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공부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그것도 병원에 적응하면서 또 하나의 공부를 병행하기란.. 보통일이 아니었다.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공부에 집중하지 않으면서도 지쳐갔다.
왜 이 시험을 보기로 했을까 후회도 많이 했다. 시험 볼 때쯤에는 초심은 이미 거의 잃어버린 상태였다.
나의 초심.
NCLEX-RN 인터넷 강의 사이트에 들어가서 어떤 분의 취업설명회 동영상을 보고 시험지원을 결정했다.
그분 말인 즉은, 지금 미국 간호사 진출이 닫혔다 닫혔다 하지만, 완전히 닫힌것은 아니고 다만 속도가 느려졌다는 것.
일단 빨리 접수를 시켜야 5년이 걸리든 6년이 걸리든 영주권이 나온다는 것. 따놓고도 신청도 안하고 열릴때까지 기다리는 건 어리석다는 것. 일단 빨리 따서 신청부터 해두고, 본인의 차례가 다가올 때쯤 IELTS로 비자 스크린 준비만 하면 된다는 것~!
중요한 건, 일단 번호표를 빨리 뽑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번호표 먼저 뽑아두려고 NCLEX-RN을 시작했다.
‘2008년 미국에서의 꿈같던 1년’과 ‘2010년 신규로서 겪어야 했던 한국 병원의 분주함과 날카로움’이 오버랩핑 되면서 미국으로의 진출이 하나의 새로운 꿈으로 자리잡았다.
“일단 가야겠다!!”
그리고 처음 등록한 강의는 1년, 100만원짜리 동영상 강의였다.
강의 시작과 동시에 원서준비를 했고, 돈을 정말 말그대로 펑펑펑 썼다.
1년동안 그 100만원짜리 강의가 남긴 건, 안타깝게도 ATT publish 가 가능하다는 fact 뿐이었다. 많은 시간 나름 강의듣기에 투자 했지만, 1년 사이에는 많은 변수들이 있었고, 엄청난 두께의 Saunders 교제와 몇백시간의 강의는 나를 지치게했다.
그래도, 이제 원하면 ATT push해서 시험일정을 잡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일단은 어떻게 되든 한번 시험이나 봐보자 하고 괌으로 일정도 잡았었다.
그,러.나.
수술실에서의 2년은 나를 완전히 탈진하게 만들었고, 내게 시급한 것은 NCLEX보다도 수술실 탈출이었다. 그러다 부서이동을 하게 되었다..
NCLEX.
I’m sorry but… See you later.
그래도 아직 끝내지 못한 숙제에 대한 부담감이 항상 있었기에, 새로운 부서에서 6개월정도의 적응기간을 끝낸 후 다시 NCLEX 준비를 시작했다. 이번엔 지혜롭게 나의 친구들이 공부해서 합격한 short term강의를 듣기로 했다.
C&C nclex.
무자비한 saunders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준 단 한권의 책 “총론”과, 깔끔한 강의 2개월 + 자가학습 1개월 + 최신족보강의 1개월. 이렇게 4개월.
일단 강의를 다 듣는것을 목표로 하고 열심히 들었다.
아무리 압축이 되어있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시간은 꽤 많았다. 어쨌든 열심히 강의를 다 들은 후, 오사카로 시험 날짜를 잡은 후부터는 총론을 처음부터 암기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암기해나갔다.
그냥 책을 다 외울 생각으로 머리로 읽고 손으로 쓰기를 반복했다.
머리를 쓴지 워낙 오래된지라 처음에는 속도가 나지 않아서 괴로웠다.
3일 전 분명히 암기해서 손으로 써봤던 것이 다른 지식에 밀려 기억나지 않을 때는 정말 갑갑했다.
기억에 남든 안나든 일단 한번 쭉 외우는 작업을 거친 후 다시 앞부분부터 정독하며 읽으며 보강했다.
그리고 최신족보 강의를 들으며 정리했다.
그래도 족보를 풀면 항상 새로운게 나왔다. 불안..초초..조급..
그래도 총론만 확실히 하자는 생각으로 끝까지 그 한권의 책만 붙들었다. 최소한 이것만 확실히 알아도 합격할수 있을거라고 계속 암시하고 믿으며 반복해서 보았다.
