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현상학에 빠진 이유.

 
내가 요즘 현상학에 빠진 이유
 
 
내가 애정하는 간호학(경험과학 중 하나)이 결코 소박하지 않은 존재론에 토대를 두었고, 곤고한 철학적 토대위에 엄밀하게 서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보여주고 싶어서인듯..하다.
 
 
이런 두꺼운 책이 어떻게든 읽혀지고 있다는게 신기하다..운명인가.. ㅋ
 
“선험적인 학문[존재론]은 원칙적인 것을 다루는 학문인데, 최종적으로 정초될 수 있기위해서 *경험과학*은 바로 이처럼 원칙적인 것에 토대를 두고 있어야 한다. 이 경우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선험적 학문*은 *소박한 것이어서는 안되며*, 최종적인 *초월론적-현상학적 원리*라는 원천으로부터 길어 낸 것이라야 한다는 사실이다.” (후설, Hua I, p181, 이남인, 재인용, p35)
(2023. 11.4. 페이스북 기록물)

현상학?

현상학?
뭔가 난해한 듯한 이 학문은 도대체 무슨 학문인가?
현상학은 대상의 내용보다,
자신을 나타내는(Appears) 방식에 관심을 둔다.

모든 대상이 자신을 나타내는 방식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동일한 대상이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도 가능하다.
간단히 말해 현상학은
다양한 유형의 주어짐(giveness)에 대한 철학적 분석으로 간주할 수 있다.

Dan Zahavi [현상학입문]

상대방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그 자체로 받아들이려는 노력..
그게 현상학인것 같고, 그 자체로 너무 매력적이다.
(2023.10.07. 페이스북 기록물)

간호는 환자가 자기자신을 믿도록 돕는 것이다.

병원에서 이런저런 처치를 하다보면 유난히 겁이 많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병원에서 뭔가 해야하고, 그게 자기를 불편하게 한다는 걸 안다면 싫은게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잘 하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유난히 공포에 사로잡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전에는 그렇게 울며불며 몸으로 버티는 아이들을 마주하면, 처음에는 어르고 달래보지만 나중에는 쫒기는 시간에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었습니다.

우리 딸래미 치과 치료 전까지는 말이죠.

제 딸은.. 병원 포비아로 치면 제가 그동안 마주한 모든 아이들 중 최고였습니다.

아마도 충치 치료의 첫 경험이 아이에게 배신감을 줬던게 분명합니다. 제가 고집을 부려 갔던 (수면이나 웃음가스를 하고싶지 않아) 일반 치과에서, 아이에 대해 섬세하게 접근하지 못하고 가장 심각하게 썩은 이부터 건드리는 바람에 아이가 그 소름끼치는 통증을 무방비 상태로 경험했고 완전히 패닉이 된 적이 있었거든요.

평소 굉장히 안정적인 정서를 자랑하던 아이가 그  치과경험 이후에는 미용실에서 머리 감는것도 두려워하며 우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다른 이유로 병원에 검사하러 가는 짧은 시간 동안, 긴장감을 몸이 이기지 못하고 배탈이 나버리기도 했구요. 제 딸의 돌변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그리고 그 정도가 제가 만나본 모든 아이들을 초월하고보니, 이제는 병원에서 대하기 까다롭다 생각되는 아이가  없어졌습니다.

다 그저 사랑스럽고 안쓰럽습니다.

오늘 만난 10살 여아도 그랬습니다. OO이는 오늘 소변 검사를 위해 소변 줄을 넣어야 하는 처치를 극도로 두려워하며 저항했습니다.

