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이 온다

90년대생이 온다.
임홍택 저.

비록 난 86년에 태어난 80년대 생이지만, 밀레니얼 세대로 구분되는 세대로 이 책에서 말하는 90년대 생의 특성을 상당히 많이 지니고 있었다.

뭐, ‘줄임말’이라던지 ‘병맛’을 좋아하진 않으나, ‘일’을 대함에 있어 워라벨이라던지 일터에서의 즐거움, 일터에서 실현하고 싶은 자아, 자유로운 휴가를 추구하는 자세 등은 나의 모습과 같았다.

그런 차원에서, 상당히 이해하고 적응하기 어려웠던 병원이라는 조직에서 10년을 버텼다는 사실에 내 스스로를 토닥이게 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 라는 ‘자아’가 강하고, 할말을 담아두지 못하고 해야만 하는 ‘추진력(?)’을 지닌 요상한 젊은이에게 적응해 준 우리 조직에도 감사하다. 적응 해주셔서 망정이지 이곳이 아닌 다른 부서에 있었더라면 진작에 다른 살길을 찾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병원은 넓고, 복잡하고, ‘기존’ 조직’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어보니 점점 신규 간호사 및 병원의 일반직 사직률이 높아지는 이유도 이해가 된다.

아마도 90년대생은 ‘나’라는 존재를 도저히 받아주지 못할 것 같은 대형병원이라는 조직에 회의감을 갖고 포기해버렸을 것이고, 병원은 이렇게 통통튀는 것 같아 보이는 90년대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에는 기존의 상식에 비추어 봤을 때 도저히 이해도 안되고, 이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너무나도 많은 이해당사자가 엮여있기에 감히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조차 설정이 안됐을 것 같다.

나의 사례를 돌이켜보면,

1)일단 내가 속한 부서가 15명내외의 작은 규모의 부서였고(인력 운용이 아주 복잡하지 않을 수 있는),

2)부서 안에서 구성원들끼리 듀얼잡/트리플잡이 가능하게 훈련되었고(배워야 할때는 상당히 괴로웠으나),

3)리더십이 비록 기존세대이지만 귀를 닫고 있지 않았고, 구성원이 조직에 헌신하는 만큼 그 구성원의 니즈를 이해해주었다(실제로 리더십의 결단력과 포용력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리더십이 요구한 것은 조직의 발전을 위한 구성원의 몰입이었고, 내가 원하는 것은 나 자신이 이 조직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했고, 가능하면 이 조직을 통해서 내 스스로가 발전함과 동시에 나의 일터 밖에서의 시간도 존중받는 것이었다. 아마 서로 100%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정도로 맞춰오지 않았나 싶다.

90년대 생이 옳은 것도, 기존세대가 옳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90년대생은 이런것이고, 기존세대는 이런것일 뿐.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90년대생에게도 기존세대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쌍방의 노력이 있다면 분명히 긍정적인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이도 알고 저도 이해하는 세대로서의 역할을 해나가야 겠지.
내가 벌써 꼰대가 됐나? 라고 생각해본적 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충분히 의미가 있다!

(2020.1.6. 페이스북 기록물)

윤리적으로 질적연구 수행하기 (1). 익명성 지키기는 쉬운가, 어려운가?

연구에서 “익명성”을 지킨다는 것.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질적연구에서 익명성이 지켜지지 않은 사례

한번은 대학원 동료로부터 어떤 사례를 들었었습니다.

해당 연구에서 대상자를 모집하기가 쉽지 않아 어떤 인터넷 자조모임 카페를 통해 모집을 했다고 합니다. 모집이 쉽진 않았지만 어떻게 어떻게 되었고, 인터뷰를 잘 진행하게 되었고, 연구 결과를 보고할 때도 일반적인 질적 연구 보고와 같이 실제로 대상자가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여 보고했다고 합니다. 물론 익명으로 보고가 되었지요.

그런데 그 연구가 보고된 이후, 참여자로부터 문제제기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까지 자신이 한 말이 그대로 인용될 줄은 몰랐다구요.

그 이후 다시는 그 자조모임 카페에서 연구 관련 모집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요?

전 다음과 같이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1. 사전에 연구자가 대상자에게 녹취된 내용이 그대로 인용될 것이란 것을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했을 것이다
  2. 실제로 익명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을 것이다.

1번이라면 아마도 대상자에게 연구를 설명할 때, “익명성”이 지켜진다는 것은 강조하면서도 “인용문”이 그대로 보고될 것이란 것은 강조하지 못하면서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상자에게 연구를 설명할 때 이 부분을 최대한 강조하여 인지하실 수 있게끔 하고 있습니다.

2번에 대해서는 “어떻게 그럴수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연구자가 전혀 의도치 않았더라도 까딱하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질적연구에서 “익명성”을 지킨다고 하면, 그 내용을 누가 말했는지에 대해 인용하면서 가명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구 대상자가 희귀하거나, 특수할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집단이 좁을 수록 익명에 가려져 있는 대상자를 특정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연구 보고서에는 대상자의 특성이 별도로 보고가 되기도 하고, A라는 사람이 언급한 말 몇 마디에 A가 누구인지 금새 추측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한 다른 이야기들이 줄줄이 다 노출이 되버릴 수도 있을 겁니다.

특히 저렇게 인터넷 카페를 통해 모집을 했고, 누가 그 연구에 참여했는지를 어느 정도 알거나 추측할 수 있는 경우에는 더욱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 보고를 할 때 익명성은 단순히 가명을 쓰는 것으로 커버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대상자 자신이, 원치 않게 공중에 드러났다고 느끼게 됐다면, 그 연구는 분명 윤리적이지 않은 연구가 되어 버립니다. 연구자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말입니다. 이를 연구자가 뒤늦게 알게된다면.. 정말 큰 죄책감을 갖게 되겠지요.

Confidentiality is a separate issue from anonymity but also important. In
research where words and ideas from participants are used, full confidentiality cannot be promised, especially as qualitative research contains quotes from the interview data. In these studies, confidentiality means researchers keep confidential that which the participant does not wish to disclose to others. Patients, in particular, sometimes disclose intimate details of their lives which the researcher cannot divulge, although the information could be useful for the research. Hammersley and Traianou (2012) discuss the issue of privacy in particular as qualitative research often involves inner feelings and thoughts of participants.

Holloway, I., & Galvin, K. (2023). Qualitative research in nursing and healthcare. John Wiley & Sons.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이 연구에서 인용문이 익명으로 인용될 수 있음을 대상자가 분명히 인지할 수 있게끔 설명해야 합니다.

둘째로, 질적연구는 반복적인 동의의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대상자가 연구 동의서에 서명했다고 하여 모든 것이 다 허용되는 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대상자가 연구동의서에 서명하기 전에, 연구 참여는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고 미리 안내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인터뷰 중 취소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인터뷰 녹취가 끝난 후에 취소하는 것일 수도 있고, 연구 분석이 끝난 후 연구 보고 직전에 취소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고, 대상자에게 그럴 권리가 있음을 알려야 합니다. 즉, 연구가 보고되는 시점까지 대상자가 그 연구에 참여할 수 있게끔 해야합니다. 분석 결과가 대상자의 의도와 다르지 않은지도 검토받아야 하고, 보고가 되기 전에 어떻게 보고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검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Consent in qualitative research is an ongoing process. Whilst consent may be implied in one phase of the research, it cannot be assumed at another stage when the researcher’s ideas change on the basis of the information provided, or indeed, when participants change their minds. Thus, consent is not a once and forever agreement by participants but requires ongoing consent. For a discussion of the complexity of these staged issues in relation to negotiating the journey of a qualitative research study, see Redwood and Todres (2006).

