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학의 발전: 정적&발생적, 후설&하이데거&메를로 퐁티 & 표층&심층 (단 자하비 “현상학 입문” 중 제 1부, 제 5장)

후설의 현상학만 해도 초기 저작과 후기 저작에 상당한 진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발전적 방향으로 진화하였다.

1.정적&발생적

후설의 초기 저작의 현상학은 정적 현상학(static phenomenology)으로 이 때는 탐구 대상이 모두 발생이나 역사성이 아닌 지향적 상관관계였다. 그러나 후설은 지향성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다는 속성을 깨닫게 되고, 지향성의 시간적 생성을 검토하는 발생적 현상학(genetic phenomenology)를 수행하였다. 이 때, 발생적 현상학의 범위는 개별적 자아의 경험적 삶으로 제한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이른바 세대간 현상학(generative phenomenology)를 모험적으로 시도하며 전통과 역사의 구성적 역할을 탐구하고자 하였다.

2. 후설&하이데거&메를로-퐁티

현상학의 발전을 추적할 때는 체화, 시간성, 그리고 사회성이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후설은 신체가 본질상 대상들에 관한 지각과 상호작용에 관여한다고 주장했으며, 초기부터 시간성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아서 이 차원을 무시한 지향성에 대한 탐구는 불완전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후설은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상호주관성 개념을 채택하고 논의한 최초의 철학자였다. 후설은 후기 논의의 초월적 분석에서 체화와 역사성, 상호주관성의 주제를 아우르며 포함하였고, 이는 하이데거와 메를로-퐁티가 추구했던 것과 같다.

특히 하이데거는 생활세계를 주위세계, 더불어있는 세계, 그리고 자기-세계라는 세 영역에 대한 해석으로 기술하고, 현존재를 언제나 타자들과 함께 있는 존재임을 밝혔다. 그리고 메를로-퐁티는 주체성을 타자성을 향한 개방성 및 외재화의 운동이자 지각적 자기-초월임을 밝히며 상호주관적 삶과 세계 사이의 연속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한편, 메를로-퐁티는 후설보다 체화와 현사실성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하이데거는 후설보다 전통이 우리 생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강조하며 현상학을 전개하였다.

3. 표층 현상학 & 심층 현상학

표층 현상학은 특정한 대상 유형과 특정한 지향 작용사이의 상관관계에 직접적으로 초점을 맞추지만, 심층 현상학은 지향적 능동성이 심층-차원에서 어떤 수동성의 과정에 의해 정초되고 조건지어지는지 등을 밝히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후설에 따르면 주어진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개념을 형성하는 우리 인간이 이렇게 심층에서 수동적이고 익명적으로 기능하는 차원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대상을 향한 각각의 지향성이 고유한 다양한 전제조건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근본적인 현상학적 차원을 특성화하고 분석하려는 시도가 바로 심층 현상학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하이데거는 현상학의 구체적인 과제가 우선 대개 보이지 않게 감춰진 채로 있는 것을 열어 밝히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후 미셸 앙리는 “보이지 않는 것의 현상학”이라 불리는 것을 발전시키려 했다.

그리고 지금 대부분의 현상학자들은 현상학이 대상을 향한 지향성 및 대상-현시의 고정성과 점유성을 넘어서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4. 나의 성찰

일단 후설이 제1대짱이시구만.

이쯤되니 철학하시는 분들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뿐이다.

인간의 사유란 무엇인가.. 나의 단세포가 좀 부끄러워져서 안되겠다. 세포분열을 좀 시키고 싶다.

본 글은 단 자하비의 “현상학 입문”을 공부하며 정리하는 글임을 밝힌다.

본질? (단 자하비 “현상학 입문” 중 제 1부, 제 4장. 과학과 생활세계)

1. 현상학에서 본질은 무엇인가?

철학자는 본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며, 본질은 불변의 속성을 가지는 것이다. 단 자하비도 “철학자로서 우리는 일차적으로 우연한 특징과 우연한 속성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필연적이고 불변적인 것에 관심을 둔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후설은 생활세계, 지향성, 체화, 시간성 등 근본적인 주제의 불변하는 보편적 구조를 찾고자 헌신하였다.

