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를 가진 여성과 성

(2023.03.15. 티스토리 블로그 기록물)

저는 이번에 박사 4학기를 꾸려나갈 수업으로 이화여자대학교에서의 “장애인 가족 연구”수업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간호하는 주요 환자인 이분척추증을 가진 아동 및 성인은 배뇨장애 외에도 보행장애, 지적장애 등 다양한 장애를 동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족들 또한 저의 간호 대상자입니다. 그러나 전 배뇨 및 배변 외 장애를 가진 아동과 보호자들이 겪는 삶을 자세하게 들여다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장애인 가족연구 수업은 저의 인사이트를 키워주고 향후 가족에게 더 좋은 중재를 제공해주는 데 기반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제가 특수교육의 백그라운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임상 경력을 들으신 교수님께서는 수업 수강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조별 과제로 이루어지는 지라, 3분의 특수교육을 전공하시고 현장에서 교사로 근무하시는 선생님들과 한 조가 되어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저희 조가 첫번째 맡아서 발제를 한 주제는 다름아닌 지적장애를 가진 딸 (혹은 여성 가족원)의 성과 관련된 이슈에 대한 보호자의 목소리입니다.

저도 병원에서 비슷한 사례를 상담한 적이 있었는데, 사춘기에 진입한 아이(경미한 지적장애를 동반한 딸)가 야한 생각을 하면 요실금이 생기고, 그런 일이 잦은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해요~ 라는 엄마의 고충이었습니다. 성인의 경우 그런 사례들이 종종 있어서, 질환 특성상 그런 경우들이 좀 있긴 하다 정도로 말씀을 드리긴 하였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 보호자께서 진짜 알고 싶으셨던 내용은 아이에게 어떻게 성교육을 해야하나요가 아닐까 싶습니다. 당황스러운 이슈에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 그리고 이러한 질문에 누가 답해줄 수 있을지 몰라 곤란한 보호자의 목소리였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런 보호자의 목소리가 어떠한가에 대한 주제범위 문헌고찰 연구를 기반으로 발제하였습니다.

Powell, R. M., Parish, S. L., Mitra, M., & Rosenthal, E. (2020). Role of family caregivers regarding 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 for women and girls with intellectual disability: A scoping review. Journal of intellectual disability research, 64(2), 131-157.

보호자의 목소리는 크게 지적장애를 가진 딸 (혹은 여성 가족원)의

월경과 폐경: 가족 돌봄자가 딸의 월경 관리를 돕고, 행동을 보며 월경을 예측하고, 폐경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 하지 않아 지적장애가 있는 여성이 자신의 몸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함 등.

예방접종 및 예방검진: 지적장애가 있는 아동이 B형간염 예방접종을 온전히 마칠 확률이 정상아동에 비해 낮고, 자궁경부암이나 유방암 검진은 시설에 있는 경우보다 집에서 거주하는 경우에 훨씬 덜 받음 등.

성과 건강한 관계 지원: 가족돌봄자는 본인과 지적장애가 있는 자녀(혹은 가족원)을 위한 성교육을 필요로 함 / 일부 가족돌봄자는 지적장애가 있는 가족원과 성에 대해 이야기하길 불편해함 & 성인이더라도 성관계란 위험하고 반드시 결혼후에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 경험이 있음 / 지적장애가 있는 여성은 가족돌봄자가 성적 필요와 감정을 억제하게 함에 따라 표현을 잘 못하고 관련된 서비스를 받지 못한 경험이 있음 등.

건강관리 제공자와의 협력: 건강관리제공자는 가족돌봄자의 통찰력을 필요로 하고, 가족돌봄자는  교육 받길 원함 등.

피임 및 불임: 많은 경우 월경억제, 임신 예방 등의 목적으로 가족간병인이 먼저 피임을 요청하고, 불임수술을 먼저 요청하고 시술하기도 하며, 때로는 의료인이 먼저 불임수술을 권함 등.

등과 관련된  5가지의 주제로 분류되었습니다.


