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보내는 코타키나발루의 마지막 날은 매우 맑았고, 서아의 컨디션도 언제 열이 났었나 하며 맑았다. 조식당은 연휴을 앞둬 그런지 가장 붐볐고, 혹시나 모를 레잇 체크아웃 요청은 거절됐다. 뒤에 올 사람이 없으면 레잇 체크아웃에 후하다고 들었는데, 타이밍이 안좋았던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날씨는 5일 중 가장 뜨거웠고, 마지막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조금이라도 수영을 하기로 했다. 6시 비행기이니 3시반 정도에 출발하면 딱이라, 체크아웃을 아예 해버리고 좀 놀다가기로 했다. 서아는 역시나 조약돌로 소꿉놀이와 모래놀이를 좋아했고, 서우는 역시나 잠수하며 놀았다. 얼굴은 다들 바짝 타버렸다.
수영장에 나타난 토끼.
남편의 소박한 여유
적당히 놀다가 점심을 먹고 씻기로 했는데, 막상 수영장에서 스타라운지(샤워시설이 있는 곳)로 이동을 하려니 정말 멀었다. 숙소를 업그레이드하지 않고 키나발루동에 있었더라면 수영이나 식사하러 다니기가 예상보다 많이 힘들었겠다 싶었다. 돈 주더라도 업그레이드 하기로 한 우리, 칭찬해!!
스타라운지는 체크인 전이나 체크아웃 후에 티켓을 가지고 머무를 수 있는 곳이었고, 그 티켓이 있으면 안의 샤워시설이나 락커를 사용할 수 있었다. 샤워룸은 독립적인 방으로 넓직하게 되어있어서 갈아입을 옷가지를 가지고 가서 그 안에서 갈아입고 할 수 있었다. 어메니티도 있었고.. 정말 듣던대로 좋았다.
그러나 나는 벌써 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서아랑 씨름해가며 그 넓지만 좁은 공간에서 애 둘을 씻겨야 했다. 특히나 둘째가 머리 감는 걸 ‘엄청’ ‘엄청’ ‘엄청’ 싫어하는데 세워놓고 머리를 씨름하며 감기다보니..아주 그냥 고래 고래 울며 소리를 지르는데.. 주변에 정말 민망했다. 난 씻어도 씻은게 아니고..
그렇게 나는 나대로 정신 없어하며 ‘남편은 편하게 씻었겠지?’ 싶었으나, 남편은 남편대로 씻지도 못하고 짐을 챙기러 다시 그 멀고도 먼 수영장을 갔다왔단다. 애 둘을 전쟁하며 씻기고 나까지 씻은 터라 당연히 남편은 씻고도 남았을 줄 알았는데.. 이제 막 씻으려고 한단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내가 샤워를 한다고 오면서 썬베드에 속옷을 넣어둔 가방을 두고 왔네.. 미안 남편.
남편은 그렇게 한번 더 짐을 가지러 갔다 왔고, 돌아온 남편의 얼굴엔 말릴 수 없는 땀과 짜증이 흘렀다.
어쨌든 남편은 어렵사리 씻고 나왔는데도 5분도 안되어 다시 뻘뻘.
서아는 업히자마자 꿈나라로 기절.
서우는 그토록 고대하던 플레이스테이션 영접.
갑자기 시원해진 놀이방에서 나는 서아 감기 걱정에 덜덜.
그렇게 샹그릴라 탄중아루에서의 마지막이 순간이 도래했다
가방에 챙겨둔 언니 바지를 이불 삼아 덮어줬다.
플레이룸~엄청 큰 닌텐도. 서우는 결국 닌텐도 하는 방법은 못찾고 옆에 있는 플레이스테이션만 실컷했다.
아침에 일어나 새소리와 파도소리를 들으며 발코니에 앉아 있노라면, 낮의 그 찜통더위가 당황스러울만큼 시원했다. 오늘도 그랬다.
서아는 어제 반딧불이 투어를 하며 슬슬 살아나는 것 같더니, 아침 조식도 잘 먹어주었다. 특히 조식 뷔페에 서아가 사랑하는 잡채도 나와주어 고마웠다. 아이가 잘 먹어서 그런가, 남편도 오늘은 어제보다 조식이 더 먹을게 있어 보인단다. 어제는 세상 불평을 하더니만..아이가 살아나니 우리도 살아난다.
