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사기병(윤지회 )

덕분에..
미안하지만.. ‘덕분에’ 평범한 하루의 감사함을 기억했다.

두돌 아이 엄마의 갑작스런 위암 4기 진단.

이건 소설이 아니고 진짜 일기였다.
담담하게 그려졌지만 고스란히 전달된 두려움과 슬픔. 애틋함. 간절함.
그 인생을 어떻게 다 이해할까.

상상만 해도 막막하고 먹먹하고 버티기 어려운 삶인데. 상상조차 외면하고 싶은 삶인데. 나였다면 과연 살아낼 수 있었을까.

같은 고민 없이 평범하고 무난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음에 안도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니 그 삶을 살아낸 작가님께 미안했고,

미안하라고 그린 일기가 아님을 알기에 고인께 감사했다.

오늘도 병원에 오가는 수많은 사람이 인생에서 최악의 순간을 살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걸 기억해야지.. 그래야겠다.

그럴게요.

(2020.12.24. 페이스북 기록물)

반성문

어제는 평소보다 피곤했다.

낮잠도 자고, 집에만 있었는데도. 운동 난이도가 높아서 그랬을까, 날씨가 우중충해서 그랬을까.. 하여간 너무 피곤했다.

토요일부터 감기 증상 없이 열만 가끔씩 오르락 내리락 거리던 아이를 평소보다 일찍 침대에 눕혔다.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거려 그런지 아이의 에너지는 아직 방전이 더 필요한 상태였고, 30분이 지나고, 한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빨리 잠들어야 일어나서 뭐라도 하는데 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자 아이의 뒤척임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시간이 넘어가서 기어이 아이를 울려버렸다.

“엄마가 옆에 있어서 못자는거 같으니까 엄마 나가야겠어! 엄마 나가서 잘테니까 여기서 아빠랑 자! (무논리의 대향현…)”

“으아앙….

엄마. 나도 정말 자려고 노력하는데, 눈이 자꾸 똑 떠져. 정말 노력했어.미안해..”

내가 또 괜히.. ㅠㅠ

추스리고 사과하고 안아주고.

남편이 현 상황의 문제는 방이 너무 더워서였던 것 같다고 진단한 후 방문을 살짝 열어두고 선풍기 바람이 들어오게 했는데, 나의 환절기 알러젠인 ‘찬바람’이 들어와서 코속을 강타하며 짜증2탄을 예고하고 있었다.

“으으…. 문좀 닫아줄래..코에 직바람이 들어와…”라는 나의 부탁은 적절한 온도조절을 위함이라는 목적에 희생되..
는 듯했으나

아이가 데굴데굴 굴러와 작은 손으로 내 코를 덮어주었다.

“엄마. 이러면 괜찮지? 좋은 생각이지?”

아이 손은 따뜻했고, 결국 그렇게 둘이 같이 잠들었다.

어떻게 내 코를 덮어줄 생각을 했을까.

아이의 마음씀이 엄마보다 나았다.

반성문.

(2020.9.7. 페이스북 기록물)

의사파업

의사 파업.

일정부분 공감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고, 고생하는걸 아는 만큼 같이 싸워주고 싶다는 마음도 분명히 있지만..솔직히 말해서 이렇게까지 하는것에 대해선 설득되지 않는다.

그저 슬프고 답답하다. 여론과 싸우는 입장에 서게 됐다는 것이. 온갖곳에서 얻어맞고 있다는 것이. 그동안 고생한걸 아는 만큼, 노력한걸 아는만큼 너무 속상하다.

그런데 하나, 부러운게 있다. 어쨌든 내새끼라고 지켜주기로 작정한 부모같은 선배님을 가졌다는 것. 그동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같이 총대맨 선배님을 가졌다는 것.. 진짜 내새끼니까..

간호사. 지지리도 못모이는 우리 간호사..

공부는 공부대로 하고, 일은 일대로 직살나게 하고, 몸고생 마음고생 다 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모로 병원에 남아 고생중인 우리 간호사는 누가 지켜주나..

왜 누구보다 열심히 살면서, 인정도 못받고, 태움받고, 태우고, 억울하고, 양심과 싸우고, 이제는 그러려니하고.. 그렇게 그렇게..

언제까지, 언제까지 그럴건데..

누구보다 치열하게, 누구보다도 환자를 생각하자..

누구도 그 가치를 함부로 하지 못하게. 그리고 누구보다 우리 서로를 아껴주고, 믿어주고, 밀어주자. 내새끼하고, 내편하고. 우리 그러자..