평소에 굉장히 안정적이고 말을 잘 들어주던 아이라서 이 검사도 씩씩하게 할 것만 같았는데,  알고보니 과거에 검사를 했을 때 마음의 준비도 안됐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소변줄이 몸으로 들어와서 놀랐던 경험이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에구.. 안쓰러워라. 그래서 저는 처음에는 아이가 엄마에게 그 힘든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시간을 좀 주었지만  좀처럼 진정이 안됐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과 마음이 더 지치는 것을 알기에 잠시 시간이 지난 후 “이제, 우리~엄마는 잠시 밖에 계시도록 하고 우리끼리 한번 해보자. 선생님 딸도 보니까 엄마가 같이 있을 때 더 마음이 약해져서 못했지만 오히려 혼자서 간호사 선생님이랑 더 잘하더라구. OO이도 분명히 혼자서 잘 할수 있을것 같아.” 하고 말해준 뒤 아이 어머니를 잠시 커튼 뒤에 나가서 기다리시도록 했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없지만 커튼 밖에 있는 것을 확인 후 조금 더 진정이 되어서 침대에 올라 자리를 잡았고, 저와 다른 간호사 둘이 함께 아이에게 검사의 단계 단계를 설명하며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지금 카테터를 넣을 거고 같이  “아~~” 라고 소리를 내면 훨씬 안아프게 할 수 있어. 준비 됐어? 아~~~~”OO이는 그 이후 검사를 아주 잘 마쳤고, 우리는 아이를 아주 크게 칭찬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씩씩하게 침대에서 잘 내려와서 검사실을 씩씩하게 나갔습니다.

오늘 OO이가 자기 자신을 조금 더 믿을 수 있게 되었을까요?? 그랬기를 바라봅니다.

(2022.10.13. 티스토리 블로그 기록물)

간호는 진정성 있는 눈맞춤이다

전 Jean Watson의 돌봄이론을 좋아합니다.

돌봄이론은
간호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고,
간호사로의 소명을 인식하게 하며,
간호사도 간호를 통해 성장한다고 믿는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왓슨의 돌봄 이론은 하루의 간호를 시작하기에 앞서 성찰할만한 내용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그리고 전 그것을 인스타그램에 조금씩 공유를 하며 저 또한 그 내용을 성찰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오늘 하루 대상자와 진정성 있는 눈맞춤을 하겠다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의 이러한 다짐은 오늘 저의 하루를 조금 더 나은 하루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오늘 마주친 수많은 눈들 중 한 어머니의 눈이 제게 많이 남습니다. 초등학생 2학년이 된 여자아이의 어머니의 눈은, 처음엔 다소 피곤해보이셨습니다.

아이는 다리에 힘이 부족하여 휠체어보행을 하고 있었고, 아이의 어머니는 여전히 하루 종일 아이의 도뇨를 직접 해주고 계셨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가 있을 때라도 도뇨시간이 되면 잠시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도뇨를 한 후 다시 학교에 데려다 주시는 상황이었습니다.

아..  오롯이 아이만 지켜내는 삶을 살고 계시는구나.

아이 어머니는 저의 “OO이도 혼자 도뇨할 때가 되었어요.”라는 질문에 당황하시며 왜 이 휠체어를 보지 못하냐는 듯한 눈빛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OO는 다리에 힘이 없어요.”

“우리 이분척추증이 있는 아이들중에는 OO이같이 휠체어보행을 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어요. 그리고 스스로 도뇨도 매우 잘하구요. OO이도 팔의 힘으로 변기에 앉는 연습먼저 시작해보면 좋을것 같아요.”

아이 어머니는 처음엔 믿기 어렵다는 눈빛을 보이셨지만 저의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계속 들으시더니 조금씩 귀를 더 기울여주셨습니다.

“정말 잘 할 수 있어요. 코로나 이전같으면 캠프를 같이 가서 언니들 보면서 배워봐도 좋을텐데..

OO야. 이제 OO도 스스로 도뇨할 때가 되었어. 실은 이미 늦었어. 이미 충분히 언니가 되었거든. 지금부터라도 우리 조금씩 연습해서 고학년이 되거든 혼자 해보는걸 목표로 해보자. 우선 화장실에서 혼자 앉는것부터 연습 해보는거야!!.”