Holloway, I., & Galvin, K. (2023). Qualitative research in nursing and healthcare. John Wiley & Sons.

그리고 참가자를 식별할 수 없도록 참가자에 대한 사소한 정보를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경우에서는 나이가 연구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면 모든 참가자의 나이를 2-3세 정도 변경하기도 합니다(이 또한 대상자의 동의가 있어야겠지요?). 대상자가 동의한 연구자만이 정확한 신원과 녹취록, 분석보고서를 일치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Researchers sometimes change minor details about the participants so that they cannot be identified. For instance, researchers may change the age of all participants by two or three years when age is not an important factor in the research (Archbold, 1986). This of course must be reported in the research account without giving exact particulars. Only the researcher should be able to match the real names and identities with the tapes, report or description.

Holloway, I., & Galvin, K. (2023). Qualitative research in nursing and healthcare. John Wiley & Sons.

저도 희귀한 질환을 가진 대상자를 연구하다보니, 이런 부분에 특히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중요한 내용을 사실적으로 보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참여자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가장 안전할 수 있는 것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중요한 순간 순간에 (분석&보고)에 대상자에게 확인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일 것 같습니다.

일단 저는 다행히 처음 연구 동의를 구할 때, 향후 “의미 검토 과정”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동의를 받아 두었습니다. 원래는 현상학적으로 “상호주관적 검증”을 위해 넣어둔 장치였는데 (일반적으로는 삼각검증의 목적으로 넣어둘 수 있겠지요), 윤리적으로도 맞는 것 같습니다. 이 때, 어떤 식으로 인용문이 보고가 될 예정인지에 대해서도 확인을 받으려고 합니다.

아! 이런 향후 추가 연락에 대해 미리 동의를 받아두는 것도 중요한데, 왜냐면 대상자는 인터뷰 이후에는 다시 연구와 관련하여 일절 연락 받길 원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 참여자를 지키면서 연구하기. 무엇보다 중요하겠습니다.

엄마를 미안하게 만들면 나라가 망할..껄..?

경제학적으로 사람은 나라의 돈이고 경쟁력이다. 그런데 나라 곳간이 비워져 가고 있다.
곳간을 다시 채워보려고 이것저것 정책이 나왔지마는, 아직 터닝포인트가 될만한 정책은 등장하지 않은듯 하다.

여성의 학력과 사회적 지위, 경제적 가치가 높아졌지만, 여성이 엄마가 되는 순간 그 학력과 사회적 지위, 생산력은 죄책감의 이유가 된다.

아이에게, 가족에게, 그리고 동료와 조직 리더에게.
왜 그래야 하지..? 왜 엄마라서 미안해야 하지..?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1) 옆을 못지켜 줘서 미안하고.
2) 대신 고생 하실 부모님께 죄송하고(조부모님이 아이를 봐주신다면)
3) 그 미안함을 견딜 수 없어 결심하고 휴가라도 내면 그 자리를 채워야 할 동료에게 미안하고.
4) 다른 직원과의 형평성을 따져야 할 리더에게 죄송하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방과후 등을 통해 아이들을 국가가 대신 봐주는 것보다, 엄마가 일하다가도 필요할땐 죄책감 없이 아이에게 갈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하는 건데.. 그것이 그리도 어려운가보다.

육아휴직, 육아기 단축근로, 탄력근무 등등이 있으면 무엇하나. 그 빈자리를 메꿔서 직장을 돌아가게 할 인력이 없는데.

나는 그래도 상당히 배려 받는 환경이고 부모님의 도움도 받는 매우 감사한 포지션이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부모님께, 동료에게 미안할 때가 많다. 엄마라서.

아이가 초딩이 되며 많은 여성이 그간의 경력을 내려 놓는 다는 것이 남일이 아니다. 이것또한 경제적 손실

출산률이 낮아진다지만 그것을 애써 높이는데 기여할 생각이 안드는 것도 사실이다. 기여한 공을 인정 받기는 커녕, 부담이 상상도 못하게 더 커질게 보인다.

어떻게 안되려나..

(2019.12.11. 페이스북 기록물)

나의 위경련 경험에 대한 현상학적 체험 분석

도입

급성 위경련이 왔다.

현상학적 질적연구를 공부하고 있는 입장에서, 현상학적으로 나의 경험을 되돌아보기로 했다. 이남인(2005)에 의하면, 연구자와 연구참여자가 동일한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의 “해석”보다 높은 수준의 명증성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결국 이것이 객관성을 담보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때, 다른 경험자의 상호주관적 검증이 있을 경우 그 객관성을 높일 수 있게 된다. 다른 위경련 체험자들의 경험들이 여기에 덧붙여지길 바라본다.

이 글은 위경련이 발생하고, 사그러든 날 밤에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위경련 경험

어제부터 감기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오늘새벽부터 오한이 들었고, 열은 38.4-6을 왔다갔다 했다. 열이 나도 오한이 없으면 그래도 좀 살만했다. 다행히 오늘 진료는 휴진이고, 치료 예약된 환자만 두어명 있어서, 약먹고 버티면 크게 어렵지 않은 여유로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다만 약 먹고 오한이 떨어지는 것은 3시간을 못버텼다. 컨디션이 영 아닌것 같았다. 그런데 그와중에 배는 또 고파서, 오한이 떨어졌을 때 뭐라도 먹자 하고 비타민 충전한답시고 샐러드를 먹고, 뭔가 아쉬워서 빵도 먹었는데..그게 문제였던 것 같다.

처음엔 “어 뭐지? 체했나?” 싶었다.

원래 난 피곤할 때 뭘 먹으면 윗배가 빵빵하게 부풀면서 아프다. 난 원래 이 상태를 체했다고 표현하는데 이때는 바로 누우면 좀 나아지곤 했다. 그래서 동료 간호사에게 잠깐만 누워있을께 하고 누웠는데 이상했다.  이건 어떤 자세도 통하지 않았다. 한참 자세를 찾고 있는데 통증은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고, 서랍안에 넣어 두었던 위경련약이 생각났다. 라미나지액이라는 약인데, 이전에 위경련 있었을 때 의사선생님이 이건 본인도 프랩해놓고 급할때 먹는다고 하셨던 약이다. 책상앞에서 쪼그려 앉아 우겨 넣었다.

그리고 다시 침대로 갔는데 그 침대가 내가 올라가기에 너무 높아보이기 시작했다. 도저히 저 불안한 침대에서 쪼그려 누워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바닥에 쪼그려 엎드렸다. 안보이는 곳이니 상관 없었다. 그렇게 쪼그려 엎드려있었는데, 옆 베드에서 치료를 받는 아이가 도착했다. 이제 보여질 수밖에 없을것 같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침대 위로 올라갔다. 여전히 나에게 편한 자세는 없었지만, 그나마 엎드려 쪼그려 누워있을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점점 나의 호흡은 가빠지기 시작했고, 옆의 베드에 누워있는 아이와 보호자가 알아챌것 같이 끙끙 거렸다. 어쩔수가 없었다. 눈치채게 하고싶지 않았지만 지금 그런걸 따질수는 없었다. 온몸에서 땀이 척척하게 스며나왔다. 상의부터 하의까지 모든 옷이 순식간에 축축하게 젖는게 느껴졌고, 이 통증은 좀처럼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그래서 개미같은 목소리를 겨우 내어 동료 간호사에게 “주사실에 맞을만 한게 있나 연락 좀 해줘” 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 엎드려 끙끙 앓고 있었는데 동료간호사가 나에게 와서 다시 물어봤다. 난 목소리를 낸다고 했는데 거의 안들렸었나보다. 내가 주사실…하고 웅얼거리자 알겠다는 듯이 급하게  나갔다. 그러더니 시니어 선생님을 데리고 왔다.