한편 본질을 찾는 능력은 대부분의 사람이 일상에서 문제없이 채택하는 능력이다(우린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이 다 어떤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 이미 암묵적올 알고 있으며, 책장 사이에 노트북같이 우연하고 우발적인 것이 껴 들어가 있을 때 쉽게 구분해낼 수 있다). 어떤 대상의 본질적 구조를 찾기 위한 형상적 변경은 일종의 상상의 도움을 받는 개념적 분석이지 누구나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신비로운 방법이 아니다.

또한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통찰은 변형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디지털 책이 책으로 간주되어 책의 개념이 달라졌듯이). 그리고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연구되는 대부분의 대상들은 본질적인 모호함으로 특징지어지고, 이러한 대상들에 대한 우리의 분류와 기술은 본질상 근사치적이기도 하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대상에 정확성과 정밀성을 본질로 부과하는 것은 오히려 폭력적이다.

2. 본질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우리의 탐구는 실제로 주어진 것의 인도를 받아야 하며, 우리의 탐구 방법은 특정한 과학적 방법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당면한 주제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후설이 “참된 방법은 탐구되어야 하는 사태들의 본성을 따르는 것이지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 같이 말이다. 모든 것은 그 영역에 적정한 방법을 사용하여 탐구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학적 환원주의는 대상을 자연과학적 방법과 원리 중 가장 간단한 것으로 환원시키며, 제거주의 또한 자연과학의 방법과 원리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제거해버린다(의식 또한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설명되지 않으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또한 과학적 자연주의는 방법적으로도 자연과학적인 방식으로 도출된 것 만을 참으로 여긴다. 즉, 과학적 환원주의, 제거주의, 과학적 자연주의등 (낯설지 않은 이런 방식들은) 사회학과 인문학 등의 현상에 대한 설명은 과학적 가치가 없다고 간주해버린다.

정말 그러한가?

결코 그렇게 볼 순 없다. 왜냐하면 비록 우리의 생활 세계가 과학에 의해 망각되고 억압 된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이라고 불리는 것 조차 생활 세계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메를로 퐁티의 주장대로 과학적 지식을 포함한 세계에 대한 지식은 신체적으로 고정된 1인칭 관점에서 발생하며, 이러한 경험적 차원이 없다면 과학은 무의미할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자연과학만이 현실에 대한 철저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편협한 생각이며, 우리의 경험세계는 그 나름의 타당성과 진리가 있으므로 과학의 승인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즉, 본질을 찾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자연과학적 방법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하는 대상의 본성에 따라 탐구해나가야 한다.

3. 나의 성찰

내가 다루는 간호 현상은 본질적으로 모호할 수밖에 없다. 모든 간호 현상을 숫자로만 측정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그 간호 현상이 가진 풍부한 색깔을 가리는 일이 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본질이 모호할 수 있다는 것은 뭔가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개념이다. 본질이라고 하면 일단 딱 떨어져야만 할 것 같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나는 간호 현상의 그 모호한 본질을 찾기 위해 자연과학적 방법 뿐 아니라 현상학적 질적연구라는 도구 또한 장착하기로 마음 먹었다.

본 글은 단 자하비의 “현상학 입문”을 공부하며 정리하는 글임을 밝힌다.

에포케? (단 자하비 “현상학 입문” 중 제 1부, 제 3장. 방법론적 고찰)

현상학자 후설은 세계를 밝히기 위해 의식을 탐구하였고, 의식을 단지 세계 내의 일부로 존재하는 한 대상이라기보다 세계에 대한 주체로 간주하였다.

또한 후설은 세계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사태 자체’로 돌아가야만 하며, 이를 위해 우리 의식은 에포케라고 부르는 것을 수행하는 일, 곧 특수한 괄호치기나 판단중지를 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때 무엇을 괄호치거나 판단 중지해야 하는가? 에포케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한 해석에는 많은 의견 불일치가 있어왔고, 단 자하비는 3가지 대표적인 오해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1. 에포케에 대한 일반적 해석

오해 1. 우리가 괄호쳐야 하는 것은 우리의 선입견, 사유의 습관, 편견, 이론적 가정이다. 현상학은 대상을 향한 전회이다!

