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으로 질적연구 수행하기 (1). 익명성 지키기는 쉬운가, 어려운가?

연구에서 “익명성”을 지킨다는 것.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질적연구에서 익명성이 지켜지지 않은 사례

한번은 대학원 동료로부터 어떤 사례를 들었었습니다.

해당 연구에서 대상자를 모집하기가 쉽지 않아 어떤 인터넷 자조모임 카페를 통해 모집을 했다고 합니다. 모집이 쉽진 않았지만 어떻게 어떻게 되었고, 인터뷰를 잘 진행하게 되었고, 연구 결과를 보고할 때도 일반적인 질적 연구 보고와 같이 실제로 대상자가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여 보고했다고 합니다. 물론 익명으로 보고가 되었지요.

그런데 그 연구가 보고된 이후, 참여자로부터 문제제기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까지 자신이 한 말이 그대로 인용될 줄은 몰랐다구요.

그 이후 다시는 그 자조모임 카페에서 연구 관련 모집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요?

전 다음과 같이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1. 사전에 연구자가 대상자에게 녹취된 내용이 그대로 인용될 것이란 것을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했을 것이다
  2. 실제로 익명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을 것이다.

1번이라면 아마도 대상자에게 연구를 설명할 때, “익명성”이 지켜진다는 것은 강조하면서도 “인용문”이 그대로 보고될 것이란 것은 강조하지 못하면서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상자에게 연구를 설명할 때 이 부분을 최대한 강조하여 인지하실 수 있게끔 하고 있습니다.

2번에 대해서는 “어떻게 그럴수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연구자가 전혀 의도치 않았더라도 까딱하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질적연구에서 “익명성”을 지킨다고 하면, 그 내용을 누가 말했는지에 대해 인용하면서 가명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구 대상자가 희귀하거나, 특수할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집단이 좁을 수록 익명에 가려져 있는 대상자를 특정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연구 보고서에는 대상자의 특성이 별도로 보고가 되기도 하고, A라는 사람이 언급한 말 몇 마디에 A가 누구인지 금새 추측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한 다른 이야기들이 줄줄이 다 노출이 되버릴 수도 있을 겁니다.

특히 저렇게 인터넷 카페를 통해 모집을 했고, 누가 그 연구에 참여했는지를 어느 정도 알거나 추측할 수 있는 경우에는 더욱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 보고를 할 때 익명성은 단순히 가명을 쓰는 것으로 커버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대상자 자신이, 원치 않게 공중에 드러났다고 느끼게 됐다면, 그 연구는 분명 윤리적이지 않은 연구가 되어 버립니다. 연구자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말입니다. 이를 연구자가 뒤늦게 알게된다면.. 정말 큰 죄책감을 갖게 되겠지요.

Confidentiality is a separate issue from anonymity but also important. In
research where words and ideas from participants are used, full confidentiality cannot be promised, especially as qualitative research contains quotes from the interview data. In these studies, confidentiality means researchers keep confidential that which the participant does not wish to disclose to others. Patients, in particular, sometimes disclose intimate details of their lives which the researcher cannot divulge, although the information could be useful for the research. Hammersley and Traianou (2012) discuss the issue of privacy in particular as qualitative research often involves inner feelings and thoughts of participants.

Holloway, I., & Galvin, K. (2023). Qualitative research in nursing and healthcare. John Wiley & Sons.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이 연구에서 인용문이 익명으로 인용될 수 있음을 대상자가 분명히 인지할 수 있게끔 설명해야 합니다.

둘째로, 질적연구는 반복적인 동의의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대상자가 연구 동의서에 서명했다고 하여 모든 것이 다 허용되는 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대상자가 연구동의서에 서명하기 전에, 연구 참여는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고 미리 안내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인터뷰 중 취소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인터뷰 녹취가 끝난 후에 취소하는 것일 수도 있고, 연구 분석이 끝난 후 연구 보고 직전에 취소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고, 대상자에게 그럴 권리가 있음을 알려야 합니다. 즉, 연구가 보고되는 시점까지 대상자가 그 연구에 참여할 수 있게끔 해야합니다. 분석 결과가 대상자의 의도와 다르지 않은지도 검토받아야 하고, 보고가 되기 전에 어떻게 보고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검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Consent in qualitative research is an ongoing process. Whilst consent may be implied in one phase of the research, it cannot be assumed at another stage when the researcher’s ideas change on the basis of the information provided, or indeed, when participants change their minds. Thus, consent is not a once and forever agreement by participants but requires ongoing consent. For a discussion of the complexity of these staged issues in relation to negotiating the journey of a qualitative research study, see Redwood and Todres (2006).

Holloway, I., & Galvin, K. (2023). Qualitative research in nursing and healthcare. John Wiley & Sons.

그리고 참가자를 식별할 수 없도록 참가자에 대한 사소한 정보를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경우에서는 나이가 연구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면 모든 참가자의 나이를 2-3세 정도 변경하기도 합니다(이 또한 대상자의 동의가 있어야겠지요?). 대상자가 동의한 연구자만이 정확한 신원과 녹취록, 분석보고서를 일치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Researchers sometimes change minor details about the participants so that they cannot be identified. For instance, researchers may change the age of all participants by two or three years when age is not an important factor in the research (Archbold, 1986). This of course must be reported in the research account without giving exact particulars. Only the researcher should be able to match the real names and identities with the tapes, report or description.

Holloway, I., & Galvin, K. (2023). Qualitative research in nursing and healthcare. John Wiley & Sons.

저도 희귀한 질환을 가진 대상자를 연구하다보니, 이런 부분에 특히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중요한 내용을 사실적으로 보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참여자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가장 안전할 수 있는 것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중요한 순간 순간에 (분석&보고)에 대상자에게 확인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일 것 같습니다.

일단 저는 다행히 처음 연구 동의를 구할 때, 향후 “의미 검토 과정”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동의를 받아 두었습니다. 원래는 현상학적으로 “상호주관적 검증”을 위해 넣어둔 장치였는데 (일반적으로는 삼각검증의 목적으로 넣어둘 수 있겠지요), 윤리적으로도 맞는 것 같습니다. 이 때, 어떤 식으로 인용문이 보고가 될 예정인지에 대해서도 확인을 받으려고 합니다.

아! 이런 향후 추가 연락에 대해 미리 동의를 받아두는 것도 중요한데, 왜냐면 대상자는 인터뷰 이후에는 다시 연구와 관련하여 일절 연락 받길 원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 참여자를 지키면서 연구하기. 무엇보다 중요하겠습니다.