시니어 선생님이 쪼그려 누운 내 뒤에서 따뜻한 물을 좀 먹어보지 않겠냐고 권하셨던 것 같고, 나는 아무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이것은 무슨 통증일까. 괜찮아지긴 하는걸까. 빨리 약.. 약..

급하게 외래의 진료를 잡아주었고, 대기가 3번째라고 하였었다. 그런데 난 몇보 앞의 진료실을 갈 자신이 없었다. 그냥 약.. 빨리 약..

도대체 이 통증은 무엇있가..? 이건 통증 scale 10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이런 통증을 자주 겪을수 있다는 암환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까.. 그들의 통증은 조절이 되긴 할까 라는 연민 아닌 공감을 느꼈다. 이러곤 도저히 살수 없다. 위에 구멍이라도 내고 싶을 정도로 아픈 이 통증은 참을 수 있는 통증이 아니다. 극도의 생리통일때는 자궁을 떼버리고 싶었고, 오늘은 위에 빨대를 꽂고 싶었다.

거의 혼절 직전에 이르렀는데, 교수님이 너무 급해보인다고 일단 약 먼저 처방해주었다 하였다.일단 다행이긴 했는데 내가 과연 주사실로 갈 수 있을까.. 도저히 난 거기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침대 앞에 휠체어가 준비되어 있었다. 고마웠지만 고마움을 챙겨 말할 새도 없었다. 일단 이건 타야겠지.. 휠체어 타려고 겨우 비틀거려 내려왔는데 그제서야 내 머리카락도 다 젖어있었다는 걸 알았다. 겨우 비틀거리며 휠체어에 앉았고, 다리를 들어 발받침 위에 발을 올렸고, 난 허벅지에 쪼그려 엎드렸다 .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이동시켜주기 시작했다.

갑자기 너무 추웠다. 복도로 나온것 같았다. 온몸이 땀에 젖어있어서 그런거였겠지만 너무 추웠다. 한편 시원한것 같기도 했다. 열이 식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속이 울렁거리가 시작했다. 아무래도 침이 고이려고 하는게 심상치 않았다. 주사실은 얼마나 남은걸까 하고 올려보았더니 한 3m 남았더라. 그래서 말했다. “아무래도 토할것 같어..”

“어, 토할것 같으세요?”라는 긴박한 목소리가 들리며  주사실에 safe하듯이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여러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와줬고, 토할것 같다는 얘기에 바로 쓰래기통을 집어 주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난 받자마자 토를 했다. 위가 쥐어 짜지면서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아까 먹었던 카스테라가 아직 소화가 덜 된 것 같았다. 걸죽한 반죽이 되어 입을 통해 밀려 나왔다. 그렇게 쓰래기통을 부여잡고 토를 했고, 나는 재빨리 침상곁으로 옮겨졌다.

토를 하고나니 약간은 나아진것 같았다. 주사실 선생님들께서 나를 따뜻하게 돌봐주셨다. 어떤 자세가 편하냐고, 편한 자세로 있으시라고하며 돌봐주셨다. 물티슈도 주시고 휴지도 주셨다. 침상에 올라가서 눕는게 낫겠다 싶어 올라갔고, 토를 해서 그런가 이제는 옆으로 쪼그려 누울 수 있었다. 도저히 눈은 뜰수 없었는데 그 사이에 iv가 안아프게 놓여졌고,  처음에는 프리판이 들어간다 하였다. 약이 들어가니 일단 안심이 되었다. 단단했던 위도 조금씩 긴장을 풀려는게 느껴졌다.

아까 남편에게 “와줘…”라는 단발마의 비명을 담은 카톡을 보냈었는데 그 이후에 내가 전화도 못받고 카톡도 못받고 있으니 동료 간호사와 통화한후 부랴부랴 주사실로 왔다. 어쩔줄 몰라하며 앉아있다가 밖에 나갔다 왔는데, 시부모님께 오늘 밤에 아이들을 봐주시길 부탁해준 것이었다. 그럴필요까진 없을것 같은데.. 도저히 안되어보였나보다.. 그래도 일단 집에가서 푹 쉴수 있다는게 안도감을 주었다.

그렇게 한참 누워있었는데 다른 약이 하나 더 달리고, 그게 다 들어간 후에는 수액을 달아주셨다. 수액까지 달리니 이제 거의 다 된것 같았다. 나는 바로 누울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퇴근할 때가 된건지 동료 간호사가 “괜찮으세요?”하고 와주었다. 이제 일어날 수 있었다. 같이 돌아가기로 했다.

확실히 이젠 걸을 수 있었고, 옷은 여전히 척척했지만 아까만큼 춥진 않았다. 몸에 힘은 없었지만 아프지 않으니 되었다.

남편은 아픈데 죽을 먹어야지 왜 샐러드랑 밀가루를 먹었냐고 안타까워했다. 속은 괜찮을줄 알았지… 아플 때 죽을 먹으란 건 조상의 지혜인듯 하다.

현상학적 체험 분석 (사실적 현상학적 심리학적 체험연구)

감기바이러스로 인해 힘겨웠던 몸(주체)에서 발생한 급성 위경련(체험의 대상) 가운데 나는 나의 온 신경이 복부의 통증을 향해 있었음을 경험했다. 나의 위장은 부풀었고, 비틀렸고, 여러개의 칼이 사방에서 찌르는 것 같았으며, 해결되지 않은 통증에 온몸의 세포가 땀을 내며 발악을 했다(신체성). 1초는 5초같이 느리게 갔고(시간성), 겨우 힘을 내어 쪼그려 누워 나의 배를 스스로 문지르는 것은 좁은 굴 속에서 혼자 사투를 벌이는 것 같았으며, 특히 그 좁은 침대는 너무 높아보였고 불안했다 (공간성). 그 가운데 나를 들여다봐주는 사람들(동료 &시니어 간호사 선생님, 주사실 선생님, 남편, 시부모님)은 안도감을 주었고, 진심으로 감사했다(관계성).

멀미 때문이었는지 위장의 마지막 발악이었는지  구토를 한 이후에 통증은 약간 나아졌고, 주사제를 맞고나서 30여분이 경과했을 땐 확실히 편해져서 더 이상 위에 나의 신경이 집중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날에는 온몸에 근육통이 생겨서 반신욕을 해야했다(시간에 따른 전개).

나는 위경련의 상황에서 병원안에 있는 나의 검사실 구석 침대에 쪼그려서 배를 부여잡으며 119를 불러야하나 잠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럼 분명 우리병원의 응급실로 데려다줄텐데, 응급실에선 나를 받아줄까 염려 해야했다. 또 여기서 거기 가자고 119 부르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고 포기했다. 그리고 주위의 간호사에게 도움을 청했고, 가까운 병원 시스템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진경제만 맞으면 좀 나아질 수 있는건데.. 집에 있었가면 어떻게 했을까? 낮이라면 동네 내과를 갔겠지.. 밤이라면 어떻게 해야했을까.. 2차병원 응급실에서는 받아줬을까..나는 운이 좋게 다행이었지만, 요즘같은 상황이면 염려가 많아질 것 같았다. 아픈것도 서러운데 어딜가야 하나 고민해야 하는 건 억울한 일이다(사회성, 역사성).

