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랑 함께 잠드는 마음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기침대를 써서 아이를 빨리 스스로 혼자 자게 하고 싶었다. 출산전에 우연히 보게된 ‘똑게육아’라는 책은 엄마 및 부부의 삶을 위한 성경과 같이 읽혀지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고 나니, 그리고 일을 하다 보니, 아이와 체온을 함께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와의 동침을 결정했다.

퀸과 슈퍼싱글 침대를 바닥에 나란히 두고, 아이와 나는 슈퍼싱글에서 붙어자고 남편은 퀸침대에서 잔다. 어쩌다 보니 같은 방 동침이긴 하나 각침이다. 확실히 부부만의 시간은 예전만 못하다.

아이는 9시에 잠들고 알람과 같이 6시15분경 일어난다. 아마도 우리 부부의 출근준비시간에 맞춰서 그 인기척에 깨던것이 아이의 리듬이 되어버린것 같다. 수면 부족을 만성화 시킨것 같아 미안하다.

잠들때는 나름의 의식이 반복된다. 업어서 노래를 불러주고, 짐볼에 안고 앉아서 짐볼을 통통 튀기며 ‘꿈나라로 갈까요(우리 집만 아는 꿈나라 가기 구호 같은 것이다)’ 챈트를 읊어주고 잠깐 누었다가 다시 한번 업어주고를 한 20여분 반복하다 누워서 한 1분 뒤척이다 잠든다.

아이가 완전히 잠들길 기다리며 같이 누워 있다보면 나도 잠들기 십상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육퇴를 하고 나름의 시간을 보내는데, 고요한 가운데 쌕쌕 거리는 숨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꿈나라 가는건 금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커가는 아이의 체온을 놓칠수가 없어서,
아이의 숨결을 느끼고 싶어서,
다 자는 밤에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나의 욕심에 아이를 내 옆에 두고 잔다.

혹여라도 아이가 잠든 후, 정신줄 겨우 부여잡고 일어날수 있으면 그때부턴 진정한 퇴근이다. 피로가 노곤하게 몸에 뭍어있어 금방 다시 아이 곁을 찾게 되긴 하지만, 그래도 그 시간을 얼마나 의미있게 보내느냐가 워킹맘 회복에 매우 중요하다. 한때는 야식에 드라마가, 한때는 독서가, 한때는 운동이 퇴근의 기쁨이었는데 요즘은 다시 야식에 드라마다. 다시 독서와 운동이 되길 바란다.

다시 돌아와 쌔근히 잘 자고 있는 소중한 아이을 감싸안으면 너무나도 행복한 잠자리다.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하루를 살아내줬음에 감사하며 진정한 잠자리에 든다.

(2019.1.31. 네이버 블로그 기록물)

결혼을 준비하며

결혼을 준비하며 우린 함께 많은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랬습니다.