학창시절, 나는 문제집 욕심꾸러기였다.
그러나 대학에 와서 크게 깨달은 것 중 하나는, 그 많은 문제집은 다 필요 없었다는 것, 그냥 한권만 완벽하게 하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며 이왕이면 얇은 책을 마스터하자는 생각으로 총론책 한권만 보았다.
아무리 암기해도, 사람은 익숙한것만 기억하고 덜 익숙하는건 무시하는 모양이었다. 시험보기 전날까지도 새로운 것들이 마구마구 등장했다.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집중해서 봐온것을 믿으며 보던 것을 계속 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싹 암기할 것을 목표로 하였지만 75%정도만 습득해낸 것 같다.
블로깅을 제대로 하지 못한지도 5개월이나 되었구요..>ㅇ<제가 나눌 수 있는 내용은 저의 삶 뿐인데, 신규간호사가 용기있게 할 수 있는 말이 제한되어 있었기에 블로그도 버려두고 있었답니다 ㅠㅠ
지금은 조금은 여유가 생겨서 나누고 싶은 것들이 있으면 나누려고 해요..
헤헷^^
짧은 경험을 나누었던 지난 글들(오페어나 항공간호사 등)을 보시고 많은 분들이 개인적으로 문의해주시는 것을 경험하고서는 저의 경험이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 기뻤답니다.
저는 지금 신경외과 파트에서 근무중이랍니다. 이 파트는 보통 NS(Neuro Surgery) 라고 불리지요..^^
그러니까 누가 “너 어느파트에 있니?” 이러면 전 “NS에 있어.”라고 말한답니다.
수술실에는 신경외과 외에도 정형외과, 소화기외과, 구강악안면외과, 비뇨기외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등등 다양한 파트가 있구요, 간호사가 한 파트에 고정되어 일할 때까지는 대략 4-5년정도 걸리는 것 같습니다. 한 파트에 고정되기 전까지는 다양한 파트를 돌면서 교육받고 일하게 된답니다. 그러니까 저의 non-fix 간호사로서의 첫 파트가 신경외과가 되는 셈이지요. 다음 파트로는 언제 어디로 가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올해는 수술방 신규간호사가 15명이나 되거든요!!!
(작년이 8명이었던것을 볼때 엄청나게 많은 신규간호사가 온 셈이지요. 그래도 동기가 많다는 사실은 엄청나게 행복한 사실입니다..)
이들이 각각 뿔뿔히 흩어져 모든 파트에서 교육을 받고 신규간호사 노릇을 하고 있으니, 제가 새로운 파트로 가서 교육 받을 때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 한 파트에 신규간호사가 여러명 있다면 구멍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ㅋㅋ ㅠㅠ
어쨌든~!!
앞으로 가끔 올리게 될 글들은 신규간호사로서의 경험, 그리고 신경외과 간호사로서의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틈틈히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필자는 2017년 여름, 아동전문간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임상에서의 역량 강화를 위해 선택한 과정이었다. 상근직으로 근무하면서 야간에 수업을 듣는 것도, 조직 구성원들의 배려를 받아 off를 받고 실습을 다니는 것도, 여러모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와중에 첫째를 임신하고 출산했고, 남편과 친정 엄마의 배려를 받아가며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에 공부를 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 전문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을 취득한다고 특별히 어떤 인센티브가 생기는 건 없었다. 실은 알고 시작하긴 했다. 너무 힘들 때는 내가 진짜 뭘 위해 이 고생을 하나 싶어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지만, 환자에게 조금 더 이로운 돌봄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는, 분명히 어딘가는 써먹을 데가 생기리라는 초심으로 버텼고, 결국 끝은 났다.
