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생명 앞에서 저울질 하고 있을수는 없는거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갈수 없다는 예수님의 그 말씀이..
인정되고, 또 인정된다.
구명조끼를 벗어서 넘겨주고, 사랑하는 친구와 결단코 함께하기위해 구명조끼 끈을 서로 묶고, 뒤에 남은 아이들을 그냥 둘수 없어 다시 깊은곳으로 뛰어들어간 그 아이들을 보면..
그 사랑과 그 진정성을 보면..
우리에겐 없는.
하아..
이 세상이 슬프고 고통스럽다
-For authentic nursing-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
그래서 창조된 존재가 ‘여자’다.
여자의 역할은 “돕는 베필”로 시작되어, 남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존재로 성경 곳곳에 정의되어있고, 이러한 부분을 읽을 때마다 나의 심기는 많이 불편했다. 하나님의 말씀이니 순종하긴 해야겠다마는,,, 그러기엔 자아가 너무 강했다. 불편했다.
결혼에 대해 묵상하면서 조금씩 내 안의 불편이 편함으로 바뀌고 있을 때쯤, 그 편함의 종점을 찍어주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는데, 바로 “돕는 베필”의 진정한 정의를 읽었을 때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창 2:18)
여기서 독처의 의미는 “단독자로 하나님과 만나 진리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상태”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
독처의 상태가 충분하지 않다 여기신 하나님께서 창조해 내신 것이 ‘돕는 베필’, ‘여자’다.
이제 여기서 ‘돕는’의 원 의미가 무엇인가 하면, 히브리 원어로 ‘에젤(ezer)’이라 표현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라는 뜻이다. 시편 121편에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소서이다”라고 고백할 때의 ‘도움’이 바로 ‘에젤’이다. 사람에게는 결코 사용될 수 없는, 하나님만 수식하는 단어인 이 ‘에젤’을 여자를 지을 때 표현하셨다.
정말 어마어마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여자를 만드신 이유는, 남자가 단독자로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완전히 만족스럽지 않으셨던 하나님이, 여자를 지으심으로 남자를 ‘에젤’하여 온전히 당신과 교제하고자 하심이었다.
오호라!! 그런 거룩한 사명이 있었다니.
에젤해서, 함께 하나님과 거하는 거룩한 상태.
기대하고 소망하게 된다..
*참조 : 우리, 결혼했어요 / 박수웅 지음 / 두란노
(2013.05.06.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
회사에 있는데 아이 하교 시간 즈음에 전화가 왔다.
엄마, 할 말이 있어~ 오늘 시력검진 결과가 나왔는데~
아 맞다. 오늘 학교에서 시력검사를 한다고 했었다. 별 일이야 있겠어..
0.2, 0.2래!!
응? 0.2?
뭔가 잘못 됐겠지..
“설마.. 양쪽 눈 다?”
응! 왼쪽, 오른쪽, 두 눈 다!
아이는 그게 뭘 의미한 지는 모른채 나에게 말했겠지만, 나는 상상할 수 없는 수치에 무척이나 놀랐다.
정말 맞는 수치인지 담임선생님께 재확인을 위해 하이톡을 보냈고, 선생님 역시 이게 아마추어인 당신이 재신거라 아주 정확하진 않을 수 있지만 나쁜 건 맞는 것 같으니 안과에 한번 가보길 권하셨다.
그때부터 갑자기 palpitation이 생겼다.
그래, 지난번에 교회에 가던길에 너무나도 자명하게 보이는 간판 글씨가 아이 눈에는 안보인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눈이 간지럽다는 증상이 겹쳤어서 알레르기 약을 넣고는 괜찮아진 것 같았었다. 아.. 근데 그때 내가 시력은 괜찮겠다고 판단했던 것도 휴대폰 간이 검사를 통해서였었지. 부랴부랴 내가 다시 그 어플을 켜서 나의 안 좋은 쪽 눈을 검사해보니 그 눈도 말도 안되게 좋게 측정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맞다. 이건 근본적으로 먼 글씨를 보는게 아니었구나..
아 정말 마음이 불안해졌다. 제발 일시적인 것이길..
주말에 아이 아빠를 시켜 병원에 가보게 해야 하나 (하필 토요일 오전에 근무였다), 야간에 문 여는 안과는 없나 찾아보다가 (우리 동네에선 안과가 정말 귀한가보다.. 요즘 야간 진료 안하는 데가 없던데, 여긴 야간에 여는 안과가 없더라..), 일단 퇴근 후 어디라도 가서 다시 정확하게 검사해보자 하고 아이 시력을 잘 검진해준다는 동네 안경원을 찾았다.
