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설. 논리연구. 2절. 규범적 분과의 기초로서 이론적 분과

후설의 논리연구 1권의 2절을 정리하며 공부하였다.

13. 논리학의 실천적 성격에 관한 논쟁

앞서 논의한 것과 같이 논리학은 실천적 성격을 띈 기술학이라고 정당화 되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 논리학의 기술적 성격에 대해 부인하는 입장이 주목을 받았는데, 특히 칸트는 우리가 올바로 *오성을 사용하는 것을 규제하는 임무를 맡은 응용논리학에 대해 이야기 했다.

  • *(칸트의) 오성: 감성 및 이성 다른 두 능력에 대비하여 대상을 구성하는 개념 작용의 능력인 지력 –> ‘오성으로부터 개념이 생긴다.’

여기서 응용논리학은 오성(개념 작용 능력)을 사용하는 방식을 치유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칸트는 이렇게 응용논리학을 한정하고 제한함으로써 완전한 독립학문으로, 순수이론적 학문으로 현존시켰다.

결국 두 가지의 입장이 대치되게 된다.

  • 기술학으로 파악된 모든 논리학은 고유한 이론적 학문, 즉 ‘순수논리학’을 기초로 한다 (칸트, 헤르바르트, 베인, 드로비슈 등).
  • 논리적 기술학 속에서 확인되는 모든 이론적 학설은 타 학문에 포함된다. 즉 그 자체적으로 근거하는 고유의 이론은 없다 (베네케, 밀, 지그바르트 등)

이 두 가지의 입장은 모두 논리학의 실천적 성격에 위배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무엇이 맞는가에 대한 논쟁은 무의미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앞서 논의하였듯이 “정의”에 대한 논쟁은 학문 자체에 대한 논쟁이며, 그러한 논쟁이 있음은 그 학문이 아직 불확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14. 규범적 학문의 개념. 규범적 학문에 통일성을 주는 근본척도 또는 원리

잠시 규범적 학문이란 무엇인지 따져보자.

규범이란 실재로 그것이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할 수 없더라도,’마땅히 존재해야 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땅히 존재해야 할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를 위해 우린 여러 종류의 규범적 명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너는 내 말에 따라야만 한다’, ‘군인은 용감해야만 한다’, ‘인간은 이웃을 사랑해야만 한다’ 등등). 이 규범적 명제에서는 어떤 부류의 대상에 대해 일정한 의미에서 ‘좋은'(가치 있는) 또는 ‘나쁜'(무가치한)의 개념이 생기는 가치 태도를 전제한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 태도에서 우리는 ‘더 좋은’과 ‘가장 좋은’, 그리고 ‘더 나쁜’과 ‘가장 나쁜’ 등을 구별하며 무엇이 그러한 가치를 표현하는 술어에 대해 더 가까운 조건이고, 먼 조건인지, 혹은 필요조건이고 충분조건인지 등을 따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그 가치를 최대로 충족시킬 것을 요구하는 규범적 명제를 가질 수 있는데, 이를 우리는 근본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들어 칸트 윤리학의 ‘정언명법’, 혹은 공리주의자의 윤리학에서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등이 이에 해당 된다. 이 때 이 근본 규범은 어떤 것이 규범화 되어야 하는지를 지시해줄 뿐, 어떤 규범적 명제도 서술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때 이 근본 규범의 총체를 학문적으로 규명하는 목표를 세운다면, 그것은 규범적 분과의 이념이 생긴다.

즉, 각각의 규범적 학문은 자신의 고유한 근본 규범을 갖고, 이 근본 규범은 그때그때 규범적 분과의 통일원리를 서술한다.

15. 규범적 분과와 기술학

특히 우리는 실재적 대상에 대한 가치평가에 관심이 있으므로, 규범적 분과의 개념을 기술학의 개념과 동일하게 간주하려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

모든 기술학은 규범적이라고 할 수는 있다. 왜냐하면 기술학은 근본 규범이 실천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의 특수한 경우를 서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학은 실천적이지 않은 분과 또한 포함한다. 왜냐하면 기술학의 과제는 실천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모든 목적을 다룬다기보다, 우선 실현할 수 있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규범을 확립하는데 더 좁은 과제가 해결되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반면, 기본적 가치태도가 그에 상응하는 목적으로 설정하는 것으로 변하는 모든 규범적 분과는 기술학으로 확장된다.

