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는 환자가 자기자신을 믿도록 돕는 것이다.

병원에서 이런저런 처치를 하다보면 유난히 겁이 많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병원에서 뭔가 해야하고, 그게 자기를 불편하게 한다는 걸 안다면 싫은게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잘 하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유난히 공포에 사로잡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전에는 그렇게 울며불며 몸으로 버티는 아이들을 마주하면, 처음에는 어르고 달래보지만 나중에는 쫒기는 시간에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었습니다.

우리 딸래미 치과 치료 전까지는 말이죠.

제 딸은.. 병원 포비아로 치면 제가 그동안 마주한 모든 아이들 중 최고였습니다.

아마도 충치 치료의 첫 경험이 아이에게 배신감을 줬던게 분명합니다. 제가 고집을 부려 갔던 (수면이나 웃음가스를 하고싶지 않아) 일반 치과에서, 아이에 대해 섬세하게 접근하지 못하고 가장 심각하게 썩은 이부터 건드리는 바람에 아이가 그 소름끼치는 통증을 무방비 상태로 경험했고 완전히 패닉이 된 적이 있었거든요.

평소 굉장히 안정적인 정서를 자랑하던 아이가 그  치과경험 이후에는 미용실에서 머리 감는것도 두려워하며 우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다른 이유로 병원에 검사하러 가는 짧은 시간 동안, 긴장감을 몸이 이기지 못하고 배탈이 나버리기도 했구요. 제 딸의 돌변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그리고 그 정도가 제가 만나본 모든 아이들을 초월하고보니, 이제는 병원에서 대하기 까다롭다 생각되는 아이가  없어졌습니다.

다 그저 사랑스럽고 안쓰럽습니다.

오늘 만난 10살 여아도 그랬습니다. OO이는 오늘 소변 검사를 위해 소변 줄을 넣어야 하는 처치를 극도로 두려워하며 저항했습니다.

평소에 굉장히 안정적이고 말을 잘 들어주던 아이라서 이 검사도 씩씩하게 할 것만 같았는데,  알고보니 과거에 검사를 했을 때 마음의 준비도 안됐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소변줄이 몸으로 들어와서 놀랐던 경험이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에구.. 안쓰러워라. 그래서 저는 처음에는 아이가 엄마에게 그 힘든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시간을 좀 주었지만  좀처럼 진정이 안됐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과 마음이 더 지치는 것을 알기에 잠시 시간이 지난 후 “이제, 우리~엄마는 잠시 밖에 계시도록 하고 우리끼리 한번 해보자. 선생님 딸도 보니까 엄마가 같이 있을 때 더 마음이 약해져서 못했지만 오히려 혼자서 간호사 선생님이랑 더 잘하더라구. OO이도 분명히 혼자서 잘 할수 있을것 같아.” 하고 말해준 뒤 아이 어머니를 잠시 커튼 뒤에 나가서 기다리시도록 했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없지만 커튼 밖에 있는 것을 확인 후 조금 더 진정이 되어서 침대에 올라 자리를 잡았고, 저와 다른 간호사 둘이 함께 아이에게 검사의 단계 단계를 설명하며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지금 카테터를 넣을 거고 같이  “아~~” 라고 소리를 내면 훨씬 안아프게 할 수 있어. 준비 됐어? 아~~~~”OO이는 그 이후 검사를 아주 잘 마쳤고, 우리는 아이를 아주 크게 칭찬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씩씩하게 침대에서 잘 내려와서 검사실을 씩씩하게 나갔습니다.

오늘 OO이가 자기 자신을 조금 더 믿을 수 있게 되었을까요?? 그랬기를 바라봅니다.

(2022.10.13. 티스토리 블로그 기록물)

간호는 진정성 있는 눈맞춤이다

전 Jean Watson의 돌봄이론을 좋아합니다.

돌봄이론은
간호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고,
간호사로의 소명을 인식하게 하며,
간호사도 간호를 통해 성장한다고 믿는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왓슨의 돌봄 이론은 하루의 간호를 시작하기에 앞서 성찰할만한 내용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그리고 전 그것을 인스타그램에 조금씩 공유를 하며 저 또한 그 내용을 성찰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오늘 하루 대상자와 진정성 있는 눈맞춤을 하겠다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의 이러한 다짐은 오늘 저의 하루를 조금 더 나은 하루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오늘 마주친 수많은 눈들 중 한 어머니의 눈이 제게 많이 남습니다. 초등학생 2학년이 된 여자아이의 어머니의 눈은, 처음엔 다소 피곤해보이셨습니다.