이 논문을 발제하며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현실적으로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이슈이며 체계화된 교육과 사회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성 이라는 것은 인간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중 하나이고, 장애가 있다고하여 asexual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많은 책임을 요구하는 만큼, 그것을 억누를수 밖에 없는  가족돌봄자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됩니다.

지적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어떤 성교육과 상담을 제공하고, 사회적으로는 어떤 체계로 이들과 가족을 지지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활용할 수 있는 성교육 지침서가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입니다.

서울시립 중랑 청소년 성문화센터에서 배포한 자료입니다.

저도 이를 자세히 참고하여 임상에서 필요로 하는 분들께 잘 전달해야겠습니다.

(2023.03.15. 티스토리 블로그 기록물)

간호는 환자가 자기자신을 믿도록 돕는 것이다.

병원에서 이런저런 처치를 하다보면 유난히 겁이 많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병원에서 뭔가 해야하고, 그게 자기를 불편하게 한다는 걸 안다면 싫은게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잘 하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유난히 공포에 사로잡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전에는 그렇게 울며불며 몸으로 버티는 아이들을 마주하면, 처음에는 어르고 달래보지만 나중에는 쫒기는 시간에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었습니다.

우리 딸래미 치과 치료 전까지는 말이죠.

제 딸은.. 병원 포비아로 치면 제가 그동안 마주한 모든 아이들 중 최고였습니다.

아마도 충치 치료의 첫 경험이 아이에게 배신감을 줬던게 분명합니다. 제가 고집을 부려 갔던 (수면이나 웃음가스를 하고싶지 않아) 일반 치과에서, 아이에 대해 섬세하게 접근하지 못하고 가장 심각하게 썩은 이부터 건드리는 바람에 아이가 그 소름끼치는 통증을 무방비 상태로 경험했고 완전히 패닉이 된 적이 있었거든요.

평소 굉장히 안정적인 정서를 자랑하던 아이가 그  치과경험 이후에는 미용실에서 머리 감는것도 두려워하며 우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다른 이유로 병원에 검사하러 가는 짧은 시간 동안, 긴장감을 몸이 이기지 못하고 배탈이 나버리기도 했구요. 제 딸의 돌변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그리고 그 정도가 제가 만나본 모든 아이들을 초월하고보니, 이제는 병원에서 대하기 까다롭다 생각되는 아이가  없어졌습니다.

다 그저 사랑스럽고 안쓰럽습니다.

오늘 만난 10살 여아도 그랬습니다. OO이는 오늘 소변 검사를 위해 소변 줄을 넣어야 하는 처치를 극도로 두려워하며 저항했습니다.

평소에 굉장히 안정적이고 말을 잘 들어주던 아이라서 이 검사도 씩씩하게 할 것만 같았는데,  알고보니 과거에 검사를 했을 때 마음의 준비도 안됐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소변줄이 몸으로 들어와서 놀랐던 경험이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에구.. 안쓰러워라. 그래서 저는 처음에는 아이가 엄마에게 그 힘든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시간을 좀 주었지만  좀처럼 진정이 안됐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과 마음이 더 지치는 것을 알기에 잠시 시간이 지난 후 “이제, 우리~엄마는 잠시 밖에 계시도록 하고 우리끼리 한번 해보자. 선생님 딸도 보니까 엄마가 같이 있을 때 더 마음이 약해져서 못했지만 오히려 혼자서 간호사 선생님이랑 더 잘하더라구. OO이도 분명히 혼자서 잘 할수 있을것 같아.” 하고 말해준 뒤 아이 어머니를 잠시 커튼 뒤에 나가서 기다리시도록 했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없지만 커튼 밖에 있는 것을 확인 후 조금 더 진정이 되어서 침대에 올라 자리를 잡았고, 저와 다른 간호사 둘이 함께 아이에게 검사의 단계 단계를 설명하며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지금 카테터를 넣을 거고 같이  “아~~” 라고 소리를 내면 훨씬 안아프게 할 수 있어. 준비 됐어? 아~~~~”OO이는 그 이후 검사를 아주 잘 마쳤고, 우리는 아이를 아주 크게 칭찬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씩씩하게 침대에서 잘 내려와서 검사실을 씩씩하게 나갔습니다.

