, 논리법칙 자체가 심리학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인데, 어떠한 논리법칙도 ‘사실의 문제’를 함축하지 않고, 어떠한 인식현상도 함축하지 않는다.

당연히 경험적 법칙은 사실의 내용을 갖으며, 사실에 관한 법칙일 뿐 아니라 사실의 현존도 포함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인식의 척도에 따라 이론적으로 정초된 최고 권위를 지닌 개연성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순수논리법칙은 절대적 정밀함 속에 명료하게 정초되며, 명백하게 모호한 부분을 지닌 개연성에 정초하지 않는다. 논리 법칙은 실질적으로 한정된 영역 안에 적용되지만, 여러 가능성 중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진리로 작동한다.

24. 계속

이런 논리법칙은 경험적으로 단번에 보편타당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즉 논리 법칙은 경험에 적합하다.

하지만 그렇다 논리법칙이 귀납적이진 않다. 우리가 사태를 단번에 보편타당한 것으로 인식하게 될 때 귀납이 필요하지 않고, 귀납의 불완전함이 부착되어 있지 않다(저 책상의 3권의 책이, 저 서랍장의 2권의 책보다 많다는 사실. 귀납의 불완전함은 어디에도 부착되어 있지 않다.)

또한 심리학적 종속성은 심리적 연관에 관계하고, 시간적으로 규정이 되지만, 논리적 법칙은 명백히 근거와 결론의 객관적 관계에 따르고, 시간적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우린 이념적 대상과 실재적 대상의 근본적 차이, 그리고 이에 따른 이념적 법칙과 실재적 법칙의 차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Ref. Edmund Husserl(2018). 논리연구 1 (이종훈,역). 서울: 민음사. (원서출판 1900).

논리연구 1권 4절 감상평

논리학이 심리학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약간 이해하게 되었다.

나로서는 수의 법칙으로 논리 법칙을 설명하는 것이 가장 이해하기가 쉬웠다.

2개보다 3개가 많다는 법칙을 생각해보자. 2개보다 3개가 많다는 사실은 물론 생활에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같은 책 2권보다 3권이 많다는 것. 그냥 바로 알아차려진다.

하지만 3이 2보다 크다는 것은 실재로 그 사태가 벌어졌음과도 무관하고(책 2권, 책 3권이 있음의 여부) 시간과도 무관한 것이다(지금이든 어제든 내일이든.. 상관 없이 적용됨). 결국 이러한 논리 법칙은 실제 경험에서 심리학적으로 귀납적으로 발견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그런 모호한 법칙이 아니라는 것이다.

후설은 논리학이 심리학에 근거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이토록 치열하게 하고 있다. 후설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과제였던 것이 분명하다.

군대간 님을 향한 영상편지

여러분 혹시 “곰신”을 아시나요??

전 군대간 애인을 “군화”라고 부르고, 기다리는 연인을 “곰신” 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안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ㅋ

그리고 “곰신클럽”이 있다는 것두요..

대한민국 공군 곰신클럽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들어가서 가입을 했는데,

두둥!!

처음 제가 알게된 놀라운 사실은, 그 클럽을 직접 운영하시는 중위님께서 수업시간에 직접 곰신(ㅋㅋ)들이 만든 영상편지를 전달해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미 한번 상영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상비상!!!!!!!!!!!

에고.. 내 짝꿍은 다른 연인들의 영상편지를 보고 한쪽 가슴이 얼마나 씁쓸했을까…ㅠㅠ

정말 너무 미안하고 너무 가슴이 시리더군요..ㅠㅠ

그래서 지난 주말 내내~

프리미어라는 동영상 프로그램 데모를 다운로드 받아서, 네이버의 도움을 받아가며 처음으로 동영상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으아.. 2분짜리 동영상을 만들어내는데 정말 순수하게 10시간이 걸리더군요..

(저게 저래뵈도 10시간 짜립니다>ㅇ<ㅋ)

그래도 완성시키고 나니 어찌나 뿌듯하던지요^ㅇ^ 정말 왠지 제가 급 자랑스러워졌습니다. 호홋^ㅇ^ㅋㅋ

어쨌든~ 완성시킨 후, 마침 지난 목요일에 접수를 받아 금요일에 상영한다는 공지가 떴습니다!!

아싸~~!!

그래서 9시에 딱 준비하고 땡하자 마자 딱 업로드를 시켜서 2등으로 등록을 했는데~!!!!

접수 시작 공지글이 올라오는 줄도 몰랐던 지라~ㅠㅠ

접수 시작 공지글을 확인하고 올렸을 땐 이미 늦었었습니다 ㅠㅠ 선착순 4명이었거든요~꺄악~!!!