아이는 다리에 힘이 부족하여 휠체어보행을 하고 있었고, 아이의 어머니는 여전히 하루 종일 아이의 도뇨를 직접 해주고 계셨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가 있을 때라도 도뇨시간이 되면 잠시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도뇨를 한 후 다시 학교에 데려다 주시는 상황이었습니다.

아..  오롯이 아이만 지켜내는 삶을 살고 계시는구나.

아이 어머니는 저의 “OO이도 혼자 도뇨할 때가 되었어요.”라는 질문에 당황하시며 왜 이 휠체어를 보지 못하냐는 듯한 눈빛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OO는 다리에 힘이 없어요.”

“우리 이분척추증이 있는 아이들중에는 OO이같이 휠체어보행을 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어요. 그리고 스스로 도뇨도 매우 잘하구요. OO이도 팔의 힘으로 변기에 앉는 연습먼저 시작해보면 좋을것 같아요.”

아이 어머니는 처음엔 믿기 어렵다는 눈빛을 보이셨지만 저의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계속 들으시더니 조금씩 귀를 더 기울여주셨습니다.

“정말 잘 할 수 있어요. 코로나 이전같으면 캠프를 같이 가서 언니들 보면서 배워봐도 좋을텐데..

OO야. 이제 OO도 스스로 도뇨할 때가 되었어. 실은 이미 늦었어. 이미 충분히 언니가 되었거든. 지금부터라도 우리 조금씩 연습해서 고학년이 되거든 혼자 해보는걸 목표로 해보자. 우선 화장실에서 혼자 앉는것부터 연습 해보는거야!!.”

다행이 아이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이 어머니께서는 이전에는 인터넷 자조모임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정신건강에 너무 안좋은것 같아서 일부러 외면했었다고 하셨습니다.

아이 어머니께서 충분히 그러실 수 있으나, 자조모임을 통해서 아이가 얻는 부분이 분명히 클 수 있음을.. 그곳을 통해 OO이가 자신과 비슷한 질병을 가진 친구들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고 아주 행복하게 잘 살수 있음을 알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말씀드리자, 아이 어머니께서는 공감이 되며 기대된다는 듯한 눈빛을 하시며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카페를 직접 찾아 여기가 맞나 저에게 확인을 하셨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여러가지 상담을 마친후 나가시기 전에  약간 붉어진 눈빛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아이를 못떼어놓았던것 같아요.”

“네 맞아요. 아이는 충분히 잘 할 수 있어요. 믿어주셔도 돼요.”

아이 어머니는 여러가지 TO DO LISTS를 가지고 집으로 향하게 되셨지만, 전 그분의 뒷모습을 보며 조금은 힘을 얻고 가시는구나 하고 느끼며 마음 한켠이 채워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좋은 하루였습니다.

(2022.10.12. 티스토리 블로그 기록물)

6개월 동안 6번의 리비전

얼마 전 새벽 출근길에 지도교수님으로부터 한통의 메일이 전달 되었다.

전달해주신 메일은 한참을 기다렸던 저널로부터의 메일이었다.

‘우훗.. 드디어 온건가!!’

가벼운 마음으로 메일 제목을 클릭했는데, 교수님이 써 보내신 한마디.

“리뷰어 3, 정말 너무하네요.”

 

리뷰어(Reviewer) 3. 낯선 그 이름.

지난 6개월 동안의 6번의 리뷰 라운드 중에 리뷰어 3는 없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너무하게 등장했단다.  뭐가 얼마나 너무하길래.. ? 고쳐야 할 것들을 많이 제시했나?

 

걱정되는 마음에 전달해주신 메일을 찬찬히 읽어봤는데,

리뷰어 3는 정말 너무했다.

편집자도 정말 너무 했다.

결과는 리젝(Reject)이었다.

 

 

솔직히 이번엔 진짜 될 줄 알았다.

실은 한 4번째 정도 라운드부터는 거의 다 됐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리고 이번 투고 직전에는 “이제는 정말 되겠어요.”라는 교신저자 지도교수님으로부터의 칭찬도 받았었다.

그런데 무시라..? 갑자기 나타나서 리젝이라고라…?

믿고 싶지 않지만 실화이다.