경제적 차원에서 따져보면, 전문간호사 과정을 하는 간호사들은 어리석다. 쓰는 돈과 시간을 생각해보면, 도저히 수지타산이 안 나온다 (여전히 나는 그때 받은 대출 3000만원 중 1100만원이 남아있다). 조직적 차원에서의 경제적 보상도 없을 뿐 아니라, 심리적 보상도 딱히 없다. 실은 그건 그래도 참을 수 있는데, 훈련되고 배운 걸 제대로 쓸 수 없다는 건, 이 과정 자체의 존속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심지어 국가와 국민은 이렇게 준비된 인력을 아까워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그저 간호사의 처우 개선과 국민 건강 증진 만을 목적으로 한 간호법조차 국가와 국민에게 외면 당했는데 전문간호사는 무슨… 그러나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간호 협회나 학교는 이 과정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혹자는 전문간호사 과정 자체가 국내에서 기형적으로 출발하였으니 자연도태 될 거라고 했단다. 미국에서는 전문간호사가 그 존재의 필요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합의를 바탕으로 출발하였지만, 국내에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전문간호사가 생긴 1960년대에는, 미국의 시골이나 도심의 슬럼가 등에서 일차의료를 제공할 의사가 매우 부족했고, 이에 대한 요구가 매우 컸었다. 이에 아동 간호사였던 로레타 포드(Loretta Ford)가 동료 의사 헨리 실버(Henry Silver)와 함께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해법으로 간호사 주도 일차 의료를 제시하였고, 콜로라도 대학교에 최초의 전문간호사 인증 과정을 개설하였다(joyce J, Fitzpatrick).
이후 1974년에 미국간호협회는 일차의료 전문간호사 협의회 (Council of Primary care Nurse Practitioners)를 창설하여 미국 의료체계 내 전문간호사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자 하였고, 1985년에는 미국 전문간호사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Nurse Practitioners)를 설립했으며, 1989년에는 미국 전문간호사 아카데미 저널(Journal of American Academy of Nurse Practitioners)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1993년에는 전체 미국의 전문간호사 리더 회의를 개최하여 전문간호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치적 목소리를 함께 내기로 결의하였고, 결국 1997년에 이르러 연방 균형예산법을 통해 전문간호사의 진료비 직접 환급법(Direct reimbursement)을 획득하였다. 물론 미국에서도 초기 교육과정 및 실무 수행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농어촌 지역 등 인력이 부족한 곳에서 의료 체계 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에 지금까지 미국에는 약 355,000명의 이상의 전문간호사가 배출되었고, 이들은 현재 일차 의료인력의 1/3 이상을 차지하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joyce J, Fitzpatrick).
국내에는 미국 전문간호사의 등장 약 10년 후인 1973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50년 전, 전문간호사의 전신인 분야별 간호사가 등장하였다(의료법 제56조). 초기에 제정된 전문 분야는 보건, 마취, 정신, 그리고 가정 분야였으나 2003년에 감염관리, 산업, 응급, 노인, 중환자, 호스피스가 추가되었고, 2006년에는 종양, 아동, 임상이 추가되어 현재까지 총 13개 분야의 전문간호사가 양성되고 있다. 국내의 전문간호사 교육과정은 일반대학원이나 특수대학원에서 33학점~38학점의 석사 과정을 이수해야 하고, 이에는 300시간 이상의 임상 실습이 포함된다. 심지어 미국과는 달리(마취 전문간호사 과정 제외), 전문간호사 과정 이전에 해당 분야에서 3년 이상의 임상 경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2005년 이후부터는 보건복지부 소관으로 전문간호사 자격시험이 시행되어 간호연구, 간호이론, 약리, 병리, 상급건강사정, 전문간호사의 역할 및 정책 등 공통과목에 대한 40문항과 개별 전공 별 상급 전문간호 전공과목 110문항에 대한 1차 시험을 통과하고, 2차로 사례 기반 서술형 필시시험을 통과해야지만 그 자격이 부여된다.
하지만 한국은 시대적 요구를 대비하며 다소 많이 앞서 나가는 차원으로 전문간호사를 도입했고, 이를 의료 시스템과 통합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개별 의료기관에서는 이미 양성된 전문간호사를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을 몰랐고,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인력인 임상전담간호사(PA, CNS, CPN 등등)가 개별 의사의 필요에 따라 우후죽순으로 채용되고 훈련되기 시작했다. 이는 국민적 요구는 아니었으나, 기피과의 존속을 위한 병원의 생존 방식이었기에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는 어쨌든 수많은 병원의 외과의사들은 임상전담간호사 없는 진료와 수술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임상전담간호사와 오랜 시간 협력관계를 이루어 왔고, 임상전담간호사는 웬만한 전공의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훨씬 안정적으로 의사를 지원하고 있다. 오히려 전공의를 교육할 정도이다. 하지만 전문간호사는 전문간호사대로 1만 7천여명이 양성되었으나, 자격증만 있지 할 수 있는 역할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1/4만이 나름의 역할을 개척하여 수행하고 있다.