이 관점에서 현상학은 열린 마음으로 대상들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한다. 이때 현상학은 연역적이라기보다는 기술적(descriptive) 과제이며, 현상의 특이성을 존중하기 위해 가능한 세세하게 기술해야 한다.

나도 이것이 에포케라고 배웠다. 대상에 대한 선입견, 편견, 이론적 가정 등을 내려놓는것. 그런데 아니라고?

단 자하비는 이것이 현상학의 일부 특성을 의미하는 것은 사실이나 현상학적 분석의 범위를 적절하게 포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단 자하비에 따르면 현상학은 대상을 향한 전회만을 포함하지 않는데, 오해1의 관점은 대상과 주체 혹은 세계와 마음의 상호 관계나 상관 관계를 탐구하고자 하는 현상학의 체계적 야심을 결여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대상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되, 그것이 우리 의식에 어떻게 경험 되는지에 대한 관계 또한 놓치면 안될 것 같다 (내 생각).

오해 2. 우리가 괄호쳐야 하는 것은 세계의 대상들과 사건들에 대한 우리의 습관적이고 자연적인 집착이다. 현상학은 주체로의 귀환이다!

이 관점에서 현상학은 우리 내면의 경험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않았던 양상을 주제화하고 기술하도록 우리의 관심 범위를 넓힌다.

단 자하비는 이 또한 현상학의 일부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나 현상학적 분석의 범위를 적절하게 포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현상학은 주체로의 귀환만을 포함하지 않으나, 이 관점도 대상과 주체 혹은 세계와 마음의 상호 관계나 상관 관계를 탐구하고자 하는 현상학의 체계적 야심을 결여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우리가 그동안 차마 관심을 주지 않았던 경험을 포착하고 탐색하더라도 그 차원이 세계와의 어떤 관련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리고 가지고 있기에 그래왔는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할 것 같다 (내 생각).

한편 이런 오해도 있다.

2. 의식과 실재

오해 3. 현상학은 현상이 어떻게 나타나는지에만 관심을 가지며 존재에 대해서 물을 수 없다. 우리가 괄호쳐야 하는 것은 실제로 현존하는 세계다.

이 관점에서는 현상과 사태가 어떻게 나타나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에만 초점을 맞춘다. 실재로 존재하는지를 묻는 것은 현상학적으로 부적절하다고 간주된다.

하지만 단 자하비는 후설은 세계와 참된 존재에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 몰두하였으므로 에포케를 이렇게 해석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고 하였다.

3.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에포케를 하라는 것인가?

단 자하비는 에포케를 “실재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에 대한 특정한 독단적 태도를 중단시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였다. 이 때 말하는 실재에 대한 독단적 태도는 우리의 전이론적 삶에도 스며들어 있는 자연적 태도, 즉 우리가 경험에서 마주하는 세계가 ‘우리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를 중단하는 것도 포함한다.

실재가 마음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현존한다는 자동적인 믿음을 유보함으로써 실재는 특정 관점에서 드러나고 주제화되며, 처음으로 철학적 탐구의 대상으로서 접근 가능한 것이 된다.즉, 에포케와 환원은 실재를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기보다는 바로 그 실재를 철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에포케를 통해 실재를 더 이상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의 대상들이 어떻게 주어지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되며, 나타내는 대상과 관련된 지향적 작용과 경험적 구조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에포케는 초월적 환원을 위한 첫걸음이자, 적극적인 반성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구성적 연관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4. 에포케는 후설만의 주장인가?

단 자하비는 하이데거나 메를로퐁티가 에포케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으나, 하이데거나 메를로퐁티 또한 철학적 사유의 태도에 이르는데 필요한 반성적 운동에 전념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후설의 에포케와 다르지 않다고 하였다.

5. 나의 성찰

나에게 에포케는 지향적 존재이자 세계-내-존재인 가 의식적으로 결코 분리하기 어려운 현상(대상)을 면밀하고 객관적으로 밝히 드러내기 위하여 나의 일상적인 의식적 습관을 내려놓고, 적극적으로 사태를 새롭게 바라보려고 하는 의지적 작업으로 해석된다. 맞을까..? 단 자하비는 분명히 최대한 쉽게 설명한 것 같긴 한데, 쉽지 않다.