다행이 아이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이 어머니께서는 이전에는 인터넷 자조모임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정신건강에 너무 안좋은것 같아서 일부러 외면했었다고 하셨습니다.

아이 어머니께서 충분히 그러실 수 있으나, 자조모임을 통해서 아이가 얻는 부분이 분명히 클 수 있음을.. 그곳을 통해 OO이가 자신과 비슷한 질병을 가진 친구들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고 아주 행복하게 잘 살수 있음을 알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말씀드리자, 아이 어머니께서는 공감이 되며 기대된다는 듯한 눈빛을 하시며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카페를 직접 찾아 여기가 맞나 저에게 확인을 하셨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여러가지 상담을 마친후 나가시기 전에  약간 붉어진 눈빛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아이를 못떼어놓았던것 같아요.”

“네 맞아요. 아이는 충분히 잘 할 수 있어요. 믿어주셔도 돼요.”

아이 어머니는 여러가지 TO DO LISTS를 가지고 집으로 향하게 되셨지만, 전 그분의 뒷모습을 보며 조금은 힘을 얻고 가시는구나 하고 느끼며 마음 한켠이 채워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좋은 하루였습니다.

(2022.10.12. 티스토리 블로그 기록물)

윤리적으로 질적연구 수행하기 (1). 익명성 지키기는 쉬운가, 어려운가?

연구에서 “익명성”을 지킨다는 것.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질적연구에서 익명성이 지켜지지 않은 사례

한번은 대학원 동료로부터 어떤 사례를 들었었습니다.

해당 연구에서 대상자를 모집하기가 쉽지 않아 어떤 인터넷 자조모임 카페를 통해 모집을 했다고 합니다. 모집이 쉽진 않았지만 어떻게 어떻게 되었고, 인터뷰를 잘 진행하게 되었고, 연구 결과를 보고할 때도 일반적인 질적 연구 보고와 같이 실제로 대상자가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여 보고했다고 합니다. 물론 익명으로 보고가 되었지요.

그런데 그 연구가 보고된 이후, 참여자로부터 문제제기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까지 자신이 한 말이 그대로 인용될 줄은 몰랐다구요.

그 이후 다시는 그 자조모임 카페에서 연구 관련 모집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요?

전 다음과 같이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1. 사전에 연구자가 대상자에게 녹취된 내용이 그대로 인용될 것이란 것을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했을 것이다
  2. 실제로 익명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을 것이다.

1번이라면 아마도 대상자에게 연구를 설명할 때, “익명성”이 지켜진다는 것은 강조하면서도 “인용문”이 그대로 보고될 것이란 것은 강조하지 못하면서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상자에게 연구를 설명할 때 이 부분을 최대한 강조하여 인지하실 수 있게끔 하고 있습니다.

2번에 대해서는 “어떻게 그럴수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연구자가 전혀 의도치 않았더라도 까딱하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질적연구에서 “익명성”을 지킨다고 하면, 그 내용을 누가 말했는지에 대해 인용하면서 가명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구 대상자가 희귀하거나, 특수할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집단이 좁을 수록 익명에 가려져 있는 대상자를 특정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연구 보고서에는 대상자의 특성이 별도로 보고가 되기도 하고, A라는 사람이 언급한 말 몇 마디에 A가 누구인지 금새 추측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한 다른 이야기들이 줄줄이 다 노출이 되버릴 수도 있을 겁니다.

특히 저렇게 인터넷 카페를 통해 모집을 했고, 누가 그 연구에 참여했는지를 어느 정도 알거나 추측할 수 있는 경우에는 더욱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 보고를 할 때 익명성은 단순히 가명을 쓰는 것으로 커버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대상자 자신이, 원치 않게 공중에 드러났다고 느끼게 됐다면, 그 연구는 분명 윤리적이지 않은 연구가 되어 버립니다. 연구자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말입니다. 이를 연구자가 뒤늦게 알게된다면.. 정말 큰 죄책감을 갖게 되겠지요.