잡채 감사해. 이왕이면 매일 나와줬으면 좋겠어.
조식뷔페 영상 시청은 국룰.. 영상 보는 아이들은 영락없이 Korean. 뭐.. 어쨌든, 뽀로로와 번개맨은 슈퍼영웅!
여행와서 계속 칭얼거리며 안아달라던 서아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행히 가족사진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코타키나발루에서는 스냅작가를 불러 사진도 찍는다지만 남편에겐 좋은 카메라와 삼발이가 있었다. 그래서 몇몇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카메라와 삼발이를 바리바리 싸들고 왔었다. 그동안의 서아 상태를 보면 진짜 예약을 해서 스케쥴을 잡았더라면 그 또한 부담이 되었겠더라. 다행히 적당한 컨디션에 적당한 날씨를 맞이했고, 기분이 썩 다들 괜찮은 날 아침..나름 챙겨온 이쁜 옷들을 입고 사진을 남겼다.
코타키나 발루로 오세요~~~
날아가자!
착륙하자!!
가족사진 찍기. 삼발이 기사님 화이팅!
삼발이 기사님. 조금만 더 화이팅!
드디어 한 컷 남김. 가족사진.
한참 사진도 찍고, 큰 나무 아래에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도 하고, 뛰어도 다니고.. 좋은 위치의 선배드에 자리잡고 이런저런 물놀이를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드디어 좀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서우는 특히 물안경 쓰고 잠수하며 놀거나, 미끄럼틀 타는 걸 좋아라했다. 그런데 잠수 할 때마다 모자가 벗겨지니 서우는 귀찮다고 난리난리, 나는 얼굴 탄다고 잔소리잔소리.. 결국 서우는 얼굴이 아주 새까맣게 익고 타버렸고, 아이는 얼굴이 따갑다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가져온 비판텐이 도움이 된다길래 물놀이 후 얼굴에 듬뿍 발라주고, 수분팩도 해줬다. 난 당연히 아이가 하도 잠수를 해서 얼굴이 타버린건가 했는데.. 나중에 보니 선크림 앞에 떡하니 써져 있는 글씨..
워셔블!!!!!????
하아.. 난 아무래도 딸 맘 자격이 부족하다. 심지어 나중에 알고보니, 코타키나발루 여행시에는 SPF 100+ 선크림이 필수품이었단다. 그 와중에 워셔블이라니.. 미안하다 큰딸..
바짝 타버리고 영문도 모르고 비판텐 쳐발쳐발 당하고 있는 큰딸.. 결국 얼굴도 얼룩덜룩 타버렸다..
한편 서아는 붕붕이 튜브를 타거나, 조약돌과 나뭇잎으로 소꿉놀이 하는 걸 좋아라했다. 낮은 물에 눕거나 엎드려 발장구 치는 것도 좋아했고, 음악이 나오면 둠칫 둠칫 춤을 추기도 했다. 쪼꼬미가 양손의 검지손가락을 하늘로 쭉 뻗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춤출때 정말 귀엽다. 한참을 신나게 놀았는지 낮잠 타임에 선베드에서 옆에 끼고 누웠더니 금새 잠이 들었다.
신나게 놀고 금새 잠들어버린 귀염둥이
서아가 자는 시간은 나의 자유시간..잠깐의 여유에 멍도 때려보고, 그제서야 서우랑도 물놀이를 하려 했는데..!!
고놈의 귀염둥이가 금방 깨버렸다. 그러더니 방에가서 자자고 난리 난리..
얘가 잠자리에 이렇게 예민한 아이었다니..비행기에서도 그러더니 둘째는 제대로 “방”에서 “누워서” 자야 하는 아이었다. 지금은 홀딱 다 젖어있어서 방에서 자면 추울 것 같은데, 방에서 자자고 고집 고집 부린다. 일단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하도 졸립다고 난리를 쳐서 도저히 나 혼자 씻기기도 어려울 것 같은 상황.. 결국 씻기기는 포기하고 아이 옷만 후딱 갈아 입히고, 나는 수영복 위에 샤워 가운을 대충 걸치고 수건을 베개 삼아 누워 아이에게 팔을 대어 주었다. 아이는 금새 깊게 잠들었다.
아이 낮잠 후 우리는 두 가지 중대한 과업을 남기고 있었다. 하나, 기념품 쇼핑. 둘, 코타키나 발루 선셋 바라보기.