본 글은 단 자하비의 “현상학 입문”을 공부하며 정리하는 글임을 밝힌다.

지향성 (단 자하비 “현상학 입문” 중 제 1부, 제 2장)

1. 지향성 (Intentionality)이란?

현상학을 공부할 때 자주 등장하는 “지향성”.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가 무언가를 할 때 어떤 의지나 목적이 있다는.. 그런 성질을 말하는 것일까?

네이버 사전에 “지향”을 검색해보니 다음의 3가지 정의가 나온다.

  1. 어떤 목표로 뜻이 쏠리어 향함. 또는 그 방향이나 그쪽으로 쏠리는 의지.
  2. 의식이 어떤 대상을 향하고 있는 일
  3. 동기가 되는 목적의 관념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수단과 예상되는 결과의 관념을 이르는 말.

처음에 생각해봤듯이, 보통 지향이라고 하면 1번의 정의를 생각하기 쉬운 것 같다.

하지만 현상학에서의 “지향성”은 2번의 정의를 의미하며(의식이 어떤 대상을 향하고 있는 일), 이는 의식의 속성을 말한다 (네이버 사전에 있어서 살짝 감동했다).

의식은 의식 자체와만 연관되거나 의식으로 점유된 것이 아니라 ‘어떤 것’에 대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사실.

2. 현상학과 지향성

그렇다면 현상학에서는 왜 그토록 지향성을 중요하게 다루는가?

그 이유는 이 “지향성”에 대한 연구가 주체와 대상 간의 차이 뿐 아니라, 그 둘의 연결성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지향적” 속성은 자기-초월적 성격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향적 속성을 가진 마음은 평소 폐쇄된 곳에 갇혀 있다가 어떤 자극에 의해 세계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세계 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세계에 관여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세계 내 존재). 또한 우리가 의식하는 ‘대상(세계)‘들은 단순히 의식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게끔 단순히 의식 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타내고, 현시하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그대로 현전하도록 구성되어 우리의 의식과 연관된다.

우리는 평소 우리에게 나타내는 대상에 대해 성찰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기 쉬우나, “지향성”을 주요 관점으로 삼는 현상학은 이러한 사유 작용(cogito)사유 대상(cogitatum)의 상관관계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그렇게 함으로써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즉, 현상학은 주관적 경험 자체에 대한 좁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상이 어떻게 있는 그대로 나타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들이 지닌 의미와 더불어 나타날 수 있는지를 이해하고자 한다. 대상에 대한 철저한 철학적 검토는 대상들의 나타냄의 방식과 상관된 경험의 구조로 우리를 이끈다. 그리고 나타내는 대상들을 탐구할 때, 우리는 또한 우리 자신을 나타나는 대상들에게 있는 자로서 드러낸다.

결국 지향성의 교훈은 마음은 본질상 열려있고, 세계는 본질상 현시 가능하므로 마음과 세계는 동시에 탐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 나의 성찰

나는 현상학자가 아니니 의식의 지향성 그 자체에 대해 연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가 간호 대상자들과 그들의 세계를 다루는 간호 현상을 연구할 때, 이 의식의 지향성은 놓치지 않고 가져가야 할 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호 대상자들은 그들의 세계(혹은 질병)를 어떻게 인식하고 경험하는가, 그리고 그 세계(질병)는 간호대상자에게 자신을 어떻게 나타내는가?

본 글은 단 자하비의 “현상학 입문”을 공부하며 정리하는 글임을 밝힌다.

대학원 종합 시험부터 박사 학위 논문 연구 동의 모임(Committee)까지.

박사 학위 논문 연구 동의모임(Committee)이 무사히 끝났다.

나는 석사 때 학위 논문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동의 모임이란 것 자체가 처음이라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지 긴장 반 기대 반이었기에, 나와 비슷한 처지(학위 논문을 처음 쓰는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는 이 글이 약간의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며 소회 및 기록을 남긴다.

1. 종합 시험 통과까지

연세대학교 간호대학에서는 종합 시험이 논문 연구계획서 심사로 이루어진다.

