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임의 추억..?

그냥 아주 연한 핑크빛 액체였습니다.

왜 핑크빛일까..

병원에 전화하여 상태를 이야기했더니 또 반복되거나, 피가 다량으로 나오면 바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큰 걱정 안하고 있었는데, 그날 오후, 연한 핑크빛 액체가 왈칵 하고 또 나왔습니다.

그리고 전 그 날 (10주+1)부터 눕눕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 융모막하 혈종 진단

초음파를 이리 저리 보던 전공의 선생님은 뭔가 의아하다는 듯이 계속 이리저리 초음파를 돌려 보았습니다.

저는 뭐, 별거 있겠나 싶은 마음으로 별로 긴장도 하지 않고 누워있었는데,

전공의 선생님은 분명 심상치 않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라는 듯, 안도감을 주려고 애쓰는 목소리로 입을 떼었습니다.

최근에 혹시 무리하신 일이 있으실까요?
여기에 기존에 없던 피고임이 생겼어요.
교수님께서 확인해주셔야 하겠지만, 좀 쉬셔야 할 수도 있을것 같아요.

쉰다?

응?

얼마나?

도통 제가 감을 못잡고 있자, 잠시 누워있으라고, 교수님과 연락되는대로 알려주겠노라고 하고 전공의선생님은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교수님이 외래 진료를 보고 계시는데 일단 그쪽에서 직접 소견을 듣는게 낫겠다 하여 외래 진료실로 이동했습니다.

교수님께서도 매우 당황하시며, 이건 당신이 직접 말씀하셔야 할것 같아서 외래로 오라고 했다며, 도대체 2주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하셨습니다.

멀쩡했던 자궁이 2주 사이에 반이나 떨어졌다고.

네..?

그 때부턴 교수님의 목소리가 웅웅 하고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무조건 쉬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일단 무조건 버텨야 합니다.
일찍 나와버리면.. 너무 고생스럽습니다. 그건 안되지 않겠습니까..?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습니다.

몸이 무너질듯 힘이 들다가 9주차 정도 되었을 때 좀 나아지면서 기분이 좋아져서.

그저 기분이 너무 좋고 상쾌해져서 1박2일 강화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오긴 했었는데..

특별히 무리한건 전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문제라면 문제였을것 같습니다.

임신 초기엔 정말 극 조심 해야하는게 맞나봅니다. 제가 제 몸을 너무 과신했다 싶었습니다. 

2. 병가 시작

저는 이미 현실감을 잃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교수님.
좀 쉬다보면 나아질 수 있을까요?
지금 아예 휴직을 해야하는 상황인가요?

가능하면 휴직을 하는게 낫겠습니다.
좀 나아졌다 싶으면 이미 임신 후반기라, 몸이 많이 힘들수 있습니다.
의사에 따라 지금 시점에 쉴 필요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으나,
분만실에서 워낙 힘든 경우들을 봐왔기 때문에 전 무조건 쉬시라고 권합니다.

이건 뭐.. 그야말로 청천벽력..

첫째 때도 육아휴직도 안하고 버텼는데..

부서에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하나..

나의 향후 미래는 어떻게 되려나…

당장 휴직을 하기엔 처리해야할 일이 산적했고, 저의 출산 후 복직 후 미래가 불확실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한달 간의 병가기간을 갖고 그 이후 상태에 따라 추가 병가, 혹은 휴직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였습니다.

3. 눕눕 시작 (누워있고, 누워있고, 또 누워있고, 계속 누워있고…)

집에서 본격적으로 24시간 중 22시간은 누워있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밥먹을 때, 화장실 갈때만 빼고 계속 누워있었습니다.

그랬더니 한 3-4일 정도 후부터는 허리가 끊어지듯이 아팠습니다. 너무 누워있었더니 없던 허리통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정도 지나니 손목이 끊어지듯 아팠습니다. 누워서 핸드폰만 보다보니 손목통증도 얻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누워서 책이나 핸드폰을 볼 수 있는 독서대도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일명 눕서대 (누워서 보는 독서대)

못봤던 드라마, 예능들을 섭렵해가봐, 더이상 지겨워서 못보겠다 싶을때까지 본것 같습니다.