오늘 OO이가 자기 자신을 조금 더 믿을 수 있게 되었을까요?? 그랬기를 바라봅니다.

(2022.10.13. 티스토리 블로그 기록물)

간호는 진정성 있는 눈맞춤이다

전 Jean Watson의 돌봄이론을 좋아합니다.

돌봄이론은
간호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고,
간호사로의 소명을 인식하게 하며,
간호사도 간호를 통해 성장한다고 믿는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왓슨의 돌봄 이론은 하루의 간호를 시작하기에 앞서 성찰할만한 내용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그리고 전 그것을 인스타그램에 조금씩 공유를 하며 저 또한 그 내용을 성찰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오늘 하루 대상자와 진정성 있는 눈맞춤을 하겠다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의 이러한 다짐은 오늘 저의 하루를 조금 더 나은 하루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오늘 마주친 수많은 눈들 중 한 어머니의 눈이 제게 많이 남습니다. 초등학생 2학년이 된 여자아이의 어머니의 눈은, 처음엔 다소 피곤해보이셨습니다.

아이는 다리에 힘이 부족하여 휠체어보행을 하고 있었고, 아이의 어머니는 여전히 하루 종일 아이의 도뇨를 직접 해주고 계셨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가 있을 때라도 도뇨시간이 되면 잠시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도뇨를 한 후 다시 학교에 데려다 주시는 상황이었습니다.

아..  오롯이 아이만 지켜내는 삶을 살고 계시는구나.

아이 어머니는 저의 “OO이도 혼자 도뇨할 때가 되었어요.”라는 질문에 당황하시며 왜 이 휠체어를 보지 못하냐는 듯한 눈빛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OO는 다리에 힘이 없어요.”

“우리 이분척추증이 있는 아이들중에는 OO이같이 휠체어보행을 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어요. 그리고 스스로 도뇨도 매우 잘하구요. OO이도 팔의 힘으로 변기에 앉는 연습먼저 시작해보면 좋을것 같아요.”

아이 어머니는 처음엔 믿기 어렵다는 눈빛을 보이셨지만 저의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계속 들으시더니 조금씩 귀를 더 기울여주셨습니다.

“정말 잘 할 수 있어요. 코로나 이전같으면 캠프를 같이 가서 언니들 보면서 배워봐도 좋을텐데..

OO야. 이제 OO도 스스로 도뇨할 때가 되었어. 실은 이미 늦었어. 이미 충분히 언니가 되었거든. 지금부터라도 우리 조금씩 연습해서 고학년이 되거든 혼자 해보는걸 목표로 해보자. 우선 화장실에서 혼자 앉는것부터 연습 해보는거야!!.”

다행이 아이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이 어머니께서는 이전에는 인터넷 자조모임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정신건강에 너무 안좋은것 같아서 일부러 외면했었다고 하셨습니다.

아이 어머니께서 충분히 그러실 수 있으나, 자조모임을 통해서 아이가 얻는 부분이 분명히 클 수 있음을.. 그곳을 통해 OO이가 자신과 비슷한 질병을 가진 친구들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고 아주 행복하게 잘 살수 있음을 알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말씀드리자, 아이 어머니께서는 공감이 되며 기대된다는 듯한 눈빛을 하시며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카페를 직접 찾아 여기가 맞나 저에게 확인을 하셨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여러가지 상담을 마친후 나가시기 전에  약간 붉어진 눈빛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아이를 못떼어놓았던것 같아요.”

“네 맞아요. 아이는 충분히 잘 할 수 있어요. 믿어주셔도 돼요.”

