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나를 사랑하기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갖는 기대감은 누구든지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상대평가하든 절대평가하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가평가하게 됩니다.

전 이 자가 평가때문에 때로는 우쭐해지고 자신감 충천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울해지고 자존감이 완전상실된 상태에 이르게 되기도 한답니다.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음..좀 더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상대평가 하는 사람들은 아마 주변의 자신보다 잘나가는 분 덕분에 자극도 받고 충격도 받을테고, 주변의 좀 못나가는 분 덕분에 위로도 받고 느슨해지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스스로를 절대평가는 축에 꼈던 것 같습니다.
수험생 생활 시절만 돌아봐도 알수 있는데..
가끔 애들이 친구들이 이런 얘기 하던거 기억하세요?

“OO는 진짜 공부 열심히 하는 거 같아. 쟤 하는거 보면 내가 정말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니까..?”

“맞어, 맞어. 난 맨날 졸고 있는데..ㅠㅠ”

그런데 결정적으로 저는 이런 이야기들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없었으니..왜냐!!!???

누가 얼만큼 하는지엔 도통 관심도 없었고 눈도 가지 않았거든요. 그냥 저만 잘 하면 되는거였죠. 만약 지난번에 10등했으면 이번에 8등하면 기분 좋은거고, 지난번엔 80점 맞았으면 이번에 85점 맞으면 기분 좋은거고^^

스스로 절대평가 하는 것의 행복이란~ 캬앗~

주변 사람들이 얼만큼 하는지에 별로 관심이 갖지 않았던 만큼, 이 때까지 살면서 그다지 경쟁의식을 크게 느껴오지 않아 마음의 여유를 잘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나도 쟤만큼 잘하고 싶다.”
“나도 쟤만큼 예쁘고 싶다.”
“나도 쟤만큼 잘나가고 싶다.”

만약 이런 생각을 하며 늘 항상 경쟁하며 살아야 했다면.. 으윽.. 가뜩이나 이상한 제 성격.. 더 베렸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타고난 절대평가 기준은 제게 있어 축복이지요.

그러나 이것을 완전히 좋은 것 만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은!!
늘 항상 제 스스로에게 굉장히 높고 형이상학적 수준을 기대해왔었기 때문입니다.

“난 지난번엔 이정도였으니 이번에도 최소한 이정도는 기대해야지!!”
“난 뭘 하든 최소한 이정도는 해야돼!!”
“난 이 정도는 지킬 줄 아는 얘가 되야해!!”

공부든, 인간관계든, 도덕성이든, 신앙이든, 뭐든지간에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다 만약 제가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좌절감이나 죄책감을 갖기도 했죠.

견디기 쉽지 않은 좌절감..ㅜㅜ

그런데!!!
[향기로운 인격만들기]를 읽다가 이런 저의 모습을 분명하게 표현해주는 것을 읽게 되어 깜짝 놀랐습니다!! 다행히 저만 이런게 아니더군요!!! 헤헷..안도감..

이상적인 자아
우리는 모두 우리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희미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완전한 ‘나’는 어떤 모습일까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상상해 볼 수 있다. 잠시 동안 완전한 자신에 대하여 생각해보라.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완전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해보라. 이렇게 생각해보는 과정에서 당신이 상상해보는 이상적인 모습과 실제적 모습과의 사이에 긴장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리 모두는 상상 속에 있는 완전한 모습의 이상적인 자아와,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의 자아와의 차이를 인식하고 있다. 만일 이 두개의 자아가 싸우면, 우리는 계속적인 갈등을 경험한다. 우리가 원하는 모습도 사실이고 또한 실제 존재하는 자아도 사실인데, 이 둘은 서로 싸움을 할 것이다.

진정한 자아
진정한 자아는 우리가 되고 싶은 모습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모습을 말한다. 진정한 자아는, 아무리 이상적인 모습이 되려고 노력했었다 할지라도 이상적이 아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의 실제는, 우리의 자아가 타락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상적인 것은 잃어버렸다. 우리는 연약하고 타락한 상태에 높여졌다.
이상적 자아와 실재와의 관계
이상적인 자아와 진정한 자아와의 사이에 현존하는 문제는, 이상적인 자아가 진정한 자아를 수용할 수 없는 것으로 단정지으면서 진정한 자아를 정죄하고 화를 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둘 사이에 원수관계가 성립되며, 모든 적수들이 그러하듯 그들은 점점 더 사이가 벌어지게 된다.
-헨리 클라우드,[향기로운 인격 만들기]

그리스도인으로서 저는 교회를 다니며 어렸을 때부터 높은 도덕적 기준을 들어왔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등등.. 예수님께서는 심지어 형제를 욕하는 것만으로도 살인죄를 지은 것이고, 음란한 생각을 한 것만으로도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헐..