급성 위경련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통증이었으며,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고, 이런 통증을 자주 경험하는 이들에 대한 애달픔을 알게 됐다. 한편 그 통증이 지나간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똑같은 일상이 되었고,  조절이 되는 통증이라는 것에 감사했다. 그러나 나는 이 통증이 사그러진 이후 “암성 통증”과 “만성 통증” 경험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이런 통증을 간헐적으로든 수시로든 지속적으로라든 경험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면.. 정말 무서울 것이다. 그리고 급작스럽지만 기도제목이 하나 더 생겼다. 나중에 하늘나라에 갈 땐 가더라도 통증 없이 가게 해달라고. 그만큼 무서운 통증이었다(위경련의 의미).

이건 위경련 “통증 스케일 10″이라는 숫자 이면에 있을 수 있는 하나의 의미있는 현상일 것이다.

고찰

구체적인 고찰까지 하기엔 여유가 없다. 다만, 이렇게 글을 써봄으로써 위경련 현상을 그 현상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본질적 요소의 차원으로 들여다보는 것을 연습해보았다 할 수 있겠다. 추후 조금 더 고찰해볼 수 있으면 그 때 추가하기로 해본다.

참고문헌

이남인(2005). 현상학과 질적연구: 응용현상학의 한 지평. 한길사

현상학적 질적연구를 한다면 이 학교 이름 정도는 알아야지! – 듀케인 대학교(Duquesne University)-

미국 펜실베니아의 피츠버그에는 미국의 유일한 성령수도회(Congregation of the Holy Spirit) 소속 교육기관인 듀케인 대학교가 있습니다.

만약 현상학적 체험연구(질적연구)에 관심이 있다면, 이 대학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

경험과학을 하는 학계에서 현상학을 수용하여 탐구할 때 방법론적으로 많이 따르는 학자인 반 캄(van Kaam), 지오르지(Giorigi), 콜라지(Colaizzi)가 모두 이 듀케인 학교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반 캄과 지오르지는 심리학의 “듀케인 학파”의 창립 멤버였고, 이곳에서 “심리학을 위한 현상학적 방법”을 공식화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Adrian van Kaam (반 캄)

1920년도에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반캄은 가톨릭 사제이며, 성령수도회(Congregation of the Holy Spirit) 소속이자 신학교의 교수였습니다. 그러다 반캄은 미국 피츠버그의 성령수도회 소속 교육기관인 듀케인 대학교에 1954년에 파견이 되었는데, 신학(영성 형성)을 가르치기 위한 것인 줄 알았으나 도착하고보니 총장이 그에게 심리학과를 맡아달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심리학 경험이 없던 그는 이에 따라 미국 전역을 다니며 칼 로저스(Carl Rogers)와 에릭 에릭슨에게 심리학(Erik Erikson)을 배우고, 따뜻한 교제를 나누었으나

Karl Rogers
Person-Centered Approach,
인본주의&윤리적 심리학

Erik Erikson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

그들의 접근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독일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영어에 능통했던 반캄은 당시 영어로 충분히 번역되지 않았던 현상학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이해 받는다는 경험”에 대한 탐색을 통해 현상학을 적용하였고, 이것으로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게 됩니다.

KAAM, A. L. (1959). Phenomenal analysis: Exemplified by a study of the experience of” really feeling understood”. Journal of Individual Psychology15(1), 66.
이 논문은 데이터베이스 “https://www.proquest.com/” 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연구로 인하여 반캄은 현상학을 심리학에 명시적으로 연결시켜 발전시키기 시작한 첫번째 연구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의 문헌에서 후설의 이름은 단 한 차례만 거명되고 있다고 하네요.

Amedeo Giorgi (지오르지)

Amedeo Giorgi

여전히 현역 교수로 샌프란시스코의 세이브룩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지오르지는 포드햄 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맨해튼 칼리지와 듀케인 대학교에서 처음으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원래 양적 연구방법을 토대로 하는 정신물리학의 전문가였으나,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그는 주류 심리학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면서 대안적 방식으로 철학적 현상학을 채택하였고 현상학적 심리학의 영역을 개척했습니다. 반캄과 함께 심리학의 “듀케인 학파”를 창립하였으며, 한편 그는 반캄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후설의 현상학을 언급하고 그 근본정신을 살려나간 학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여전히 심리학에 대한 현상학적 접근의 가치를 입증하는 논문을 계속해서 작성하고 있으며 칼 로저스(Karl Rogers)와 프리츠 펄스(Friedrich (Frederick) Salomon Perls, 게슈탈트 요법)와 같은 저명한 선구자들과 함께 인본주의 심리학 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Paul Francis Colaizzi (콜레지)

지오르지의 제자인 콜레지는 듀케인 대학에서 심리학&철학의 학사&석사, 현상학적 심리학에 대한 박사를 받았으며, 이러한 연구를 종합해서 1973년에는 “심리학에서의 반성과 연구: 배움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라는 저서를 출간했습니다.

Colaizzi의 “Reflection and research in psychology”는 대학교 도서관에서 대출 가능합니다.

이 저서는 반캄의 방법이 지닌 한계를 보완하여 배움이라는 현상에 대한 경험적 심리학적 연구 수행 결과를 보여주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절차가 다소 복잡하여 이 연구보다는 1978년에 발표한 논문에서의 방법이 주요 수용되어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Colaizzi, P. F. (1978). Psychological research as the phenomenologist views it. – 그런데 원문을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는 못찾았습니다). 콜레지 선생님은 2010년에 72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네요.

정리

미국에서 심리학적 현상학이 붐을 일으켰고, 이것이 간호학에까지 흘러올 수 있었던 것(참고: 간호학이 현상학을 만났을 때)은 네덜란드 신학자이자 다국어에 능통했던 반캄 신부가 듀케인 대학교로 오게 된 것이 중요한 계기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겠습니다.

펜실베니아에는 듀케인 대학교가 있습니다.

Reference

Adrian van Kaam – Wikipedia

DanielBurstonPh.D. (2008) Adrian van Kaam, (1920–2007), , 36:1, 90-91,
DOI: 10.1080/08873260701829225

Amedeo Giorgi, PhD – University Professors Press

이남인(2005), 현상학과 질적연구, 한길사

워드프레스 제너레이트프레스(무료), 가볍게 사이드바 고정하고 너비조절하기

워드프레스 홈페이지에서 사이드바를 사용하지 않다가 적용시켜보았는데, 다음 두 가지 가능은 알아두고 필요 시 적용하면 좋겠다 싶었다. 현재는 사이드바는 고정하지 않았지만, 너비는 조절해둔 상태이다.

1. 사이드바 고정

제너레이트프레스 테마(무료)에서 사이드 바 고정하는 방법을 찾다가 간단히 CSS를 추가해주면 되는 방법을 찾았다

디자인-사용자 정의하기에서 CSS 추가하기.

/*사이드바 고정 */
.inside-right-sidebar{top:20px; position: sticky; position: -webkit-sticky;}

참고링크 – 이 페이지를 열면 구체적 내용을 확인 가능하며, 직접 문구 복사 가능하다.

상단 고정 너비는 top:20px의 숫자를 변경하면 된다.

잘 작동한다. 그런데 일단 지금은 별로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 적용은 취소했다.

2. 사이드바 너비 조절

이것도 겨우 찾았다.

외모-테마파일 편집기-function.php에서 아래의 문구를 복붙해준다.

add_filter( ‘generate_right_sidebar_width’,’lh_right_sidebar_width’ );
function lh_right_sidebar_width() {
return ‘25.5’;
}

참고링크 – 이 페이지를 열면 구체적 내용을 확인 가능하며, 직접 문구 복사 가능하다.

25.5가 너비고 이것을 조절해주면 된다.난 25.0으로 조절한 상태이다.

