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드린다는 것.

어쩌다 보니 3주 연속 교회를 못갔습니다.

첫번째 주에는 명절이라서, 두번째 주에는 몸살이 나서, 세번째 주에는 강의 일정으로 여차저차 하는 바람에..

첫번째 주와 두번쨰 주는 제 스스로 그나마 인정할만 한데, 세번째 주는 좀 양심에 거리낌이 생깁니다.

마음만 먹었다면 충분히 예배드릴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전 부지런하게 예배에 참여하기 보다는, 느긋하게 놀기를 선택했습니다.


일요일을 주일이라 부르며 교회를 간다는 것, 그건 단순한 규칙적인 의식을 치루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주일 중 단 하루, 그리고 그 하루 중 아주 잠시만의 시간을 떼어 나를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과의 교제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모님의 존재가 너무 당연하면서 안부에 소홀하게 되어 당신들을 외롭게 하기 쉽게 되듯이, 예배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것,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쉽습니다.

중고등학생 시절, 예배를 드릴때마다 의아했던 점이 있는데, 대표기도를 하시는 어른들께서 거의 매 주일마다 “지난 일주일간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인생을 부끄럽게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라는 기도를 하신다는 점이었습니다.

순수하게 하나님과의 사랑에 푹 빠져있던 저는, 도대체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었습니다. 왜 매주마다 저렇게 회개만 하실까, 평소에 잘 하시지.. 라고 의아해하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현실세계에서 살아보니, 그나마 매 주일 그렇게 교회에서 회개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상당히 칭찬받을 일이겠다 싶어집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오늘 아침 저의 양심이 저를 깨워 출근길에 말씀을 들었습니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 (에스겔 16:6).”

어느덧 세상에 젖어 그리스도의 향기는 사라진채 피투성이와 같은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할지라도, 살아 있으라.. 살아있으라.. 내가 너를 기억하고 너를 보듬어 주겠노라..

하나님의 애닳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늠해보며,
너무 쉽게 저의 우선순위에서 벗어나 버리시는 그분을 다시 우선순위로 돌이켜보며,
다시금 고백하고 마음을 다잡으며 기도해봅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기억하지 않고 저의 의지와 욕망대로만 살아갔던 저의 시간을 용서하시고, 저의 이성과 감성과 영성의 온전한 주인이 되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2.9.26. 티스토리 블로그 기록물)

바스락 feat. 성경책

지난주 수요일, 우연히 예배를 찾았고, 매우 오랜만에 성경책을 만졌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성경이 더이상 무겁지 않아졌고, 성경책을 넘기는 게 아니라 콕 찍고 밀어 올리기 시작한 것이 벌써 10여년이 지났더라.

나의 청소년기와 청년의 시절, 성경책은 내 가방과 내 삶의 한 자리를 무겁게 차지하고 있었는데, 10년 사이 무게감도 같이 없어져버렸더라.

성경구절을 찾기 위해 바스락 거리며 성경을 한장 한장 넘길 때, 나의 순수했던 시절의 성경감성이 살아나 마음이 촉촉해졌다.

그리고 오늘, 책장 구석에 꽂혀있던 성경책 한권을 찾아냈다. 2008년 미국에 가기 전, 효돌이와 민돌이가 선물해준 NIV 성경책이었다.

묵직한 성경, 그리고 바스락거림과 함께 설레이는 성경 감성.

다시 나의 삶에 성경이 자리를 잡아주길, 그리고 오늘 읽은 시편 1장 말씀과 같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복있다 인정받을 수 있게 되길 욕심내어본다

(2019.10.15. 페이스북 기록물)

나와 피아노와 교회

피아노는 아마도 국민학교 1학년 즈음부터 배우기 시작했던 것 같다. 가동 상가 2층의 엄선생 피아노. 동그라미 5개 채워가며 바이엘을 떼고, 체르니 100, 30, 40을 땔 때쯤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의 첫 교회는 교인이 100명 남짓의 작은 교회였다. 목사님의 딸 중 한명은 피아노 반주를 적당하게 하고 있었고 한명은 성가대 지휘를 했다. 교회에 나간지 얼마 안되어 난 목사님 딸을 대신하여 성가대 반주자로 세워지기 위해 속성으로 세례를 받게 되었다. 수줍음이 많았던 중학생 시절, 반주를 적당히만 해도 ‘오오~~’ 하면서 온갖 환호을 보내던 그 오빠들 덕분에 성가대 반주를 재밌게, 꾸준히 했던것 같다.