말씀대로 살고 싶었던 만큼 이런 말씀을 내면화 시키려고 해왔었고, 그랬던 만큼 제 안의 많은 것들을 못난이 취급 해왔었습니다.

제 이상적 자아는 제가 생각만으로도 친구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 천사같은 아이, 생각으로도 음란한 생각 하나 안하는 정결한 아이이고 싶어하지만, 현실적 자아는 절대 그렇지 못했거든요. 화도 내고, 야한생각도 하고.. 그러다 만약..

막 욕하는 마음이 생기면 금새 깜짝 놀라서 ‘아니!! 니가 이런 마음을 품어?? 당장 사라져!!!!!’

막 야한 생각이 들면 무슨 더러운 똥을 밟은 양, ‘아니!! 니가 이런 생각을 해?? 구역질나!! 당장 꺼져!!!’

라고 제 스스로에게 소리를 질러왔습니다. 누구에게도 잘 소리지르지 않는 제가..ㅠㅠ 제 스스로에겐 아주 가혹하게..ㅠㅠ

문제는..!!
어쨌든 막 욕하는 마음을 품었던 것도, 막 야한 생각을 했던 것도 제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성적이 생각대로 나오지 않는 것도, 인간관계가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던 것도, 모두 제 자신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제가 아닌 것인 양 무시하고 밟아왔으니.. 진짜 제 모습이 건강하게 살아있겠습니까?? ㅠㅠ

더군다나 제가 저의 이런 못난 부분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완벽한 천사같은 애가 되려고 하는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와 은혜까지 인정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걸 알았습니다. 힝.. 그런걸 보면.. 전 그동안 예수님의 진짜 은혜의 크기를 완전 축소해서 생각해왔었던 것 같습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But..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 103:14)

아니 그럼 어떻게 하라굿??

이런 개인의 이상적인 기준을 버리고 그냥 생긴대로 살라는 거야?? 마음 편하게 살라는거야??

Oh, No~No~

헨리클라우드 박사는 우리의 이상적인 자아를 삶의 목표로 삶고 우리의 현실적인 자아를 수용하고 사랑해주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상적인 자아를 삶을 필요, 요구 조건으로 삶는 것과 삶의 목표를 삶는 건 천지차이겠지요!!?? ^^)

어쨌든 이 이상적인 자아도, 현실적인 자아도 모두 나 자신의 일부니까요.. 이 둘을 화해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결론이 너무 심플한가요? 그런데 제 생각에도 이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도 용서하신 제 자신을 만약 제가 정죄하고 있다면, 그건 예수님이 기꺼이 흘리신 그 보혈을 무시하는 꼴이 되잖아요. 그리고 완벽하지 못한 제 자신을 완벽하게 만들려고 하는 건, 선악과를 따먹은 이브의 욕망과 다를 바 없는 거잖아요.. 하나님이 되고싶어 하는 가장 무서운 인간의 욕망..

정말..하나님께서 이미 제게 허락하신 많은 좋은 것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제게 있는 악한 것들로부터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기까지 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제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
그동안 무시해왔었던 제 완전하지 못했던 제 모습들을 하나하나 꺼내서, 그동안 무시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ㅋㅋ)

앞으로는 인정하고 사랑해주겠다고 사랑고백을 하려고 합니다.

내 안의 좋은 것도 나, 나쁜 것도 나!!

이제껏 무시당해온 윤혜안에 있는 윤혜야. 내가 앞으로는 널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께.
그동안 더러운 냄새난다고, 구역질난다고 냅다 버리려고 했던거 미안해..그래도 넌 내 자신인데 말이야..

예수님이 널 사랑하신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내 마음으로 진심으로 사랑해주지 못했던 거 정말 미안해.

앞으로는 꼭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께. 꼭 그럴께.

또 실수한다고 해도 상처주지 않고 너그럽게 이해해줄께. 사랑해줄께. 그러니까 앞으로는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화나면 화난다고 자신있게 얘기해. 알겠지??

그동안 정말 미안했어!!