나는 전문간호사이기도 하지만, 전담간호사이기도 했다.
근무 중인 전담간호사들을 모아 수차례 간담회를 하며 전문간호사 과정을 강권하다 좌절한 조직의 리더십도 목격한 바 있고, 전문간호사의 존재에 대한 별다른 인식 없이 그냥 병원의 필요에 따라 간호사라면 일단 공급하는 것에 주력을 다하던 리더십을 목격하기도 했다. 올해 간호법이 좌절되었을 때, 출근해서 준법투쟁을 하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는 음지의 간호사들의 분노를 목격하기도 했다.
“보통 선험국의 제도와 정책을 우리가 가져오잖아요. 가져올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현실에 적합하게 modify해서 가져와서 그것을 적용해야 된다는거에요. 이게 가장 중요한 겁니다.외국에서, 그 나라에서, 그 제도가 얼마나 필요했고, 활성화되었는지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 이건 모든 정책이나 제도에 있어서 동일하거든요. […] transfer theory에서 제일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 현실에 맞게끔 우리 보건의료 환경과 시스템에 맞게끔 그 제도를 가져와야 된다는 거에요.
근데 과연 간호계에서 이 전문 간호사 제도를 미국의 NP 제도를 단순히 모방한 것에 그친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저는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 현실에 적합하게 이 제도가 설계되었는지, 그리고 활용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물론 현장에서 일하고 계신 전문 간호사분들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계시고, 어느정도 임상적인 효과도 가지고 있고, 그런게 입증되어 있다는 건 알고는 있습니다. [..] 하지만 아직은 전문간호사 제도가 간호계나 우리 국가 정보가 요구하는 기대만큼으로 활성화 돼 있거나 발전되어 있지는 못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게 비단 간호계만의 문제는 아니고,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한 책임도 있을거라고 생각을 해요” […]
“우리 전문간호사는 법적으로 제도화가 됐잖아요. 근데 법적으로 제도화가 안됐지만 우리나라 병원 임상 현장에는 전담간호사라는게 또 있어요. 그쵸? 그리고 체외순환사가 있습니다. 학회라든지 협회에서 certification을 발급하는 체외순환사가 또 있어요. […]전문간호사는 뭐고, 전담간호사는 뭐고, 또 각 병원에서 CNS, CPN 이라고 부르는 다양한 방식의 운영이 있잖아요? 과연 이게 어떻게 학문적으로나 임상적으로나 차별화가 되죠? 무엇이 다른가요?
의사들이 의과에서는 국시를 통해 의사 면허를 따오면 다시 인턴, 레지던트 수련과정을 통해서 26개 전문과목의 전문의를 갑니다. 그러면 이 26개 전문과목 내에서 또 세부 분과 전문의가 나눠져요. 또 세부 분과 전문의에서 또 세부 분과 전문의가 또 나눠지고, 또 각 임상학회별로 인증 의사 제도가 이렇게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카테고리가화가 어느정도 잘 형성이 되어 있고, 세분화가 되면서 각각 분야별로 전문성과 특수성을 발달시켜나가고 있잖아요.
근데 우리 간호 현장에서 전문 간호사는 그러한지..? 그리고 전문간호사, 전담간호사, 체외순환사, 도대체 어떻게 관계가 설정이 되고 있나요? 좀 전반적으로 전문간호사 뿐만 아니라 임상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전담간호사, CPN, CNS, 체외순환사 이런 영역을 총체적으로 한번 바라봐야되는거 아닌가요? 그리고 관계에 있어서 학문적으로나 임상적으로 서로 체계화가 되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저는 이러한 측면에서 파괴적인 발전방안이 필요하다고 봐요. 전문간호사 수가 이렇게 많아야 되는건지? 그리고 각각이 정말 현장에 터를 잡고 있는건지? […]
정부가 이거를 앞장서서 통폐합을 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나설수는 없어요. 전문간호사의 영역은 정말 간호계의 전문성에 터잡은 영역이기 때문에 간호계가 앞장서서 오늘 이 자리 토론회를 시작으로 해서 전문간호사 제도를 어떻게 정비를 할 것인지, 그리고 임상 현장에서 쓰여지고 있는 전담간호사와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할 것인 것, 전체적으로 한번 바라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게 선행이 되고 나서 제도가 정비가 되고 난 다음에 임상현장에서 분명히 성과가 나올 거라고 봐요. 임상적인 성과가 나온다면 정부가 그 다음에 이에 대한 보상체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또 제도를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 분명히 고민을 해야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1월에 정부에서 필수의료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했을 때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체외순환인력 등 이런 인력에 대해서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팀 단위 보상체계를 확립하겠다고 이미 발표를 했습니다. 발표를 했는데 보상체계를 저희가 중장기적으로 만들거에요. 왜 중장기적으로라는 표현을 썼냐 하면,선행조건이 있습니다. 전문간호사제도 자체가 먼저 정비가 돼야돼요.