나의 청소년기를 꽉 채운 교회생활, 객관적으로 돌아보면 나의 신앙이 곧게 세워지기엔 몇십프로 쯤 상당히 부족한 세속적(?)인 교회생활이었다. 차마 들추기 어려운 몇가지 기억만 세어보아도,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를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아무리 험한 곳에서 날푼이처럼 있어도 하나님 그늘 안에만 있다면 그분은 어떻게든 우리네 인생에 아름답게 간섭 하신다는 것을.

나는 세속적인 교회생활을 하면서도 피아노 반주를 생활같이 하였고, 그 기간동안 신앙이라는 것을 담게 되었던것 같다. 20대 시절 치열하게 나의 신앙의 방향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고, 절대로 떠날 수 없을것만 같던 그 교회를 가정의 이사라는 이벤트로 겨우 떠나게 되었으며, 결국 나의 신앙의 보금자리와도 같은 교회를 찾게 되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을 따라 가게 된 교회. 그곳에서 처음 뵙게된 인생의 멘토, 오대식 목사님. 그분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혼돈 상태였던 나의 신앙의 기준과 질서가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격적으로 존경하는 목사님을 통해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큰 축복이다. 그분의 말씀만 들으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면, 그건 그냥 세속어로 꿀빠는 일인것만 같다.

그런데 운명과도 같이 파주에 높은뜻 교회를 개척하셨다. 나의 목사님은 덕소교회를 지키시지만. 집에서 10분거리에 세워지는 높은뜻 정신. 우린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파주교회로 발걸음을 하게 되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반주를 하게 되었다.

남편은 우리의 목사님을 떠나는 느낌을 시집가는 기분에 비유하였다. 확실한 건 둘 다 결혼하면서 독립할 때보다 더 강한 이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연스러운 일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을것임을 인정할수밖에 없으며, 그 ‘때 탄’ 반주경험을 이렇게 높은뜻 교회에서 사용하심에 감사할수밖에 없다.

뿌려진 씨앗이 되어 열매를 맺어, 시집 잘 갔다 칭찬 받는 우리 가정이 되길 바란다.

(2019.2.3. 네이버 블로그 기록물)

사회 초년생은 힘들어

안녕하세요 지윤혜입니다.
매번 글을 올릴때마다 너무너무너무너무 오랜만이네요

제 삶이 참 평탄치 않았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ㅠㅠ 헤헷^^

모두 안녕하셨지요??

사회 초년생은 아마도 비슷할거라 예상되지만..
저도 마찬가지로 조울증(?)을 겪고 있답니다.
언제는~

샤랄라~~ 역시 수술실은 좋아. 꽤 괜찮은 곳이야. 한번 열심히 해보자!!!
하며 룰루랄라 즐겁게 병원으로 향하고!!

그리고 또 언제는~
으아아악.. 당장이라도 때려치고 싶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언제 그만두지?? 어떻게 말하지??

라며 매일같이 엄마 아빠 남자친구에게 징징거리고, 그만둔다고 선전포고도 하구..진짜로 실질적인 계획도 세워보고..

ㅠㅠ

그런데 이런 고민도 하루이틀이래야지..
일년 내내 ‘특정주기’로 ‘계속적’으로 반복되는데.. 이러는 것도 참 괴롭습니다.

간호사 신규선생님들..또는 사회 초년생님들은 제 마음 아시겠지요? ㅠㅠ

그러느라 참..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습니다.

어디에도 몰두하지 못하고, 무엇도 열심히 하지 못하고..

그 많던 열정과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점점 어깨는 움츠려들어가고.. 얼굴은 어두워져만 가고..
열정과 자신감으로 무장되어 있지 못하다보니.. 다른사람의 가시가 고스란히 제 가슴에 박혀 상처가 되버리더군요..

제 일터에 온전히 몰입하여 충성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입니다.

분명히 몇 달 전까지만해도 나의 가능성과 미래는 무한했는데, 선택의 폭이 확 줄어져버린 것 같은 오늘..

분명히 몇 달 전까지만해도 자유로운 대학생이었는데, 몇달 사이에 철저하게 알아버린 계급사회..

분명히 몇 달 전까지만해도 눈치라곤 볼줄도 모르고 보지도 않았는데, 눈치가 생명이 된 현실..

분명히 몇 달 전까지만해도 무서운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는….