(2008년.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바른생활 컴플렉스 탈출하기

어렸을 때부터 들어오던 별명 아닌 별명이 있는데..

바른생활 어린이, 바른생활 소녀, 바른생활 청년..이게 그것들입니다ㅋㅋ

아!! 바른생활 어린이일 때는 애늙은이라는 별명도 있었던 것 같네요.

음.. 첫째 컴플렉스인걸까요??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척”하기 시작한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선생님의 기대, 친구들의 기대, 이웃들의 기대, 목사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어린나이부터 나름대로 바락바락 애를 썼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바른생활 Something”의 별명을 갖긴 했지만..어렸을 때부터 별로 듣기 좋은 별명은 아니었고,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내가 정말 이런 별명을 갖기 합당한 녀석인지, 진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물음표를 달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렸을때 저는 지극히도 모범생이었고, 엄청 도덕적일 것 같은 애었습니다.음..어쩌면 세상 돌아가는 것에 눈치가 좀 없어서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아니면 착하게 생긴건가요??

ㅋㅋㅋ
그런데 아직도 좀 그렇게 보이나봐요. 얼마전에 진실게임같은 것을 했는데 제 차례때 친구가 조심스럽게 물어보더라구요.

“아! 윤혜야! 너한테 꼭 물어보고 싶은게 있었는데..물어봐도 될까..?? 다른게 아니고.. 너도 야한거 본적 있어?? “

헐.. ㅋㅋ

음.. 솔직히 지금은 저의 이 모습이 저의 가면인지 제 진짜 모습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건, 세상사람들이 바른생활처럼 판단하는 제 이 모습을 좀 벗어보려고 애쓰는 것은 제게 너무 벅찬 일이란 것입니다. 어쨌든 전 제 있는 모습 그대로 솔직한 모습만 보입니다. 보이는 것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어쩌면 그 가면이 제 얼굴에 탁 달라붙어서 이제는 완전히제 자신이 되어버린걸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전 제 자신을 꾸며서 표현할 줄 모릅니다.

그런데 또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제가 “남의 기대”, “남의 시선”을 너무나도 의식하며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인정받기 위해서, 칭찬받기 위해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그리고 동시에 두렵게 여기는 것.. 어제도 잠깐 글에 적었듯이 “관계”입 니다. 이 관계가 깨지는 것을 너무나도 두려워합니다.

누가 절 싫어하는 것을 못견딜만큼 두려워합니다. 누가 제게 실망하는 것 또한 못견딜만큼 두려워합니다. 살다보면 절 싫어하고 못마땅해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데, 그것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나를 어떻게든 좋아하게, 최소한 싫어하지는 않게 만드려고 애를 써왔습니다. 물론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요..결국 상처만 더 깊어졌지만요..

한번 한 친구가 제게 그러더라구요. 그 친구와 심하게 틀어진 후 제가 막 그 관계를 회복시키려고 애 쓸때였는데..

“너는 니 생각밖에 못하는것 같아. 니가 지금 이렇게 화해하려고 하는게 날 위한거니 널 위한거니..?”

두둥!!!!
이 이야기를 듣고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정말 절 위한거였거든요. 이 뒤틀린 감정을 스스로 감당해낼 방법이 없어서 어떻게든 빨리해결하고 더 이상 생각하거나 아파하고 싶지 않았거든요..그 친구가 더 이상 절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든 확인하고 도장을 찍어버리고 싶었거든요. 어쨌든 전 누가 절 싫어한다는 사실에 생활에 지장이 될 정도로 질색을 하는 애입니다.

그런데 오늘 뭔가 분명히 정리가 되었습니다. 얼마전부터 읽기 시작한 [향기나는 인격 만들기]를 읽으면서요.

이 책에 따르면 저는 제 경계선과 남의 경계선을 분명하게 설정하지 못했더군요.
음.. 엄밀히 말하면 오늘 제가 이야기 하고 있는것들은 남의 경계선을 분명하게 설정하지 못한데서 오는 문제였습니다. 제 경계선 분명하지 않았던건 나중에 생각해보기로 하고..

결론 먼저 말하면, 다른 사람의 감정과 느낌은 다른 사람의 소유인 것인데 제가 그것까지 소유하려고 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행동과 제 감정 등 제 경계선 안에 있는 것에 대한 책임만 있을 뿐인데, 제 행동과 제 감정에는 전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은채, 아니, 책임이 있는지도 모른채 남의 감정에만 책임을 지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제 생각대로 다른 사람의 마음이 변해주지 않으면 그 상처의 책임을 완전히 그 상대방에게 지워버렸지요.

