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출산 후, 출산 휴가 90일만 사용하고 복직을 한 저는 일찌감치 외동을 선언했습니다. 몇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는, 부족한 시간. 제가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평일엔 약 2시간, 그리고 주말 이틀 뿐이었습니다. 이 짧은 시간때문이었을까, 아이는 저를 유난히 좋아해주었고, 항상 저흰 애틋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을, 다른 존재와 나눌 수는 없었습니다.
둘째는, 친정 엄마의 희생. 친정엄마께서 아이 양육을 도와주셔서 워킹맘으로 근무를 이어나갈 수 있었지만, 둘째까지 친정엄마에게 의지할 순 없었습니다. 친정 엄마의 희생이 너무 컸습니다.
셋째는, 경제적 한계. 둘째 탄생 후 예상되는 저의 육아휴직은 경력단절(부서 이동 혹은 그에 따른 퇴사 등)을 의미했습니다. 육아휴직을 하면 제가 일하던 직무는 새로운 인력이 하게 되었고, 전 복직 후 다른 삼교대 부서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전 제 일이 좋았고, 다른 삼교대를 하는 부서에 적응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퇴사각). 그러나 생계형 맞벌이이기도 한 우리 부부에겐 제 수입이 꼭 필요했습니다. 저흰 아이에게 든든한 경제적 뒷배가 되어주고 싶었는데.. 두명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습니다.
넷째는, 잠에 대한 트라우마. 특히 남편은, 아이의 출생 직후부터 약 1년여간의 시간을 트라우마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잠을 자기 싫어했고, 두돌이 넘을 때까지 수면의식만 한시간이 넘게 걸리곤 했었습니다. 남편은그때의 경험을 다시 할 자신이 도저히 없다고 했습니다.
더군다나 아이도 동생을 무슨이유에서였는지 원하지 않았습니다. 다른건 다 원했으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대내외적으로 일찌감치 외동을 선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외동에 대한 편견이 있었기 때문인건지 잊을만 하면 한번씩 “외동 장점”, “외동 단점”, “외동 편견”, 그리고 “둘째 고민” 을 검색하곤 했습니다.
가장 거슬리는 편견은 바로 “외동은 외롭다” 였습니다.
언젠가 그토록 의지했던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 함께 부모를 그리워할 형제가 없이 혼자 남는 느낌은 무엇일까.. 우리 아이가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들 때마다 다음과 같은 반박하는 의견으로 불안한 마음을 덮곤 했습니다.
부모가 죽을 때쯤 자녀는 배우자와 자녀가 있을것이고, 5-60대 이후일 가능성이 높으니 걱정할 거 없다.
첫째가 외로울까봐 둘째를 낳는다는건 무슨 논리냐. 그렇게 태어난 둘째가 불쌍하지 않냐.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사는거다. 누구나 외롭다.
끄덕끄덕. 여전히 장례식장을 지나가다 전광판에 쓰여진 자녀 이름이 한명인 경우를 알아차리게 될 때마다 마음이 크게 흔들리곤 했지만, 우리 아이가 나중에 진정한 사랑과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건강한 아이로 성장하도록 잘 양육하자는 마음을 굳게 다잡으며, 그렇게 저희 부부는 외동을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궂이…정관 수술의 온갖 부작용 사례를 찾아보며 수술은 차마 못하겠답니다. 본인은 아무래도 생산직이 서비스직보다 좋다나 뭐라나..
(2022.05.28. 티스토리 블로그 기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