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멀쩡하다

어제는 남편이랑 저녁때 급 데이트를 하느라 엄마가 아이를 재워주셨다.

남편이 석사논문만 끝내놓으면 가서 방청하고 싶다던 ‘다스뵈이다.’를 보고 들으러 가기로 한 것이다.

남편 혼자 보내서 혼자만의 시간을 줄지, 아니면 요즘 이래저래 심경이 복잡하니 같이 가서 힘이 되어줄지 고민하다 후자를 택했다. 결국 늦게 도착해 서서 방청하느라 다리가 아파 중간에 나오긴 했지만 아이는 이미 잠든 뒤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원래는 엄마나 아빠 중 한명이 꼭 같이 있던 시간인데 이상하게 없어 그런가 아이가 울면서 엄마 올때까지 안잔다고 했단다.

아이도 나처럼, 엄마아빠와 함께하는, 빼앗길 수 없는 시간이 있는것 같다.

하여간 너무 속상해 하는 아이를 본 울 엄니도 괜히 안쓰러워 눈물이 살짝 나셨다는데 아이가 그것을 보고 바로 울음을 뚝 그치더란다.

그러더니 겨우 달래지며 침대에 누워서 자기 전에 하는말, “할머니. 아까는 미안했어요.”
아직 세돌도 안됐는데.. 어른 속을 헤아린다.

이럴때 우리 엄마 워딩, “속이 멀쩡하다.”

다 느끼고, 다 알고, 다 표현하게 된 내 딸..
속이 멀쩡하다.

(2019.8.8.페이스북 기록물)

일단 하나 또 마무리

성격상 닥쳐서 하는것을 싫어하는듯 하다. 나름의 기한을 정해놓고 마감이 닥치기 전에 미리 완성해둬야 마음이 편하다. 그러고보니 학창시절 시험공부도 그랬고, 과제도 그랬고, 일터에서 발표를 준비할 때도 그랬고, 심지어 휴가를 계획할때도 그랬다(휴가는 5개월 전부터 계획해둬야 제맛..ㅋ). 내가 나의 시간을 통제하는것이 중요하다.

올 한해, 예측하긴 했지만 일+alpha에서 alpha의 비중이 상당히 크다. 이 알파가 일이라면 일이고 알파라면 알파겠지만 어쨌든 쉴새없이 바쁜 체험 삶의 현장이다.

하반기에 주어진, 알파라고 칭하고 싶은 나의 과업은 초록 한개 제출, 질질 끌어온 논문 한개 마무리, 학회와 심포지움에서의 발표 혹은 강의 3개, 방재실20주년책 편집발행, 그리고 겨울 캠프이다.

초록 한개는 무사히 제출 후 발표여부를 기다리는 상태고, 논문 리비전도 마감 이틀을 남겨놓고 드디어 제출했다.

남은 과업들은 살짝만 떠올려도 마음이 분주해진다.

그러나, 오늘은 금요일! 이제 나와 가족만 있다.
기분 좋다^-^

(2019.08.02 페이스북 기록물) 

섣부른 판단

판단: 개개의 사실이나 의문에 대하여 단정하는 작용

오늘 내게 주어진 업무 중 가장 당혹스러웠던 업무는 입원중인 청소년 환자인 K에게 자가 도뇨를 교육해달라는 과제였다. 내게 업무를 전달하며 부탁한 이도 나의 황당함을 미리 감지했는지 “아무래도 안되긴 하겠지만, 시도는 해봐야 할것 같으니 부탁한다.”라며 어차피 버리게 될것 같은 시간에 미리 사과하는 듯 했다.

내가 그 아이를 경험해본 적은 한차례 있었는데 도저히 의사소통이 안되는 것 같아 보였다.

눈빛은 허공을 바라보거나 눈마주침을 피했고, 질문에는 전혀 리액션이 없었고, 뭔가 말을 하는 듯 할때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이의 상태를 검사하기 위해 “기침 해볼래?”, “배에 힘 줘볼래?” 등의 행동을 요청할때는 전혀 반응하지 않고 기분 나쁘다는 듯이 몸을 비틀곤 했다.

그런데 그 아이에게 스스로 도뇨하는 법을 알려주라는 것이었다.

될까..?

자가도뇨 교육을 하더라도 3-4주 정도 계획을 잡고 점진적으로 하나씩 해나가야겠다 마음을 먹은 후 매주 성취해나가야 할 단계를 적어 프린트해놓고 아이와 엄마를 맞이했다.

그런데 아이의 엄마가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말씀하시길, 학교에선 본인이 혼자 한다고 들으셨다는 것이었다. 집에서는 혼자 절대로 안해서 진짜 하는 것은 못보긴 했지만..