16. 규범적 분과의 기초인 이론적 분과

근본규범(또는 근본가치, 궁극적 목적)은, 이미 살펴보았듯이, 분과들의 통일을 규정한다. 또한 근본규범은 규범화하는 생각을 그 분과의 모든 규범적 명제로 갖고 들어온다. 그러나 근본규범에서 측정한다는 이러한 공통적 생각 이외에 이 규범적 명제는 다른 명제와 구별되는 고유한 이론적 내용을 갖는다. 각각의 규범적 명제는 규범(Norm)과 규범화된 것(Normiertes) 사이의 측정하는 관계에 대한 생각을 표현한다.

예를 들어 ‘A는 (마땅히) B이어야만 한다’는 형식의 모든 규범적 명제는 오직 ‘B인 A만이 C의 성질을 갖는다’는 이론적 명제를 포함한다.

  • YJi: 예를 들어 ‘간호는 전인적이어야 한다’는 명제는 ‘전인적인 간호만이 진정한 간호이다’라는 간호학의 이론적 명제를 포함하며, 여기서 ‘진정한 간호’라는 새로운 명제는 순수 이론적 명제이고, 어떤 규범화하는 판단도 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C자체에 대한 가치 태도가 생기면, 그에 따라 ‘오직 B인 A만이 좋은 것이다’, ‘A는 마땅히 B이어야만 한다.’는 규범적 형식을 받아들일수 있다.

  • YJi: 즉, ‘진정한 간호’라는 명제에 대한 가치태도가 생길 때 ‘간호는 전인적이어야 한다’는 명제를 규범적 형식에서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C의 존재는 규범적 학문의 명제 속에 끼워져 있는 이론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일정한 이론적 학문 속에서 논리적 자리를 가져가야만 한다.

따라서 규범적 학문이 자신의 명칭에 걸맞아야하면, 규범화할 수 있는 사태와 근본규범의 관계를 학문적으로 규명해야 하면, 규범적 학문은 이러한 관계의 이론적 핵심내용을 반드시 연구하고 그래서 관련된 이론적 학문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다. 즉 모든 규범적 분과는 어떤 규범도 아닌 진리에 대한 인식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규범적 학문의 본질적인 이론적 기초는 어떠해야 하는가?

Ref. Edmund Husserl(2018). 논리연구 1 (이종훈,역). 서울: 민음사. (원서출판 1900).

논리연구 1권 2절 감상평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 우리는 1절에서 논리학이 기술학임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 기술학인 논리학은 그만의 독립적인 이론적 기틀이 있는가? 아니면 다른 학문을 기틀로 하는가?
  • 앞서 논의하였듯이 논리학은 규범적이라 한 것을 짚어보면, 규범적인 학문은 가치평가를 함에 있어 고유한 근본규범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통일체를 이룬다. 따라서 그 근본규범은 일정한 이론적 체계 내에 있어야 한다.

뭐 이런 뜻인 것 같다. 누가 동화책같이 써둔 것은 없을까? 독해가 너무 어렵다..

후설. 논리연구. 1절. 규범적 분과 특히 실천적 분과로서의 논리학.

후설 당시, 논리학을 둘러싼 당대의 주요 경향은 다음과 같았다 (박승억).

  1. 논리학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경향 (심리학 주의)
  2. 논리학을 형식 학문으로만 보려는 경향
  3. 논리학을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경향

이러한 쟁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문의 경계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고, 이를 위해서 후설이 정리한 쟁점의 시작은 “논리학은 이론적인 분과인가, 실천적인 분과(기술론)인가?” 였다.

이에 따라 후설은 제 1절에서 규범적 분과 특히 실천적 분과로서의 논리학이라는 주제로 논지를 전개한다.