(2020.8.31. 페이스북 기록물)

면허

운전면허가 있어야 운전을 할 자격이 생기지만, 마음대로 운전해도 될 권리가 부여되는 건 아니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면허를 득한 사람에게만 질서에 맞게 운전 할 자격을 주자고 결정이 된 것 뿐이다.

간호사면허가 있어야 병원에서 환자를 돌볼 자격이 생기지만 그것이 환자의 굉장히 사적인 영역인 ‘신체’를 함부로 해도 될 권리가 부여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하여, 특정 기준에 따라 면허를 득한 사람에게 윤리적으로 인간의 건강을 돌볼 자격을 주자고 결정이 된 것 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의 ‘국가자격시험’에 따르면, 국가자격시험은 국가기관 또는 그 대행기관이 전문직업분야에 종사할 사람들의 능력과 자질을 검정하여 자격을 인정함으로써 그들에게 일정한 권리와 의무가 발생하게 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는 까닭은 전문직업분야의 용역거래질서를 확립하고 전문직업인들의 전문성·공정성 및 성실성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제도는 ‘전문직업분야의 지식·기술 발전’과 ‘자격획득자 및 그 고객’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도 기여하는 것이다.

권리가 생기는 이유는 나름의 능력과 자질이 검증되었기 때문이고, 의무가 생기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적 합의에 따라 주어진 권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면허는 ‘면허를 획득한 사람’과 그 ‘고객’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의사나 간호사에게 사회가 일방적인 희생과 헌신을 강요할 수는 없다.

여느 월급쟁이나 사업가와 같이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지식과 노동을 제공하고 그에 따라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능력과 자질을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고급 지식과 노동에는 그에 상응되는 보상이 필요한데, 현재 그 보상기준이 열심히 노력하고 제공하는 만큼이라기 보다 정책적으로 결정이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니만큼 (물론 여느 영역에서와 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슉킹하는 비윤리적 비양심적 인간들도 존재하지만..), 그 보상 기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높은 수준의 의료를 원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또한 높은 수준의 간호를 원한다면 간호사에게 봉사정신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간호 수가가 생길 것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사회는 그럴 준비가 되어있는가..?

한편..

의사나 간호사에게 부여된 자격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자격이다. 씁쓸하지만 교사가 손을 놓으면 과외교사가 있고, 영양사가 손을 놓아도 누구든지 밥은 해먹을 수 있다. 그러나 의사나 간호사가 손을 놓으면..누가 대신할 수 있는가??

국민 건강관리에 대해 부여된 고유한 의무를 거부하는 순간 사회는 마비가 될 수 밖에 없다. 사회적으로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래서 현재 그 약점을 활용하는 모양새가 되버렸다. 수습이 될까 싶을 정도로. 그럴 의도는 분명히 아니었으리라.. 할말하않.. 너무나도 답답하고 괴롭다..

의료진은 면허가 ‘현 정부’가 아닌, 사회적 합의로부터 부여된것이었음을 기억하고, 사회는 현재의 의료시스템이 개선이 필요한 상태임을 알아주면 좋겠다. 워낙 의견은 분분하나, 내 생각은 그러하다.

2020년.. 유난히 다사다난하다..

(2020.8.29. 페이스북 기록물)

박사. 선명한 음질을 위하여.

2020 9월 박사과정을 시작한다.

2005 대학입학
2010 병원취직
2015 석사과정시작
2020 박사과정시작

그러고보니 뭔가 딱 맞아떨어진다.

오늘 그 첫 행보를 걷기 시작했는데, 박사과정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소리. 스피커.

얼마전 김동호 목사님께서 우리교회에 오셔서 세레요한이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표현된 것에 대한 감동을 말씀해주신적이 있다. 세례 요한은 스피커였고, 본질은 예수그리스도였다는 것.

나도 아마 선명한 음질의 스피커로 닦여지기 위해 박사 과정을 밟게 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내 목소리가 아니라, 스피커가 필요한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주기 위한 스피커. 지금까지의 삶의 인도하심을 생각할때.. 그럴 것 같았다.

아직 그 과정을 본격적으로 밟은게 아니라 얼마나 험란하고 고될지 상상이 안되지만, 주께서 나를 그리 쓰시려거든, 그리고 내가 그에 맞게 준비가 되어있거든, 지혜와 명철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할수밖에. 그리고 쓰시도록 의탁해야겠지.

서우도 엄마가 공부하고 늦게들어올 날이 생긴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주변에 도와주시는 정말 많은 분들의 마음과 헌신에 감사하며 열심히하리!!

(2020.08.15. 페이스북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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