난 놀라서 ‘여러’차례 “보조 교사 선생님이 해주시는게 아니라구요? 정말 본인이 한다고 들으셨어요?”라고 되물었다. 난 K뿐만 아니라 엄마의 느린 톤의 목소리로 엄마까지 이미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후, 아이는 매우 느린 속도긴 하였지만 정확하게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자가도뇨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카테터는 어떻게 준비하고, 윤활젤리는 어떻게 짜두고, 장갑은 어떻게 준비해두고, 기저귀는 어떻게 풀러서 준비해두고.. 느리지만 분명한 자신만의 프로세스가 있었다.

엄마도 ‘”너 장갑 끝은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잖아~ 엄마 그렇게 안하잖아.” 라며 도뇨관을 잡게되는 손의 청결에 대해 느리지만 정확한 지적의 목소리를 내며 아이를 교육했다.

“K! 정말 잘하네! 바로 그거야. 그렇게 앞으로도 꾸준히 집에서도 해봐야해!!.”라며 감동해하는 나의 얼굴을 보는 엄마의 얼굴에서도 안도감을, 아이의 눈빛에서도 부드러움을 감지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남은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였다. 나의 어줍잖은 판단으로 아이가 홀로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한번의 기회를 소멸시킬뻔 했다. 진심으로 부끄러웠다. 내가 뭐길래 겉모습으로 수준을 판단하는가. 내가 정말 싫어하는 성질인데, 나에게서 오늘 또 발견했다.

의료진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경계해야 할 성질이다.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답게 여러분은 사람의 겉모양만 보지마십시오.
야고보서 2:1 KLB

(2019.07.30. 페이스북 기록물)

페이스북

처음 페이스북을 알게 된건 2008년이었고, 그 연도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나는 미국에서 싸이월드에 블로깅을 하고 있었는데 얼리 어답터였던, (결혼 후 소식을 접할 수 없게된 내 친구였던) 승준이가 페이스북을 하며 외국에 네트워킹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긴 했지만 저장방식과 소통방식이 낯설고, 당시에 페이스북 이용자가 한국에선 거의 없었기에 그냥 가입만 해두었었다.

그런데 몇년 뒤 싸이월드는 추억속으로 사라지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우리의 가상공간의 인간관계망으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나도 다시 사진도 올려보고 내 생활도 올려보고 좋아요도 눌러보고 그랬다.

그러다 페이스북의 알람도 끄고 눈팅만 가끔 하던 이유는, 내 스스로가 나쁜 일보다 좋은 일만 올리게 되고, 부끄러운것보다 자랑스러운 일만 올리게 되는게 싫었다. 그리고 웃기지만 약간의 신비주의도 있었던것 같고.

그런데 엇그제 워킹맘으로 살며 느껴왔던 그간의 마음을 담담히 써보았는데 나의 좁은 인맥을 생각할때 너무 많은 분들이 위로와 공감을 해주셔서 힐링의 경험을했다.

하루에 한번씩은 기록을 남기자고 한 나의 다짐이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겠으나, 페이스북을 공책으로 삼는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2019.7.27. 페이스북 기록물)

소아 난치성 과민성 방광. 꼭 치료해야 하나?

이것저것 다 고민해보고 적용해봐도 좀처럼 호전이 안되는 경우는 “정말 정말 정말 ×100” 답답하다.

물론 소아요실금와 아동의 정서문제 간에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오긴 했으나, 그와중에 막상 환자나 보호자가 치료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가 없고, 치료 과정에 대한 순응도가 떨어지면 이거 꼭 치료해야 하나 싶어진다.

현재 환자 및 부모가 치료에 대한 니즈도 없고 이미 가시화된 문제도 인식되지 않는데, 훗날 발생 가능할 정서 문제 및 가족문제 등을 예방하기 위해 이것저것 다 해보는게 맞나 싶기도 하다.

일단 증상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신경적인, 해부학적인 문제가 다 배제 된다면, 적극적인 치료에 들어가기 전에 환자와 가족의 문제 해결에 대한 요구도와 정서행동 상태 먼저 평가한 후 치료의 적극성 수위를 조절하는건 어떨까.

그런데 그렇다면, 정서행동 문제 및 가족 문제 등 심리 사회적인 문제 말고는 신체적 건강 상태에는 장기적으로도 받게 되는 큰 영향이 확실히 없는가??

“소아 난치성 과민성 방광. 꼭 치료 해야하나?”

당분간 닥친 일들만 좀 정리하면 이부분을 연구 주제로 삼고 고민좀 해봐야겠다!! 그동안 너무 그냥 답답해만 했었다.