아이 어머니는 여러가지 TO DO LISTS를 가지고 집으로 향하게 되셨지만, 전 그분의 뒷모습을 보며 조금은 힘을 얻고 가시는구나 하고 느끼며 마음 한켠이 채워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좋은 하루였습니다.

(2022.10.12. 티스토리 블로그 기록물)

간호법

간호사의 학력(4년제 졸업 vs not), 경력 그리고 간호사의 소진 정도가 실제 환자의 사망률 및 재입원률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들어보셨나요?

처음 들어보셨다면.. 이제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4년제 학위 후 면허를 취득한 ‘간호사’에게 간호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간호사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간호법이 없습니다.

간호법 제정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그 관심이 향후 직접적인 삶의 모양(건강 vs 건강하지 않은; 무엇을 원하세요?) 을 달라지게 할 것입니다.

(2021.4.17. 페이스북 기록물)

좋은 소식

좋은 소식입니다.

일상에서 소변줄로 소변을 스스로 빼야하는 (자가 도뇨) 사람들이 있는데 혹시 들어보셨나요? 너무 이상하게 느껴지시지요..?

소변 보는데 무슨 문제가 있을수 있을까 싶지만, 하루 대여섯번 소변줄로 소변을 빼야만 합니다. 살기 위해서요.

그리고 평생 요실금으로 패드나 기저귀를 착용해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모자라서가 아니라, 자기관리 안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태어나서, 혹은 그렇게 되도록 다쳐서..(누구라도 그렇게 태어날수 있고, 누구라도 그렇게 다칠수 있습니다).

남들에겐 자연스러운 배뇨훈련이라지만.. 그게 의지와 다르게 안되고, 남들처럼 쉽게 할 수 없는 특별한 기술이 되어버려서, 남들 모르게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상상이 되시나요?

정말 그럴수 있을까 싶으시지요?

제가 매일 만나는 친구들입니다.

그렇게 남들과 다른 하루를 매일같이 살아내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너무 안타까웠던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질환을 국가도 잘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2012년, 환자 및 보호자, 한상원 교수님과 최은경 교수님의 헌신으로 선천적 질환 자가 도뇨 소모성 재료에 대한 급여 지원 시행이 시작된 바 있었고, 이는 2017년엔 후천적 질환까지도 확대 적용되었습니다. 정말 환자 보호자에겐 엄청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평생 도뇨를 해야해도,

평생 소변이 그냥 나와도..

장애는 아니었습니다.

왜 아닐까.. 왜 아니어야 할까??

대부분의 도뇨하시는 분들이 이미 ‘마비’ 관련으로 장애를 받으셔서, 추가로 장애 명목을 만들어야 하는 니즈가 없었기 때문인걸까… 라는 나름의 추론 후, 우리 소수정예 선천적 질환 친구들은 얼마나 더 힘을 모아야 이게 가능해질까 싶었고, 항상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어느 젊은 청년 환자분이 개정된 사항을 봤다고 문의전화를 줬고 , 아직까지 들은건 없다고 전화를 마무리하고 끊었는데..

설마 하는 마음으로 찾아봤더니!!

정말??!!

심사 기준이 생겼고 공포되었습니다!! 바로 어제!!!

이게 뭐 대단한거냐고,

장애등록을 해준다 해도 안하고 싶은 사람도 있지 않겠냐고 생각하실수도 있겠지만,
자녀가 어릴땐 ‘내가 다 해주면 되지’ 라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커가는 걸 보면서 새로 생길수밖에 없는.. ‘내가 없을때 우리 아들딸들은 괜찮을까, 사회적으로 배려 받을수 있는 방법을 없을까’ 하며 노심초사 무겁게 근심하시던 부모님들의 간절함과 미안함을 알기에..

이런 사회적 관심과 배려는 너무 기쁘고 감사한일입니다.

전 멀리서 환자만 보고, 마음만 있었지, 이런일이 진행이 되는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못했는데..ㅠㅠ 애써주신 모든 분들과 정책적 의사결정을 내려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1.4.14. 페이스북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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