나의 위경련 경험에 대한 현상학적 체험 분석

도입

급성 위경련이 왔다.

현상학적 질적연구를 공부하고 있는 입장에서, 현상학적으로 나의 경험을 되돌아보기로 했다. 이남인(2005)에 의하면, 연구자와 연구참여자가 동일한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의 “해석”보다 높은 수준의 명증성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결국 이것이 객관성을 담보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때, 다른 경험자의 상호주관적 검증이 있을 경우 그 객관성을 높일 수 있게 된다. 다른 위경련 체험자들의 경험들이 여기에 덧붙여지길 바라본다.

이 글은 위경련이 발생하고, 사그러든 날 밤에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위경련 경험

어제부터 감기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오늘새벽부터 오한이 들었고, 열은 38.4-6을 왔다갔다 했다. 열이 나도 오한이 없으면 그래도 좀 살만했다. 다행히 오늘 진료는 휴진이고, 치료 예약된 환자만 두어명 있어서, 약먹고 버티면 크게 어렵지 않은 여유로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다만 약 먹고 오한이 떨어지는 것은 3시간을 못버텼다. 컨디션이 영 아닌것 같았다. 그런데 그와중에 배는 또 고파서, 오한이 떨어졌을 때 뭐라도 먹자 하고 비타민 충전한답시고 샐러드를 먹고, 뭔가 아쉬워서 빵도 먹었는데..그게 문제였던 것 같다.

처음엔 “어 뭐지? 체했나?” 싶었다.

원래 난 피곤할 때 뭘 먹으면 윗배가 빵빵하게 부풀면서 아프다. 난 원래 이 상태를 체했다고 표현하는데 이때는 바로 누우면 좀 나아지곤 했다. 그래서 동료 간호사에게 잠깐만 누워있을께 하고 누웠는데 이상했다.  이건 어떤 자세도 통하지 않았다. 한참 자세를 찾고 있는데 통증은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고, 서랍안에 넣어 두었던 위경련약이 생각났다. 라미나지액이라는 약인데, 이전에 위경련 있었을 때 의사선생님이 이건 본인도 프랩해놓고 급할때 먹는다고 하셨던 약이다. 책상앞에서 쪼그려 앉아 우겨 넣었다.

그리고 다시 침대로 갔는데 그 침대가 내가 올라가기에 너무 높아보이기 시작했다. 도저히 저 불안한 침대에서 쪼그려 누워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바닥에 쪼그려 엎드렸다. 안보이는 곳이니 상관 없었다. 그렇게 쪼그려 엎드려있었는데, 옆 베드에서 치료를 받는 아이가 도착했다. 이제 보여질 수밖에 없을것 같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침대 위로 올라갔다. 여전히 나에게 편한 자세는 없었지만, 그나마 엎드려 쪼그려 누워있을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점점 나의 호흡은 가빠지기 시작했고, 옆의 베드에 누워있는 아이와 보호자가 알아챌것 같이 끙끙 거렸다. 어쩔수가 없었다. 눈치채게 하고싶지 않았지만 지금 그런걸 따질수는 없었다. 온몸에서 땀이 척척하게 스며나왔다. 상의부터 하의까지 모든 옷이 순식간에 축축하게 젖는게 느껴졌고, 이 통증은 좀처럼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그래서 개미같은 목소리를 겨우 내어 동료 간호사에게 “주사실에 맞을만 한게 있나 연락 좀 해줘” 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 엎드려 끙끙 앓고 있었는데 동료간호사가 나에게 와서 다시 물어봤다. 난 목소리를 낸다고 했는데 거의 안들렸었나보다. 내가 주사실…하고 웅얼거리자 알겠다는 듯이 급하게  나갔다. 그러더니 시니어 선생님을 데리고 왔다.

시니어 선생님이 쪼그려 누운 내 뒤에서 따뜻한 물을 좀 먹어보지 않겠냐고 권하셨던 것 같고, 나는 아무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이것은 무슨 통증일까. 괜찮아지긴 하는걸까. 빨리 약.. 약..

급하게 외래의 진료를 잡아주었고, 대기가 3번째라고 하였었다. 그런데 난 몇보 앞의 진료실을 갈 자신이 없었다. 그냥 약.. 빨리 약..

도대체 이 통증은 무엇있가..? 이건 통증 scale 10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이런 통증을 자주 겪을수 있다는 암환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까.. 그들의 통증은 조절이 되긴 할까 라는 연민 아닌 공감을 느꼈다. 이러곤 도저히 살수 없다. 위에 구멍이라도 내고 싶을 정도로 아픈 이 통증은 참을 수 있는 통증이 아니다. 극도의 생리통일때는 자궁을 떼버리고 싶었고, 오늘은 위에 빨대를 꽂고 싶었다.

거의 혼절 직전에 이르렀는데, 교수님이 너무 급해보인다고 일단 약 먼저 처방해주었다 하였다.일단 다행이긴 했는데 내가 과연 주사실로 갈 수 있을까.. 도저히 난 거기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침대 앞에 휠체어가 준비되어 있었다. 고마웠지만 고마움을 챙겨 말할 새도 없었다. 일단 이건 타야겠지.. 휠체어 타려고 겨우 비틀거려 내려왔는데 그제서야 내 머리카락도 다 젖어있었다는 걸 알았다. 겨우 비틀거리며 휠체어에 앉았고, 다리를 들어 발받침 위에 발을 올렸고, 난 허벅지에 쪼그려 엎드렸다 .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이동시켜주기 시작했다.

갑자기 너무 추웠다. 복도로 나온것 같았다. 온몸이 땀에 젖어있어서 그런거였겠지만 너무 추웠다. 한편 시원한것 같기도 했다. 열이 식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속이 울렁거리가 시작했다. 아무래도 침이 고이려고 하는게 심상치 않았다. 주사실은 얼마나 남은걸까 하고 올려보았더니 한 3m 남았더라. 그래서 말했다. “아무래도 토할것 같어..”

“어, 토할것 같으세요?”라는 긴박한 목소리가 들리며  주사실에 safe하듯이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여러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와줬고, 토할것 같다는 얘기에 바로 쓰래기통을 집어 주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난 받자마자 토를 했다. 위가 쥐어 짜지면서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아까 먹었던 카스테라가 아직 소화가 덜 된 것 같았다. 걸죽한 반죽이 되어 입을 통해 밀려 나왔다. 그렇게 쓰래기통을 부여잡고 토를 했고, 나는 재빨리 침상곁으로 옮겨졌다.