간호계 스스로 현장에서 쓰여지는 전담간호사, CPN, CNS, 체외순환사 이런 모든 영역들을 함께 다 펼쳐놓고 정리를 한번 해봐주세요. 그 다음에 정부에서는 이거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 그리고 건강보험 수가로 어떻게 보상을 해드릴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겠습니다. 제가 정말 부탁드리고 싶은 영역인 전문간호사 이 부분에 대해서 간호계가 스스로 고민해주시고 발전방안을 내놓아 주시면 정부로서는 너무 감사하겠습니다(임강섭 간호정책과장).”
필요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그 법적 존재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던 그 시작은 50여년이 지난 지금 풀기 어려운 혼탁한 지형을 만들어냈고, 이에 대해서는 보건복지부와 간호협회가 모두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아래와 같이 다소 비겁한 입장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를 설득해내는 것 또한 간호계의 역량일 것이다.
간호계는 스스로 그 내부의 생태계를 어떻게 정돈할지를 고민하고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대한민국의 모든 간호사는 하나의 조직, 바로 대한간호협회가 관리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가 이미 주어진 그 조직력을 십분 활용하여 간호사의 체계를 바로잡고,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그 조직력을 사용한다면 분명히 그 엉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아마 1차로 정비해야 할 문제는 전문간호사와 임상전담간호사의 관계일 것이다. 전문간호사를 위한 석사과정을 마치지 않았으나 실제로 근무하고 있는 임상전담간호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을 전문간호사라는 제도 안에 포용할 적절한 과정과 계도기간을 마련하고, 그 자격을 인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모든 간호사가 체계적으로 준비된 과정을 이수했을 때만이 해당 역할을 할 수 있게끔 대한간호협회 차원에서의 통제와 협조요청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가운데 발생하는 갈등을 풀어내는 건 어느 누구도 아닌 간호협회만이 할 수 있다. 주도권은 기관이 아닌 간호협회가 잡고 있어야 한다. 간호사들은 리더십을 기다린다.
그리고 정부는 그동안 준비시킨 고급 간호인력들을 어떻게 적재적소에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비단 국내의 간호계가 전문간호사를 대형병원의 의료시스템과 결합시키는 데 실패하기는 하였으나, 지금 우리가 피부로 경험하는 현실은 대형병원에서 외과의의 부족에 그치지 않는다.
간단한 진료와 약처방을 위한 소아과 오픈런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가? 오지에서 국방을 지키며 출타가 어려운 군인은 언제까지 약을 쪼개 먹어야 하는가? 이제는 외과 뿐 아니라 소아과 내과 불문하고 병동을 지키는 임상전문간호사들이 산적해 있는데, 그들의 대리처방, 대리기록, 대리 처치는 언제까지 그냥 묵과할 것인가?
NP제도를 미국에서 단순히 모방해서 들여왔다고 간호계를 탓하는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비겁하다. 여전히 전문간호사의 자격은 보건복지부가 인증해주고 있지 않은가? 의료법에 전문간호사는 여전히 명시되어 있지 않은가? 분명히 의료법에 전문간호사를 명시한 이유와, 여전히 존속시키고 배출하는 이유가 있지 않은가? 그에 대해 해명하고, 제자리를 찾게끔 제도 정비를 할 태세를 갖추는 것은 바로 정부의 몫이다. 게다가 간호사는 을이 아닌가? 이러한 입지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용인되는 배경이 된다. 아주 비관적이진 않은 지점은 다음과 같다.
