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가 있어야 운전을 할 자격이 생기지만, 마음대로 운전해도 될 권리가 부여되는 건 아니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면허를 득한 사람에게만 질서에 맞게 운전 할 자격을 주자고 결정이 된 것 뿐이다.
간호사면허가 있어야 병원에서 환자를 돌볼 자격이 생기지만 그것이 환자의 굉장히 사적인 영역인 ‘신체’를 함부로 해도 될 권리가 부여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하여, 특정 기준에 따라 면허를 득한 사람에게 윤리적으로 인간의 건강을 돌볼 자격을 주자고 결정이 된 것 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의 ‘국가자격시험’에 따르면, 국가자격시험은 국가기관 또는 그 대행기관이 전문직업분야에 종사할 사람들의 능력과 자질을 검정하여 자격을 인정함으로써 그들에게 일정한 권리와 의무가 발생하게 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는 까닭은 전문직업분야의 용역거래질서를 확립하고 전문직업인들의 전문성·공정성 및 성실성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제도는 ‘전문직업분야의 지식·기술 발전’과 ‘자격획득자 및 그 고객’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도 기여하는 것이다.
권리가 생기는 이유는 나름의 능력과 자질이 검증되었기 때문이고, 의무가 생기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적 합의에 따라 주어진 권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면허는 ‘면허를 획득한 사람’과 그 ‘고객’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의사나 간호사에게 사회가 일방적인 희생과 헌신을 강요할 수는 없다.
여느 월급쟁이나 사업가와 같이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지식과 노동을 제공하고 그에 따라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능력과 자질을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고급 지식과 노동에는 그에 상응되는 보상이 필요한데, 현재 그 보상기준이 열심히 노력하고 제공하는 만큼이라기 보다 정책적으로 결정이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니만큼 (물론 여느 영역에서와 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슉킹하는 비윤리적 비양심적 인간들도 존재하지만..), 그 보상 기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높은 수준의 의료를 원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또한 높은 수준의 간호를 원한다면 간호사에게 봉사정신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간호 수가가 생길 것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사회는 그럴 준비가 되어있는가..?
한편..
의사나 간호사에게 부여된 자격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자격이다. 씁쓸하지만 교사가 손을 놓으면 과외교사가 있고, 영양사가 손을 놓아도 누구든지 밥은 해먹을 수 있다. 그러나 의사나 간호사가 손을 놓으면..누가 대신할 수 있는가??
국민 건강관리에 대해 부여된 고유한 의무를 거부하는 순간 사회는 마비가 될 수 밖에 없다. 사회적으로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래서 현재 그 약점을 활용하는 모양새가 되버렸다. 수습이 될까 싶을 정도로. 그럴 의도는 분명히 아니었으리라.. 할말하않.. 너무나도 답답하고 괴롭다..
의료진은 면허가 ‘현 정부’가 아닌, 사회적 합의로부터 부여된것이었음을 기억하고, 사회는 현재의 의료시스템이 개선이 필요한 상태임을 알아주면 좋겠다. 워낙 의견은 분분하나, 내 생각은 그러하다.
5년전 함께 PT를 받으며 운동과 식단조절을 해서 탄탄해졌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오래 유지하지 못했었는데, 나름의 변명이라면 머지 않아 찾아온 서우와 먹덧 때문이랄까.. 20킬로그램이 늘어났을 때보다야 많이 줄긴 했지만, 근육이 줄고 지방이 늘어난 몸은 부인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전엔 배에 살덩이는 없고 얇은 가죽뿐이었는데.. 그리고 남편 몸은 희안하게 나를 따라온다.
대학원 원서를 넣었는데, 진짜 혹시라도 다음 학기부터 대학원을 다니게 된다면..? 다른것보다 체력이 가장 걱정 됐다.
내가 워낙 건강이야 하지만, 잠에 엄청 취약한데, 잠을 줄일수 밖에 없겠다 생각을 하니 체력이 걱정됐다. 운동을 시작하지 않을수가 없어졌다. 그리고 남편은 나를 따라온다..^-^
매일 저녁 아이가 잠든 후 매트피고 영상을 보며 따라하고 있는데, 선택한 홈트가 아주 만족스럽다. 내 수준에 딱. 적당한 근육통은 오히려 기분을 좋게 해준다.