토를 하고나니 약간은 나아진것 같았다. 주사실 선생님들께서 나를 따뜻하게 돌봐주셨다. 어떤 자세가 편하냐고, 편한 자세로 있으시라고하며 돌봐주셨다. 물티슈도 주시고 휴지도 주셨다. 침상에 올라가서 눕는게 낫겠다 싶어 올라갔고, 토를 해서 그런가 이제는 옆으로 쪼그려 누울 수 있었다. 도저히 눈은 뜰수 없었는데 그 사이에 iv가 안아프게 놓여졌고,  처음에는 프리판이 들어간다 하였다. 약이 들어가니 일단 안심이 되었다. 단단했던 위도 조금씩 긴장을 풀려는게 느껴졌다.

아까 남편에게 “와줘…”라는 단발마의 비명을 담은 카톡을 보냈었는데 그 이후에 내가 전화도 못받고 카톡도 못받고 있으니 동료 간호사와 통화한후 부랴부랴 주사실로 왔다. 어쩔줄 몰라하며 앉아있다가 밖에 나갔다 왔는데, 시부모님께 오늘 밤에 아이들을 봐주시길 부탁해준 것이었다. 그럴필요까진 없을것 같은데.. 도저히 안되어보였나보다.. 그래도 일단 집에가서 푹 쉴수 있다는게 안도감을 주었다.

그렇게 한참 누워있었는데 다른 약이 하나 더 달리고, 그게 다 들어간 후에는 수액을 달아주셨다. 수액까지 달리니 이제 거의 다 된것 같았다. 나는 바로 누울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퇴근할 때가 된건지 동료 간호사가 “괜찮으세요?”하고 와주었다. 이제 일어날 수 있었다. 같이 돌아가기로 했다.

확실히 이젠 걸을 수 있었고, 옷은 여전히 척척했지만 아까만큼 춥진 않았다. 몸에 힘은 없었지만 아프지 않으니 되었다.

남편은 아픈데 죽을 먹어야지 왜 샐러드랑 밀가루를 먹었냐고 안타까워했다. 속은 괜찮을줄 알았지… 아플 때 죽을 먹으란 건 조상의 지혜인듯 하다.

현상학적 체험 분석 (사실적 현상학적 심리학적 체험연구)

감기바이러스로 인해 힘겨웠던 몸(주체)에서 발생한 급성 위경련(체험의 대상) 가운데 나는 나의 온 신경이 복부의 통증을 향해 있었음을 경험했다. 나의 위장은 부풀었고, 비틀렸고, 여러개의 칼이 사방에서 찌르는 것 같았으며, 해결되지 않은 통증에 온몸의 세포가 땀을 내며 발악을 했다(신체성). 1초는 5초같이 느리게 갔고(시간성), 겨우 힘을 내어 쪼그려 누워 나의 배를 스스로 문지르는 것은 좁은 굴 속에서 혼자 사투를 벌이는 것 같았으며, 특히 그 좁은 침대는 너무 높아보였고 불안했다 (공간성). 그 가운데 나를 들여다봐주는 사람들(동료 &시니어 간호사 선생님, 주사실 선생님, 남편, 시부모님)은 안도감을 주었고, 진심으로 감사했다(관계성).

멀미 때문이었는지 위장의 마지막 발악이었는지  구토를 한 이후에 통증은 약간 나아졌고, 주사제를 맞고나서 30여분이 경과했을 땐 확실히 편해져서 더 이상 위에 나의 신경이 집중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날에는 온몸에 근육통이 생겨서 반신욕을 해야했다(시간에 따른 전개).

나는 위경련의 상황에서 병원안에 있는 나의 검사실 구석 침대에 쪼그려서 배를 부여잡으며 119를 불러야하나 잠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럼 분명 우리병원의 응급실로 데려다줄텐데, 응급실에선 나를 받아줄까 염려 해야했다. 또 여기서 거기 가자고 119 부르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고 포기했다. 그리고 주위의 간호사에게 도움을 청했고, 가까운 병원 시스템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진경제만 맞으면 좀 나아질 수 있는건데.. 집에 있었가면 어떻게 했을까? 낮이라면 동네 내과를 갔겠지.. 밤이라면 어떻게 해야했을까.. 2차병원 응급실에서는 받아줬을까..나는 운이 좋게 다행이었지만, 요즘같은 상황이면 염려가 많아질 것 같았다. 아픈것도 서러운데 어딜가야 하나 고민해야 하는 건 억울한 일이다(사회성, 역사성).

급성 위경련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통증이었으며,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고, 이런 통증을 자주 경험하는 이들에 대한 애달픔을 알게 됐다. 한편 그 통증이 지나간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똑같은 일상이 되었고,  조절이 되는 통증이라는 것에 감사했다. 그러나 나는 이 통증이 사그러진 이후 “암성 통증”과 “만성 통증” 경험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이런 통증을 간헐적으로든 수시로든 지속적으로라든 경험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면.. 정말 무서울 것이다. 그리고 급작스럽지만 기도제목이 하나 더 생겼다. 나중에 하늘나라에 갈 땐 가더라도 통증 없이 가게 해달라고. 그만큼 무서운 통증이었다(위경련의 의미).

이건 위경련 “통증 스케일 10″이라는 숫자 이면에 있을 수 있는 하나의 의미있는 현상일 것이다.

고찰

구체적인 고찰까지 하기엔 여유가 없다. 다만, 이렇게 글을 써봄으로써 위경련 현상을 그 현상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본질적 요소의 차원으로 들여다보는 것을 연습해보았다 할 수 있겠다. 추후 조금 더 고찰해볼 수 있으면 그 때 추가하기로 해본다.

참고문헌

이남인(2005). 현상학과 질적연구: 응용현상학의 한 지평. 한길사

현상학적 질적연구를 한다면 이 학교 이름 정도는 알아야지! – 듀케인 대학교(Duquesne University)-

미국 펜실베니아의 피츠버그에는 미국의 유일한 성령수도회(Congregation of the Holy Spirit) 소속 교육기관인 듀케인 대학교가 있습니다.