종합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공통 필수 과목 15 학점 + 선택 과목 6 학점, 총 21 학점 이상을 이수해야 한다.

공통 필수 과목은 입학 시 교과 과정에 따라 약간 차이가 날 수 있는데, 나의 경우가 그러했다. 난 2020년 입학했으나 교과 과정이 2022년에 개정된 바, 변경된 과정의 필수 과목 중 중복 이수할 필요 없는 과정에 대해서는 사전에 수강 면제 신청을 해두었다.

공인 영어 점수 제출도 필수인데, 박사 학위 입학 시 제출했다면 그것으로 대체 가능하다. TOEIC은 550점 이상, TOEFL은 PBT 500점 이상, IBT 63점 이상 등으로 허들이 결코 높지 않다.

박사 과정 필수 과목인 “연구의 실제” 과목은 1학점이긴 하지만 한 학기 전체의 공이 들어갈 정도로 중요하고 큰 프로젝트이다. 이 과정을 통해 학위 논문을 계획 중인 여러 동료들과 함께 교과 담당 교수님의 지도를 받아가며 학위 논문 연구를 개발해나갈 수 있다. 이번에는 13명의 원생이 함께 수업을 들었고, 동료의 피드백은 소중했다.

원래 난 이 과목을 이전 학기에 6학점 수업을 들으며 추가로 같이 들으려고 하였으나, 이미 이 과정을 지나간 선배님들이 다른 과목을 들어가며 이 과목을 들을 계획을 하고 있는 날 뜯어 말려 주었다. 천만 다행. 덕분에 난 지난 한 학기 동안 학위 논문 연구 계획에만 집중할 수 있었는데, ‘프로젝트를 해치워야지’ 하고 달려가는 게 아니라 진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한편 내가 하려고 했던 것 같이 다른 과목을 하면서 같이 하는 원생도 있었는데, 그 또한 매우 잘 해나가는 걸 목격하긴 했다 (대단했다). 또 한편 그 과정을 통해 개발한 연구계획서로 이번에 종합시험을 치루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종합시험까지 통과하긴 했지만 실제 연구는 조금 더 개발 한 후 진행하기로 한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종합 시험은 그렇게 각자가 개발한 연구 계획서를 잘 다듬어서 15페이지 이내의 분량(표, 그림, 레퍼런스 제외)으로 정리하고, 표절 검사 결과와 함께 제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연구계획서는 간호대학의 3분의 교수님들로부터 블라인드 심사를 받았고, 결과는 약 한 달 뒤에 나왔다.

다행히 무사히 통과했는데, 더 좋았던 점은 그냥 통과라는 결과만 받는 것이 아니라 심사 의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심사 의견이 담긴 PDF는 메일로 받았다.

2. 주심 및 부심 섭외

학위 논문 연구 진행을 앞두고 중요한 부분은 주심 및 부심 교수님을 모시는 일일 것이다.

나는 주심은 애초에 박사 과정을 지도해주신 최은경 교수님께 부탁을 드렸는데, 이는 최은경 교수님이 내가 아는 한 이분척추증을 가진 대상자에 대한 연구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하셨고,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이시며, 무엇보다도 그 대상자를 진심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떤 고민도 없이 주심을 부탁드렸다.

다만 교수님께서는 처음에는 내가 하고자 하는 연구 방법이 ‘질적 연구’인데다가 ‘현상학’까지 가지고 온 터라 질적 연구를 더 잘 아는 교수님께 주심을 부탁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씀을 막상 들으니, ‘혹시 교수님께 이 연구가 (방법론에서) 좀 부담스러우신걸까? 다른 분께 부탁을 드려야 하나?’ 하고 1초 정도 고민이 되긴 했었는데, 그래도 교수님 만큼 이 주제를 같이 애착을 가지고 지도해주실 수 있는 분을 더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역시 그랬고, 교수님은 결국 열심히 한번 공부해보면서 해보자고 주심을 수락해주셨다. 이후 연구원 선생님께 들어보니, 교수님께서는 질적 연구 책을 한 무더기 구입하셨다고 한다 (난 정말 복이 많은 사람).