나의 10시간이 왠지 허무하게 느껴져서, 그리고 또 애인에게 미안해서 그날밤은 유독히 잠이 안들더라구요>ㅇ<그런데 다시 반전~!! ^ㅇ^
친절하신 우체부 중위님께서~

다음주 월요일에는 접수되는 모든 동영상을 틀어주신다고 하네요^ㅇ^
그래서 다시 손발이 오그라드는 몇 장면을(실은 제가 직접 나오도록 촬영한게 있었는데 ㅋㅋ)을 다시 편집하여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헤헷^^
정말 별 신기한 세계가 다 있지요??

어쨌든 다음주 월요일에는 이 편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어요^^
짝꿍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할텐데…

(2010.09.21.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수술실 신규간호사

안녕하세요. 수술실 신규간호사 지윤혜입니다..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한지도 벌써 5개월입니다.

블로깅을 제대로 하지 못한지도 5개월이나 되었구요..>ㅇ<제가 나눌 수 있는 내용은 저의 삶 뿐인데, 신규간호사가 용기있게 할 수 있는 말이 제한되어 있었기에 블로그도 버려두고 있었답니다 ㅠㅠ

지금은 조금은 여유가 생겨서 나누고 싶은 것들이 있으면 나누려고 해요..

헤헷^^

짧은 경험을 나누었던 지난 글들(오페어나 항공간호사 등)을 보시고 많은 분들이 개인적으로 문의해주시는 것을 경험하고서는 저의 경험이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 기뻤답니다.

저는 지금 신경외과 파트에서 근무중이랍니다. 이 파트는 보통 NS(Neuro Surgery) 라고 불리지요..^^

그러니까 누가 “너 어느파트에 있니?” 이러면 전 “NS에 있어.”라고 말한답니다.

수술실에는 신경외과 외에도 정형외과, 소화기외과, 구강악안면외과, 비뇨기외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등등 다양한 파트가 있구요, 간호사가 한 파트에 고정되어 일할 때까지는 대략 4-5년정도 걸리는 것 같습니다. 한 파트에 고정되기 전까지는 다양한 파트를 돌면서 교육받고 일하게 된답니다. 그러니까 저의 non-fix 간호사로서의 첫 파트가 신경외과가 되는 셈이지요. 다음 파트로는 언제 어디로 가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올해는 수술방 신규간호사가 15명이나 되거든요!!!

(작년이 8명이었던것을 볼때 엄청나게 많은 신규간호사가 온 셈이지요. 그래도 동기가 많다는 사실은 엄청나게 행복한 사실입니다..)

이들이 각각 뿔뿔히 흩어져 모든 파트에서 교육을 받고 신규간호사 노릇을 하고 있으니, 제가 새로운 파트로 가서 교육 받을 때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 한 파트에 신규간호사가 여러명 있다면 구멍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ㅋㅋ ㅠㅠ

어쨌든~!!

앞으로 가끔 올리게 될 글들은 신규간호사로서의 경험, 그리고 신경외과 간호사로서의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틈틈히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Love be with you..♡

(2010.08.13.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후설. 논리연구. 3절. 심리학주의, 그 논증과 통상적 반증에 대한 견해

앞서 1절과 2절에서 논리학은 기술적이고, 규범적이라는 사실과, 이러한 규범적인 논리학은 이론적 기틀을 갖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후설은 이에 이어 논리연구 3절에서 논리학의 이론적 기틀이 과연 심리학에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펼친다.

17. 규범적 논리학의 본질적인 이론적 기초가 심리학에 있는지의 쟁점

그렇다면 어떤 이론적 학문이 학문이론의 본질적 기초를 제공하는가?

현재는 심리학이 논리학의 본질적인 이론적 기초라는 관점이 우세하다. 많은 사람들이 심리학이 논리적 기술학에 유일하고도 충분한 이론적 기초를 준다고 이야기 한다. 밀은 “논리학의 이론적 토대는 총체적으로 심리학에 의거하며, 기술의 규칙들을 정초하는 데 필요한 범위에서 심리학에 포함한다”고 기술하기도 하였다.

18. 심리학주의자의 논증

심리학주의자의 입장: “어떤 소재를 기술적으로 처리하였는지가 그 소재의 성질에 대한 인식을 전제하게 되는데, 인식을 처리하는 규칙을 다루는 논리학은 당연 심리학에 귀속되지 않겠나?”

19. 이에 대립된 측의 통상적 논증과 심리학 주의의 응답

반대 입장: “논리학은 사유작용의 규범 법칙을 다루고, 심리학은 사유작용의 자연법칙을 다룬다. 논리학의 원리를 심리학에서, 즉 우리의 오성을 관찰한 것에서 찾는다면 사유작용의 우연적 법칙에 대한 인식으로 통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성의 우연적 규칙이 아니라 필연적 규칙을 추구한다”

심리학주의자의 입장: “오성의 필연적 규칙도 사유 작용의 법칙의 특수한 한가지 경우에 불과하다.특수한 경우라고 하여 심리학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부조리하다.”