만약 현상학적 체험연구(질적연구)에 관심이 있다면, 이 대학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

경험과학을 하는 학계에서 현상학을 수용하여 탐구할 때 방법론적으로 많이 따르는 학자인 반 캄(van Kaam), 지오르지(Giorigi), 콜라지(Colaizzi)가 모두 이 듀케인 학교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반 캄과 지오르지는 심리학의 “듀케인 학파”의 창립 멤버였고, 이곳에서 “심리학을 위한 현상학적 방법”을 공식화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Adrian van Kaam (반 캄)

1920년도에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반캄은 가톨릭 사제이며, 성령수도회(Congregation of the Holy Spirit) 소속이자 신학교의 교수였습니다. 그러다 반캄은 미국 피츠버그의 성령수도회 소속 교육기관인 듀케인 대학교에 1954년에 파견이 되었는데, 신학(영성 형성)을 가르치기 위한 것인 줄 알았으나 도착하고보니 총장이 그에게 심리학과를 맡아달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심리학 경험이 없던 그는 이에 따라 미국 전역을 다니며 칼 로저스(Carl Rogers)와 에릭 에릭슨에게 심리학(Erik Erikson)을 배우고, 따뜻한 교제를 나누었으나

Karl Rogers
Person-Centered Approach,
인본주의&윤리적 심리학

Erik Erikson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

그들의 접근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독일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영어에 능통했던 반캄은 당시 영어로 충분히 번역되지 않았던 현상학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이해 받는다는 경험”에 대한 탐색을 통해 현상학을 적용하였고, 이것으로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게 됩니다.

KAAM, A. L. (1959). Phenomenal analysis: Exemplified by a study of the experience of” really feeling understood”. Journal of Individual Psychology15(1), 66.
이 논문은 데이터베이스 “https://www.proquest.com/” 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연구로 인하여 반캄은 현상학을 심리학에 명시적으로 연결시켜 발전시키기 시작한 첫번째 연구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의 문헌에서 후설의 이름은 단 한 차례만 거명되고 있다고 하네요.

Amedeo Giorgi (지오르지)

Amedeo Giorgi

여전히 현역 교수로 샌프란시스코의 세이브룩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지오르지는 포드햄 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맨해튼 칼리지와 듀케인 대학교에서 처음으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원래 양적 연구방법을 토대로 하는 정신물리학의 전문가였으나,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그는 주류 심리학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면서 대안적 방식으로 철학적 현상학을 채택하였고 현상학적 심리학의 영역을 개척했습니다. 반캄과 함께 심리학의 “듀케인 학파”를 창립하였으며, 한편 그는 반캄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후설의 현상학을 언급하고 그 근본정신을 살려나간 학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여전히 심리학에 대한 현상학적 접근의 가치를 입증하는 논문을 계속해서 작성하고 있으며 칼 로저스(Karl Rogers)와 프리츠 펄스(Friedrich (Frederick) Salomon Perls, 게슈탈트 요법)와 같은 저명한 선구자들과 함께 인본주의 심리학 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Paul Francis Colaizzi (콜레지)

지오르지의 제자인 콜레지는 듀케인 대학에서 심리학&철학의 학사&석사, 현상학적 심리학에 대한 박사를 받았으며, 이러한 연구를 종합해서 1973년에는 “심리학에서의 반성과 연구: 배움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라는 저서를 출간했습니다.

Colaizzi의 “Reflection and research in psychology”는 대학교 도서관에서 대출 가능합니다.

이 저서는 반캄의 방법이 지닌 한계를 보완하여 배움이라는 현상에 대한 경험적 심리학적 연구 수행 결과를 보여주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절차가 다소 복잡하여 이 연구보다는 1978년에 발표한 논문에서의 방법이 주요 수용되어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Colaizzi, P. F. (1978). Psychological research as the phenomenologist views it. – 그런데 원문을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는 못찾았습니다). 콜레지 선생님은 2010년에 72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네요.

정리

미국에서 심리학적 현상학이 붐을 일으켰고, 이것이 간호학에까지 흘러올 수 있었던 것(참고: 간호학이 현상학을 만났을 때)은 네덜란드 신학자이자 다국어에 능통했던 반캄 신부가 듀케인 대학교로 오게 된 것이 중요한 계기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겠습니다.

펜실베니아에는 듀케인 대학교가 있습니다.

Reference

Adrian van Kaam – Wikipedia

DanielBurstonPh.D. (2008) Adrian van Kaam, (1920–2007), , 36:1, 90-91,
DOI: 10.1080/08873260701829225

Amedeo Giorgi, PhD – University Professors Press

이남인(2005), 현상학과 질적연구, 한길사

간호학의 현상학적 연구 현황에 대하여(논문 리뷰)

질병 체험에 대한 간호 현상학적 탐구 현황을 분석하여 한글로 발행된 논문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발행된 지 6년 정도 경과하긴 하였지만 이런 리뷰 연구가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다(감사합니다. 고문희 교수님).

본 연구의 저자는 대부분의 간호학 관련 저널을 포함하고 있는 데이터베이스인 CINAHL full text를 활용하여, 2006년 1월부터 10년간 ‘현상학(phenomeno*)’ 및 ‘체험(lived experience)’을 주제어로 하여 문헌 검색을 하였고, 그 결과 질병 체험 연구는 121편으로 확인되었다. 이 질병체험은 1)투병 당사자의 경험, 2)돌봄 제공자의 경험, 3)의료인의 경험, 4)제 3자의 경험 등으로 분류되었고, 저자는 이 중 투병 당사자의 직접적 질병체험이 다뤄진 62편을 분석하였다.

간호학의 현상학적 질병 체험 연구 동향 분석 결과

1. 탐구된 체험의 질병 유형으로는 만성질환이 가장 많았다.

이는 만성질환의 탐구 현상의 범위가 넓고,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러다보니 연구 참여자에 대한 접근성이 높기 때문일 것으로 해석되었다.

2. 자료 수집 방법

주요 자료수집 방법은 목적 표집 모집, 반구조화 심층면담, 녹음 및 필사로 확인되었다.

3. 연구 참여자 수는 8명 전후가 가장 많았다(최소-최대: 3-20).

저자는 샘플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력, 즉 많은 정보보다는 한 사람의 적절하고 풍부한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분석한 문헌 중 샘플이 ‘포화’되었음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포화’라는 개념은 근거이론 연구에 합당하므로 현상학적 연구에서는 신중하게 사용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하였다.