잠도 그렇게 오래 자본적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허리는 부서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언제 이렇게 쉬겠냐 생각하며 쉬는데 집중했습니다.

누워있을때 어느쪽으로 누워있어야 하나, 몸통은 들어도 되나 너무 고민이 많이 되었는데, 결국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바닥에 등을 대고 눕거나, 양 옆으로 돌려가면서 눕거나 하는 자세로 누워있었습니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11주+6), 초음파 검사 결과 1/2 정도는 흡수가 되서 좋아졌다고 확인되었습니다!!

4. 눕눕은 언제까지??

이렇게 누워만 있으니 나쁠일은 없겠다, 좋아질 일만 있겠다 싶었는데…

다시 약간의 출혈이 다시 뭍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딱 보니 갈색혈이라 그냥 고여있던게 나오는거겠지 싶어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예정일에 내원했는데, 교수님 의견은 좀 달랐습니다.

별로 좋은 징후가 아니며, 이러다가 자궁 경부가 훅 짧아지는 경우가 있어서 예의주시 해야한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더 쉴 것을 권하셨고, 결국 병가를 더 연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총 2달 정도 꼼짝없이 누워있었더니,

누워있는게 이제 더이상 지겹지도 아프지도 않고 익숙해졌을 때 쯤 고였던 피가 거의 다 흡수가 되었습니다.

이제 과제는 병가 종료까지 남은 한달을 어떻게 쉬느냐였는데..

병가 후 갑작스러운 활동이 또 무리가 될까봐서 아주 조금씩 움직여보기 시작했습니다.

거실에서 유튜브를 보며 요가를 따라하기도 했고, 아이 유치원 하원을 직접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몸을 움직여 회복시켜가며 총  3달의 안정가료 끝에 (22주)

피고임은 거의 다 없어졌고,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도 되겠다고 진단되었습니다.

그리고 건강하게 뱃속의 아이와 함께 복직하여, 무려 39주까지 아주 무탈하게 근무 하고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

1. 임신 극초기에 여행은 삼가는게 좋겠습니다.

2. 피고임에는 절대 안정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3개월 정도의 안정이 필요했습니다.

3. 피고임이 있을 때 눕눕의 자세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쉰다는게 중요할 뿐.

4. 피고임은 어쩌면 뱃속의 아가가 하는 첫번째 효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가 온전히 쉴 수 있도록 지켜주니까요.

(2022.07.20. 티스토리 블로그 기록물)

병가 마지막 날

90일의 병가를 마무리하는 날..
오늘은 몇번이나 울컥했고
자기 전.. 아이가 참다참다 울먹이며 엄마 회사 제발 가지마.. 라고 하는 소리에, 아이가 잠들때까지 숨죽여 울다가 밖으로 나와 펑펑 울었다.

막상 출퇴근을 하게되니, 아이와 함께하는 물리적 시간이 줄어드니.. 그게 그렇게 아쉽다.

더군다나, 다음주에 있을 공개수업때 복직 직후인지라 휴가를 내기 어려울수 있는 그런 상황이 닥치니.. 너무 괴롭다. 아이는 당연히 아빠가 올거라고 알고 있는데, 하필 병원에서 중요한 회의일정이 그시간에 겹쳤다는걸 오늘 알게 되었고, 내가 반차라도 못하면 할머니가 가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아..이런 상황 너무 싫다.

워킹맘으로서의 고민을 완전히 내려놓을수 있었던 시간이라 자유로웠고, 요 며칠은 아이를 유치원도 데려다줬고, 몇번은 데리러 가기도 할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게 우리에겐 너무 특별한 시간이라는게 아이에게 미안하다.. 그냥 일상이면 좋을텐데..

이렇게 감정이 격해질때면, 일 자체에서 가치와 의미를 찾기도 어려워진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일을 이어가야하나라는 고민이 들면서, 결국 돈때문인가 라는 세속적 결론에 도달하게된다.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결론이겠지만..