4. 개별 학문들이 이론적으로 불완전한 점

모든 개별 학문들은 이론적으로 불완전하다. 그 까닭은 각각의 학문들이 지금까지 발전되고 확장되어오긴 하였으나, 그 학문적 작업 행위의 궁극적 근거에 대한 통찰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모든 학문 가운데 가장 진보한 “수학” 조차도 고대 기하학의 기초 및 허수 둥의 정당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볼 때 그 학문의 궁극적 근거가 분명하다고 할 수 없다.

학문은 이런 결함에도 불구하고 발전하였고 그 결과 인간은 자연을 지배할 힘을 얻게 되었으나, 그 학문의 근거를 찾아들어가보면 이론적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5. 형이상학과 학문이론을 통해 개별학문들을 이론적으로 보충하는 것

이러한 학문의 궁극적 근거에 대한 통찰을 위해서는 형이상학의 영역에 속하는 부류의 연구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지금껏 크게 관심이 없어왔으나, 적어도 형이상학은 실재적 현실과 관련된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전제를 확정하고 검증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형이상학적 기초는 실재적 현실을 다루는 학문에는 관련이 될 수 있으나, 실재적 현실로부터 독립적인 순수 이념적 규정을 지닌 순수 수학적 학문과는 관련이 없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모든 학문에 동일한 방식으로 관계하는 “학문 일반을 학문으로 만드는”, 즉 “학문에 대한 학문”, “학문이론“이 필요하다.

6. 학문이론으로서의 논리학의 가능성과 그 정당화

그렇다면 학문이란 무엇인가?

학문은 수많은 개인이, 알고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외적으로 준비된 것들의 총체이다. 학문은 인간에게 앎을 가능하게 하고, 앎의 가능성을 제공해야만 한다.

그리고 인간은 앎에서 진리를 얻게 된다. 따라서 이 앎을 위해서는 명증성, 즉 우리가 인정한 것이 존재하고, 거부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쾌한 확실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명증성은 진리 자체를 직접 깨닫게 되는 것이지만, 우리는 대부분 진리에 대한 이런 절대적 인식이 없다. 그대신 우리는 다소간의 높은 사태의 개연성에 대한 명증성을 사용할 뿐이다. 즉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비교적 명증하고, 비교적 높은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학문적 인식은 명증성이 도달하는 그만큼 까지 앎이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앎의 모든 것을 학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수가 동일한 것을 경험하며 “앎”을 갖게 한다고 하여 그것을 학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학문은 이론적 의미에서의 체계적 연관을 요구하며, 이 연관에는 앎을 정초하는 것과, 그 정초에 필요한 질서를 세우는 것을 포함한다. 그 결과 학문은 가능한 한 완벽하게 최고의 이론적 목적에 상응하는 정도와 형식으로 앎을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체계적인 방법적 절차가 있을 때 앎이 학문이 되며 이에 따라 명증성이 생긴다.

한편, 그러다 보면 학문이 특정 사태를 본연의 방법적인 방식으로만 처리할 때 은폐되어 남아있는 진리나 개연성이 있을 수 있고, 이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보조적인 수단이 필요하게 된다. 즉, 학문이론, 즉 논리학이 필요하게 된다.

개별 학문들은 무수한 통찰과 경험이 축적된 이 방법적 보조수단을 사용함으로써, 그 학문의 처리방식을 검토하며 규범과 규칙을 수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7. 계속. 정초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특징 (독해가 안되는 꼭지..)

첫째, 정초는 그 내용과 관련해 확고한 구조를 가진다.

둘째, 우리는 정초를 즉시 알아차리며, 정초를 단번에 정당화하게끔 허용하는 일반적 법칙과 일정한 관계에 있다.

셋째, 정초의 형식은 인식의 영역에 있으며, 객체에 대한 정초가 변경되지는 않으나 학문의 영역에 따라 날카롭게 구분될 수 있다. 하지만 학문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정초의 형식은 존재한다. 인식의 영역은 제한되지만 모든 종류의 추론은 일반화되고, ‘순수하게 포착되어야 한다.

8.이러한 특징과 학문 및 학문이론의 가능성의 관계

정초가 없다면 학문이 존재할 수 없게 된다. 학문은 인식에서 인식으로 진보가 되며, 이미 실현된 정초에서 새로운 정초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초가 없다면, 앞서 주어진 명제를 증명하고 탐구하는 것이 전혀 의미가 없게 된다.