“전문 간호사 제도는 아주 중요해요. 우리 간호사가 경력을 쌓으면서 전문성을 함양하면서 임상 현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도록 Clinical Pathway를 제공하고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받으면서 의료기관 내에서 그리고 국가에서 적절한 보상을 받으면서 일할 수 있도록 그런 환경을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게 간호계, 병원 현장, 그리고 국가적으로 아주 중요합니다. 그것은 간호사 개개인에 있어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환자의 임상적인 치료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제도예요. 이 제도를 우리가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 파괴적 고민을 한번 해봐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지금 아주 제 평소와 다르게 아주 순한 표현을 쓰고 있는데요. 발전적 고민 파괴적 측면에서의 발전적 고민을 해봐야 된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임강섭 간호정책과장).”
우리는 그저 간호가 필요한 대상자에게 마땅히 필요한 전문적 돌봄을 우리의 삶으로 제공하고자 하는 의료인이 되길 선택했을 뿐이다. 우리는 준비되어 있고, 세상에서 제대로 사용되어지길 기다리고 있다.
전문간호사 개개인의 시간과 물질의 희생보다 비극적인 국가적인 희생, 국민 건강 사수를 위한 의료시스템의 한계점 봉착이 머지않아 도래할 수도 있다.
대한간호협회 100주년 기념 한미 학술대회 [선험국의 전문간호사제도 고찰을 통한 한국 전문간호사제도 발전 방안 모색]에 참여하여 아래의 연자 및 패널의 강의 및 논의를 들은 후의 소감문임.
연자
Joyce J. Fitzpatrick (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 Distinguished Professor)
유럽의 노르웨이의 간호사이자 철학자인 카리 마틴센(Kari Martinsen)은 간호가 기술, 도구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당시의 세태에 이의제기를 하며, 건강 관리 시스템에서 얼마나 “돌봄”이 간과 되고 있는지를 지적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석사 학위 논문 (Martinsen, 1975)에서부터 지금까지 40년 이상 지속적으로 현상학을 간호학에 접목시켜 돌봄 과학의 간호 지식을 형성하는 데 헌신하고 있다. 카리 마틴센은 간호사가 현상학적 태도를 수용하고 실천함으로써 환자의 내적 가치와 존귀함을 인식하게 되고, 진정한 치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Norlyk et al., 2023). 그녀의 간호 돌봄 과학에 대한 철학적 고찰은 현재까지 노르딕의 의료 연구, 의료 교육 및 임상 개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Arman, M et al., 2015).
미국에서는 조세핀 패터슨(Josephine Paterson)과 로레타 즈데라드(Loretta Zderad)가 당시 사회와 학계가 모든 인간을 예측 가능하고 측정 가능한 존재로 간주하고, 모든 탐구 방법 중 실증주의적 방법을 최고의 방법으로 여기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간호”를 “생활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살아있는 경험으로 성찰하고 탐색함으로써 간호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결국 그들은 현상학을 간호학에 치밀하게 접목시켰고, 1988년 “Humanistic nursing”을 발간하였다(Paterson & Zderad, 2016). 그리고 그 이후 현상학은 간호학에서 어떻게 간호사가 대상자를 알게 되는지에 대한 방법론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에도 저자들은 현상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줄 수 있는 뉘앙스 때문에 책 제목에 현상학 대신 인본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고 한다(Norlyk et al., 2023).
“많은 사람들에게, 현상학은 아직 좀 이상하고, 낮설고, 금지된 것 같이 들릴거에요.. 누군가에는 매력적으로 들리겠지만요.”
약 40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뉘앙스를 주는 현상학. 여전히 우리는 현상학적 관점보다 인본주의적 관점이라는 용어가 더 편안하다. 그리고 현상학이라는 단어에 약간의 이질감과 거부감을 느낀다. 하지만 인간이 실제로 경험하는 것으로부터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현상학을 간호학이 알아차렸을 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너무 닮았고, 너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간호학은 언제 현상학을 만났을까?
