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미안하게 만들면 나라가 망할..껄..?

경제학적으로 사람은 나라의 돈이고 경쟁력이다. 그런데 나라 곳간이 비워져 가고 있다.
곳간을 다시 채워보려고 이것저것 정책이 나왔지마는, 아직 터닝포인트가 될만한 정책은 등장하지 않은듯 하다.

여성의 학력과 사회적 지위, 경제적 가치가 높아졌지만, 여성이 엄마가 되는 순간 그 학력과 사회적 지위, 생산력은 죄책감의 이유가 된다.

아이에게, 가족에게, 그리고 동료와 조직 리더에게.
왜 그래야 하지..? 왜 엄마라서 미안해야 하지..?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1) 옆을 못지켜 줘서 미안하고.
2) 대신 고생 하실 부모님께 죄송하고(조부모님이 아이를 봐주신다면)
3) 그 미안함을 견딜 수 없어 결심하고 휴가라도 내면 그 자리를 채워야 할 동료에게 미안하고.
4) 다른 직원과의 형평성을 따져야 할 리더에게 죄송하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방과후 등을 통해 아이들을 국가가 대신 봐주는 것보다, 엄마가 일하다가도 필요할땐 죄책감 없이 아이에게 갈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하는 건데.. 그것이 그리도 어려운가보다.

육아휴직, 육아기 단축근로, 탄력근무 등등이 있으면 무엇하나. 그 빈자리를 메꿔서 직장을 돌아가게 할 인력이 없는데.

나는 그래도 상당히 배려 받는 환경이고 부모님의 도움도 받는 매우 감사한 포지션이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부모님께, 동료에게 미안할 때가 많다. 엄마라서.

아이가 초딩이 되며 많은 여성이 그간의 경력을 내려 놓는 다는 것이 남일이 아니다. 이것또한 경제적 손실

출산률이 낮아진다지만 그것을 애써 높이는데 기여할 생각이 안드는 것도 사실이다. 기여한 공을 인정 받기는 커녕, 부담이 상상도 못하게 더 커질게 보인다.

어떻게 안되려나..

(2019.12.11. 페이스북 기록물)

딸의 공감

퇴근 후 아이랑 하루 종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조금씩이라도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어제는 책을 쓰는 일을 하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오늘은 책 만들어서 가지고 왔냐고 묻는걸 보면 이제 확실히 모든 이야기를 받아들이는구나 싶다. 대충 듣지 않고 진짜로.

오늘은 아이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다가,

“엄마가 오늘 너무 바빴어. 환자가 너~~~무 많아서 환자가 들어오면 ‘이름이 뭐에요~’물어보고, 무슨 검사인지 확인하고, 검사하러 갔다가 와서 앉으면 또 환자가 오고, 그럼 또 ‘이름이 뭐에요~’ 물어보고, 무슨 검사인지 확인하고, 검사하러 갔다 오면 앉을 새도 없이 환자가 기다리고.. 하여간 너~~~~~ 무 정신이 없었어. 하도 그래서 무릎이 아퍼,. ‘호~~’해줘” 라고 상황극을 펼쳤다. 그리고 ‘호!’ 한번 짧게 받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아이도 상황극을 펼치기 시작했다.

“엄마 나는 친구랑 누웠다가 앉았다가 누웠다가 앉았다가 누웠다가 앉았다가 해서 등이 아팠어! 호~~ 해줘”

웃음이 나면서도, 왠지 딸에게 공감 받고 위로 받는 느낌이더라. 아이 등에 ‘호~~~~’ 길게 해줬다.

(2019.8.22. 페이스북 기록물)

워킹맘

워킹맘

아주 가끔 힘들때가 있다.

단단한 자존감과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 덕분에 좀처럼 쉽게 지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가끔씩 깊은 우울이 찾아온다.

아무것도 할 힘이 안나는 상태.

잠잠히 돌아보니 엄마 윤혜와 직장인 윤혜 사이의 안정감이 흔들릴때 발생하는 일인듯 하다.

엄마 윤혜 만으로 살아본 시간이 얼마 없었다. 출산 휴가 기간인 3개월이 전부다. 그나마 그 기간에도 대학원 실습 차 병원에 와서 시간 맞춰 유축을 해야하곤 했었다. 온전히 엄마만으로 살아본 기간은 거의 없다.

그래서 나에게는 퇴근 후 저녁시간과 주말이 너무 중요하다. 퇴근 후 서우가 잠들때까지 주어지는 2시간, 그리고 주말에 함께 하도록 주어지는 약 14시간. 일주일에 서우에게만 집중할수 있는 시간은 고작 38시간이다. 난 그것이 침범될 때 힘들다.

최근 갑작스레 근무 패턴이 바뀌며 3주에 한번 토요근무를 하게 되었고, 학회나 병원 행사 때문에 토요일에 집을 비워야 할 일들이 유난히 몰렸었다. 엄마 윤혜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과 서우에 대한 마음만 아니었다면 나에게 큰 스트레스원이 아니었을 것들인데.. 지금은 나의 균형을 깨뜨리는 스트레스원으로 작동한다.

스트레스를 이성으로 버티며 극복했다 여기고 지내다가도, 서우의 갑작스런 고열같은 상황은 깊은 우울감을 촉발시키고 만다. 그리고 같은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무엇이 중요해? 지금 행복해?’

분명히 행복하고 충분히 만족했었던것 같은데. 그랬던 기억만 남고 마음은 공허하다.

무기력한 상태를 좀처럼 즐기지 못하는 나는 어쨌든 바쁘게 뭔가를 하기는 하지만, ‘에너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마치 숨쉬기 어려울 때 공기를 생각하게 되듯이.

현재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내가 내세울수 있는 답은 아니다. ‘적당히 포기할건 포기하고’에서 포기의 대상이 아이가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엄마 윤혜와 직장인 윤혜의 균형을 맞추고 싶다.

(2019.7.25. 페이스북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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