4. 연구 접근 방법

연구 접근 방법은 van Manen(17편) > Smith의 IPA(10편) > Giorgi(5편)=Colaizzi(5편) 순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여러 학자를 혼합하여 사용하거나, 특정 지침 없이 ‘하이데거 버전의 현상학’ 등으로 제시된 경우도 있었다.

5. 연구 접근 방법에 따른 철학적 기반

철학적 기반에 대한 분석 결과, 연구 접근 방법에 따른 일관된 철학적 전통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van Manen을 활용한 경우는 주로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전통을 주요 기반으로 제시하였고, Giorgi의 경우 후설, Colaizzi의 경우 후설과 하이데거를 제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어떠한 철학적 배경도 제시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으며, 철학적 기반을 제시한 수준 또한 차이가 컸다.

6. 연구 진실성(엄밀성)

연구 진실성 확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으며, 가장 많이 제시된 것은 Lincoln과 Guba의 기준(7편)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 기준이 실제로 현상학적 연구의 기준으로 개발된 것이 아니므로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제언하였다. (예를 들어 후기 실증주의자의 경우에는 삼각검증, 참여자 확인, 감사 등의 체계적 방법 선택 / 구성주의적 입장이라면 오랜기간의 관여, 심층적이고 풍부한 기술 / 비판적 관점이라면 성찰 및 동료 검증 등을 고려할 수 있다).

한편, 현상학적 환원을 언급한 경우는 11편이었으며, 다양한 목적과 수준으로 제시되었다. ‘환원’에 대한 이의가 있는 경우에서 환원 대신 ‘해석학적 반성’을 방법으로 채택한 경우도 있었다.

7. 제한점

저자는 본 연구의 제한점으로, 질병 체험의 본질적 주제 및 사실적 구조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보고되었는지는 분석하지 못했고, 상호주관적 체험이 어떻게 드러났는지도 탐색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상학적 연구의 전반적인 동향을 분석하여 간호학의 현상학적 탐구의 현황 및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줄 정리를 해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게 간호학자들이 현상학적 연구에 진지하고 충직하게 헌신하는것은 돌봄 대상자들의 고통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아름다운 의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된다.(…)  돌봄 제공 전문직의 여러 분야에서 현상학적 접근의 연구가 증가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어렵지만, 현상학의 근본이념과 뿌리를 알고자 하는 치열한 노력을 통해 간호학에서의 현상학에 대한 오해와 오류의 덩굴을 정리해가야 할 것이다(고문희).

참고문헌

고문희. (2018). 질병체험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의 현황. 대한질적연구학회지, 3, 20-30.

방광요도재활실 간호사

간호사가 된지는 올해로 10년차, 그 중 소아비뇨의학과 간호사로 살아온 지는 8년차, 그 중 방광요도재활실 간호사로 역할을 한지는 5년차이다. 나의 성향과 강점 그리고 약점이 있는 그대로 인정되고 존중되는 문화에 속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겐 매우 큰 축복이었다. 수술실을 그만두고 퇴사하려고 하였을 때 붙들어주시고 소아비뇨의학과 임상전담간호사를 적극 권해주신 이윤아 파트장님(현 수술간호팀장)과 김경애 팀장님께 감사하다.

매너리즘

‘매너리즘’이라는 단어는 아마도 소아비뇨의학과에 속한 모든 의료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단어가 아닐까. 잊을만 할 때쯤 한번씩 한상원 교수님께서 언급하시는 ‘매너리즘’이라는 단어는 ‘언급’이라는 중립적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가볍고, ‘분노’라는 단어가 오히려 더 적절할 것이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한상원 교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태도는 매너리즘과 게으름이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이라 그 분노가 지극히 적절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 교수님의 꾸지람을 오롯이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이유는 나름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수님으로부터 나의 행동과 태도가 조직구성원의 기본자세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지 꾸짓으시는 ‘전체’메일이나 장문의 카톡을 받았던 많은 순간들이 기억난다. 온몸이 화끈거리게 되는 그 민망함과 억울함을 나는 그냥 삼키지 못하고 교수님께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을 하고 넘어가야만 했는데, 그만큼 난 당당했으며 무너진 자존감을 다시 높이지 않고서는 더 일을 할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교수님 눈에는 ‘새로운 발전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 이 순간’이 게으른 순간이었고 주어진 일만 하고 있는 것(주어진 일만 잘하는 것도 칭찬받아야 할 것 같은데)은 근무 태만 이었다. 수년의 시간이 걸려 그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난 억울하다” 고 젊은 간호사가 반항 아닌 반항을 할때마다 당신의 의도를 말씀해주시면서 마음을 풀어 주셨기에 가능했던것 같다(하지만 여전히 가끔씩..). 한상원 교수님께서는 물은 계속 흘러야하고, 그 자리에 익숙해지는 순간 퇴보의 길을 걷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계셨다. 당신이 그렇게 살아오셨다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알 수 있었기에 그 신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나에게도 어느 순간 ‘매너리즘’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뭔가에 익숙해질 때 쯤은 누가 말하지 않는데도 듣고 있는 것 같이 새로운 부담감이 올라온다. ‘이대로 괜찮을까?’ 라는 부담감. 가끔씩은 떼어버리고 싶은 목소리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소아방광요도재활실의 발자취를 생각할 때 떼어버릴 수가 없는게 그 부담감이다. 그래서 매너리즘이 나를 유혹할 때마다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애쓰는 시간을 살고 있다.

권한과 책임

우리 소아비뇨의학과는 간호사의 성장을 위해 투자하고, 간호사의 능력을 인정하고, 간호사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과이다. 국내 외 학회 참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학술 논문을 쓰도록 독려하며 각자 영역의 전문성을 인정한다. 나 또한 방광요도재활실에서 배뇨 치료와 상담을 주체적으로 진행하고 있고, 나의 판단은 존중받는다. 심지어 조직 구성원도 좋다. 서로의 업무 영역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지원해준다. 꿈의 직장이라고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당연히 그만큼의 책임이 필요하다.

최은경 교수님과 신상희 선생님은 나에게 중요한 롤모델이시다. 최은경선생님이 교수님으로 임용되시기 전에 배뇨치료전담간호사로서 어떻게 방광요도재활실에서 일하셨는지를 직접 보고서도 내가 선뜻 그 자리를 채워보겠다고한 것은 용기였을까, 교만이었을까. 교만에 더 가깝다는 것은 근무하고 오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진료에 필요한 검사와 상담, 그리고 배뇨 치료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그냥 마땅히 해야할 기본 중에 기본이었다. 그 가운데서 환자와 보호자의 요구에 세심하게 기울이고 이에 대해 의료진으로써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실천해 내는 것이 중요한 자세였고, 그 가운데 나의 전문성을 획득하고 믿을만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성장하는 것도, 또한 동료 간호사들에게 인정받는 리더십이 되는 것도 내게 주어진 과제였다.