다음 고민은 부심 교수님을 정하는 일이었는데, 나의 경우에는 지도 교수님께서 내 연구의 주제 및 방법과 관련된 전문가이신 세 분의 부심 교수님 리스트를 명확하게 해주셨었다. 그 중 한 분은 교수님께서 직접 섭외를 하여 알려주셨고, 두 분께는 내가 먼저 부탁 드리고 수락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한 분이자 정말 중요한 한 분, ‘현상학’ 전문가를 어떻게 모셔야 할 지에 대해 지도교수님과 함께 오랫동안 많은 고민을 하였다. 내가 하고자 하는 연구가 현상학적 질적 연구인데 요즘 간호학계에서는 이 방법론으로 연구를 아주 많이 진행하지는 않고 있다. 실은 현상학 뿐만 아니라 질적 연구로 학위논문을 하는 경우가 요즘은 거의 드물다. 하지만 나는 이미 현상학에 매료되었고, 이 방식으로 연구를 해야만 했다(너무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동안 현상학적 질적 연구 방식에 대해 다양한 논조의 비판이 지속적으로 있어왔던 만큼, 제대로 공부하고, 제대로 연구하고, 제대로 심사 받으며 연구를 진행해야만 했다.

처음에 나는 주저함 없이 이남인 교수님(서울대 철학과 교수님이자 현상학의 대가)께 메일로 연락을 드렸다. 이남인 교수님의 책 및 동영상 강의를 통해 현상학의 응용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이남인 교수님은 간호 현상학에 대해 정말 진심으로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았다. 나의 연구 방법이 이남인 교수님으로부터 배운 것을 토대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교수님께 직접 검토 받고 조언을 들을 수 있으면 정말 영광일 것 같았다. 그런데 결국 메일의 회신은 받지 못했다. 두번이나 보냈는데도 회신을 못받았고, 서울대 철학과 사무실에 알아본 결과 퇴임 예정이시고 했다. 바쁘시거나, 사정이 있으시리라.. 결국 개인적으로는 너무 아쉽지만 이남인 교수님과의 연결은 일단 포기하기로 하였다.

그 이후엔 국내 학자 중 현상학적 질적연구에 대해 다루거나 연구를 직접 수행한 결과를 다룬 여러 논문을 읽어보며 저자의 프로필 및 연구력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일단 이 현상학에 대해 잘 아는 분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한편 나의 연구 계획서의 현상학적 방법론에 대한 타당성에 대한 검증이 시급해져왔다. 그 때, 지도교수님께서 오박사님께 한번 연락해보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교수님께서 직접 현상학적 질적연구를 찾아 온라인 강의를 들으셨다는 데 (바쁘신 와중에 지도학생을 위해 온라인 강의까지 시간 내어 들으신 교수님께 또 한번 찐 감동을..) 그 때, 강의를 해주신 박사님이셨다. 그렇게 오박사님께 연락을 드리게 되었고, 연구계획서의 방법론적인 부분을 검토 받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질적 연구자인 오박사님과의 미팅은 매우 큰 의미가 있었다. 짧지만 굵었던 미팅을 통해 질적 연구자의 시선에서 내가 작성한 연구계획서의 방법론에 대해 평가 받을 수 있었다. 오박사님은 현상학이 모든 질적 연구의 백그라운드라고 생각하셨지만, ‘현상학적 질적연구’와 ‘철학으로서의 현상학’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계셨다.

현상학이 모든 질적 연구의 배경이 된다는 데는 나도 동의하지만, 한편 나는 질적 연구가 ‘현상학’이라는 철학에 튼튼하게 정초되어 있을 때 ‘현상학적 질적 연구’의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박사님과의 대화 결과, 나의 이러한 관점과 오 박사님의 질적연구자적 철학이 다소 상충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오 박사님께서 현상학적 질적연구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신 만큼 여러 조언을 받아가며 연구를 더 개발해야겠다 생각하고 부심을 부탁드렸고, 박사님은 부심을 수락해주셨다.