Pediatric refractory overactive bladder.
Does it must be treated?
Sometime, I’m struggled with this subject. Especially when child and their caregiver do not have will for active treatment or show low compliance on the treatment process.
There are many many papers about the emotional, behavioral problem and family problem caused by child’s incontinence or other LUTS. I know! I’m even writing paper about this problems. But if child’s emotional behavioral or parent’s stress were not clear, and their compliances on the urotherapy process were low and came to ‘Bladder urethra rehabilitation clinic’ just as doctor told them to, I end up feeling heavy and thinking ‘does it must to be treated.’
Assessing the level of child’ and parents’ needs for treatment and their emotional behaviral status before starting active treatment process might be the key. For them and for urotherapist.
Sometime, their caregiver just wanted to make sure ‘it’s not a big problem’.
But can I gurentee if I left it untreated when child and their parents don’ need the treatment, it will not cause any other long term problems?
I want to make sure urotherapy for child with refractory overactive bladder is not just to prevent but it is nessessary.

(2019.7.26. 페이스북 기록물)

워킹맘

워킹맘

아주 가끔 힘들때가 있다.

단단한 자존감과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 덕분에 좀처럼 쉽게 지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가끔씩 깊은 우울이 찾아온다.

아무것도 할 힘이 안나는 상태.

잠잠히 돌아보니 엄마 윤혜와 직장인 윤혜 사이의 안정감이 흔들릴때 발생하는 일인듯 하다.

엄마 윤혜 만으로 살아본 시간이 얼마 없었다. 출산 휴가 기간인 3개월이 전부다. 그나마 그 기간에도 대학원 실습 차 병원에 와서 시간 맞춰 유축을 해야하곤 했었다. 온전히 엄마만으로 살아본 기간은 거의 없다.

그래서 나에게는 퇴근 후 저녁시간과 주말이 너무 중요하다. 퇴근 후 서우가 잠들때까지 주어지는 2시간, 그리고 주말에 함께 하도록 주어지는 약 14시간. 일주일에 서우에게만 집중할수 있는 시간은 고작 38시간이다. 난 그것이 침범될 때 힘들다.

최근 갑작스레 근무 패턴이 바뀌며 3주에 한번 토요근무를 하게 되었고, 학회나 병원 행사 때문에 토요일에 집을 비워야 할 일들이 유난히 몰렸었다. 엄마 윤혜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과 서우에 대한 마음만 아니었다면 나에게 큰 스트레스원이 아니었을 것들인데.. 지금은 나의 균형을 깨뜨리는 스트레스원으로 작동한다.

스트레스를 이성으로 버티며 극복했다 여기고 지내다가도, 서우의 갑작스런 고열같은 상황은 깊은 우울감을 촉발시키고 만다. 그리고 같은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무엇이 중요해? 지금 행복해?’

분명히 행복하고 충분히 만족했었던것 같은데. 그랬던 기억만 남고 마음은 공허하다.

무기력한 상태를 좀처럼 즐기지 못하는 나는 어쨌든 바쁘게 뭔가를 하기는 하지만, ‘에너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마치 숨쉬기 어려울 때 공기를 생각하게 되듯이.

현재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내가 내세울수 있는 답은 아니다. ‘적당히 포기할건 포기하고’에서 포기의 대상이 아이가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엄마 윤혜와 직장인 윤혜의 균형을 맞추고 싶다.

(2019.7.25. 페이스북 기록물)

기록

기록

수년 전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기억이 저장된 시냅스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기록’ 덕분일 것이다.

방광요도재활실 20년사 발행을 준비하며 한상원 교수님으로 부터 전달받은 수많은 기록을 보며 여러모로 느끼는 바가 많다. 그 기록에는 20년 전의 생각과 삶이 고스란이 담겨 있었다.

기록은 내가 살아온 흔적이 되고, 그 흔적은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잘 다듬어진 수필이든, 흘겨 쓴 메모이든.

그리고 기록보다도 중요한 것은 체계적인 저장 방식이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는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이 너무 많다.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것 뿐이지.

나도 나름 기록이란것을 하긴 했었다. 주로 싸이월드였는데 유행이 지난 후 네이버로 잠시 넘어왔고 생각을 글로 정리할 여유가 없어지며 최근 몇년간은 서우 사진으로 모든 기록을 대신하고 있다. 사진은 무엇을 했는지와 감정을 기억하게 하지만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는 자세하게 보여주지 않아 아쉽다.

다시금 기록이라는 것을 하며 나의 발자취를 잘 보관해두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2019.7.24. 페이스북 기록물)

남편의 석사학위

남편의 석사논문이 드디어 책으로 완성됐다.

처음 세브란스에 이직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우신 세브란스에 정직하고 건강한 하나님의 일꾼 한명 들이시라고 간구했었다.

