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기록

수년 전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기억이 저장된 시냅스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기록’ 덕분일 것이다.

방광요도재활실 20년사 발행을 준비하며 한상원 교수님으로 부터 전달받은 수많은 기록을 보며 여러모로 느끼는 바가 많다. 그 기록에는 20년 전의 생각과 삶이 고스란이 담겨 있었다.

기록은 내가 살아온 흔적이 되고, 그 흔적은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잘 다듬어진 수필이든, 흘겨 쓴 메모이든.

그리고 기록보다도 중요한 것은 체계적인 저장 방식이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는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이 너무 많다.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것 뿐이지.

나도 나름 기록이란것을 하긴 했었다. 주로 싸이월드였는데 유행이 지난 후 네이버로 잠시 넘어왔고 생각을 글로 정리할 여유가 없어지며 최근 몇년간은 서우 사진으로 모든 기록을 대신하고 있다. 사진은 무엇을 했는지와 감정을 기억하게 하지만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는 자세하게 보여주지 않아 아쉽다.

다시금 기록이라는 것을 하며 나의 발자취를 잘 보관해두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2019.7.24. 페이스북 기록물)

소유욕 VS 균형

난 평소에 별로 가지고 싶은게 없다. 남편이 가끔 나에게 선물해주기 위해 뭐가 필요하냐고, 뭐가 가지고 싶냐고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매우 난감하다. 정말 별로 필요한게 없기 때문이다. 그냥 가끔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그걸 그냥 살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평소에 크게 꿈을 갖지도 않았다. 20대 때는 치열하게 고민도 하고 꿈이라고 설정해보기도 했으나, 요즘은 내 꿈은 오늘을 잘 사는 것으로 설정하고 매일의 삶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때가 되면 기회가 다가오고 길이 열리더라는 것을 삶으로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역량을 내가 오늘 최대한으로 사용하고 발전시키는 것, 그것이 내 꿈이라면 꿈이었다.

어쩌면 그 덕분인건지, 오랜만에 내 마음을 뜨겁게 하고 나의 관심을 사로잡는 기회가 보였다. 정말 가지고 싶고, 잡고 싶었다. 어쩌면 30대 중반까지 도대체 ‘사랑’이 뭐야? 하며 이성에 전혀 관심없던 청년이 갑자기 연애에 빠지고 결혼을 결정하고 싶어하는게 이런 기분일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무작정 달려가기에는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를 잡고 서있는 아이가 보인다. 이미 나름 많은 희생을 하고 있는 딸이다. 그리고 지금 상당히 균형을 잘 맞춘 삶을 살고 있어서 누가봐도 “왜?” 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지금과 같은 균형감을 잃지않고 하고 싶은걸 주저함 없이 하고싶다. 근데 내가 아는 나는, 몰입하면 주변을 잘 못돌아본다. 이것이 실은 내가 가장 우려하는 점이다.

엄마로서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매일의 짧은 시간만큼은,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꼭 지켜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자랑스러운 엄마라 해도, 곁을 지켜주지 않는 엄마는 항상 아쉬울테니..

그래서 나의 눈길을 끄는 반짝이는 보석에게 알려줬다. 난 이런 사람이라고. 약간 안어울릴수 있을수 있다고. 말해주고도 후회막심. 그래도 그 보석이 날 주인으로 알아 본다면 주저하지 않고 다가오겠지. 아니라면 아쉽겠지만.

(2019.10.09.페이스북 기록물)

덕업일치業一致

남편이 요근래 매일 같이 언급하던 삶의 모양.

덕업일치의 삶을 살고 싶다고 매일같이 괴로워했는데 도대체 여기서 ‘덕’이 뭘 말하는 걸까 찾아봤더니 세상에, 덕후(오타쿠)의 덕질의 ‘덕’ 이었다.

