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멀쩡하다

어제는 남편이랑 저녁때 급 데이트를 하느라 엄마가 아이를 재워주셨다.

남편이 석사논문만 끝내놓으면 가서 방청하고 싶다던 ‘다스뵈이다.’를 보고 들으러 가기로 한 것이다.

남편 혼자 보내서 혼자만의 시간을 줄지, 아니면 요즘 이래저래 심경이 복잡하니 같이 가서 힘이 되어줄지 고민하다 후자를 택했다. 결국 늦게 도착해 서서 방청하느라 다리가 아파 중간에 나오긴 했지만 아이는 이미 잠든 뒤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원래는 엄마나 아빠 중 한명이 꼭 같이 있던 시간인데 이상하게 없어 그런가 아이가 울면서 엄마 올때까지 안잔다고 했단다.

아이도 나처럼, 엄마아빠와 함께하는, 빼앗길 수 없는 시간이 있는것 같다.

하여간 너무 속상해 하는 아이를 본 울 엄니도 괜히 안쓰러워 눈물이 살짝 나셨다는데 아이가 그것을 보고 바로 울음을 뚝 그치더란다.

그러더니 겨우 달래지며 침대에 누워서 자기 전에 하는말, “할머니. 아까는 미안했어요.”
아직 세돌도 안됐는데.. 어른 속을 헤아린다.

이럴때 우리 엄마 워딩, “속이 멀쩡하다.”

다 느끼고, 다 알고, 다 표현하게 된 내 딸..
속이 멀쩡하다.

(2019.8.8.페이스북 기록물)

페이스북

처음 페이스북을 알게 된건 2008년이었고, 그 연도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나는 미국에서 싸이월드에 블로깅을 하고 있었는데 얼리 어답터였던, (결혼 후 소식을 접할 수 없게된 내 친구였던) 승준이가 페이스북을 하며 외국에 네트워킹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긴 했지만 저장방식과 소통방식이 낯설고, 당시에 페이스북 이용자가 한국에선 거의 없었기에 그냥 가입만 해두었었다.

그런데 몇년 뒤 싸이월드는 추억속으로 사라지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우리의 가상공간의 인간관계망으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나도 다시 사진도 올려보고 내 생활도 올려보고 좋아요도 눌러보고 그랬다.

그러다 페이스북의 알람도 끄고 눈팅만 가끔 하던 이유는, 내 스스로가 나쁜 일보다 좋은 일만 올리게 되고, 부끄러운것보다 자랑스러운 일만 올리게 되는게 싫었다. 그리고 웃기지만 약간의 신비주의도 있었던것 같고.

그런데 엇그제 워킹맘으로 살며 느껴왔던 그간의 마음을 담담히 써보았는데 나의 좁은 인맥을 생각할때 너무 많은 분들이 위로와 공감을 해주셔서 힐링의 경험을했다.

하루에 한번씩은 기록을 남기자고 한 나의 다짐이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겠으나, 페이스북을 공책으로 삼는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2019.7.27. 페이스북 기록물)

워킹맘

워킹맘

아주 가끔 힘들때가 있다.

단단한 자존감과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 덕분에 좀처럼 쉽게 지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가끔씩 깊은 우울이 찾아온다.

아무것도 할 힘이 안나는 상태.

잠잠히 돌아보니 엄마 윤혜와 직장인 윤혜 사이의 안정감이 흔들릴때 발생하는 일인듯 하다.

엄마 윤혜 만으로 살아본 시간이 얼마 없었다. 출산 휴가 기간인 3개월이 전부다. 그나마 그 기간에도 대학원 실습 차 병원에 와서 시간 맞춰 유축을 해야하곤 했었다. 온전히 엄마만으로 살아본 기간은 거의 없다.

그래서 나에게는 퇴근 후 저녁시간과 주말이 너무 중요하다. 퇴근 후 서우가 잠들때까지 주어지는 2시간, 그리고 주말에 함께 하도록 주어지는 약 14시간. 일주일에 서우에게만 집중할수 있는 시간은 고작 38시간이다. 난 그것이 침범될 때 힘들다.

최근 갑작스레 근무 패턴이 바뀌며 3주에 한번 토요근무를 하게 되었고, 학회나 병원 행사 때문에 토요일에 집을 비워야 할 일들이 유난히 몰렸었다. 엄마 윤혜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과 서우에 대한 마음만 아니었다면 나에게 큰 스트레스원이 아니었을 것들인데.. 지금은 나의 균형을 깨뜨리는 스트레스원으로 작동한다.

스트레스를 이성으로 버티며 극복했다 여기고 지내다가도, 서우의 갑작스런 고열같은 상황은 깊은 우울감을 촉발시키고 만다. 그리고 같은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무엇이 중요해? 지금 행복해?’

분명히 행복하고 충분히 만족했었던것 같은데. 그랬던 기억만 남고 마음은 공허하다.

무기력한 상태를 좀처럼 즐기지 못하는 나는 어쨌든 바쁘게 뭔가를 하기는 하지만, ‘에너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마치 숨쉬기 어려울 때 공기를 생각하게 되듯이.

현재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내가 내세울수 있는 답은 아니다. ‘적당히 포기할건 포기하고’에서 포기의 대상이 아이가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엄마 윤혜와 직장인 윤혜의 균형을 맞추고 싶다.

(2019.7.25. 페이스북 기록물)

기록

기록

수년 전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기억이 저장된 시냅스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기록’ 덕분일 것이다.

방광요도재활실 20년사 발행을 준비하며 한상원 교수님으로 부터 전달받은 수많은 기록을 보며 여러모로 느끼는 바가 많다. 그 기록에는 20년 전의 생각과 삶이 고스란이 담겨 있었다.

기록은 내가 살아온 흔적이 되고, 그 흔적은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잘 다듬어진 수필이든, 흘겨 쓴 메모이든.

그리고 기록보다도 중요한 것은 체계적인 저장 방식이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는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이 너무 많다.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것 뿐이지.

나도 나름 기록이란것을 하긴 했었다. 주로 싸이월드였는데 유행이 지난 후 네이버로 잠시 넘어왔고 생각을 글로 정리할 여유가 없어지며 최근 몇년간은 서우 사진으로 모든 기록을 대신하고 있다. 사진은 무엇을 했는지와 감정을 기억하게 하지만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는 자세하게 보여주지 않아 아쉽다.

다시금 기록이라는 것을 하며 나의 발자취를 잘 보관해두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2019.7.24. 페이스북 기록물)

남편의 석사학위

남편의 석사논문이 드디어 책으로 완성됐다.

처음 세브란스에 이직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우신 세브란스에 정직하고 건강한 하나님의 일꾼 한명 들이시라고 간구했었다.

병원에 막상 입사하니 의사도, 간호사도 아닌 존재로서 무슨일을 할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고, 결국 답을 내리지 못한채 즐겁게 할 수 있는 공부를 하며 찾아보기로 잠시 결정을 뒤로 미뤘었다.

그리고 논문의 과정, 안할수도 있었지만 하겠다고 선택했다. 이 과정을 지나가야만 할것 같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정말 괴롭게, 힘들게 완성했다.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사는, 누구보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 그 안의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고 사귐을 결정했었다. 10년전에.

그는 여전히 물음표 달린 앞길에 답답해하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그를 사용하고 계시며, 길을 예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

남편 수고했옹♡♡♡

(2019.7.6. 페이스북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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