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남편과 함께 5년만에 본격 운동을 시작했다.

5년전 함께 PT를 받으며 운동과 식단조절을 해서 탄탄해졌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오래 유지하지 못했었는데, 나름의 변명이라면 머지 않아 찾아온 서우와 먹덧 때문이랄까.. 20킬로그램이 늘어났을 때보다야 많이 줄긴 했지만, 근육이 줄고 지방이 늘어난 몸은 부인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전엔 배에 살덩이는 없고 얇은 가죽뿐이었는데.. 그리고 남편 몸은 희안하게 나를 따라온다.

대학원 원서를 넣었는데, 진짜 혹시라도 다음 학기부터 대학원을 다니게 된다면..? 다른것보다 체력이 가장 걱정 됐다.

내가 워낙 건강이야 하지만, 잠에 엄청 취약한데, 잠을 줄일수 밖에 없겠다 생각을 하니 체력이 걱정됐다. 운동을 시작하지 않을수가 없어졌다. 그리고 남편은 나를 따라온다..^-^

매일 저녁 아이가 잠든 후 매트피고 영상을 보며 따라하고 있는데, 선택한 홈트가 아주 만족스럽다. 내 수준에 딱. 적당한 근육통은 오히려 기분을 좋게 해준다.

올 여름.. 제대로 운동해서 우리 리즈시절로 돌아갑시다

(2020.6.24. 페이스북 기록물)

결단과 용기

젊을 때 진보였던 어른들이 세상을 살아가며 보수가 되어가는 것이 이해가 되는 요즘이다.

이전에는 나이가 들수록 가진게 많아지니 지키기 위해 그렇겠거니 했는데, 나이가 들어도 기득권 중심의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것을 경험해서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

세상이 그러하니 내 자녀 세대는 달랐으면 좋겠다 싶고, 그러한 부모의 마음은 자녀에게 투입되겠지.

세상에 별 욕심이 없던 나조차도 내 자녀는 서울에 집한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으니 내 스스로 말 다했지 싶다.

있는 자는 갈수록 더 있고, 없는 자는 갈수록 더 없어지는 이 세상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나. 그리고 내 자녀는 어떻게 살게 해야 하나.

누가 봐도 옳은 길을 가는 이를 격려는 못할 망정 때려잡는 이 세상을 어떤 태도로 살게 하는것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내는 것을 묵묵히 지켜봐줄 수 있을까.

결단과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2019.10.24. 페이스북 기록물)

은혜와 번뇌

아마 한 소주 2병쯤 받은것 같다.

그래도 멀쩡(?)한걸 보면 확실히 내 간은 친탁이다.

받은 술잔만큼 격려와 사랑을 받았다. 이것이 술자리의 문화인건진 모르겠지만..

분에 넘치는 찬사를 너무 많이 받아 몸둘바를 모르겠다. 난 무엇을 향해 살아야 하나.

항상 나의 나됨보다 더 나를 더 높여주시는 리더와 함께 해왔다. 이는 나를 더 성장시켜왔고, 항상 빚진 마음을 가지게 해왔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아오다 ‘진로’고민을 하고 있는 요즘인지라, 나를 위한 ‘찬사’에 마음이 혼동된다.

내가 방광요도재활실에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나를 위해서 그리고 조직을 위해서 뭐가 더 좋을까 고민하던 요즘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복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해온걸까. 아니면, 적당할 때 물러서는 것이 맞는걸까.

내가 고민을 하는것은 자신감을 잃어서인걸까, 교만해서인걸까.

나를 알아봐주고 인정해주는 곳에 충성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것 같은데, 어느 세상까지 나를 알아보고 인정해줄지 뛰어들어보고 싶다면 그건 신의를 져버리는 것일까?

요 며칠간 여러 각도로 고민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확실히 내가 속한 조직이 달리 보이긴 한다.

내가 어떠한 모습으로 무엇을 향해 달려나가야 할지, 여전히 답은 낼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뜻을 세우더라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이리라. (술먹고 주님 타령이라니..ㅋ)

결국 다시 하나의 결론에 이른다. 그저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자고. 그 뿐이라고.

(2019.10.10.페이스북 기록물)

Keep in touch!

요즘 일터에서 방광요도재활실 20년사를 정리하느라 숨쉴틈 없이 바쁘다.