안경원에서는 소문대로 정말 꼼꼼하게 시력을 검사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받은 결과는,
0.15, 0.2.
이게 무슨 일이고..
…
나는 한쪽 눈의 시력이 0.2 이다. 다행히 나머지 한쪽이 1.2인지라 그 1.2의 시력으로 안경 없이 살고 있다.
다만 가끔 눈이 너무 피곤할때는 약간 겹쳐보이는 느낌이 있을 때도 있고, 좋은 쪽 눈에는 난시가 있어 야간 운전이 좀 힘들다. 그래서 안경을 맞춰놓긴 했으나 여전히 습관이 안되어 방치중.. 그래도 일상에 큰 문제는 없다.
나의 좋은 눈을 가리고 0.2인 눈으로 앞을 바라봐 보았다.
안보였다. 뻔히 잘 보이던 글씨가 안보였다.
울컥했다. 첫째가 세상을 이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고..?
일단 안경을 맞추긴 해야겠으나, 안경을 앞으로 써야 한다는 것도 심란하고, 이렇게 세상을 바라봐왔다는 것도 심란하고..
일단 아이가 마음에 들어하는 테를 고르고, 안경을 맞춰서 씌워줬더니, 아이는 불편하다긴 커녕 잘 보인며 세상 좋아했다. 그걸 보니 또 심란하고..
…
다음날, 진정하고 아이의 이전 시력이 어땠는지를 다시 찾아보았다.
불과 1년 4개월 전 시력이 1.0, 1.0 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나빠졌다고? 이거 괜찮은건가?
안과에서 오래 근무한 지인이 떠올랐다. 오랜만이긴 하지만 연락할만한 사람이 딱히 없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연락을 했더니, 전화를 해주었다. 지인도 딸이 근시를 진단받아 안경을 씌워야 했던 경험이 있었고, 드림렌즈도 시도하다 지금은 안경+아트로핀으로 유지중인 상태였다고 하였다. 우리 아이 이야기를 듣더니, 일단 가성근시 검사를 해볼 것을 권하였고 (오잉? 가성근시? 안경원에선 그런 얘기 안해줬는데..), 근시가 맞다면 안경+아트로핀, 혹은 드림렌즈, 혹은 드림렌즈+아트로핀 이렇게를 고려해보라고 하였다.
가성근시는 또 뭐임..?
찾아보니, 가성근시는 일시적인 근시 상태였다. 아이들은 안경 씌우기 전에 가성 근시 검사를 꼭 해볼 것이 권유가 되고 있었는데, 진짜 근시가 아닌데 안경 먼저 씌워버리면 그 안경에 눈이 맞춰져버리면서 진짜 근시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불현듯 이미 학교에 안경을 쓰고 간 아이가 떠올랐다. 무식한 엄마 덕분에 눈이 나빠지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또 불안해졌다.
결국, 이리저리 고민하다, (내가 이 상황에 매우 당황스러워 하고 있음을 동네방네 알리며 겨우) 오후에 반차를 쓰고 (다행히 오후에 진료도, 검사도 없어서, 그나마 내 마음이 좀 낫긴 했다) 아이를 데리고 안과에 갔다.
안과에서 측정한 시력은 마찬가지로 0.2, 0.2 였고 (-1.5 디옵터), 가성 근시를 진단하는 ‘조절 마비 굴절 검사’를 하게 되었다.
혹시나 했던 나의 기대는
아이 안경 잘 맞추셨네요. 딱 맞아요. 계속 씌우시면 되겠어요.
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무너져버렸다.
아.. 이렇게 아이가 안경과 동행하게 되는건가..
아트로핀과 드림렌즈에 대해 문의했더니, 한번 시작하면 꾸준히 하지 않는 이상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며, 일단 진행 속도를 봐서 꼭 필요하다 싶으면 먼저 권하신다 하였다.
…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안녕하세요 지윤혜입니다.
매번 글을 올릴때마다 너무너무너무너무 오랜만이네요
제 삶이 참 평탄치 않았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ㅠㅠ 헤헷^^
모두 안녕하셨지요??
사회 초년생은 아마도 비슷할거라 예상되지만..