보통 테마를 바로 편집하지 말고, 차일드테마를 만들어서 사용하라고 하는데, 아직 거기까진 가지 못하고 그냥 현재 테마파일에서 수정한 상태이다. 나중에 자식테마를 만들게 되면, 오늘 추가한 것은 지워야할 것 같다. 다들 하라는 데는 이유가 있을테니, 여유가 되는대로 차일드테마 만드는 법을 좀 배워봐야겠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코타키나발루 4박5일 결혼 10주년 여행 – 4일차- feat.샹그릴라 탄중아루 호캉스, 이마고몰, 선셋, 웰컴100%씨푸드

#1일차- feat.6월, 감기, 티웨이, 식스티3, 여행비용
#2일차- feat.가야스트리트, 선데이마켓, 이펑락사, 샹그릴라 탄중아루 탄중씨뷰,먹방, 도미노피자, 그랩, 여행비용
#3일차- feat.샹그릴라 탄중아루, 프라이빗 비치, 수영장, 먹방, 반딧불이 투어, 맹글로브 투어, 하이말레이시아, 6월 우기, 비오는 날의 석양.

벌써 4일차.

코타키나발루의 아침은 시원하고 맑았다.

아침에 일어나 새소리와 파도소리를 들으며 발코니에 앉아 있노라면, 낮의 그 찜통더위가 당황스러울만큼 시원했다. 오늘도 그랬다.

둘째는 어제 반딧불이 투어를 하며 슬슬 살아나는 것 같더니, 아침 조식도 잘 먹어주었다. 특히 조식 뷔페에 둘째가 사랑하는 잡채도 나와주어 고마웠다. 아이가 잘 먹어서 그런가, 남편도 오늘은 어제보다 조식이 더 먹을게 있어 보인단다. 어제는 세상 불평을 하더니만..아이가 살아나니 우리도 살아난다.

여행와서 계속 칭얼거리며 안아달라던 둘째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행히 가족사진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코타키나발루에서는 스냅작가를 불러 사진도 찍는다지만 남편에겐 좋은 카메라와 삼발이가 있었다. 그래서 몇몇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카메라와 삼발이를 바리바리 싸들고 왔었다. 그동안의 둘째 상태를 보면 진짜 예약을 해서 스케쥴을 잡았더라면 그 또한 부담이 되었겠더라. 다행히 적당한 컨디션에 적당한 날씨를 맞이했고, 기분이 썩 다들 괜찮은 날 아침..나름 챙겨온 이쁜 옷들을 입고 사진을 남겼다.

한참 사진도 찍고, 큰 나무 아래에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도 하고, 뛰어도 다니고.. 좋은 위치의 선배드에 자리잡고 이런저런 물놀이를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드디어 좀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첫째는 특히 물안경 쓰고 잠수하며 놀거나, 미끄럼틀 타는 걸 좋아라했다. 그런데 잠수 할 때마다 모자가 벗겨지니 첫째는 귀찮다고 난리난리, 나는 얼굴 탄다고 잔소리잔소리.. 결국 첫째는 얼굴이 아주 새까맣게 익고 타버렸고, 아이는 얼굴이 따갑다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가져온 비판텐이 도움이 된다길래 물놀이 후 얼굴에 듬뿍 발라주고, 수분팩도 해줬다. 난 당연히 아이가 하도 잠수를 해서 얼굴이 타버린건가 했는데..  나중에 보니 선크림 앞에 떡하니 써져 있는 글씨..

워셔블!!!!!????

하아.. 난 아무래도 딸 맘 자격이 부족하다. 심지어 나중에 알고보니, 코타키나발루 여행시에는 SPF 100+ 선크림이 필수품이었단다. 그 와중에 워셔블이라니.. 미안하다 큰딸..

한편 둘째는 붕붕이 튜브를 타거나, 조약돌과 나뭇잎으로 소꿉놀이 하는 걸 좋아라했다. 낮은 물에 눕거나 엎드려 발장구 치는 것도 좋아했고, 음악이 나오면 둠칫 둠칫 춤을 추기도 했다. 쪼꼬미가 양손의 검지손가락을 하늘로 쭉 뻗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춤출때 정말 귀엽다. 한참을 신나게 놀았는지 낮잠 타임에 선베드에서 옆에 끼고 누웠더니 금새 잠이 들었다.

둘째가 자는 시간은 나의 자유시간..잠깐의 여유에 멍도 때려보고, 그제서야 첫째랑도 물놀이를 하려 했는데..!!

고놈의 귀염둥이가 금방 깨버렸다. 그러더니 방에가서 자자고 난리 난리..

얘가 잠자리에 이렇게 예민한 아이었다니..비행기에서도 그러더니 둘째는 제대로 “방”에서 “누워서” 자야 하는 아이었다. 지금은 홀딱 다 젖어있어서 방에서 자면 추울 것 같은데, 방에서 자자고 고집 고집 부린다. 일단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하도 졸립다고 난리를 쳐서 도저히 나 혼자 씻기기도 어려울 것 같은 상황.. 결국 씻기기는 포기하고 아이 옷만 후딱 갈아 입히고, 나는 수영복 위에 샤워 가운을 대충 걸치고 수건을 베개 삼아 누워 아이에게 팔을 대어 주었다. 아이는 금새 깊게 잠들었다.

아이 낮잠 후 우리는 두 가지 중대한 과업을 남기고 있었다. 하나, 기념품 쇼핑. 둘, 코타키나 발루 선셋 바라보기.

오늘은 어쨌든 외출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니, 한국에 돌아가 나눠 먹을 간식거리를 좀 사야 했다. 부모님도 드리고, 회사 동료에게도 주고. 남편은 아이와 다니기 쾌적한 쇼핑몰이이라는 이마고몰을 선택했다. 이마고몰은 샹그릴라 리조트에서 그랩으로 한 10분 정도 걸렸는데, 우리나라의 스타필드 같은 백화점이었고 상당히 깨끗하고 넓었다. 우리는 기념품으로 사갈 간식거리로 멸치과자, 밀크티, 커피 등을 샀고, 첫째는 할머니가 주신 용돈으로 산리오 쿠로미 플랙스를 했다.

깔끔하고 시원했던 이마고몰.
2층 토이저러스 옆에 산리오 러버의 천국이 있음.괜찮은 가방을 4만원 돈 주고 샀음 (진위여부는 알수없음).

실은 제대로 된 아메리카노를 못먹은지 4일째인 우리는 이마고몰에 스타벅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쾌재를 불렀었다. 그런데 결국 어디있는지를 못 찾았았고, 선셋을 40여분 앞둔 지금, 아메리카노의 여유는 사치였다. 결국 오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포기. 한국 가서 실컷 먹자.

실제로 돌아오는 길은 러쉬아워에 걸려 갈 때보다 30분 정도 더 걸렸고, 그랩 비용도 올 때의 두배 정도 들었다. 근데 그래봐야 7천원. 기름이 나는 나라라 그러더니 택시비가 저렴하긴했다. 어쨌든, 예상치 못한 러쉬아워에 그랩에서 발을 동동거릴 수밖에 없었지만 다행히 우리는 선셋 전에 도착할 수 있었고, 사람들은 바닷가 근처에 모여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옹기종기 모여 선셋을 바라보는 사람들

우리도 테라스를 나가 선셋을 바라보았고, 수평선까지 뻗어있는 구름은 이 하늘이 얼마나 넓은지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당분간은 보지 못할 이 석양은 많이 아름다웠다.

해가 바다로..바다로..
해가 바다로..바다로..
샹그릴라 탄중아루 탄중씨뷰 테라스룸에서 바라보는 선셋

한참 해 지는 것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으려는데, 갑자기 둘째가 목에 뭐가 걸렸다며 손가락을 자꾸 입으로 넣으며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아까 사탕을 씹어먹더니 조각이 목에 붙은 걸까.. 한참을 달랬는데, 결국 아이는 기어이 살짝 토를 해버렀다. 하아.. 아직 선셋은 진행중이구만.. 결국 나는 아이를 데리고 부랴부랴 들어가서 씻겼고, 나는 젖은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아이는 주문한 시푸드의 맛도 못 보고 잠이 들어버렸다.