나는 착하다. 그리고 그는 나쁘다.
왜냐..
난 나름대로 할만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속이라도 편해졌으면 모르겠는데.. 여전히 “누구누구는 나를 싫어해.”라는 감정은 저의 행동과 저의 감정을 제약했고, 저를 구덩이로 몰고 갔습니다.

허참..생각해보면, 만약 제가 이런 상처조차 받지 않은 채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었다면 그건 완전 천사였습니다.

싫은 감정 하나 내지 않고..
웬만하면 따뜻한 표정으로..

“음..내가 당신에게 무슨 잘못을 하여 당신 기분을 나쁘게 해드린 것 같은데..그런가요..? 제 어떤 것이 당신 기분을 나쁘게 해드렸죠?? 말씀해주시면 고치도록 할께요. 기분 나쁘게 해드린것 죄송해요..”

속은 부글부글 끓으면서..

그런데 저라도 막 화가 났는데 누가 이렇게 다가오면 완전 질려버릴 것 같습니다..ㅠㅠ 이런 접근은 언제나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만들더라구요.

그래도 전 나름대로 스스로에게 할 말이 있었죠.

나는 착하다. 그리고 그는 나쁘다.
왜냐..
난 나름대로 할만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때까지 이런 바른생활 컴플렉스에 싸여 가능한 착하게 보이게 하면서, 남의 감정까지 소유하려고 해왔던 것이었습니다. 남의 감정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작 제 스스로는 솔직하지도 못하고 썩어가면서..다른 사람들 눈치 보느라 덫 속에 갇혀 있으면서..

그런거 보면..전 절대로 솔직한 애가 아니었습니다. 착한 가면을 쓰고, 듣기 좋은 말만 하며,속이고 있는 애였던 거죠..ㅠㅠ 죄송합니다

감정을 부인하거나, 감정에 대한 우리의 책임(우리 자신의 감정에 대한)을 무시하는 것은 우리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행할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것이다. 헨리 클라우드.

그래서 오늘 제 스스로 한가지 확실히 해두렵니다!!

윤혜야!!
넌 다른 사람의 감정은 절대 소유할 수 없는 애야.
그것까지 니가 조종하려고 하면 그건 주제 넘는거야.
넌 니 감정이나 잘 책임져.
이때까지 얼마나 많이 다른 사람 기대 때문에 너 자신을 억눌러 왔니??
네 감정을 부인해온 횟수를 한번 세봐. 착한척 하느라..셀수 있어??
네 감정에 대한 책임을 부인해온 횟수를 한번 세봐. 다른 사람 감정 책임지면서..셀수 있어??
일단 너나 잘해 임마!!

하나님.
더이상 착하고 밍숭밍숭한..바른생활 컴플렉스에 싸여 식은 맨밥처럼 맛없는 그런 윤혜이고 싶지 않아요.

음..착한 건 좋은거 같긴 한데 제 스스로를 속이며 겉으로만 착해보이는 그런 건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제 스스로의 감정에 자유로울 수 있게 해주세요. 좋은 건 좋다 싫은 건 싫다 확실하게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음..맞아요 하나님. 저 원래 좋고 싫고 분명해요. 그런데 심각한 감정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 영역에서만.. 제가 정작 민감하게 여기는 감정의 영역에서만큼은 좋다 싫다 분명히 하지 못했던거 아시잖아요.

상처 주기 싫어서, 상처 받기 싫어서.. 그런데 이런 솔직하지 못함이 더 상처를 줬고 더 상처를 받게 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하나님..당신이 허락하신 제 마음의 공간을 싱싱하게 잘 지킬수 있게 도와주세요.제 마음의 공간이 잘 환기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다른 사람의 기대와 칭찬 때문에 제 스스로를 속이고 다른 사람을 속이는..그런 바른생활 컴플렉스는 이제 벗어버리고 싶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이 모습이 가면인지 진짜 저인지도 헷갈리지만..일단 제 감정에만큼은 솔직해지고 싶어요. 그리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고 싶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지배하려고도 하지 않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하나님!!