Confidentiality is a separate issue from anonymity but also important. In
research where words and ideas from participants are used, full confidentiality cannot be promised, especially as qualitative research contains quotes from the interview data. In these studies, confidentiality means researchers keep confidential that which the participant does not wish to disclose to others. Patients, in particular, sometimes disclose intimate details of their lives which the researcher cannot divulge, although the information could be useful for the research. Hammersley and Traianou (2012) discuss the issue of privacy in particular as qualitative research often involves inner feelings and thoughts of participants.

Holloway, I., & Galvin, K. (2023). Qualitative research in nursing and healthcare. John Wiley & Sons.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이 연구에서 인용문이 익명으로 인용될 수 있음을 대상자가 분명히 인지할 수 있게끔 설명해야 합니다.

둘째로, 질적연구는 반복적인 동의의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대상자가 연구 동의서에 서명했다고 하여 모든 것이 다 허용되는 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대상자가 연구동의서에 서명하기 전에, 연구 참여는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고 미리 안내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인터뷰 중 취소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인터뷰 녹취가 끝난 후에 취소하는 것일 수도 있고, 연구 분석이 끝난 후 연구 보고 직전에 취소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고, 대상자에게 그럴 권리가 있음을 알려야 합니다. 즉, 연구가 보고되는 시점까지 대상자가 그 연구에 참여할 수 있게끔 해야합니다. 분석 결과가 대상자의 의도와 다르지 않은지도 검토받아야 하고, 보고가 되기 전에 어떻게 보고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검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Consent in qualitative research is an ongoing process. Whilst consent may be implied in one phase of the research, it cannot be assumed at another stage when the researcher’s ideas change on the basis of the information provided, or indeed, when participants change their minds. Thus, consent is not a once and forever agreement by participants but requires ongoing consent. For a discussion of the complexity of these staged issues in relation to negotiating the journey of a qualitative research study, see Redwood and Todres (2006).

Holloway, I., & Galvin, K. (2023). Qualitative research in nursing and healthcare. John Wiley & Sons.

그리고 참가자를 식별할 수 없도록 참가자에 대한 사소한 정보를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경우에서는 나이가 연구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면 모든 참가자의 나이를 2-3세 정도 변경하기도 합니다(이 또한 대상자의 동의가 있어야겠지요?). 대상자가 동의한 연구자만이 정확한 신원과 녹취록, 분석보고서를 일치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Researchers sometimes change minor details about the participants so that they cannot be identified. For instance, researchers may change the age of all participants by two or three years when age is not an important factor in the research (Archbold, 1986). This of course must be reported in the research account without giving exact particulars. Only the researcher should be able to match the real names and identities with the tapes, report or description.

Holloway, I., & Galvin, K. (2023). Qualitative research in nursing and healthcare. John Wiley & Sons.

저도 희귀한 질환을 가진 대상자를 연구하다보니, 이런 부분에 특히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중요한 내용을 사실적으로 보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참여자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가장 안전할 수 있는 것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중요한 순간 순간에 (분석&보고)에 대상자에게 확인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일 것 같습니다.

일단 저는 다행히 처음 연구 동의를 구할 때, 향후 “의미 검토 과정”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동의를 받아 두었습니다. 원래는 현상학적으로 “상호주관적 검증”을 위해 넣어둔 장치였는데 (일반적으로는 삼각검증의 목적으로 넣어둘 수 있겠지요), 윤리적으로도 맞는 것 같습니다. 이 때, 어떤 식으로 인용문이 보고가 될 예정인지에 대해서도 확인을 받으려고 합니다.

아! 이런 향후 추가 연락에 대해 미리 동의를 받아두는 것도 중요한데, 왜냐면 대상자는 인터뷰 이후에는 다시 연구와 관련하여 일절 연락 받길 원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 참여자를 지키면서 연구하기. 무엇보다 중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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