그래도 우리는 먹을 건 먹어야지. 우리는 굳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또 고생하지 말고, 그랩으로 씨푸드를 주문해서 먹기로 결정했었다. 그래서 원래 웰컴씨푸트라는 곳에 주문을 하려고 했는데, 선셋이 지나고나니 늦어져서인지 더 이상 배달을 받지 않는게 아닌가? 결국 “웰컴 100% 씨푸드“(?)라는 곳에 주문을 했는데, 오호! 가리비인가 조개인가 하여간 shell with chili 요리가 아주 끝내줬다! 진짜 맛있었고, 밥을 비벼먹으니 진짜 꿀맛!! 결국 그 요리는 배부른데도 한번 더 시켜먹었다. 이 요리는 그냥 웰컴씨푸드나 유명한 창천씨푸드? 라는 곳에는 없는 메뉴라는~(남편의 주장이 있었으나, 사실관계 확인요함)

씨푸드를 먹는데 우리도 여유를 부리고 싶어서 무한도전 레전드를 보면서 먹기로 했다. 실은 첫째랑 처음으로 같이 보는 무한도전이었는데, 첫째가 정준하가 외계인 목소리를 내는 걸 보며 진짜 재밌다고 배꼽빠질듯이 낄낄거리며 웃겨하더라. 첫째가 웃겨하는게 더 재밌었다는..이제 같이 무도멍 할 때가 됐나보다. 무도멍 하며 맛있는거 먹는건 정말 꿀맛이지.

무도멍 하며 먹는 웰컴 100% 씨푸드.

이제 진짜 마지막 날의 밤!!

여행을 가면 남편이랑 테라스에서 맥주라도 한 캔 하며 쉴틈이 있겠지 하였으나, 결국 4일 내내 하루도 그런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새벽, 둘째가 다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까 안 씻고 머리가 좀 젖은 상태로 낮잠 재운 것이 치명적이었을까.. 여행 와서 노느라 빼 먹고 못 먹인 약이 치명적이었을까.

어쨌든 얘는 목이 부어서 목에 뭐가 걸린 것 같다 한 것이 분명해졌다. 결국 아이는 새벽에 약을 한번 더 먹고서야 괜찮아졌다.

우리의 코타키나발루 여행기는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비극일까 희극일까?

<여행비용: 4일자 지출>

그랩(샹그릴라-이마고몰): 3,791원
그랩(이마고몰-샹그릴라): 7,291원
기념품(환전한 돈 다 쓰고 추가도 더 쓴 돈): 17,607원
100%웰컴씨푸드(이것저것 잔뜩): 54,595원
100%웰컴씨푸드(관자요리 추가): 19,662원

모든 것은 아름다운..

간호학의 현상학적 연구 현황에 대하여(논문 리뷰)

질병 체험에 대한 간호 현상학적 탐구 현황을 분석하여 한글로 발행된 논문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발행된 지 6년 정도 경과하긴 하였지만 이런 리뷰 연구가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다(감사합니다. 고문희 교수님).

본 연구의 저자는 대부분의 간호학 관련 저널을 포함하고 있는 데이터베이스인 CINAHL full text를 활용하여, 2006년 1월부터 10년간 ‘현상학(phenomeno*)’ 및 ‘체험(lived experience)’을 주제어로 하여 문헌 검색을 하였고, 그 결과 질병 체험 연구는 121편으로 확인되었다. 이 질병체험은 1)투병 당사자의 경험, 2)돌봄 제공자의 경험, 3)의료인의 경험, 4)제 3자의 경험 등으로 분류되었고, 저자는 이 중 투병 당사자의 직접적 질병체험이 다뤄진 62편을 분석하였다.

간호학의 현상학적 질병 체험 연구 동향 분석 결과

1. 탐구된 체험의 질병 유형으로는 만성질환이 가장 많았다.

이는 만성질환의 탐구 현상의 범위가 넓고,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러다보니 연구 참여자에 대한 접근성이 높기 때문일 것으로 해석되었다.

2. 자료 수집 방법

주요 자료수집 방법은 목적 표집 모집, 반구조화 심층면담, 녹음 및 필사로 확인되었다.

3. 연구 참여자 수는 8명 전후가 가장 많았다(최소-최대: 3-20).

저자는 샘플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력, 즉 많은 정보보다는 한 사람의 적절하고 풍부한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분석한 문헌 중 샘플이 ‘포화’되었음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포화’라는 개념은 근거이론 연구에 합당하므로 현상학적 연구에서는 신중하게 사용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하였다.

4. 연구 접근 방법

연구 접근 방법은 van Manen(17편) > Smith의 IPA(10편) > Giorgi(5편)=Colaizzi(5편) 순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여러 학자를 혼합하여 사용하거나, 특정 지침 없이 ‘하이데거 버전의 현상학’ 등으로 제시된 경우도 있었다.

5. 연구 접근 방법에 따른 철학적 기반

철학적 기반에 대한 분석 결과, 연구 접근 방법에 따른 일관된 철학적 전통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van Manen을 활용한 경우는 주로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전통을 주요 기반으로 제시하였고, Giorgi의 경우 후설, Colaizzi의 경우 후설과 하이데거를 제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어떠한 철학적 배경도 제시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으며, 철학적 기반을 제시한 수준 또한 차이가 컸다.

6. 연구 진실성(엄밀성)

연구 진실성 확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으며, 가장 많이 제시된 것은 Lincoln과 Guba의 기준(7편)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 기준이 실제로 현상학적 연구의 기준으로 개발된 것이 아니므로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제언하였다. (예를 들어 후기 실증주의자의 경우에는 삼각검증, 참여자 확인, 감사 등의 체계적 방법 선택 / 구성주의적 입장이라면 오랜기간의 관여, 심층적이고 풍부한 기술 / 비판적 관점이라면 성찰 및 동료 검증 등을 고려할 수 있다).

한편, 현상학적 환원을 언급한 경우는 11편이었으며, 다양한 목적과 수준으로 제시되었다. ‘환원’에 대한 이의가 있는 경우에서 환원 대신 ‘해석학적 반성’을 방법으로 채택한 경우도 있었다.

7. 제한점

저자는 본 연구의 제한점으로, 질병 체험의 본질적 주제 및 사실적 구조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보고되었는지는 분석하지 못했고, 상호주관적 체험이 어떻게 드러났는지도 탐색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상학적 연구의 전반적인 동향을 분석하여 간호학의 현상학적 탐구의 현황 및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줄 정리를 해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게 간호학자들이 현상학적 연구에 진지하고 충직하게 헌신하는것은 돌봄 대상자들의 고통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아름다운 의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된다.(…)  돌봄 제공 전문직의 여러 분야에서 현상학적 접근의 연구가 증가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어렵지만, 현상학의 근본이념과 뿌리를 알고자 하는 치열한 노력을 통해 간호학에서의 현상학에 대한 오해와 오류의 덩굴을 정리해가야 할 것이다(고문희).

참고문헌

고문희. (2018). 질병체험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의 현황. 대한질적연구학회지, 3, 20-30.

아이들과 함께하는 코타키나발루 4박5일 결혼 10주년 여행 – 3일차- feat.샹그릴라 탄중아루, 프라이빗 비치, 수영장, 먹방, 반딧불이 투어, 맹글로브 투어, 하이말레이시아, 6월 우기, 비오는 날의 석양.