세상에서 제일 자기 자신을 그대로 솔직히 나타내실 수 있었던 그 분,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08년.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떨어진 꽃잎 같으니 (자작시)

하나님이시여.
나의 생명과 나의 호흡되시는 주여.
당신 앞에 다시 무릎으로 나아가오니
새 생명과 새 호흡을 허락하소서.
당신을 느낄 수 없는 나의 영혼은
가시덤불 깊은 속의 떨어진 꽃잎 같으니
고통속에 신음하며 매초마다 시들어갑니다.
내 영혼아 깨어라.
신선한 새벽의 새로움을 마시며
하나님을 들을지어다. 하나님을 볼지어다.
내 영혼아 일어나라.
떠오르는 해의 경의로움을 맞으며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하나님을 송축할지어다.
하나님이시여.
나의 생명과 나의 호흡되시는 주여.
신음속에 시들어가며 당신의 손길만을 기다리오니
나를 만져 주옵소서. 나를 들어 주옵소서.
당신을 느낄 수 없는 나의 영혼은
가시덤불 깊은 속의 떨어진 꽃잎 같으니
고통속에 신음하며 매초마다 시들어갑니다.

지윤혜

(2008년.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사랑은 OO(이)다.

사랑은 OO(이)다.

무슨말을 OO안에 넣고 싶으세요??
여러가지가 떠오를 수 있겠죠.
느낌, 두근거림, 자극, 다크서클..등등..헤헷

혹은 케이스에 따라 다를수도 있을것 같아요.

아픔, 기다림, 성장통..

앞으로 전 이 OO 안을 채워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전, 그 시작을 이 단어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노력. 사랑은 노력이다.

글쎄요.. [사랑=노력]이라고 정의내리는 것은 제 가슴이 허락하진 않지만
최소한,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라는 것은 너무 많이 느껴왔던바이기에..

그냥 느낌대로 살면 얼마나 편할까요?? 그냥 좋은게 좋은거고, 싫은게 싫은거고..
그런데 그건 너무 이기적인것 같아요. 나 혼자만 사랑받겠다는 욕심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를 있는대로 사랑해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해왔었습니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을줄로 믿었구요.

음..간호대학 수업을 들으면서 사랑에 대한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어떤 이론에서는 사랑의 설레임을 900일로 보더라구요. 그 뒤로는 사랑의 열정이 지속되지 않는다고..

그 이론을 들은 후로, 그때 당시 연인과 함께 서로 좋아 설레여 할때마다 ‘우리가 900일 후에도 이럴 수 있을까?’라고 말하며 ‘그 이론을 뒤집어 주겠다!!’ 라고 그런 황당무개해 보이는 이론을 비웃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900일 가더군요. 정말 2년 반 지속되었습니다.

노력 없었던 그 열정의 사랑은.

그 사랑의 극이 종결된 후로부터 제 마음가운데 계속 들었던 후회와 아쉬움이 하나 있다면, 제가 노력을 할 생각도 의지도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사랑을 줄 생각은 못하고 받을 생각만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걸 깨닫고 너무 마음아팠습니다. 받을줄만 알고 줄줄은 몰랐던 제 이기적인 자신이 너무 못났었더라구요. 철 다 들었다고 믿었던 제 자신이 정작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더라구요. 이런 이기적인 사랑으로 상대방을 지치게만 만들었던것 같습니다.

그 뒤로는 제게 있어서, ‘사랑’이 생각날 때마다 ‘노력’, 그리고 ‘헌신’이라는 단어가 따라옵니다. 그리고 이제 정말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주고 싶습니다.

사랑은 노력이다

(2008년.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생각나면 그냥 기도하겠습니다 (자작시)

생각나면 그냥 기도하겠습니다.
처음엔 많이 당황했습니다.
아무런 이유없이 당신이 생각날 때.
이렇게 혼자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사랑하게될까봐
당신을 날려보내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찾아오는 당신을
혹은 제가 아직 날려보내지 못한 당신을
제 가슴속에서 매일같이 발견합니다.
그리고 설렘이라는 감정에 치여
정작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쩌면 당신을 위해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마음일수도 있는데
설렘이라는 감정으로 착각해
하나님의 마음을 외면하고 있는걸까봐 두렵습니다.
앞으로는 그냥
생각나면 기도하겠습니다.
일부러 날려보내려고 하지도 않고
일부러 설렘이라는 감정에 빠지지도 않고
생각나면 기도하겠습니다.
비록 당신을 알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이 인도해주시는 마음을 따라
생각나면 그냥 기도하겠습니다.
생각나면 무릎부터 꿇겠습니다.

지윤혜

(2008년.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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