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니엘 브레이크

“나, 다니엘 브레이크” 라는 영화를 보았다.

다른 무엇보다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복지 신청 과정이 낯설고 복잡해서 다니엘 브레이크가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을 때, 한 사회복지사가 그를 도왔고, 그것을 목격한 그녀의 상사가 그 복지사를 불러 한소리 하는 장면이었다.

내용인 즉은, 그렇게 선넘어서 해주다버릇하면 우리까지 제대로 일을 할수가 없게 돼요.

그 상사 뿐 아니라, 관료제 속에서 부속품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한결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었고, 그것은 도움이 필요한 소외된 시민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시스템 속 인간성의 상실.

이 영화를 본 다음날 하루종일 우울했다

그것이 내 안에 더 오래 남아 답답하고 괴로웠던 이유는, 병원 환경에서도 쉽게 경험하는 모습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때로 기계적이 되길 자처한다.

간호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왜 간호여야 하는가,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에 대해 한참 고민하던 중에, 고 김수지 교수님의 세바시 영상을 보게되었다. 그리고.. 아.. 맞다.. 이게 본질이었지 떠올리게 되었다.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것.

인간 대 인간의 교류를 통하여.

난 환자에게 인간이었나, 시스템이었나..

난 아직 멀었다.. ㅜㅡㅜ

(2021.10.30. 페이스북 기록물)

가재가 노래하는 곳

가재가 노래하는 곳(델리아 오언스)

어렸을 때부터 속독을 즐겨하던 나는, 책을 음미하면서 읽는 것을 어려워 한다.

빠르고 신속하게 큼직한 사건을 읽어내고 결론을 알아내는데 익숙하다.

특히 소설을 제대로 음미하질 못하는 것 같아서 소설을 읽을 때는 의식적으로 그 행간과 단어에 집중하고자 마음을 다잡고 노력하곤 한다. 이 책도 그랬다.

첫 몇페이지는..

아 정말.. 진짜 너무 재밌었다.

완전 빠져들어서 저녁부터 새벽까지 몇 시간동안 싹다 읽어버렸다.

돌아보니 습관을 못버리고 속독모드로 읽은듯 하다.

작가님과 번역가님의 섬세한 선택까지 충분히 느끼지 못했다는 반성을 다시 해보지만.. 그럴수밖에 없을정도로 정~말 너무 재밌고 궁금했다.

그냥 잠시, 타임캡슐을 타고 노스캐롤라이나의 늪지에 들렀다가 수십년의 시간을 하루같이 보내고 온 느낌이다.

외로움 덩어리로 보여지는 카야에게 있어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카야에게 가장 익숙하고, 가장 편안하기에 카야 스스로가 그녀 자신이 되게 하는 곳 혹은 존재의 목적으로 읽혀졌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있었기에 외로움이 아름다움이 되었다.

뭐.. 사실 이렇게 단순하게 표현하긴 어려운 것이, 그 외로움과 아름다움 사이에는 솔직히 별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아니 아예 없어야 할 추악한 가정사 및 연애사 그리고 ‘죽을 사’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사’들은 카야의 삶이 아름다웠다고 이야기 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고, 이 깨달음은 마음에 잘 새기고 싶은 교훈이 되었다.

(2021.3.3. 페이스북 기록물)

덕분에..

사기병(윤지회 )

덕분에..
미안하지만.. ‘덕분에’ 평범한 하루의 감사함을 기억했다.

두돌 아이 엄마의 갑작스런 위암 4기 진단.

이건 소설이 아니고 진짜 일기였다.
담담하게 그려졌지만 고스란히 전달된 두려움과 슬픔. 애틋함. 간절함.
그 인생을 어떻게 다 이해할까.

상상만 해도 막막하고 먹먹하고 버티기 어려운 삶인데. 상상조차 외면하고 싶은 삶인데. 나였다면 과연 살아낼 수 있었을까.

같은 고민 없이 평범하고 무난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음에 안도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니 그 삶을 살아낸 작가님께 미안했고,

미안하라고 그린 일기가 아님을 알기에 고인께 감사했다.

오늘도 병원에 오가는 수많은 사람이 인생에서 최악의 순간을 살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걸 기억해야지.. 그래야겠다.

그럴게요.