여기는 코타키나발루. 오늘도 눈은 일찍 떠졌다. 그래도 둘째 만큼은 푹 재우고 싶었는데, 나의 인기척 때문인지 아이도 일찍 일어나버렸다. 아이는 일어난 후에도 어제 머리 부딪힌 게 크게 남았는지, 자꾸 머리가 아프다 했다. 어제 많이 놀랐던 건지, 진짜 아픈 건지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좀 추이를 보기로 했다.

공기가 상쾌하니 업그레이드한 발코니로 성큼 성큼 나가 산책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둘째를 데리고 나갔는데, 밝게 깬듯한 아이가 매가리 없이 계속 안아달라고 투정을 부리는 게 아닌가. 피곤해서 그런 것 같긴 한데… 한번 조식을 좀 먹여볼까 하고 데리고 가봤으나 아이는 계속 의자에 누워서 자려고 하고, 몸을 제대로 못가누며 나한테 계속 엉겼다. 불안해졌다. 어제 혹시 머리를 크게 다친 게 아닐까. 결국 나는 조식은 포기하고 아이를 데리고 방으로 돌아왔다. 나나 남편 둘 다 이미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 버렸다.

조금이라도 재워보려 했으나 아이는 잠에 쉽사리 들지 못했다. 그래서 차라리 기분 좋게 놀아보기로 결정했고, 실제로 아이는 수영복과 튜브를 보더니 에너지를 조금씩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래 놀이와 수영을 하며 에너지를 충전하기 시작했다. 감사..

첫째는 어제 만난 친구를 한참이나 기다렸는데 도통 오질 않았다. 아이의 서운한 마음을 달래주며 같이 놀았는데, 다행히 그 둘은 오후가 되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첫째의 수영복이 달라져서 그 친구는 첫째를 알아보지 못했고, 첫째도 긴가민가 하면서 쉽사리 말을 걸지 못했다. 결국 내가 나서 “어제 같이 놀았던 친구지?”하고 말을 걸자 그 아이는 기다렸다는 눈빛으로 끄덕였고, 그 둘은 그렇게 드디어 재회했다. 알고보니 그 친구의 동생이 새벽에 급하게 병원에 다녀오면서 아침엔 놀 정신이 없었다더라. 둘째들은 왜 다 그렇게 아픈걸까…

인생 놀이를 찾음.
같이 놀 친구를 기다리며.

어쨌든 그 둘은 그렇게 다시 만나 행복해했으나 이를 어쩌나..우리는 오늘 반딧불이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다. 남편은 속상해 했다. 반딧불이 투어 괜히 하기로 했다고 핀잔을 놓기 시작했다. (으잉..? 어쩌라고..?) 애들이 이제서야 잘 노는데 이걸 끊어야 한다는 게 속상하다며.. 그런데 난 남편이 이제는 바꿀수 없는 예약건을 가지고 짜증을 내는걸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남편에게 확 짜증을 내버렸다. “뭐!! 그래서 어쩌라고!! 가지마!! 그럼 그냥 가지마!!” 남편도 자신이 어이 없는 투정을 부렸다는 것을 인정했는지 금방 수그려주었다.

한편, 우리는 둘째를 반디불이투어를 나가기 전까지 푹 재웠다. 그리고 깰 시간에 맞춰 또 한번 “먹방”에다가 잡채와 떡볶이, 간장치킨(마늘치킨 이었나? 하여간 너무 바사삭 맛났다)을 시켰다. 둘째는 다행히 적당한 때 깼고 역시 잡채는 성공적이었다(사랑해요 먹방 Mukbang). 푹 자고 일어난 아이가 잘 먹으니 이제야 여행이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아이 컨디션 Ok. Good.

열 No.

뇌진탕 Almost No.

반딧불이 투어는 원래는 제셀톤 포인트(?)인가로 가서 흥정을 해볼 것도 고려해보았으나, 애 둘을 데리고 예약만을 위해 나가는 것도 일일 것 같아 출발하는 날 급하게 하이말레이시아를 통해 예약을 했다. 몇 개 한국 업체가 눈에 띄긴 했는데 하이말레이시아라는 이름이 좀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어쨌든 카톡으로 픽업 안내를 받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로비에 갔더니 우리 넷이 어슬렁하고 로비에 진입하자마자 현지인 가이드가 나에게 지윤혜~? 라며 다가와주었다. 가이드 눈치가 하루이틀이 아니시구만..

그렇게 우린 크고 쾌적한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가이드가 갑자기 “날씨가 비가 안오길 바란다” 라는 멘트를 날리는게 아닌가? 이 쨍쨍더워 죽는 날씨에 무슨~? 이라는 순간 창에 맺히는 빗방울들..? 이게 무슨일이고? 그리고 머지않아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세상 황당하게 거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무슨… ㅠㅠ 바리바리 들고와서 숙소에 놓고 온 우비가 너무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비는 좀처럼 멈출생각을 안했다. 비가와도 이런 저런 투어는 진행한다고 미리 알고있긴 했었으나 오늘도 석양은 확실히 나가리일것이었다.

반딧불이 투어 가는 길의 비.

낚시터 같은 집합지에 갔더니 우리 말고도 여러 팀이 더 도착해 있었었다. 간단한 간식과 커피를 마신 후 천막이 달린 편평한 모터배에 탑승을 했다. 다행히 비바람 까지는 아니래서 우비 없이 있어도 크게 비에 젖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미리 의자에 놓여져 있는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아이용으로 작은거를 달라는 3번의 부탁이 결론적으로 다 무시됐다. 결국 둘째는 구멍조끼 없이 내가 옆에 앉혀서 신경쓰며 안고 갔다. 실은 그것을 나는 크게 걱정하진 않았는데, 남편은 내내 불안했단다. 특히 구명조끼 달라는 3번의 부탁이 무시된 후 삔또가 나갔었단다. 이러다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뒤집어지면 가뜩이나 깜깜한 밤에 구조될리가 만무하다며..배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갑자기 일어나서 한쪽으로 무게가 쏠리면 배가 넘어가는 건 일도 아닐거라며. 하긴..강에서 쉬고 있는 악어를 보니.. 아찔하긴 하다. (그래도 뭐..우리 막내 빼곤 다 구명조끼 입고 있긴 했다..;; 애기 사이즈도 있는 것 같긴 하니, 아이 동반 시 꼭 챙겨 받아 입으시거나 직접 가져가실 것을 추천드린다)

맹글로브 및 반딧불이 투어를 하는 배.
통통배 같았지만 꽤나 스피드가 빨랐다.
악어.. 혹여라도 배가 뒤집히면 큰일나겠다 싶다.

어쨌든 한국인 가이드의 맹글로브나무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실은 아무기대 없었는데, 이 맹글로브나무의 특성과 가치는 상당히 의미 있었다. 물을 향해 뻗어나가는 나무, 새끼를 낳는(?) 나무, 엄청난 산소의 보고.  그래서 말레이시아에서도 더이상 수출하지 않는다는 나무. 가이드는 그 나무에 둘러싸여있는 그 순간에 복식호흡 하는 것을 잊지말라 강조했다. 공기가 정말 좋았다.

비 가운데 빛을 보여주기 시작한 하늘.

맹글로브 투어를 마친 후 비빔밥과 미역국을 먹었다. 밥은 역시나 흩날렸지만 맛은 꽤 있었다. 그런데 둘째가 미역국을 엎어버리는 바람에 옷을 갈아입히느라 선셋포인트를 갈 때는 배의 맨 뒤에 타고 말았다.