자기 주장을 하기 시작하는 딸래미에게 목소리가 높아지던 차에 접하게 된 책. 기본적이지만 실제적으로 응용 가능하도록 사례들을 제시해주고 있었고, 나의 태도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가장 찔렸던 부분은 ‘아이에게 화를 내는 건 부모가 아이에게 응석을 부리는 것과 다름 없다는 것’ 이었다. 화내는 것과 꾸짖는 것은 다르다는 팩트. 그러나 여전히 ‘내’가 피곤할 때 ‘아이’가 잠을 안자면 결국 화를 내버리고 만다. 아이에게 “엄마 졸립단 말이야!!” 라는 응석을 엄청 쎄게 부리고 있는 것이다.. 울려버릴 정도로 ㅜㅜ
가장 감동받고 미안했던 부분은 ‘실제로 부모가 무슨짓을 해도 무슨말을 해도 아이는 부모를 용서해준다.’는 것이었다. 며칠전에도 서우를 혼내놓고 심했다 싶어서 사과를 한 후 “용서해줘서 고마워..” 라고 말했더니, 얘가 알고 말하는 건지 모르고 말하는 건지.. “계속 계속 용서해줄께 엄마.” 란다..
쉽고, 호흡도 짧고, 기본적이면서 필수적인 육아 상식인지라 모든 학령전기 자녀의 엄마들에게 추천한다.
우리를 보내는 코타키나발루의 마지막 날은 매우 맑았고, 둘째의 컨디션도 언제 열이 났었나 하며 맑았다. 조식당은 연휴을 앞둬 그런지 가장 붐볐고, 혹시나 모를 레잇 체크아웃 요청은 거절됐다. 뒤에 올 사람이 없으면 레잇 체크아웃에 후하다고 들었는데, 타이밍이 안좋았던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날씨는 5일 중 가장 뜨거웠고, 마지막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조금이라도 수영을 하기로 했다. 6시 비행기이니 3시반 정도에 출발하면 딱이라, 체크아웃을 아예 해버리고 좀 놀다가기로 했다. 둘째는 역시나 조약돌로 소꿉놀이와 모래놀이를 좋아했고, 첫째는 역시나 잠수하며 놀았다. 얼굴은 다들 바짝 타버렸다.
수영장에 나타난 토끼.
남편의 소박한 여유
적당히 놀다가 점심을 먹고 씻기로 했는데, 막상 수영장에서 스타라운지(샤워시설이 있는 곳)로 이동을 하려니 정말 멀었다. 숙소를 업그레이드하지 않고 키나발루동에 있었더라면 수영이나 식사하러 다니기가 예상보다 많이 힘들었겠다 싶었다. 돈 주더라도 업그레이드 하기로 한 우리, 칭찬해!!
스타라운지는 체크인 전이나 체크아웃 후에 티켓을 가지고 머무를 수 있는 곳이었고, 그 티켓이 있으면 안의 샤워시설이나 락커를 사용할 수 있었다. 샤워룸은 독립적인 방으로 넓직하게 되어있어서 갈아입을 옷가지를 가지고 가서 그 안에서 갈아입고 할 수 있었다. 어메니티도 있었고.. 정말 듣던대로 좋았다.
그러나 나는 벌써 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둘째랑 씨름해가며 그 넓지만 좁은 공간에서 애 둘을 씻겨야 했다. 특히나 둘째가 머리 감는 걸 ‘엄청’ ‘엄청’ ‘엄청’ 싫어하는데 세워놓고 머리를 씨름하며 감기다보니..아주 그냥 고래 고래 울며 소리를 지르는데.. 주변에 정말 민망했다. 난 씻어도 씻은게 아니고..
그렇게 나는 나대로 정신 없어하며 ‘남편은 편하게 씻었겠지?’ 싶었으나, 남편은 남편대로 씻지도 못하고 짐을 챙기러 다시 그 멀고도 먼 수영장을 갔다왔단다. 애 둘을 전쟁하며 씻기고 나까지 씻은 터라 당연히 남편은 씻고도 남았을 줄 알았는데.. 이제 막 씻으려고 한단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내가 샤워를 한다고 오면서 썬베드에 속옷을 넣어둔 가방을 두고 왔네.. 미안 남편.
남편은 그렇게 한번 더 짐을 가지러 갔다 왔고, 돌아온 남편의 얼굴엔 말릴 수 없는 땀과 짜증이 흘렀다.
어쨌든 남편은 어렵사리 씻고 나왔는데도 5분도 안되어 다시 뻘뻘.
둘째는 업히자마자 꿈나라로 기절.
첫째는 그토록 고대하던 플레이스테이션 영접.
갑자기 시원해진 놀이방에서 나는 둘째 감기 걱정에 덜덜.
그렇게 샹그릴라 탄중아루에서의 마지막이 순간이 도래했다
가방에 챙겨둔 언니 바지를 이불 삼아 덮어줬다.
플레이룸~엄청 큰 닌텐도. 첫째는 결국 닌텐도 하는 방법은 못찾고 옆에 있는 플레이스테이션만 실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