우리는 이것 또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능한 모든 그룹의 명제를 앞서 제시한 명제에 대한 전제로 사용할 수 있는지 철저히 검사해야 하지 않는가? 여기에서는 가장 영리한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보다 아무것도 더 갖고 있지 않으며, 가장 영리한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보다 도대체 본질적인 것을 더 많이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풍부한 상상, 광범위한 기억, 긴장된 주의력 등은 훌륭한 것이지만, 법칙적 형식으로 정초하고 고안해 내는 오직 사유하는 존재자의 경우에서만 그 지적 의미를 획득한다.

즉, 학문에 있어서는 요소 뿐 아니라 그것을 결합하는 형식이 재생산의 효력을 갖게 되며, 이러한 형식이 학문 고유의 예견하는 직관과 예언의 특성을 가능하게 한다.

개별 학문도 이럴진데, 범위가 넓은 “앎의 영역”에 관한 형식은 어떻겠는가? 우리는 1)모든 학문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학문이론과 2)개별과학의 이론과 방법에 관계하며 이를 보충하는 특별한 연구가 필요하다.

9.학문의 방법적 처리방식. 일부는 정초, 일부는 정초를 위한 보조작업.

정초를 위한 보조작업: 정초를 위해서는 명백한 기호를 써서 적절한 방식으로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 특히 “언어”는 생각을 표현하는데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는 기호체계이므로 학자(사상가)는 기술적으로 매우 조심스럽게 언어를 선택하고, 전문용어를 잘 정의해야 한다.

정초: 방법적인 처리방식은(계산처리, 별의 위치, 전기의 저항 등등) 정초의 연관을 통해 선정되며, 이 정초의 연관은 방법적인 절차가 맹목적으로 실행되더라도 객관적으로 타당함을 드러낸다.

10. 학문이론의 문제로서 이론과 학문의 이념

개별적 정초는 학문을 형성하지 않는다. 학문은 정초연관이 통일될 때 가능하며, 이러한 통일의 형식은 모든 학문이 추구해 노력하는 최고의 인식 목표를 달성하는데 사용된다.

결국, 학문이론은 이러저러한 성질의 체계적 통일체로서 학문을 다루게 된다. 이는 통일체를 형식에 따라 학문으로 성격 짓는 것, 이들 상호 간의 경계를 설정하는 것, 이들의 내적 분류를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본성이나 형식의 영역으로, 즉 상대적으로 완결된 이론으로 결정하는 것 등을 포함한다.

이에 따라 학문이론은 1)학문 속에 등장하는 앎의 방법을 다루는 과제 뿐만 아니라, 2)그 자체를 학문이라 부르는 것을 다루는 과제를 갖는다. 학문이론은 타당한 정초를 부당한 것으로부터 구별하고, 타당한 이론을 부당한 이론으로부터 구별한다.

11. 규범적 분과로서, 기술학으로서 논리학 또는 학문이론

결국, 이에 따르면 학문이론(논리학)은 규범적 분과라고 할 수 있다.

학문은 일정한 목표를 향하고 있으며 그 목표에 적합하게 판단되어야 하고, ‘학문의 참됨’과 ‘방법의 참됨’은 그것이 추구하는 목표의 적합성에 달려있다. 이 때 근본 규범이 목적이 된다면, 규범적 분과에서 기술학이 나오게 된다. 즉, 타당한 방법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에 대한 탐구, 진리를 찾는 방법적 규칙, 학문 경계의 설정과 규칙, 학문에서 촉진되는 방법을 고안하거나 적용하는 규칙 등을 세우면 학문 이론은 학문의 기술학이 된다.

12. 이와 관련된 논리학의 정의

논리학이 이와같이 기술학이라는 것과 관련된 정의는 다양하게 이루어져왔지만, 아직 더 상세하게 규정될 필요가 있다.