  1. 돈 쓰기 정말 어렵다.
    그냥 믿고 쓸수 있으면 좋으련만.. 정당하게 약속된 물건을 적정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큰 돈이 오가는 곳은 더 부정직해지기 쉽다는 것을 배웠고, 그만큼 돈 쓰기 어렵다는 걸 배웠습니다. 부동산 문제때도 그랬는데 인테리어 문제때도 그러더군요.. 정보 없는 신혼부부가 큰 돈 쓸때는 5~60만원이 우스울 줄 알았나봅니다. 조금씩 야금야금..돈 편하게 믿고 쓰기 정말 어렵습니다.
  2. 정보는 많을수록 좋다.
    처음 알아볼 때는 흥미진진하고 신났습니다. 그런데 점점 그 정보의 양이 많아지고, 각각이 미묘하면서도 큰 차이를 보이기 시작하니 점점 스트레스를 받아가더군요. 우리 둘다 거의 폭발하기 직전까지 이르렀었습니다. 정보조사를 하면 할수록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할지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게더라구요.
    그래도 정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것 같습니다. 적어도 나름의 기준은 생기더라구요.
  3. 기도가 먼저다.
    정말 갑갑했습니다. 그리고 두려웠습니다. 우리에겐 이것이 주어진 최대치인데.. 우릴 먹잇감으로만 보고있는 것 같은 세상이 두려웠습니다. 당당한 소비자인데 금방 을이 되어버리게 되는 상황이 참 갑갑했습니다. 그래서 손잡고 기도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기도하는 게 멋적어서 그것도 아주 짧게.
    ‘하나님. 지혜를 주세요.’
    그런데 지금보니 하나님은 우리가 잡은 그 손 안에 있던 두려움과 긴장까지 다 읽으신것 같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이 우릴 가엽게 여기시고 천사를 붙여주셨습니다.. 정말 좋은분을 만났습니다. 아직도 너무 얼떨떨하지만.. 너무 일이 갑작스럽게 잘 풀려버려서 오히려 두렵고, 또 상처받을까 걱정되는 면이 없지 않지만.. 기도한 후 기도하는 분을 만났으니. 전 주님을 신뢰합니다~!! 잘 안돼도 주께서 하신 일, 잘 돼도 주께서 하신 일입니다.
    다른것 다 떠나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났다는 것.. 그건 제가 느낄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믿지는 못하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신뢰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먼저라는것을 다시금 배운 하루입니다.
    아.. 마음이 많이 복잡했었는데
    지금은 편안합니다.

(2014.5.25. 페이스북 기록물)

사랑 배우기

나를 가장 빛나게 해주는 나의 짝꿍과 사랑하며 배우며 벌써 1354일. 지금은 결혼을 이야기하며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나에겐 너무 당연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오랜시간동안 연애를 하며 결혼을 결심하게 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난 그냥 하나님 주신 마음을 소중히 아끼며 배워갈 뿐.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사랑은 본능으로 시작하지만 배움으로 지켜내야 하는 마음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데에는 두개의 씨앗이 되는 이론이 있다.
그 첫번째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스탠버그)’ 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랑은 ‘열정’, ‘친밀감’, ‘헌신’, 이 세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엔 열정으로 사랑이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열정은 줄어들고 친밀감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날수록 헌신이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각의 비율이 어찌되었든지간에 열정+친밀감+헌신 = 100%가 되어야 온전한 사랑이 된다는 것. 열정의 자리가 친밀감으로 대신하는 것에 당황하지 말고, 시간이 지날수록 헌신이 커져야 사랑이 100%로 온전해 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 대학교 1학년 전공수업 중 하나였던 ‘결혼과 가족건강’이 나에게 남겨준 큰 재산 중의 재산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다섯가지 사랑의 언어(게리 채프만)’ 이다.
  • 스킨쉽
  • 함께하는 시간
  • 선물
  • 헌신하는 말
  • 봉사
사랑하는 이가 이중에 어떤것을 나에게 표현할 때 사랑받는다고 느끼는가?
그것이 나의 사랑의 언어이다.
문제는, 나는 나의 사랑의 언어가 사랑하는 이의 사랑의 언어와 같다고 생각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렇게만 사랑을 표현한다. 하지만 상대방의 사랑의 언어는 다르다.
나는 조금이라도 날 인정하고 챙겨주는 말을 들어야 하는데 상대방은 묵묵히 나의 편의만 제공한다.난 그의 묵묵함에 답답하고, 그는 그를 섬세하게 돕지 못하고 말만 많은 나에게 아쉬워 한다.
서로 계속 외국어만 하고 있는 셈이다. 사랑은 서로 통하지 않게 된다. 서로의 사랑을 채워주고 지속시키는 방법은 상대방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서로의 사랑의 언어로 사랑을 이야기 해 줄 때 사랑의 열정이 계속 활활 유지될 수 있다.
이 역시 대학교 1학년 때 갔던 수련회에서 배운 큰 깨달음이었다.
이 두가지는 나에게 큰 충격과 감동을 주어 나의 사랑을 계속 키워나가는 힘이 되어 주었다. 물론 내 짝꿍의 날 향한 사랑이 내게 딱 맞기도 했지만..*^_____^*
어쨌든 난 이렇게 사랑을 키워왔다. 그리고 이제는 결혼을 배워갈 차례.
앞으로의 여정이 기대된다.
(2013.05.03.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돕는 베필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

그래서 창조된 존재가 ‘여자’다.