그러나 미팅 이후 다시 복기를 하며 그 상충되는 관점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한번 메일로 여쭤보았는데, 그 때 박사님도 그 관점의 차이로 인해 부심이 쉽지는 않겠다 판단하신 것 같았다. 박사님께서는 나의 메일에 대한 회신으로 매우 부드럽고, 정중하고, 사려 깊게 부심을 거절해주셨고, 그 대신 현상학자를 부심으로 찾아보는 것이 나의 연구에는 훨씬 적합할 것이라고 조언해주셨다.

메일을 받고 정말 감사했다. 정확하게 나의 연구의 방향을 읽고 파악해주셨기에 해주실 수 있는 조언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방법론의 타당성에 대한 검토는 미뤄졌지만..)

그리고 그 때, 이미 내 안에 있던 두 분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실은 나의 목록에는 이남인 교수님 외 두분이 더 계셨다. 1순위는 현직 현상학자셨고, 2순위는 간호학과 철학을 함께 하셨으나 퇴직을 하신 분이셨다. 이 두 분의 교수님을 지도교수님께 다시 말씀드렸고, 교수님께서 1순위였던 최교수님께 연락을 드려볼 것을 권해주셨다. 그리고 그렇게 부심 교수님이 확정 되었다.

3. 연구 계획서 재정비

종합시험 때 제출한 연구 계획서는 재정비가 필요했다. 심사 교수님으로부터 받은 피드백을 보완 해야 했고, 종합시험 때는 15페이지 제한에 맞춰 많은 부분들을 빼두었기 때문에 총체적인 재 구성 작업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미리 논문 형식에 최대한 맞춰서 작성하기로 하고, 목차부터 형식에 따라 구성하여 작성을 해두었다. 이게 처음으로 해보니,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4. 동의 모임 일정 취합

주심 및 부심 교수님 확정 후,  각 교수님께 동의 모임 참석이 가능하신 일정을 확인하여 취합하였다. 한 분의 교수님 일정이 부득이 맞지 않아 이메일로 의견을 받아서 동의모임 때 공유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동의 모임 일정이 계획되었다.

5. 온라인 커미티

지도교수님은 안식년으로 미국에 계시는 터라 나는 온라인으로 동의모임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이제 zoom은 모두에게 익숙한 도구가 되었고, 발표자로서는 오히려 덜 떨리는 방식이었다. 어쩔 수 없지만 다행이었다는.

동의모임이라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어떻게 진행이 될지 기대 반 긴장 반이었지만, 지도교수님께서 주도적으로 진행을 해주셨기에 나는 연구계획만 시간에 맞춰 잘 발표하고 피드백을 경청하면 됐다.

먼저 교수님께서는 외부 교수님도 계시는 만큼 각 교수님에 대해 짧게 소개해주셨고, 서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8분 가량 연구 계획을 발표하였고, 각 교수님께서 코멘트를 해주셨다. 모든 코멘트는 너무 소중했고, 갈증을 풀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교수님들께서 해주신 조언을 들었을 때 내적 갈등이 생기는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질문 혹은 추가 조언을 구하였고, 그것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듣고 나누며 답을 찾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현상학자인 최 교수님으로부터 본 연구의 방법론의 타당성에 대해 컨펌 받을 수 있었다.

총 소요 시간은 40분 정도 걸렸고, 커미티 종료 후 카페에 앉아 받은 모든 코멘트를 워드 파일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두었다. 주심교수님께선 이것이 이후 예심 때 코멘트 반영 여부를 검토하는 데 활용이 될 거라고 하셨다.

이렇게 커미티가 무사히 종료되었다.

받은 코멘트를 기반으로 추가 문헌 고찰 및 연구 계획서의 재구성 등 몇가지 작업이 필요하긴 하지만, 가장 시니어 교수님이신 김 교수님의 말씀대로 그야말로 “드림팀”인 심사위원 분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에 무한 감사하였다. 다행히 잘 해왔던 것 같고, 덕분에 잘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종합시험부터 커미티까지 왔고, 3월 중순 모든 간호대학 교수님과 학생 앞에서 공개 발표를 하고 IRB 승인을 받은 후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내가 바라는 소망은 나의 연구가 그동안 그러나지 않았던 소외된 목소리를 밝혀주고, 그로 인해 그 목소리의 주인과, 그들의 가족과,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데 손톱 만큼이나마 기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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