최은경 교수님은 방광요도재활실 실무에 계실 때 이분척추증 환자의 도뇨관 급여화를 위해 직접뛰셨고, 배변 문제와 관련해 역행성 관장을 도입하시고 이러한 배변 관리의 효과에 대해 논문도 쓰셨다.성인이 된 환자들이 당면한 고충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이분척추증 환자의 성기능과 관련된 연구도 진행하셨다. 그리고 실무를 떠나서도 이분척추증환자의 자가관리와 삶의 질 등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를 진행 중이시다. 연구주제를 보면 환자를 향한 마음을 알 수가 있는데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면 이렇게까지 하실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그렇게 마음을 다해 열심히 사시는 모습을 직접 보니 그분을 존경할 수 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나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 처음에 방광요도재활실 근무를 시작하면서 매주 UDS conference 시간에 자유 주제로 공부를 한 후 발표를 하라는 과제가 떨어졌다. 밑천이 없는 나의 수준을 직면하게 되는 무서운 시간이었다. 가뜩이나 작아질 때, 나보다 방광요도재활실을 오래 다닌 환자와 보호자의 눈빛에서 ‘저 사람 믿을 수 있어?’ 라는 마음이 느껴질때마다 ‘시간이 약 일거야.’라고 세뇌하며 버티기도 했다. 이분척추증 환자 중 몇명이 계속 병원내원을 미루다 결국 응급실로 왔을 때는 “방광요도재활실이 있는데 이런 추적 손실이 말이 되나?”라는 지적을 들었고, 필요한 검사를 제때 받지 못했던 것이 확인되면 “진료실에서 거르지 못하는 게 있더라도 방광요도재활실이 거르고 필요한 것은 진료실에 이야기 해야지!” 라는 꾸중을 들었다. 그러다 뭔가 해보겠다고 이야기를 하면 “선배들이랑은 상의는 해보고 하는 말인가?” 라며 기를 누르기도 하셨다(실제로 상의를 해볼 생각도 못했었기에 할말은 없었다). 돌아보니 이러한 죄책감, 황당함, 자괴감의 시간을 통해 방광요도재활실의 책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던것 같다. 그리고 선배님들이 해오셨던 것 같이 임상 경험을 정리하고 새로운 지견을 발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업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문제는 나에게 ‘연구력’이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였다. 그래서 아동간호 석사과정을 마쳤고, 지금은 임상에서 적용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 시간 동안 신상희 선생님이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셨다. 신상희 선생님은 내게 ‘존경하는 선배님’이자 대학원과 임신, 출산, 육아를 함께한 ‘동지’ 같은 존재이다. 매사에 임하시는 자세와 생각에 본을 보이셨고, 후배인 나를 진심으로 믿고 밀어 주시는 정신적 지주셨다. 그래서 함께 일할 때 즐겁고 시너지가 나는 느낌을 받는다. 선생님의 리더십을 다시 가까이서 보고 느낄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책임감을 갖는게 책임이었을까.책임감이 당연해졌을 때 즈음, 환자와 보호자로부터 인정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권한과 책임을 누리며 하루하루 조금씩 성장해 온 것 같다.

배움과 적용

방광요도재활실에서 배뇨 치료 전담간호사로서의 역할을 시작한지 6개월차에 들어섰을 때, 어린이병원의 지원을 받아 벨기에의 Ghent university hospital에서 연수를 받을 기회가 주어졌다(2015년 10월 19일-30일). 수년 전에 연수를 다녀오신 김명진 선생님께서 Prof. Dr. Piet Hoebeke에게 의뢰 메일을 보내주셨고, 20년 가까이 배뇨 치료에 몸담아 오신 Catherine과 연결이되었다. 비 신경인성 배뇨장애 전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던 기회였다.

진료실 한개 사이즈의 Urogym이라는 이름의 배뇨치료실에는 하루 최대 6명 환자의 치료가 이루어졌다(바이오피드백, 야뇨경보기 상담, 텐스 상담 등). Urogym 2개 사이에는 요속검사실이 있어 공유되었다. 바이오피드백은 보통 1회차(시작)와 8회차(평가)에 진행이 되었고, 중간 6회는 거주지 근처로 의뢰가 되었다. 바이오피드백치료를 시행할 수 있는 배뇨치료사들이 전국 곳곳에 있어서 의뢰가 가능하다라는 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Voiding School은 4주 프로그램으로 진행이 되는데 1주차에는 입원하여 하루 2번씩 바이오피드백이 진행되았다. 입원기간동안 놀이치료도 진행이 되었는데 소아정신과 의사의 소아 배뇨장애에 대한 깊은 이해도와 배뇨장애를 직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놀이치료 자료들이 인상적이었다. 2-3주차에는 집에서 배뇨치료를 실천하는 숙제를 한 후 4주차에 다시 1주일간 입원하여 배뇨 상태 평가가 이루어졌다.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비신경인성 방광 문제를 가진 아동 및 보호자 교육 프로그램이 열렸고 catherine이 교육을 주관하였다. 일년에 2번, 일주일간의 캠프가 진행되는데 실제 상황에서의 배뇨, 식이 습관들을 관찰하고 매번 UF를 하면서 치료적인 중재도 이루어진다고 했다.TENS나 야뇨경보기는 업체에서 대여를 받아 집에서 치료를 할 수가 있었고 이러한 옵션이 있는 환경이 부러웠다. 우리 기관에서 UDS conference를 진행하는 것 같이 비뇨기과, 신장과 의사 및 배뇨치료사가 일주일에 한번씩 컨퍼런스가 진행되었는데 나를 배려해준다고 영어로 논의를 진행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이 연수 후 다양한 자극을 받을 수 있었고, 우리 기관이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나에게 이렇게 투자를 해준 어린이병원과 소아비뇨의학과, 빈자리를 메꾸느라 고생을 한 모든 과원들을 생각할 때, 내가 이곳에서 의미 있는 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이곳을 떠날 수 없겠다 다짐하기도 했다.