가뜩이나 방학이라 어린이병원도 성수기인데, 널려져 있는 자료들을 시간의 흐름에 맞게 체계화하는 작업이 생각보다 높은 수준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건지 퇴근길마다 숨을 한번씩 크게 쉬었던 것 같다. 어제는 분명히 즐거운 금요일 퇴근길인데도 몸이 얻어 맞은것 같이 쑤실 지경이었다.

최고로 시원한 병원에서 이렇게 정신없이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데, 문득 나의 1999년은 어땠는지 궁금해졌다.

그때는 싸이월드도 없었던 시절이고, 일기를 가끔씩 이곳 저곳에 쓰긴 썼던것 같은데 보관해 둔 기억은 없었다. 그러다 앗! 하고 한메일이 생각이 났다.

DAUM 메일. 나의 아이디는 lovely67이었다. 67은 윤혜. 486이 ‘사랑해’인 시절 지은 나의 아이디이다. 비밀번호도 다행히 기억이 나서 들어가봤더니 나의 중고등 시절 메일들이 잘 저장되어 있었다. 그때는 메일을 거의 카톡 수준으로 보내던 때였나 보다.

‘”메일 좀 자주 보내”, “메일이 세개나 와있는데 늦게 메일 보내 미얀”, “메일 좀 확인해!” 뭐 이런 메일들이 하루에 몇개씩 와있는 것을 보면..보낸 메일들은 안타깝게도 지워져 있었지만 받은 메일들을 보니 나와 가까웠던, 소중한 사람들이 욱 하고 들어왔다.

오늘 그 중 소중한 사람 한분과 연락이 닿았다. 나의 고딩시절의 태양같은 박재만 선생님. 거의 15년만에 연락을 드리는 것 같은데, 나를 기억하실까 하는 걱정어린 마음에 “가물거릴리가 있나?”라고 말씀해주시며 반겨주셨다.

분명히 몸이 쑤셔서 일어나기 힘들었었는데, 엔돌핀이 확 도는게 뭔지 알게 되었다. 곧 찾아뵈어야지. 진짜 보고싶은 분이다.

Keep in touch 라는 말은 우리나라 표현으로 어찌 번역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누가 들어도 저렇게 적당한 표현이 있을까 싶은 문구다.

‘우리 계속 붙어있자.’ 라는 마음을 담은 듯한 말.

소중했던 사람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할 때는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소중한 사람들과 계속 keep in touch를 해왔으면 나의 삶이 훨씬 더 풍요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울 엄니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권해주시던 모습인데(소중한 사람과 관계의 끈을 놓지 말라는..), 이제 마음으로 그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다.

뭔가 이렇게 현자타임도 만들고, 인생에 중요한 태도를 깨닫기도 하게되니, 20년사 정리는 책 뿐만 아니라 더 많은걸 남길것 같다!! 힘내자!!^-^

KEEP IN TOUCH!!

(2019.8.10. 페이스북 기록물)

페이스북

처음 페이스북을 알게 된건 2008년이었고, 그 연도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나는 미국에서 싸이월드에 블로깅을 하고 있었는데 얼리 어답터였던, (결혼 후 소식을 접할 수 없게된 내 친구였던) 승준이가 페이스북을 하며 외국에 네트워킹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긴 했지만 저장방식과 소통방식이 낯설고, 당시에 페이스북 이용자가 한국에선 거의 없었기에 그냥 가입만 해두었었다.

그런데 몇년 뒤 싸이월드는 추억속으로 사라지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우리의 가상공간의 인간관계망으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나도 다시 사진도 올려보고 내 생활도 올려보고 좋아요도 눌러보고 그랬다.

그러다 페이스북의 알람도 끄고 눈팅만 가끔 하던 이유는, 내 스스로가 나쁜 일보다 좋은 일만 올리게 되고, 부끄러운것보다 자랑스러운 일만 올리게 되는게 싫었다. 그리고 웃기지만 약간의 신비주의도 있었던것 같고.

그런데 엇그제 워킹맘으로 살며 느껴왔던 그간의 마음을 담담히 써보았는데 나의 좁은 인맥을 생각할때 너무 많은 분들이 위로와 공감을 해주셔서 힐링의 경험을했다.

하루에 한번씩은 기록을 남기자고 한 나의 다짐이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겠으나, 페이스북을 공책으로 삼는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2019.7.27. 페이스북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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