그런데 거기는 명당이었다. 엉덩이 마사지 명당. 그곳은 정말 모터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모터의 진동에 엉덩이랑 정수리가 가려웠다. 우리는 어떻게든 그 달달거리는 자리에서 반딧불 투어를 하는 것 만은 피해야 했다.

다행히 우리에겐 선셋포인트가 있었다. 배에서 내렸다가 다시 타는 절호의 기회. 그때를 노리기로 마음 먹었다.

우리의 통통배가 거닐던 강은 바다와 연결되어있었고, 우리가 그 바다에 도착했을 때는 희안하게 비가 멈췄다. 신기한 타이밍에 감사하며 우리는 부랴부랴 가족사진을 남겼다. 여기서 사진 찍는다고 많은 분들이 예쁘게 신경써 입고왔더라. 그러나 우리는 모기 기피를 위한 전투복장으로 왔기에 그냥 기념샷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예쁘게 입고 왔어도 좋았겠다 싶었다. 숙소에서 볼 때와는 확실히 다른 감정이 들더라. 어쨌든 우린 예쁘게 입지도 않았고, 빨리 배를 타야만 했다.

급한 보람이 있었는지, 다시 배에 타서는 아까보다는 앞쪽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많은 관광객이 개인 짐으로 자리를 맡아 놓고 석양을 보러 갔던지라, 일단 어디라도 비어있는 앞자리에 자리 잡고 앉은 후, “어? 우리 자리가 어디었더라?”하는 다른 승객의 목소리와 눈빛을 애써 모면해야 했다. 미안.. 어쩔 수 없었어. 우린 애들이 있잖아.

그렇게 우린 약간의 능청과 함께 반딧불이 투어를 시작했다.

이 동네 개똥벌래는 날파리같이 작다했다. 실제로 나무에 조그맣게 전구같이 반짝이는 반딧불이들을 볼 수 있었는데, 가이드가 초록색 불을 비추며 반딧불이를 배로 끌어들였다. 수십마리가 동시에 반짝이며 배로 들어오는 모습은 진풍경이었다. 남편도 나도 아이들도 너무 신기해했다. 다만 둘째는 반디불이를 멀리서 볼 땐 좋아 하더니, 반딧불이 제 다리에 앉아 반짝이는 걸 본 이후로는 반딧불이에게 ‘저리가~!!!!’ 하며 반딧불이 날아올 때마다 기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내내 나한테 안겨서 반딧불이들에게 “잘있어~ 나는 갈께~ 안녕~”을 연달아 외쳤다는…

한편, 첫째 신발에 앉은 반딧불이도 한참을 반짝이다 떠났는데, 이날 반딧불이 비춰져서였을까..첫째는 양 발에 합쳐서 스무방이나 모기에게 물려버렸다. 내가 양말을 신겨놨다가 비가 오길래 젖으면 추울까봐 투어 직전에 벗겼는데, 진짜 후회가 막심하다. 전투복을 입으면 뭐해..

어쨌든 코티카니발루의 반딧불이는 사람말을 알아듣는다(는 동심을 우리는 지켜야지). 첫째는 특히 행복하자~ 라고 외쳤던 순간의 반딧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배에 탄 우리 모두는 가이드의 구호에 따라 다같이 반딧불이를 향해  “마리마리~ 찐따~ 우리가족 사랑해~ 행복하자~ 자기이름 부르며 ○○야 사랑해~ “라는 등 신나게 외쳤고, 그때마다 반딧불이가 반짝이며 우리에게 날아왔다. 마지막에는 엄청나게 많은 반딧불이가 동시에 한번 반짝였는데, 남편은 조명을 달아놓은 것 같다 하였고 난 설마.. 하는 그런 상태이다. 그것의 정체는 뭐였을까..조명이었을까 반딧불이었을까? 조명이라기에도 너무 많았고, 반딧불이라기에도 너무 많았다. 그게 뭐래도.. 반딧불이인걸로 하자.

이렇게 반딧불이 투어 패키지가 끝났는데, 남편은 투어 끝에 “비싼 돈 주더라도 한국인 가이드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알겠다”고 했다. 가이드의 설명과 적당한 텐션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여기와서 계속 예민했던 남편으로부터 긍정적 코멘트를 받으니 뭔가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우린 특별한 추억을  남기고 숙소로 돌아왔고, 남편은 여기와서 삼일 동안 망고를 못먹은 게 도대체 말이 되냐고 상심해하다 결국 홀로 필리피노 마켓에 가서 망고 한무데기를 썰어왔다.

와.. 이제야 좀 휴가 같다.

코타키나발루 6월 우기, 비오는 날의 석양

<여행비용: 3일자 지출>

하이말레이시아 반딧불이 투어(성인 2인, 아동 1인, 유아 1인): 계약금 45,000원 + 현장 지급 (360링깃) 105,000원 = 150,000원
먹방(잡채+밥+떡볶이+간장치킨) : 17,556원

보안을 위해 워드프레스 로그인 페이지 변경하기: WPS Hide Login & Redirect 404 Error Page to Homepage or Custom Page with Log

통계에 이상한 페이지가 잡혔다.

404 not found (/admin.php)
404 not found (/wso112233.php)
404 not found (/plugins/fix/up.php)
404 not found (/ws.php)
404 not found (/alfanew.php)
404 not found (/dropdown.php)

이게 무엇이냐.. 나 이런거 모른다고..

검색해보다보니, 혹시 해외에서의 무단 접속시도인가라는 의심이 들었다.

Chat GTI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주었다.

이 오류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잘못된 URL: 사용자가 잘못된 URL을 입력했거나, 잘못된 링크를 클릭한 경우.
  2. 삭제된 페이지: 해당 페이지가 서버에서 삭제되었거나 이동된 경우.
  3. 자동화된 스크립트: 종종 해커나 봇이 웹사이트의 취약점을 찾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 페이지에 접근하려고 시도합니다. 예를 들어, /wso112233.php와 같은 파일은 일반적으로 자동화된 공격 스크립트가 접근하려고 시도하는 파일입니다.
  4. 부정확한 내부 링크: 웹사이트 내부 링크가 잘못되어 존재하지 않는 페이지로 연결될 경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1. 로그 분석: 404 오류 로그를 분석하여 어떤 사용자가 어떤 상황에서 오류를 발생시키는지 확인합니다.
  2. 리디렉션 설정: 만약 특정 페이지가 이동되었거나 삭제되었다면, 리디렉션 설정을 통해 사용자들이 올바른 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합니다.
  3. 사이트 점검: 웹사이트 내 모든 링크를 점검하여 잘못된 링크를 수정합니다.
  4. 보안 강화: 자동화된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 보안 솔루션을 강화합니다. 예를 들어, 웹 애플리케이션 방화벽(WAF)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404 오류가 자동화된 스크립트나 봇의 공격 시도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보안 점검을 권장합니다.

그래서 우선, 앞서 확인한 참고 페이지의 저자가 시키는 대로 일단 해봤다.

새로운 플러그인 설치

  1. WPS Hide Login: 로그인 페이지 변경
  2. Redirect 404 Error Page to Homepage or Custom Page with Log: 로그인 페이지를 변경하면서 없어진 페이지를 대체할 페이지 설정.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일주일 뒤 확인해 볼 예정.

<일주일 경과>

여전히 이상한 페이지 접속이 눈에 띈다.

404 not found (/-/-/-/-/-/-/-/-/-/-)
404 not found (/404/)
404 not found (/wp-content/plugins/)
404 not found (/wp-includes/images/)

뭔지 모르겠다..더 어떤 대처를 해야할지는 모르겠고, 그냥 찝찝해서 비밀번호를 좀 강력한걸로 바꿔보고 주시해야 할듯 하다 (202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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