과에서 학회 참석을 강력하고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지원하는 덕에 국내 학회(대한비뇨기과학회, 소아비뇨기과학회, 소아배뇨장애야뇨증 학회 등)는 적어도 2-3군데씩 참석을 해왔고, 해외 학회 또한 1-2년에 한번씩은 참석을 해왔던 것 같다. 다양한 학회 중 ESPU 학회가 특히 나에게는 영감을 주는 학회인데, ESPUN을 통해 소아배뇨장애를 전담으로 맡아서 일하고 연구하는 간호사와 물리치료사가 한자리에 모여 논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녀올 때마다 ‘언젠가는 나도 좌장이 되어 보고 싶다.’ 라는 큰 꿈을 한번씩 꾸고 돌아왔던 것 같은데 그 마음이 일터로 돌아와바쁘게 일하다 보면 도통 오래 유지 되지 않아, 이런 차원에서 주기적인 학회 참석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연구활동-

처음의 초록 발표는 최은경 교수님의 연구를 대신 발표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APAPU와 ESPU에서 발표를 했었는데, 나의초록이 아닌 최은경 선생님의 초록을 대신 발표한다는 것이 감사하면서도 민망했다. 방광요도재활실에서 본격적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초록 발표는 이제 주어진 과업처럼 여기게 되었는데 뭐부터 해야할까 고민하다 임영재 교수님이 한참 전에 배뇨장애 환자의 CPSQ 데이터 분석에 대해 제안 해주셨던 것을 기억하여 시작했다. 최근에 방광요도재활실에서 주로 신경인성방광에 대한 연구만 나왔던 것 같아 선택한 영역이기도 하다.

Ji, Y. (2016. July) Study on emotional, behavioral problem ofchildren with enuresis by child problem-behavior screening questionnaire(CPSQ).ICCS, Kyoto, Japan.
Ji, Y. (2018. April) Study on enuresis in children with clinicallysignificant emotional and behavioral problems. 29th European Societyfor Paediatric Urology, Helsinki, Finland.

소아방광요도재활실 20주년을 맞이하며 바이오피드백 경험을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환자의 범주가 너무 넓어서 방광요관역류가 동반되었던 케이스만 선택하여 18년 경험을 분석하여 발표하였다.

Ji, Y. (2019. April) EFFECTS OF BIOFEEDBACK THERAPY FOR CHILDRENWITH VESICOURETERAL REFLUX: A 18-YEAR EXPERIENCE. 30th EuropeanSociety for Paediatric Urology, Lyon, France.

2016년에 발표한 초록은 2019년이돼서야 submit이라는 작업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revision 후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2018년, 2019년에 발표한초록들도 세상에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정리 되는 대로 하나씩 마무리 하고 싶다.

소아방광요도재활실 20년사를 정리하다 보니, 방광요도재활실의 일들이 잘 기록되어 전달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진행했던 일들도 비록 별게 아닐지라도 언젠가 참고가 될만한 자료로 사용될 수도 있기에 간략하게 정리하여 남긴다. 모든 업무는 방광요도재활실 간호사들과 함께 하였다.

-설문지-

1) 배뇨배변증상설문지 개정: 2016년 5월, ICCS terminology에 들어있는 storage symptom, voiding symptom 및 기타 증상과 배뇨 자세를 모두 포함하고, ROME III criteria를 반영시킨 배뇨배변증상설문지로 업데이트 하였다.

2) 소아비뇨기과 성기능 평가 설문지 제정: 2017년7월, 남성 성기능 평가 설문지(IIEF, PEDT 및 음경의 감각, 요실금, 라텍스 알러지 유무 등의 증상을 평가하도록 문항 구성) 및 여성성기능 설문지(FSFI 및 요실금, 라텍스 알러지 유무 등의 증상을 평가하도록 문항 구성)를 구성하여 만든 후 EMR 서식을 제정하였다.

3) 배변 증상 설문지(배뇨 훈련 전 아동 대상) 제정: 2019년 4월, 배변 훈련을 마치기 전 아동의 배변 증상을 ROME IV criteria 에맞게 평가할 수 있도록 서식을 만들었다.

-교육자료-

1) 이분척추증 환자를 위한 성교육 리플렛: 2015년4월, 이분척추증 환자의 성기능에 대하여 UDS conference 시간에 발표를 한 후 자료를 종합하여 리플렛을 만들어 성상담시 활용하기 시작했다.

2) 이분척추증클리닉 리플렛 개정: 2016년 12월, 이분척추증클리닉의 리플렛을 개정하며 내용을 업데이트 하고, 이분척추증클리닉의 목표 및 생애 주기에 따른 발달과업을 추가하여 제작하였다.

3) 요속/근전도/잔뇨검사리플렛: 2017년 12월,환자만족도 조사에서 ‘검사 및 대기시간에 대한 설명 부족에 대한 불만’이 확인되어 리플렛을 만들어 검사에 대한 설명 및 검사 대기 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4) 배뇨 치료 교육자료 게시:2015년, 검사 및 상담을 위해 방광요도재활실에 들어온 환자 및 보호자에게 정보를 빠르게 전달할 목적으로 교육자료를 만들었고(야뇨경보기, 배뇨 알람, 건푸룬, 크랜베리, 만노즈-D 등) 최근에는 디지터액자에 담아 상담테이블에서도 볼 수 있도록 비치하였다.

5) 표준배뇨치료 “규칙적 수분섭취 및 배뇨 프로그램”: 2017년 7월, 김상운교수님께서 모든 표준배뇨치료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규칙적인 수분섭취와 배뇨를 강조하지만 구체적인 가이드는 없다는 것을 지적하셔서 Emma Derbyshire PhD, R., Hydration for children. Natural hydrationcouncil, 2013 에 따라 아동에게 필요한 수분섭취량을 계산하고, 아이들의 기대방광용적을감안한 6주차 hydration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6) 블로그: 2017년 11월, 어린이병원의 지원을 받아 업체를 선정하여 소아비뇨의학과 블로그개설 작업이 시작되었고 블로그는 5개월이 걸려 완성되었다. 업체와의 계약 종료 후에는 미리 받아 둔 기본적인 디자인서식을 활용하여 소아비뇨의학과 자료를 업데이트 하고 있으며 교수님들의 활발한 Q&A도 진행중이다.