저도 마찬가지로 조울증(?)을 겪고 있답니다.
언제는~
샤랄라~~ 역시 수술실은 좋아. 꽤 괜찮은 곳이야. 한번 열심히 해보자!!!
하며 룰루랄라 즐겁게 병원으로 향하고!!
그리고 또 언제는~
으아아악.. 당장이라도 때려치고 싶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언제 그만두지?? 어떻게 말하지??
라며 매일같이 엄마 아빠 남자친구에게 징징거리고, 그만둔다고 선전포고도 하구..진짜로 실질적인 계획도 세워보고..
ㅠㅠ
그런데 이런 고민도 하루이틀이래야지..
일년 내내 ‘특정주기’로 ‘계속적’으로 반복되는데.. 이러는 것도 참 괴롭습니다.
간호사 신규선생님들..또는 사회 초년생님들은 제 마음 아시겠지요? ㅠㅠ
그러느라 참..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습니다.
어디에도 몰두하지 못하고, 무엇도 열심히 하지 못하고..
그 많던 열정과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점점 어깨는 움츠려들어가고.. 얼굴은 어두워져만 가고..
열정과 자신감으로 무장되어 있지 못하다보니.. 다른사람의 가시가 고스란히 제 가슴에 박혀 상처가 되버리더군요..
제 일터에 온전히 몰입하여 충성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입니다.
분명히 몇 달 전까지만해도 나의 가능성과 미래는 무한했는데, 선택의 폭이 확 줄어져버린 것 같은 오늘..
분명히 몇 달 전까지만해도 자유로운 대학생이었는데, 몇달 사이에 철저하게 알아버린 계급사회..
분명히 몇 달 전까지만해도 눈치라곤 볼줄도 모르고 보지도 않았는데, 눈치가 생명이 된 현실..
분명히 몇 달 전까지만해도 무서운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는….
이런 현실을 직시하며.. 그리고 이상과의 차이를 받아들이며..
저는 참 괴로웠습니다.
으아..정말 험하게 살아왔습니다..
“더이상 이렇게 살아갈수 없다!!!!” 싶어서
오랜만에 조이 도우슨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
이란 책을 펼쳤습니다.
책을 펴자마자 눈물 먼저 나더라구요..
하나님.. 하나님..
분명히 매일 큐티도 했고, 예배도 다녔고, 찬양도 했었는데..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는 하나님을 찾지도 느끼지도 않았던것 같습니다.
그렇게 벌써 몇달..
어느덧 하나님보다 세상문화에 더 익숙해져서 세상의 가치가 절 지배하게 내버려두었던것
같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인도하심보다 “돈”, “삶의 질” 따위를 따지며 제 인생을 스스로 설계했었습니다. 하나님껜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채..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최근에 이 연약해진 마음을 감동시킨 두가지의 메세지가 있어서 나누려고 하는데요..
첫번째로..
요한복음 6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 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요 6:16-21)”
예수님께서 제 인생의 배에 타시면..이 배는 가려던 곳에 안전하게 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제가 폭풍의 시기를 겪고 있지만.. 예수님이 제 배에 타셔서 동행하시면 분명히 반드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저의 자리로 저를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겠죠??
그래서 전 다시 하나님을 저의 배로 초대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
찰스 디킨스라는 사람이 말했답니다.
“만일 내가 시간 엄수, 질서, 근면의 습관이 없었다면, 그리고 한 번에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는 결단력 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성취한 모든 것을 결코 이루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한 번에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는 것도 결단력이랍니다..(충격~)
이제 확실히 결단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확실하게 결단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조울증으로 헤매지 않고 확실히 전진하고자 합니다.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결단력을 구해야 할것 같습니다!!!
사회 초년생..
많이 힘드시죠..
꿈꿔온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 괴로우시죠..
낯설게 어려운 인간관계를 겪으며 문화충격을 받으셨죠..
그래도 우리..한번 잘 해봅시다.
우리 한번..
사회 속에서 사회의 가치관에 물들지 않은채..
당당하게 하나님 빽 의지하며!!!
잘 한번 해봅시다!!
하나님을 나의 배로 모시고, 행복하게 행복하게 그 순간순간을 즐기며..
매 순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결단력으로 한번에 한가지에 집중하며!!
모든 사회 초년생들이여~ 화이팅입니다!!!
(2012.04.06. 싸이월드 블로그 기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