(2021.10.12. 구글드라이브 기록물)

누워있는 주

아이는 안양 할머니 할아버지 집으로 1박2일 놀러갔고~ 가는길에 보석십자수와 공룡 화석발굴놀이를 같이 보냈다. 할아버지가 아이랑 놀려고 준비해주셨다고..

집에서 같이 노닥거리면서 하면 좋은 것들인데.. 앉아서 오래 있지 못하는 입장이라서.. 아이에게 미안하다..

집에서 하루종일 누워서 드라마를 보고있고.. 가끔 앉거나 일어나 있는 시간은 하루 종일 다 합쳐도 한시간 반이 될까.. 허리는 어떻게 풀어도 아픈데, 어떻데게풀어야 안전할지도 몰라 항상 걱정된다.

난 체력적으로 아픈곳도 없고 건강한것 같은데, 이렇게 강제로라도 눕게 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서서 자유롭게 걷고 운동하던 것이 정말 행복한 일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한편 내가 참..가만히 멍때리는 걸 못하는구나 싶기도 하다. 멍 때리는 시간을 거의 용납하지 못하고 드라마를 보거나 뭔가를 검색하고 있다. 생각이라는 걸 해야하는데, 그럴 시간을 참지를 못하는 습관 같은게 있다는 걸 알았다.
내일부터는 강제로라도 멍때리는 시간을 좀 가져봐야겠다.

OO는 나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
오늘도 나를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어찌나 풍성하게 해주는지.. 나를 보살펴준다고, 마트에서 떼쓰지 않겠다고, 엄마 허리아프면 가끔씩 잠깐 일어났다 누우라고, 엄마는 편하게 쉬라고.. 아이 스스로 아는 최선의 것들을 최선을 다해서 끄집어 내고… 심지어 아빠랑 엄마가 말하다가 말투가 좀 이상해지고 그럴때도 있지만 그조차 이해해보겠다고 한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생각을 하는걸까..

(2021.7.21. 구글드라이브 기록물)

누워있기 2일차

오늘은 어제보다 시간이 빨리갔다.

뭔가 생산적인걸 해야한다는 압박에서 약간 자유로워진것 같다.

일단 다음주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누워서 쉬는데만 집중해야할것 같다.

이후에는 보수교육 교육안 준비를 좀 하긴 해야하지만.. ㅜㅜ

집에있던 허리를 받쳐주는 마사지폼도 꽤 도움이 되고, 다리 공기압 마사지 기계도 중고로 사기로 했다.

피고임 회복에 좋다는 호박손 말린것과 연근가루도 주문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오대식 목사님의 고난주간 말씀을 유튜브로 보았고.. 찬양을 했다.

향유를 예수께 부은 마리아는, 자신의 최선의 것을 드렸다기 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은 진정한 자녀였다.

예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듣고 믿은..

PURE PATIENCE.

내가 고등학교때 야고보서를 읽고 감명을 받아 지었던 나의 이메일 아이디이다. 순수와 인내.
그때 나의 순수했던 영성을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생각해보니, 최근에 속으로 쉬고싶다 쉬고싶다 생각을 많이 했던것 같다. 나의 영혼이 쉼을 필요로 했었다.

몸이 반응을 하여 세상 강제적으로 쉬게되었으나, 이또한 은혜이고 주님의 뜻이 있을줄로 믿는다.

(2021.7.16. 구글드라이브 기록물)

피고임

내일이 드디어 진료다.

피고임이 좀 흡수가 되었을까..?

복직을 해도 된다는 소견일까, 더 쉬라는 소견일까.

달맹이는 건강하게 잘 컸을까..?

갑자기 좀 떨리고 긴장이 됐다.

임신이라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과정이었다니..

자몽이를 품고 있을때는 대학원 실습을 나가면서 아픈 아이들을 많이 봐야해서 마음이 힘들고 두려웠는데..그리고 양수가 적다고 하여 맘고생 심했었는데.. 다행히 건강하게 태어나주었다.

달맹이도 큰 이벤트 없이, 부디 건강하게만 태어나주길..♡

(2021.7.25. 구글 드라이브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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