(2020.12.24. 페이스북 기록물)

미운 네살, 듣기 육아법

미운 네살, 듣기 육아법
와쿠다 미카

자기 주장을 하기 시작하는 딸래미에게 목소리가 높아지던 차에 접하게 된 책. 기본적이지만 실제적으로 응용 가능하도록 사례들을 제시해주고 있었고, 나의 태도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가장 찔렸던 부분은 ‘아이에게 화를 내는 건 부모가 아이에게 응석을 부리는 것과 다름 없다는 것’ 이었다. 화내는 것과 꾸짖는 것은 다르다는 팩트. 그러나 여전히 ‘내’가 피곤할 때 ‘아이’가 잠을 안자면 결국 화를 내버리고 만다. 아이에게 “엄마 졸립단 말이야!!” 라는 응석을 엄청 쎄게 부리고 있는 것이다.. 울려버릴 정도로 ㅜㅜ

가장 감동받고 미안했던 부분은 ‘실제로 부모가 무슨짓을 해도 무슨말을 해도 아이는 부모를 용서해준다.’는 것이었다. 며칠전에도 서우를 혼내놓고 심했다 싶어서 사과를 한 후 “용서해줘서 고마워..” 라고 말했더니, 얘가 알고 말하는 건지 모르고 말하는 건지.. “계속 계속 용서해줄께 엄마.” 란다..

쉽고, 호흡도 짧고, 기본적이면서 필수적인 육아 상식인지라 모든 학령전기 자녀의 엄마들에게 추천한다.

(2020.2.25. 페이스북 기록물)

90년대생이 온다

90년대생이 온다.
임홍택 저.

비록 난 86년에 태어난 80년대 생이지만, 밀레니얼 세대로 구분되는 세대로 이 책에서 말하는 90년대 생의 특성을 상당히 많이 지니고 있었다.

뭐, ‘줄임말’이라던지 ‘병맛’을 좋아하진 않으나, ‘일’을 대함에 있어 워라벨이라던지 일터에서의 즐거움, 일터에서 실현하고 싶은 자아, 자유로운 휴가를 추구하는 자세 등은 나의 모습과 같았다.

그런 차원에서, 상당히 이해하고 적응하기 어려웠던 병원이라는 조직에서 10년을 버텼다는 사실에 내 스스로를 토닥이게 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 라는 ‘자아’가 강하고, 할말을 담아두지 못하고 해야만 하는 ‘추진력(?)’을 지닌 요상한 젊은이에게 적응해 준 우리 조직에도 감사하다. 적응 해주셔서 망정이지 이곳이 아닌 다른 부서에 있었더라면 진작에 다른 살길을 찾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병원은 넓고, 복잡하고, ‘기존’ 조직’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어보니 점점 신규 간호사 및 병원의 일반직 사직률이 높아지는 이유도 이해가 된다.

아마도 90년대생은 ‘나’라는 존재를 도저히 받아주지 못할 것 같은 대형병원이라는 조직에 회의감을 갖고 포기해버렸을 것이고, 병원은 이렇게 통통튀는 것 같아 보이는 90년대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에는 기존의 상식에 비추어 봤을 때 도저히 이해도 안되고, 이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너무나도 많은 이해당사자가 엮여있기에 감히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조차 설정이 안됐을 것 같다.

나의 사례를 돌이켜보면,

1)일단 내가 속한 부서가 15명내외의 작은 규모의 부서였고(인력 운용이 아주 복잡하지 않을 수 있는),

2)부서 안에서 구성원들끼리 듀얼잡/트리플잡이 가능하게 훈련되었고(배워야 할때는 상당히 괴로웠으나),

3)리더십이 비록 기존세대이지만 귀를 닫고 있지 않았고, 구성원이 조직에 헌신하는 만큼 그 구성원의 니즈를 이해해주었다(실제로 리더십의 결단력과 포용력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리더십이 요구한 것은 조직의 발전을 위한 구성원의 몰입이었고, 내가 원하는 것은 나 자신이 이 조직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했고, 가능하면 이 조직을 통해서 내 스스로가 발전함과 동시에 나의 일터 밖에서의 시간도 존중받는 것이었다. 아마 서로 100%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정도로 맞춰오지 않았나 싶다.

90년대 생이 옳은 것도, 기존세대가 옳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90년대생은 이런것이고, 기존세대는 이런것일 뿐.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90년대생에게도 기존세대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쌍방의 노력이 있다면 분명히 긍정적인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이도 알고 저도 이해하는 세대로서의 역할을 해나가야 겠지.
내가 벌써 꼰대가 됐나? 라고 생각해본적 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충분히 의미가 있다!

(2020.1.6. 페이스북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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