-장비도입

2019년에 들어서 바이오피드백 장비 신설을 추진하게 되었다. 한상원 교수님께서 알아보라고 하셔서 찾아보게 되었는데, 기존에 해오던 방식과 달리 옷을 입은 상태로 체외에서 골반근육의 수축 이완정도를 감지하여 실시간 디스플레이 하는 시스템이었다.게다가 국내에서 개발되었고 로컬병원에 이미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현재 우리 기관에서는애니메이션 바이오피드백을 시행 중인데 같은 프로그램을 하는 병원 자체가 많지 않은 실정 인지라 잘만 활용하면 지방에 있는 환자도 회송을 하여 치료를받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겐트 병원에서 본 시스템처럼 일차적으로 우리 병원에서 교육하고 6-8주 가량 로컬에서 치료를 받다가 다시 내원하여 평가하는 체계를 구축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개인적으로 기대가많이 되었다. 그런데 바이오피드백 건수만 가지고 자꾸 보류되면서 전화로 계속 타당성 이야기를 하니 참다참다 “우리 소아비뇨기과가 국내외적으로 위상이 높은 만큼 좋은 장비는 도입할 건 도입 하고, 집이 멀어 치료받지 못하던 환자에게 치료 기회를 줄 방도도 찾으려고 하는데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에요? “ 라고 짜증을 냈다. 그런데 “그건과 입장이고, 병원 입장은 좀 다를 수 있어요.” 라고 말하는데진심으로 화가 났다. 돌아보니 내가 소아비뇨기과 사람이 다 되긴 한 것 같고, 사무직인 남편과 이야기해보니 병원에서 예산 관리하는 입장도 이해는 됐다. 우여곡절끝에 얼마전에 기자재 심의 승인을 받았고, 조만간 설치될 예정이다. 따지고짜증을 낸 만큼 잘 활용하여 우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텐스(TENS)는 국제적으로 소아 과민성방광 치료에 사용되는 치료법 중 하나인데 우리나라에 이에 대한 처방 및 수가가 딱히 없어 수가를 생성하여 소아 환자들의 치료 옵션을 늘여주는데 기여해보고 싶었다. 장비는 재활의학과에서 사용하는 장비를 활용하여 몇가지 파라미터만 바꾸면 충분히 사용 가능했지만, 한국에서 현재 허가받은 텐스 장비의 목적에 과민성방광 치료는 포함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수가를 그대로 사용할 수도 없었다. 보험심사팀의 자문을 얻어 신의료기술허가 절차를 받으려고 한참 걸려 논문도 정리하고 자료도 만들어서 심평원에 제출했는데, 결국 과민성 방광으로 허가받은 텐스 기계를 다시 들여오거나 현재 한국에 들어온 기계로 새로 임상을 해서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좌절했다. 전자고 후자고 수지가 안맞아 같이 애써줄 업체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환경개선

2016년 2월, 어린이병원전반에 리모델링이 진행되고 방광요도재활실 옆에 독립적으로 요역동학검사실이 마련되면서 방광요도재활실 내의 구조 배치 변경 및 환경개선작업을 진행하게되었다. 당시 문제점으로 검사, 상담, 치료 공간이 분리되지 않고 혼재되어 있다는 점과 잔뇨초음파 침대에 가림막이 없다는 것, 환아 친화적이지 않은 분위기 등을 제안하였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치료 구역을 분리하고, 팻말로 각 구역을 표시하고, 잔뇨초음파 침대에 커튼을 설치하였다. 환아 친화적 분위기를 만들어보기 위해 내부에 분홍색, 하늘색 등으로 페인트칠을 하려다가 한상원 교수님의 황당하다는 눈빛을 보고 바로 포기하고 실크 벽지를 선택 했었던기억이 난다. 실크 벽지에 인테리어 스티커가 잘 부착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아동 친화적인 분위기는 남겨진 숙제 중 하나이다.

– 환자 리스트 정리

1) 이분척추증 환자 리스트

1000명이 넘는 환자의 추적 손실을 막고 제때 진료를 볼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매번 외래 진료 기록을 열어보고 안오는 환자를 챙기면 될까? 예약을 그냥 취소해버린 환자들은 어떻게 할까? 특별히 챙겨야 할 환자군을 따로 모아야 할까?
이분척추증환자의 f/u loss 를 막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내게 사명같이 다가왔다. 일단 인계되어오던 환자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환자는 없는지 샅샅이 뒤진 후 환자 명단을 최대한 완벽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환자의 진단명과 fu 현황을 쭉 조사한 후 f/u loss 가 된 환자들에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병원 온지 너무 오래 된 경우에는 연락하기가 주저되어 문자만 남겼었다. 그런데 병원을 한참 안오다 응급실로 오게 되는 경우를 보고서는, 방광기능에 주의를 요했던 경우는 용기를 내서 전화를 해서 상담을 하고 예약을 잡아주기 시작했다. 모든 리스트 환자의 fu 상태를 점검하고 연락을 돌리는것은 1년의 과업이다. 이런 수작업을 뛰어넘는 전산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2)관심환자

임상에서 근무하다보면 나중에 한번씩은 꼭 기억나서 찾아보고 싶은 흥미로운 케이스들이 많다. 가끔식 컨퍼런스 때 “그때 그, 요속이 낮아서 확장을 했던 여자아이가 누구였죠?”, 혹은 “오그멘테이션 하고 임신을 한 케이스가 누구였죠?” 등의 질문을 들었을 때 바로 그 케이스를 찾아서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EMR의 ‘부서별 관심환자 리스트’를 활용하여 정리하기 시작했다. 교수님과 부서원에게 이렇게 관심환자 리스트를 만들어 놓았다고 공유한지 오래되었지만 아직 나의 레이더망에 들어오는 환자들 위주로 업데이트 되고 있기는 하다.

나의 직무가 다른 이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희망이 될수 있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도 축복이다. 환자나 보호자분들이 방광요도재활실에 들어오셔서 “이곳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선생님이 계셔서 정말 좋아요.” 라는 말씀을 용기 내어 해주실 때마다 큰 힘을 얻게 되고, 나의 마음가짐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곳일 수도 있는데, 나는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가. 육아라는 중요한 삶의 책임이 하나 더 생긴 이후 병원과 가정에서의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했다. 나의 역량이 내가 알고있었던 것보다 많이 부족함을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이곳을 세우시고, 지켜오신 많은 선생님들의 셀 수 없는 노력과, 주변에서 힘이 되어주는 동료 선생님들을 기억하며 좀 더 단단해지고 싶다.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동료들을 모두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의미 있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소망한다.

(2019.08.14. 페이스북 기록물. 방재실 20년사에 실릴 원고를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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