반대 입장: “근본적으로 심리학의 과제와 논리학의 과제가 다르다. 심리학의 법칙은 심리와 경과를 인과적 차원에서 규명하고자 하지만 논리학은 그 인과적 결과가 아니라 진리의 내용, 즉 참인 결과를 위해 필요한 성질과 필요한 경과를 규명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후설의 입장: “그런데 논리학도 인과적 연관의 문제를 도외시할 수는 없으며, 자연적 연관을 연구하지 않고 이념적 연관을 추구할 수는 없다.”

반대입장: “논리학은 심리학에 기초를 둘 수 없다. 모든 학문이 논리학과 규칙과 조화를 이룸으로써만 학문이기 때문이다. 심리학도 논리에 근거할 때 심리학일 수 있는것이다. 이것은 순환론이다.”

이에 대한 후설의 입장: “이는 논리적 규칙에 따라 추론하는 것과 논리적 규칙으로부터 추론하는 것을 동일시한 관점이다. 심리학이 논리적 규칙으로부터 추론되는것인가? 그건 아니지 않는가?”

  • YJi: 즉, 후설은 심리학주의자들이 심리학이 논리학의 이론적 기반이라고 하는 것에 반박하고자 하지만, 당시까지 그러한 심리학주의자에 대한 반대입장의 논지가 튼튼하지 못했음 또한 지적하고 있다.

20. 심리학주의자들의 논증이 놓친 빈틈

후설의 입장: 심리학주의자의 논쟁을 통해 확인 된 것은, 단지 심리학이 논리학을 기초짓는데 함께 관여한다는 사실일 뿐이다. 어디에도 심리학이 논리학에 본질적 기초를 제공한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심리학에 독립적으로 자신의 현존재를 이끌어 갈 ‘순수논리학’이 자리 잡을 곳이 바로 이곳일 것이다.

모든 논리적 규제가 궁극적으로 관련되고 그래서 논리적 진리에 관해 논의하는 경우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어야만 할 질리가 곧바로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 진리 속에서 논리학 전체에 본질적인 것을 쉽게 보게되고 그 진리의 이론적 통일을 ‘순수논리학’이라는 명칭으로 쉽게 이름붙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으로써 (순수논리학의) 참된 상태가 특징지어진다는 사실을 나는 실제로 입증할 수 있기 바란다.

Ref. Edmund Husserl(2018). 논리연구 1 (이종훈,역). 서울: 민음사. (원서출판 1900).

논리연구 1권 3절 감상평

요약해보자면,

논리학은 실천적 기술학이고, 규범학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그 규범적 명제가 타당화될 이론이 필요하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이 이론이 심리학에 있다는 의견이 우세하였다. 심리학주의자의 의견(즉, 모든 사유작용에 대한 법칙은 심리학에 귀속된다)에 대한 반대 입장은 논리학의 규범적 특성에 기반하여 있어왔으나 그 논리가 부실한 수준이었다. 한편 너무나도 자명해보였던 심리학주의자의 입장 또한 허점이 있었으니, 심리학이 논리학의 기초가 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논리학의 본질적 기초가 된다고 증명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논리학만의 본질적 기초가 될 순수논리학이 필요하다.

라는 뜻인 것 같다.

확실히, 인간의 논리적 사유작용을 생각해볼 때 이는 심리학과 무관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그 규범적인(당위적인) 특성을 심리학에서의 우연적 인과법칙에서 찾는다는 게 말이 안된다는 것도 맞고, 이런 심리학만이 논리학의 본질적인 기초가 된다고 보긴 어렵긴 어렵겠다. 어쨌든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심리학은 그 사유의 필연적 법칙을 규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꼭 심리학이 아니고서, 순수 논리학이라 할지라도, 과연 인간이 그 사유의, 논리의, 필연적 법칙을 규명하는 순수 논리학을 전개해나갈 수 있을까?

내용은 조금씩 이해가 되어가고있다. 그리고 순수논리학이 가능하고 필요하다는 것도 알겠다. 그런데 과연 후설이 찾아갈 순수논리학이란 것이 사유의 필연적 법칙을 제시하는 논리학만의 본질적 기초가 될 수 있을지는 궁금하다. 아니면 사유의 필연적 법칙 이야기를 하는 건 반심리주의학 입장이고, 후설은 이것까지 찾으려는 건 아닌건가..?

여전히 어렵다. 어려워.. 뭐.. 일단 후설 선생님의 글을 읽어가곤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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