이런 현실을 직시하며.. 그리고 이상과의 차이를 받아들이며..
저는 참 괴로웠습니다.
으아..정말 험하게 살아왔습니다..

“더이상 이렇게 살아갈수 없다!!!!” 싶어서
오랜만에 조이 도우슨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
이란 책을 펼쳤습니다.

책을 펴자마자 눈물 먼저 나더라구요..
하나님.. 하나님..

분명히 매일 큐티도 했고, 예배도 다녔고, 찬양도 했었는데..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는 하나님을 찾지도 느끼지도 않았던것 같습니다.

그렇게 벌써 몇달..

어느덧 하나님보다 세상문화에 더 익숙해져서 세상의 가치가 절 지배하게 내버려두었던것

같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인도하심보다 “돈”, “삶의 질” 따위를 따지며 제 인생을 스스로 설계했었습니다. 하나님껜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채..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최근에 이 연약해진 마음을 감동시킨 두가지의 메세지가 있어서 나누려고 하는데요..

첫번째로..
요한복음 6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 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요 6:16-21)”

예수님께서 제 인생의 배에 타시면..이 배는 가려던 곳에 안전하게 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제가 폭풍의 시기를 겪고 있지만.. 예수님이 제 배에 타셔서 동행하시면 분명히 반드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저의 자리로 저를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겠죠??

그래서 전 다시 하나님을 저의 배로 초대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
찰스 디킨스라는 사람이 말했답니다.

“만일 내가 시간 엄수, 질서, 근면의 습관이 없었다면, 그리고 한 번에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는 결단력 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성취한 모든 것을 결코 이루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한 번에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는 것도 결단력이랍니다..(충격~)

이제 확실히 결단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확실하게 결단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조울증으로 헤매지 않고 확실히 전진하고자 합니다.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결단력을 구해야 할것 같습니다!!!

사회 초년생..
많이 힘드시죠..
꿈꿔온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 괴로우시죠..
낯설게 어려운 인간관계를 겪으며 문화충격을 받으셨죠..
그래도 우리..한번 잘 해봅시다.

우리 한번..
사회 속에서 사회의 가치관에 물들지 않은채..
당당하게 하나님 빽 의지하며!!!
잘 한번 해봅시다!!

하나님을 나의 배로 모시고, 행복하게 행복하게 그 순간순간을 즐기며..
매 순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결단력으로 한번에 한가지에 집중하며!!
모든 사회 초년생들이여~ 화이팅입니다!!!

(2012.04.06.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투표

지금까지는 국가와 정치를 바라볼 때 순종적인 국민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왔다. 그것이 크리스챤의 역할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권위에의 순종이라는 이름 하에.

지난 대선때는 하나님의 사람이 대통령으로 세워지길 바랐고, 장로의 직분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두려운 마음으로 겸손하게 국가를 이끌겠지라는 순진하고도 순진한 마음으로 그의 당선을 위해 청년들과 함께 두손모아 중보했었다.

그리고 그의 당선과 치세.

좋은것만 보려고 했고, 설사 마음에 거리낌이 있는 치세를 펼친다 해도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하고 믿으려 애썼다. 눈에 보이는게 전부가 아니니까.

그런데 정말 눈에 보이는게 전부가 아니었다.

귀에 들리는것도 전부가 아닐수도 있겠지만.. 나꼼수 나꼽살을 들어보니 일단 그 소리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서 내가 얼마나 맹목적, 수동적으로 정부을 신뢰해왔는가 절로 반성하게 되었다. 묻지고 않았고, 따지지도 않았다. 깊이 사고하지 않았고, 그냥 막연하게 신뢰했다.

직접 피부로 경험하는 현실의 어려움도 그저 내 개인적인 문제, 인간 본성에 따라 발생할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현상으로 인정하고 정부탓 정치탓은 할 생각도 못했었다.

그토록 무지했다.
그토록 순진했다.
그토록 연약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청년들이 조금씩 깨어나고 있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더딜지라도 조금씩, 그리고 철저하게 민주시민의식으로 무장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권위앞에 깨갱하는 멍청한 강아지로 살지 않고 개인 그 자체의 존재만으로서의 충분한 가치를 인식한채 세상의 권위 앞에 평등하게 서서 요구할 것이다.

갓 20대가 된 직후에 의식없이 던져냈던 무책임했던 한 표에 대해서는 책임을 통감하는 바이다.
(2011년. 페이스북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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