병원에 막상 입사하니 의사도, 간호사도 아닌 존재로서 무슨일을 할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고, 결국 답을 내리지 못한채 즐겁게 할 수 있는 공부를 하며 찾아보기로 잠시 결정을 뒤로 미뤘었다.

그리고 논문의 과정, 안할수도 있었지만 하겠다고 선택했다. 이 과정을 지나가야만 할것 같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정말 괴롭게, 힘들게 완성했다.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사는, 누구보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 그 안의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고 사귐을 결정했었다. 10년전에.

그는 여전히 물음표 달린 앞길에 답답해하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그를 사용하고 계시며, 길을 예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

남편 수고했옹♡♡♡

(2019.7.6. 페이스북 기록물)

소유욕 VS 균형

난 평소에 별로 가지고 싶은게 없다. 남편이 가끔 나에게 선물해주기 위해 뭐가 필요하냐고, 뭐가 가지고 싶냐고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매우 난감하다. 정말 별로 필요한게 없기 때문이다. 그냥 가끔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그걸 그냥 살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평소에 크게 꿈을 갖지도 않았다. 20대 때는 치열하게 고민도 하고 꿈이라고 설정해보기도 했으나, 요즘은 내 꿈은 오늘을 잘 사는 것으로 설정하고 매일의 삶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때가 되면 기회가 다가오고 길이 열리더라는 것을 삶으로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역량을 내가 오늘 최대한으로 사용하고 발전시키는 것, 그것이 내 꿈이라면 꿈이었다.

어쩌면 그 덕분인건지, 오랜만에 내 마음을 뜨겁게 하고 나의 관심을 사로잡는 기회가 보였다. 정말 가지고 싶고, 잡고 싶었다. 어쩌면 30대 중반까지 도대체 ‘사랑’이 뭐야? 하며 이성에 전혀 관심없던 청년이 갑자기 연애에 빠지고 결혼을 결정하고 싶어하는게 이런 기분일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무작정 달려가기에는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를 잡고 서있는 아이가 보인다. 이미 나름 많은 희생을 하고 있는 딸이다. 그리고 지금 상당히 균형을 잘 맞춘 삶을 살고 있어서 누가봐도 “왜?” 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지금과 같은 균형감을 잃지않고 하고 싶은걸 주저함 없이 하고싶다. 근데 내가 아는 나는, 몰입하면 주변을 잘 못돌아본다. 이것이 실은 내가 가장 우려하는 점이다.

엄마로서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매일의 짧은 시간만큼은,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꼭 지켜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자랑스러운 엄마라 해도, 곁을 지켜주지 않는 엄마는 항상 아쉬울테니..

그래서 나의 눈길을 끄는 반짝이는 보석에게 알려줬다. 난 이런 사람이라고. 약간 안어울릴수 있을수 있다고. 말해주고도 후회막심. 그래도 그 보석이 날 주인으로 알아 본다면 주저하지 않고 다가오겠지. 아니라면 아쉽겠지만.

(2019.10.09.페이스북 기록물)

덕업일치業一致

남편이 요근래 매일 같이 언급하던 삶의 모양.

덕업일치의 삶을 살고 싶다고 매일같이 괴로워했는데 도대체 여기서 ‘덕’이 뭘 말하는 걸까 찾아봤더니 세상에, 덕후(오타쿠)의 덕질의 ‘덕’ 이었다.

결국 남편은 스피노자의 삶에서 답을 찾았다며 위로받고 있기는 하지만, 난 정말 남편이 덕업일치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정말 즐겁게 빠져서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온몸을 던졌으면 좋겠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돌아보면, 꽤 덕업일치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내가 몸 담을 수 있는 바운더리 안에서 나의 성향과 강점을 최대한 잘 살릴 수 있는, 나름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것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의 영역을 잘 가꿔야지라고만 생각하던 중, 새롭게 가슴 설레게 하는 도전거리가 튀어나왔다. 기회라는 생각이 되고, 뛰어들어보고 싶다. 누가봐도 덕업일치 한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있어왔지만, 나 스스로는 진정성있게 100프로 그렇다고 이야기 하진 못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도해오신 삶을 돌이켜보았을 때, 나의 이런 설레는 마음이 역마살인건지 아니면 하나님의 주시는 소망인지 잘 분간이 안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최대한 침착하고 잠잠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한걸음씩 조심스럽게 나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이 길이 그분의 뜻이 아니라면 꼭 막아주시길, 그러나 그분이 주신 기회라면 잘 감당 할 수 있길.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덕업일치 삶으로의 초대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만약 아니라 해도, 잠시동안이나마 새로운 시각으로 병원을 바라보게 되었던 이 경험이 나에게 큰 자산으로 남을 것 같다.

(2019.10.4. 페이스북 기록물)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