여자의 역할은 “돕는 베필”로 시작되어, 남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존재로 성경 곳곳에 정의되어있고, 이러한 부분을 읽을 때마다 나의 심기는 많이 불편했다. 하나님의 말씀이니 순종하긴 해야겠다마는,,, 그러기엔 자아가 너무 강했다. 불편했다.

결혼에 대해 묵상하면서 조금씩 내 안의 불편이 편함으로 바뀌고 있을 때쯤, 그 편함의 종점을 찍어주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는데, 바로 “돕는 베필”의 진정한 정의를 읽었을 때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창 2:18)

여기서 독처의 의미는 “단독자로 하나님과 만나 진리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상태”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

독처의 상태가 충분하지 않다 여기신 하나님께서 창조해 내신 것이 ‘돕는 베필’, ‘여자’다.

이제 여기서 ‘돕는’의 원 의미가 무엇인가 하면, 히브리 원어로 ‘에젤(ezer)’이라 표현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라는 뜻이다. 시편 121편에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소서이다”라고 고백할 때의 ‘도움’이 바로 ‘에젤’이다. 사람에게는 결코 사용될 수 없는, 하나님만 수식하는 단어인 이 ‘에젤’을 여자를 지을 때 표현하셨다.

정말 어마어마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여자를 만드신 이유는, 남자가 단독자로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완전히 만족스럽지 않으셨던 하나님이, 여자를 지으심으로 남자를 ‘에젤’하여 온전히 당신과 교제하고자 하심이었다.

오호라!! 그런 거룩한 사명이 있었다니.
에젤해서, 함께 하나님과 거하는 거룩한 상태.
기대하고 소망하게 된다..

*참조 : 우리, 결혼했어요 / 박수웅 지음 / 두란노

(2013.05.06.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첫째 딸(만 8세 초등 여아)의 시력: 0.2, 0.2 근시 (-1.5, -1.5 디옵터)

회사에 있는데 아이 하교 시간 즈음에 전화가 왔다.

엄마, 할 말이 있어~ 오늘 시력검진 결과가 나왔는데~

아 맞다. 오늘 학교에서 시력검사를 한다고 했었다. 별 일이야 있겠어..

0.2, 0.2래!!

응? 0.2?

뭔가 잘못 됐겠지..

“설마.. 양쪽 눈 다?”

응! 왼쪽, 오른쪽, 두 눈 다!

아이는 그게 뭘 의미한 지는 모른채 나에게 말했겠지만, 나는 상상할 수 없는 수치에 무척이나 놀랐다.

정말 맞는 수치인지 담임선생님께 재확인을 위해 하이톡을 보냈고, 선생님 역시 이게 아마추어인 당신이 재신거라 아주 정확하진 않을 수 있지만 나쁜 건 맞는 것 같으니 안과에 한번 가보길 권하셨다.

그때부터 갑자기 palpitation이 생겼다.

그래, 지난번에 교회에 가던길에 너무나도 자명하게 보이는 간판 글씨가 아이 눈에는 안보인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눈이 간지럽다는 증상이 겹쳤어서 알레르기 약을 넣고는 괜찮아진 것 같았었다. 아.. 근데 그때 내가 시력은 괜찮겠다고 판단했던 것도 휴대폰 간이 검사를 통해서였었지. 부랴부랴 내가 다시 그 어플을 켜서 나의 안 좋은 쪽 눈을 검사해보니 그 눈도 말도 안되게 좋게 측정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맞다. 이건 근본적으로 먼 글씨를 보는게 아니었구나..

아 정말 마음이 불안해졌다. 제발 일시적인 것이길..

주말에 아이 아빠를 시켜 병원에 가보게 해야 하나 (하필 토요일 오전에 근무였다), 야간에 문 여는 안과는 없나 찾아보다가 (우리 동네에선 안과가 정말 귀한가보다.. 요즘 야간 진료 안하는 데가 없던데, 여긴 야간에 여는 안과가 없더라..), 일단 퇴근 후 어디라도 가서 다시 정확하게 검사해보자 하고 아이 시력을 잘 검진해준다는 동네 안경원을 찾았다.