결국 남편은 스피노자의 삶에서 답을 찾았다며 위로받고 있기는 하지만, 난 정말 남편이 덕업일치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정말 즐겁게 빠져서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온몸을 던졌으면 좋겠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돌아보면, 꽤 덕업일치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내가 몸 담을 수 있는 바운더리 안에서 나의 성향과 강점을 최대한 잘 살릴 수 있는, 나름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것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의 영역을 잘 가꿔야지라고만 생각하던 중, 새롭게 가슴 설레게 하는 도전거리가 튀어나왔다. 기회라는 생각이 되고, 뛰어들어보고 싶다. 누가봐도 덕업일치 한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있어왔지만, 나 스스로는 진정성있게 100프로 그렇다고 이야기 하진 못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도해오신 삶을 돌이켜보았을 때, 나의 이런 설레는 마음이 역마살인건지 아니면 하나님의 주시는 소망인지 잘 분간이 안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최대한 침착하고 잠잠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한걸음씩 조심스럽게 나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이 길이 그분의 뜻이 아니라면 꼭 막아주시길, 그러나 그분이 주신 기회라면 잘 감당 할 수 있길.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덕업일치 삶으로의 초대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만약 아니라 해도, 잠시동안이나마 새로운 시각으로 병원을 바라보게 되었던 이 경험이 나에게 큰 자산으로 남을 것 같다.

(2019.10.4. 페이스북 기록물)

세월호

이럴수는 없는거다.
죽어가는 생명 앞에서 저울질 하고 있을수는 없는거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갈수 없다는 예수님의 그 말씀이..
인정되고, 또 인정된다.
구명조끼를 벗어서 넘겨주고, 사랑하는 친구와 결단코 함께하기위해 구명조끼 끈을 서로 묶고, 뒤에 남은 아이들을 그냥 둘수 없어 다시 깊은곳으로 뛰어들어간 그 아이들을 보면..
그 사랑과 그 진정성을 보면..
우리에겐 없는.
하아..
이 세상이 슬프고 고통스럽다
(2014.05.01. 페이스북 기록물)

글 모으기(2008~)

글 모으기.

싸이월드 블로그 및 산만하게 퍼져있던 글을 좀 모아보기로 했다.

싸이월드 블로그는 2008년부터 2010년 사이에 운영을 했었는데,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이라 이때 쓴 글이 제일 많다. 이때 쓴 글들은 주로 신앙 고백의 글들이다. 딱히 공유할 전문성은 없고, 그나마 공유할 수 있는건 나의 Christianity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글을 한편 한편 썼는데, 나름 호응이 좀 있었다. 그래서 좀 더 지속적으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다행히 싸이월드 블로그가 문을 닫기 전에, 작성해두었던 글들은 부랴부랴 복붙 해서 드라이브에 저장을 해두었던 지라, 무슨 글을 썼었는지는 남아있다. 한번 대충 훑어보니, 그때의 감성이 나름 애틋하다.

2010년부터는 일과 연애를 본격적으로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싸이월드가 없어져서 네이버 블로그를 열긴 했지만, 별다른 글을 쓰지 못했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 페이스북에 글을 썼었다. 여전히 일을 하고, 연애/결혼을 하고, 심지어 아이를 낳아 키우느라 더 시간은 없었지만, 뭔가 기록 감성이 차오를 때가 종종 있었다.

다들 블로그를 하면서 돈을 번다는데 나도 한번? 이라는 마음으로 티스토리에 블로그를 열어보기도 했다. 처음 싸이월드 블로그 개설할 때 즈음에도 티스토리가 블로그 플랫폼으로는 유명했었는데, 당시에는 꼭 초청장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요즘엔 그런 허들이 없어서 개설하기는 편했다. 그래서 나름 구글 애드센스도 해보고 했었는데, 지속하기 어려운 주제를 잡기도 했고(질환 관련 정보를 공유하려고 했는데, 일하면서 공부하면서 올리기가 쉽지는 않았다), 막상 하다보니 애드센스를 떼고 싶었는데 광고가 티스토리에서 자동으로 붙으면서 접었다. 근데 그 중에도 은근 쓸모 있는 글들도 있긴 있다. 그건 이쪽으로 다시 옮겨두고, 티스토리는 이번에 문을 닫아놔야겠다 싶다.

방학이기도 하고, 약간의 여유가 있어 시작한 작업인데.. 그냥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하니 젊은 시절의 내가 애틋해진다. 이전같으면 그냥 너무 부끄러워서 다 지워버리고 싶은 글들일텐데, 그 열정과 포부들이 기특한데도 있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어린 시절의 패기와 열정을 부끄러움보다 기특함으로 기억할 것 같아 웬만하면 모두 차곡차곡 저장해보려고 한다. 막상 둘러보니 아주 많지도 않다.

이틀에 하나 정도씩 올라가도록 예약해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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