논리학을 학문적 인식의 기술학이라고 정의한 슐라이어마허 조차도 그의 정의에서 논리학의 목적이 “학문적 인식”임을 명백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고, 논리학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제시한 볼차노조차도 논리학을 학문적 교과서의 기술에 대한 보조수단 정도로만 제시하고 있다.

Ref. Edmund Husserl(2018). 논리연구 1 (이종훈,역). 서울: 민음사. (원서출판 1900).

논리연구 1절 감상평

그러니까..요약해보면, 학문은 정초에 정초에 정초를 거듭하며 구축이 되어가는 체계적 지식체이다. 이러한 학문 자체를 다루는 이론을 학문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앎의 방법을 다루는 것 뿐 아니라, 그 정초의 타당성도 분별해야 하는 과제를 갖는다. 즉 학문이론(논리학)은 규범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한 규칙 등을 세운다는 차원에서 기술학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렵다. 어렵다. 나의 낮은 문해력에 도전해가는 과정인 것 같다.

몇번이나 내가 지금 이걸 왜 읽고 있나 되돌아보게 된다. 두뇌 트레이닝의 과정…

혹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있으면 코멘트 부탁드립니다..꾸벅..

후설. 논리연구. 들어가는 말(연구의 필요성)

1. 논리학에 대한 정의와 그 학설의 본질적 내용에 관한 논쟁

논리학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정의는 쉽사리 내려지지 않았으나, 확실한 건 밀(J.S.Mill)이 흄의 연상심리학에 영향을 받아 귀납법적 논리학의 체계를 완성한 이래 논리학에서 “심리학적 경향”이 우세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학의 “형식적 경향”, “형이상학적 경향”또한 계속 전파되며, 논리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원리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2. 원리적 문제에 대한 논의를 갱신할 필요성

여러 사상가들이 논리학을 확실한 길로 이끌려고 하였으나 완전히 성공하지 못한 까닭은, 그들이 추구한 “목표”가 불분명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리고 어떤 학문의 “목표”는 그 학문의 “정의”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정의는 학문의 경계를 명백하게 포함해야 한다.불명확한 경계로 인하여 전혀 다른 분야가 혼합 되는 것은 위험하다.

이에 따라 저자는 본 연구를 통해 현대의 심리학에 기초한 논리학이 이러한 위험에 놓여있음과, 이로인하여 논리적 인식의 진보가 억제되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3.쟁점. 선택해 나아갈 길

현재 논의의 진영은 다음의 두 입장으로 정리된다.

  1. 논리학은 심리학에 독립적인 이론적 분과이며, 동시에 형식적이고 논증적인 분과이다.
  2. 논리학은 심리학에 종속적인 “기술학”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 두 개 사이의 논쟁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 논리학의 본질적 목적을 해명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하여

  1. 현재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2번 입장의 의미와 정당성을 확인하고,
  2. 모든 기술학의 중요한 기초를 형성하고, 순수한 논증적 학문의 특성을 지닌 이론적 학문을 선별해낼 것이다.

후설(Husserl) 공부하기 – 부제: 사태 그 자체로에서 후설 그 자체로의 환원.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후설에 대한 강의를 결재했다.

현상학적 방법론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데, 2차 문헌만 가지고 응용하는 것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뭐.. 꼭 현상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하여 남편 하나 이해시키지 못하는 게 한심스러워서만은 아니지만, 내가 남편 하나 설득 못시키면 누굴 설득시키겠는가..?

그래서 결국, “사태 그 자체” 에서 “후설 그 자체로” 환원했다.

일단 후설의 “논리연구”와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이라는 비교적 후설 초기 연구에 대한 박승억 교수님의 강의를 들어보기로 했다.

우선 표현 자체에 익숙해지자 싶어 후루룩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문득 문득 부상하는 정체성 혼란..

‘나는 어디에…? 나는 누구…?’

분명히 나의 시각과 청각은 강의를 지각하고 있을 터인데, 나의 의식만큼은 강의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는 수많은 순간들.. ‘나는 간호학자인가 철학자인가..?’, ‘순수 의식이 어떤 속성을 갖는지는 나와 무슨 상관인가??’, ‘다양체고 뭐시기고, 유클리드 기하학,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어쩌고..이게 다 뭐인교..’, ‘차라리 메를로-퐁티 강의를 들어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신체적 현상학적 관점이나 더 학습할걸 그랬나..’, ‘현상학자는 어쩌다 현상학자가 되는걸까?’ …………..’어? 강의 들어야지..!!!!!!!!!!!!!!!!!!!!!’