안경원에서는 소문대로 정말 꼼꼼하게 시력을 검사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받은 결과는,

0.15, 0.2.

이게 무슨 일이고..

나는 한쪽 눈의 시력이 0.2 이다. 다행히 나머지 한쪽이 1.2인지라 그 1.2의 시력으로 안경 없이 살고 있다.

다만 가끔 눈이 너무 피곤할때는 약간 겹쳐보이는 느낌이 있을 때도 있고, 좋은 쪽 눈에는 난시가 있어 야간 운전이 좀 힘들다. 그래서 안경을 맞춰놓긴 했으나 여전히 습관이 안되어 방치중.. 그래도 일상에 큰 문제는 없다.

나의 좋은 눈을 가리고 0.2인 눈으로 앞을 바라봐 보았다.

안보였다. 뻔히 잘 보이던 글씨가 안보였다.

울컥했다. 첫째가 세상을 이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고..?

일단 안경을 맞추긴 해야겠으나, 안경을 앞으로 써야 한다는 것도 심란하고, 이렇게 세상을 바라봐왔다는 것도 심란하고..

일단 아이가 마음에 들어하는 테를 고르고, 안경을 맞춰서 씌워줬더니, 아이는 불편하다긴 커녕 잘 보인며 세상 좋아했다. 그걸 보니 또 심란하고..

다음날, 진정하고 아이의 이전 시력이 어땠는지를 다시 찾아보았다.

불과 1년 4개월 전 시력이 1.0, 1.0 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나빠졌다고? 이거 괜찮은건가?

안과에서 오래 근무한 지인이 떠올랐다. 오랜만이긴 하지만 연락할만한 사람이 딱히 없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연락을 했더니, 전화를 해주었다. 지인도 딸이 근시를 진단받아 안경을 씌워야 했던 경험이 있었고, 드림렌즈도 시도하다 지금은 안경+아트로핀으로 유지중인 상태였다고 하였다. 우리 아이 이야기를 듣더니, 일단 가성근시 검사를 해볼 것을 권하였고 (오잉? 가성근시? 안경원에선 그런 얘기 안해줬는데..), 근시가 맞다면 안경+아트로핀, 혹은 드림렌즈, 혹은 드림렌즈+아트로핀 이렇게를 고려해보라고 하였다.

가성근시는 또 뭐임..?

찾아보니, 가성근시는 일시적인 근시 상태였다. 아이들은 안경 씌우기 전에 가성 근시 검사를 꼭 해볼 것이 권유가 되고 있었는데, 진짜 근시가 아닌데 안경 먼저 씌워버리면 그 안경에 눈이 맞춰져버리면서 진짜 근시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불현듯 이미 학교에 안경을 쓰고 간 아이가 떠올랐다. 무식한 엄마 덕분에 눈이 나빠지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또 불안해졌다.

결국, 이리저리 고민하다, (내가 이 상황에 매우 당황스러워 하고 있음을 동네방네 알리며 겨우) 오후에 반차를 쓰고 (다행히 오후에 진료도, 검사도 없어서, 그나마 내 마음이 좀 낫긴 했다) 아이를 데리고 안과에 갔다.

안과에서 측정한 시력은 마찬가지로 0.2, 0.2 였고 (-1.5 디옵터), 가성 근시를 진단하는 ‘조절 마비 굴절 검사’를 하게 되었다.

혹시나 했던 나의 기대는

아이 안경 잘 맞추셨네요. 딱 맞아요. 계속 씌우시면 되겠어요.

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무너져버렸다.

아.. 이렇게 아이가 안경과 동행하게 되는건가..

아트로핀과 드림렌즈에 대해 문의했더니, 한번 시작하면 꾸준히 하지 않는 이상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며, 일단 진행 속도를 봐서 꼭 필요하다 싶으면 먼저 권하신다 하였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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