정말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리뷰어 1은 초반에 이미, 하루 속히 이번에 개발한 이론을 임상에서 적용한 결과를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코멘트를 주고 리뷰 현장을 떠났고, 리뷰어 2는 내가 개발한 이론에 진정한 호기심을 보이며 아주 섬세한 리뷰를 해주었다. 그는 처음부터 이 이론을 개발하게 된 배경과 의도를 매우 높게 평가해주었다. 물론 그가 납득하지 못한다고 해명하거나 수정할 것을 요구한 부분도 있었으나, 결국 나의 디펜스(defence)에 결국 설득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이 이론을 독자에게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문맥의 흐름 방향까지 제언해주며 감동적인 리뷰를 해주었었다. 무려 6개월 동안 6번의 리비전 과정을 거치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완성도 있는 이론이 되었고, Accept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결국 리뷰어 2로부터는 드디어 완성되었다는 칭찬을 받게 되었으나,갑자기 등장한 리뷰어3가 이 이론을 그냥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리고 편집자는 그것을 수용했고, 그렇게 종료됐다.

 

리뷰어 3는 뭐, 나름 자신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 할 말을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저렇게 리젝을 줄 논문이었다면, 애초에 리비전을 6번이나 시키면 안되는 것 아닌가?

 

그래도 너무 좋은 리뷰어를 만나서 이론의 완성도가 높아졌잖아!? 그러니 곧 어디든 게재되어 빛을 볼 날이 있겠지… 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저 메일을 받고 다시 투고하기까지 3주 이상의 회복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재투고를 완료했다.

투고 직전 새로 투고할 저널의 편집위원회 목록을 찬찬히 살펴보니, 내가 사랑하는 간호 이론가이자 본 이론 개발의 계기가 되어준 Jean Watson이 포함되어 있다.

갑자기 더 떨리는데.. 여기서 리뷰를 못 받거나, 리젝되면.. 마음이 더 많이 아플 수 있겠다. 한편으로는 제대로 시험대에 올려놓은 것 같기도 하고.. 아 떨린다.

 

그나저나, 비합리적으로 권력을 남용하는 저널은 망할지어다.

내 다시 거기 투고하나 봐라!!

 

 

간호사의 균형감, 돌봄과 돌봄 사이

간호사는 건강 상의 결핍이 있는 사람을 직업적으로 돌보는 사람이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언젠가는 죽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본인 자신을 돌보게 끔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존재는 결코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타인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 놓여져 있을 수 있다.

자신을 돌보면서, 타인을 돌본다는 것. 그것은 엄청난 균형감을 요구한다.

일례로 자신만 돌볼 줄 아는 사람은 결코 간호사가 되어서는 안된다. 모든 관심과 에너지가 자신의 안위에만 향해 있다면, 간호사로서 다른 사람의 건강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을 자격이 없다. 이는 오히려 악에 가깝다. 그로 인해 수많은 환자가 진정한 돌봄을 받을 기회를 박탈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주변의 동료 간호사들도 피해를 입고 제대로 간호를 할 기회를 박탈 당하고, 결국 건강 관리 공동체의 위기까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타인을 돌보느라 본인을 돌볼 줄 모르는 사람 또한 간호사가 되어서는 안된다. 간호사 자신이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기고 돌볼 수 있을 때, 간호사 자신의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가 일치하게 되고, 이 때 대상자와 진정한 치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만약 간호사가 타인을 돌보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게 되면, 결국 간호사가 자기 자신을 고갈시키게 된다. 나를 희생시키면서 남을 돌본다는 것.. 가치가 있다 할 수도 있겠 으나, 간호를 하면서 간호사 자신도 살고 타인도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권장하기 어려운 바이다.

간호의 본질은 돌봄이다.

물론 돌봄은 인간 존재의 특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간호가 특히 “돌봄”을 그 존재의 본질로 정의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적으로 합의한 직업적 의무이기 때문일 것이다. 돌봄은 간호사의 의무다.

나를 돌보고자 하는 본능적 의지를 넘기고 남의 안위를 향해 시선을 옮기는 것은 결코 보통 일 이 아니다. 그리고 타인을 돌보고자 하는 자신의 높은 기준을 희생시키고 자신을 향한 돌봄의 여유를 마련하는 것도 보통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존재의 특성 그 자체인 “돌봄”을 삶의 과업으로 삼고, 그것을 치열하게 성찰 하며 살 수 있는 간호사만큼 인생을 배우고 성장해나가기에 좋은 직업은 없을 것이다.

간호사는 자신을 돌보는 것과, 타인을 돌보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데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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