그래도 어찌저찌됐든 속도감 있게 한번 쭉 들어보니, 나의 위치 파악정도는 어렴풋하게 되긴 한다.

  • 후설은 모든 경험과학이 정초하기에 마땅하고 타당하고 온전한 기반이 되는 지식(철학)을 추구하며 그것을 현상학이라 칭하였고, 현상학이 탐구 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을 던졌다.
    • 그리고 그 이후에 수많은 현상학자들이 그 과제를 섬세하게 탐구해나가며 여전히 그 숙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즉, 경험과학이 정초하기에 마땅하고 타당하고 온전한 기반이 되는 지식을 찾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경험과학을 탐구하는 나와 같은 학자들은 1) 현상학의 지식 찾기 방법론을 수용하여 각각의 경험과학을 더 엄밀하게 탐구하고 있는 것과 동시에, 2) 현상학에 기반을 둔 경험과학을 세움으로써 더 엄밀한 지식체를 만들고자 하고 있다.

즉,

  • 나는 내가 간호학을 어디에 정초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 간호 현상을 탐구하기 위해 현상학의 방법론에도 익숙해야 한다.
  • 그러면서 그 현상학이라는 토대 위에 간호지식체를 세워가는 일을 해야 한다.

이건 그냥 어렴풋이만 그려봐도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다.

요즘 간호학을 포함하여 수많은 경험과학들은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뒤쳐지지 않도록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AI, 빅데이터 등을 적극 활용하며, 나름의 긴장감을 가지고 따라가고 적용하려고 애쓰고 있으나.. 나는 이런 시대의 흐름을 따라갈 때 따라가더라도, 그 학문과 전문직이 꼭 놓치지 않아야 할 본질을 잘 지킨 상태에서 그것을 수용할 때 더 의미 있는 사회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모종의 믿음 같은 게 있었다. 그러다 만난 현상학인지라.. 여기가 내가 누울데인가 싶었는데~

진짜 누울때가 되어서도 끝은 안날 수도 있겠다는 상황파악이 좀 되어가다보니, 약간은 주춤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일단 하는 만큼 해 봐야지. 어렵다..

2020년대에 임신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경험하게 하는가? 임신 여성의 적응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논문 리뷰)

소개

본 연구는 국내의 여성이 임신에 적응해가는 현상에 대한 탐색 연구로, 임신 적응의 본질적 구조와 의미를 밝히기 위해 시행되었다.

연구 방법

  1. 연구 참여자: 임신 29주에서 39주 사이의 건강한 임산부 10명
  2. 자료 수집: 전화 인터뷰(임신과 관련된 전반적인 생각, 느낌, 기분, 감정, 생활사건, 일상생활, 배우자 및 태아와의 관계, 감정 및 어려움을 조절하는 방법 등)
    • 인터뷰 기간: 2018년 8월21일~2019년 4월 26일
  3. 자료 분석: Giorgi의 기술적 현상학
    • 1단계: 전체적 맥락과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참여자 진술의 텍스트를 여러번 정독
    • 2단계: 연구자의 학문적 관점에서 참여자가 진술한 현상에 대한 의마단위 구분
    • 3단계: 나누어진 의미단위를 조합하여 주제화한 후, 연구자의 학문적 관심에 따라 ‘학문적 용어’로 변형.
    • 4단계: 도출된 각 중심의미를 통합 및 분류하고, 참여자의 관점에서 파악한 경험의 의미단위를 핵심상황으로 분류 및 체계화하여 상황적 구조를 기술함.
    • 5단계: 상황적 구조 기술문을 통합하여 전체 참여자의 관점에서 파악된 경험의 의미인 일반적 구조를 기술함.
  4. 연구자 준비
    • 제 1저자: 모성간호학 석사 및 박사, 질적연구 분석 및 연구방법론 수업 이수, 지역사회 여성의 산전 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중재 경험 있음.
  5. 연구 타당성 확보: Guba와 Lincoln 와 Sandelowki의 엄밀성 확보 기준을 따름.