한경자
구글스칼라에 검색한 바에 따르면, 1987년 서울대학교 간호 대학의 한경자 교수님께서 최초로 현상학을 간호학에 소개하신 것으로 파악된다. 한경자(1987)는 마들렌 라이닝거(Madeleine Leininger), 진 왓슨(Jean Watson), 안나 오마리 (Anna Omery) 등 주로 미국의 문헌을 참고하여 국내에 현상학을 소개하였다. 한경자(1987)는 당시까지의 대부분의 간호 연구가 양적 연구에 치우쳐져 있었으나, 대상자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경험의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질적 연구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학술대회 보고서를 통해 양적연구와 질적연구의 차이를 제시하고, 현상학적 질적 연구방법의 특성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또한 현상학의 근본적인 원칙(현상, 현실, 주관성 등)과 현상학적 연구 방법의 적용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Van Kamm, Giorgi, Colaizzi의 방법론을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한경자(1987)는 현상학적 연구 방법이 양적 연구와 비교했을 때 일반적으로 용인된 방법론이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실천 학문인 간호학이 지속적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으므로 계속 발달 시켜 나갈 것을 제언 하였다.
이후 국내에서 실제로 현상학을 적용한 최초의 연구는 김애정, 최영희(1990)의 연구로 확인된다. 저자들은 대학병원의 입원환자에게 개방적인 질문을 사용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Van Kaam의 연구 방법론에 따라 환자가 인식한 간호돌봄의 구성요소에 대하여 현상학적으로 분석하였다. 그 결과, 환자가 인식하는 간호 돌봄의 구성요소로는 관심, 온정/따뜻함, 성의, 함께함, 부드러움, 도움/수발, 편안함, 가르침, 위로가 확인되었고, 비돌봄의 구성요소로는 무관심, 냉담함, 무성의, 함께하지 않음, 거칠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국내의 문화에서 환자가 어떤 것을 돌봄으로 인식하는지를 이해하게 함으로써, 어떻게 간호를 전달 해야 할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주었다는 데 매우 큰 의미가 있다.
현상학의 태동과 현상학적 간호학의 태동은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바로 실증주의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인간의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으로부터 탐색을 출발할 때, 더 나은 인간의 삶에 대한 실천적 지식이 형성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편, 현상학자 후설(Husserl)은 각각의 학문이 그 학문의 본질적 특성에 맞는 방식의 탐구 방법으로 대상을 탐색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간호학이 그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수많은 현상이 결코 양적으로만 측정할 수 없었음을 직시하게 하였고, 간호 현상을 탐색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방법론으로써 현상학의 가치를 인정하게 하였다. 이렇게 간호학과 현상학이 만났고, 이 둘의 만남은 지난 약 40 여 년 간 수많은 파동을 만들어 내왔다. 파동은 커지기도 하였고, 잠잠해지기도 하며 꾸준히 이어져 왔는데, 필자가 느끼기에 2023년 현재는 다소 주춤하였던 현상학적 운동이 다시 조금씩 일어서는 때가 아닌가 싶다.
Arman, M., Ranheim, A., Rydenlund, K., Rytterström, P., & Rehnsfeldt, A. (2015). The Nordic Tradition of Caring Science: The Works of Three Theorists. Nursing science quarterly, 28(4), 288–296. https://doi.org/10.1177/0894318415599220
Martinsen, K. (1975). Filosofi og sykepleie. Et marxistisk og fenomenologisk bidrag. In: Filosofisk institutts stensilserie.
Norlyk, A., Martinsen, B., Dreyer, P., & Haahr, A. (2023). Why Phenomenology Came Into Nursing: The Legitimacy and Usefulness of Phenomenology in Theory Building in the Discipline of Nursing. International Journal of Qualitative Methods, 22, 16094069231210433.
Paterson, J. G., & Zderad, L. T. (2016). Humanistic nursing.
김애정, 최영희. (1990). 간호사와 환자의 상호작용에서 환자가 인지하는 간호(돌봄) 개념의 구성요소에 관한 연구. 성인간호학회지, 2(1), 52-74. / Ae Jung KIM & Yung Hee CHOI(1990). The Construct of Caring Concept Perceived by Patients in Nurse-Client Interaction. Korean Journal of Adult Nursing, 2(1), 52-74.
한경자. (1987). 간호연구를 위한 현상학적 접근법. Journal of Korean Academy of Nursing, 17(2), 99-104.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20337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