연구 결과

  1. 임신을 인지했을 때
    • 임신으로 인한 불안과 부담감, 당황스러움
      • 계획적으로 임신하였음에도 걱정, 심란함, 무서움.
      • 임신으로 아기에게 아내를 빼앗길 것을 걱정하는 남편.
      • 비계획 임신으로 부담, 놀람, 당황스러운 마음
    • 가족과 친구의 기쁨과 축하로 괜찮아짐
  2. 임신으로 여러 상황이 변화해 나갈 때
    • 신체적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
      • 오랜 입덧의 고통을 홀로 견딤
      • 임신 유지와 출산을 위한 건강 관리
      • 임신에 적응하기 위해 산모교실 참여
    • 임신으로 인한 심리적 어려움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
      • 임신으로 인한 부정적 감정을 억제하려는 마인드 컨트롤
      •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는 가족의 지지
      • 사회 망을 통한 심리적 지지 획득
    •  임신으로 인한 재정 부담과 역할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
      • 임신, 출산에 필요한 재정적 부담감
      • 일과 아기 중에서 아기를 선택한 의식의 전환
    • 태아와 관계 맺기
      • 태아의 존재를 인정하고 태동에 의미를 부여함
      • 태아에게 엄마보다 더 적극적인 아빠
    • 아기를 중심으로 새로운 부부관계 적응
      • 부모 역할을 위한 동반자
      • 부부 간에 이해와 배려로 맞춰감
      • 아내를 더욱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남편
        • 남편의 위로와 공감이 필요함
  3. 출산이 다가올 때
    • 출산에 대한 막막함
      • 자연분만에 확신 없음
      • 부부가 함께 출산을 준비함
    • 출산에 대한 두려움
      • 임신 여성의 출산 두려움
      • 배우자의 출산 두려움
      • 출산 두려움 완화를 위한 산전 교육 참여
  4. 산욕기를 준비할 때
    • 도움이 필요한 산후 조리와 수유계획
      • 산후조리 계획을 세움
      • 자신없는 모유 수유
  5. 육아 대책을 세울 때
    • 상상 이상으로 벅차게 다가오는 육아
      • 육아 현실에 대비하지 않은 부모 역할의 막막함과 벅참
      • 독박 육아로 앞이 캄캄함
      • 믿을 만한 정보의 부족과 산전 교육의 실질적 도움
    • 아빠의 육아 참여 의지
      • 아빠들의 육아에 대한 의지와 걱정
      • 아빠의 육아 담당
      • 남편의 아기 돌봄과 애착 형성에 대한 아내의 바램
    • 직장 맘의 경력 단절과 육아에 대한 부담
      • 직장 맘의 경력 단절의 숨막힘과 우울
      • 직장의 업무 조장과 배려 필요

리뷰 소감

본 연구는 일반적인 여성이 임신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것을 Giorgi의 현상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여 탐색한 연구로, 임신을 한번이라도 직접 경험한 여성에게는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것 같은 사실들의 나열로 보일 수 있겠으나,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임신에의 적응 현상을 이해 하는데 근거가 되어줄 것으로 보인다.

연구에서 도출한 임신 적응과정에서의 본질에서 신체적인 적응 과정은 잘 드러나지 않은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지만, 정서적, 사회적인 차원은 잘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직장 맘”이라는 단어를 본질로 도출했고 이것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만 보아도, 이 연구가 2020년대 여성의 임신 적응에서의 사회적, 언어적 현상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2050년대에는 지금의 이 연구가 드러내는 임신 적응 현상이 생경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나, 지금 이 시대를 살며 임신을 두 번 경험한 나로서는, 이 논문이 현상을 잘 반영했다고 평가한다.

Reference

고민선, 김지순, & 안숙희. (2020). 임신 여성의 적응에 관한 Giorgi 의 기술적 현상학 연구Korean J Women Health Nurs26(4), 346-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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