오늘은 어쨌든 외출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니, 한국에 돌아가 나눠 먹을 간식거리를 좀 사야 했다. 부모님도 드리고, 회사 동료에게도 주고. 남편은 아이와 다니기 쾌적한 쇼핑몰이이라는 이마고몰을 선택했다. 이마고몰은 샹그릴라 리조트에서 그랩으로 한 10분 정도 걸렸는데, 우리나라의 스타필드 같은 백화점이었고 상당히 깨끗하고 넓었다. 우리는 기념품으로 사갈 간식거리로 멸치과자, 밀크티, 커피 등을 샀고, 서우는 할머니가 주신 용돈으로 산리오 쿠로미 플랙스를 했다.
깔끔하고 시원했던 이마고몰. 2층 토이저러스 옆에 산리오 러버의 천국이 있음.괜찮은 가방을 4만원 돈 주고 샀음 (진위여부는 알수없음).
실은 제대로 된 아메리카노를 못먹은지 4일째인 우리는 이마고몰에 스타벅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쾌재를 불렀었다. 그런데 결국 어디있는지를 못 찾았았고, 선셋을 40여분 앞둔 지금, 아메리카노의 여유는 사치였다. 결국 오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포기. 한국 가서 실컷 먹자.
실제로 돌아오는 길은 러쉬아워에 걸려 갈 때보다 30분 정도 더 걸렸고, 그랩 비용도 올 때의 두배 정도 들었다. 근데 그래봐야 7천원. 기름이 나는 나라라 그러더니 택시비가 저렴하긴했다. 어쨌든, 예상치 못한 러쉬아워에 그랩에서 발을 동동거릴 수밖에 없었지만 다행히 우리는 선셋 전에 도착할 수 있었고, 사람들은 바닷가 근처에 모여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옹기종기 모여 선셋을 바라보는 사람들
우리도 테라스를 나가 선셋을 바라보았고, 수평선까지 뻗어있는 구름은 이 하늘이 얼마나 넓은지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당분간은 보지 못할 이 석양은 많이 아름다웠다.
해가 바다로..바다로..
해가 바다로..바다로..
선셋 앞에서 모녀
선셋 앞에서 우리 가족. feat. 해돋이 아님.
샹그릴라 탄중아루 탄중씨뷰 테라스룸에서 바라보는 선셋
한참 해 지는 것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으려는데, 갑자기 서아가 목에 뭐가 걸렸다며 손가락을 자꾸 입으로 넣으며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아까 사탕을 씹어먹더니 조각이 목에 붙은 걸까.. 한참을 달랬는데, 결국 아이는 기어이 살짝 토를 해버렀다. 하아.. 아직 선셋은 진행중이구만.. 결국 나는 아이를 데리고 부랴부랴 들어가서 씻겼고, 나는 젖은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아이는 주문한 시푸드의 맛도 못 보고 잠이 들어버렸다.
그래도 우리는 먹을 건 먹어야지. 우리는 굳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또 고생하지 말고, 그랩으로 씨푸드를 주문해서 먹기로 결정했었다. 그래서 원래 웰컴씨푸트라는 곳에 주문을 하려고 했는데, 선셋이 지나고나니 늦어져서인지 더 이상 배달을 받지 않는게 아닌가? 결국 “웰컴 100% 씨푸드“(?)라는 곳에 주문을 했는데, 오호! 가리비인가 조개인가 하여간 shell with chili 요리가 아주 끝내줬다! 진짜 맛있었고, 밥을 비벼먹으니 진짜 꿀맛!! 결국 그 요리는 배부른데도 한번 더 시켜먹었다. 이 요리는 그냥 웰컴씨푸드나 유명한 창천씨푸드? 라는 곳에는 없는 메뉴라는~(남편의 주장이 있었으나, 사실관계 확인요함)
씨푸드를 먹는데 우리도 여유를 부리고 싶어서 무한도전 레전드를 보면서 먹기로 했다. 실은 서우랑 처음으로 같이 보는 무한도전이었는데, 서우가 정준하가 외계인 목소리를 내는 걸 보며 진짜 재밌다고 배꼽빠질듯이 낄낄거리며 웃겨하더라. 서우가 웃겨하는게 더 재밌었다는..이제 같이 무도멍 할 때가 됐나보다. 무도멍 하며 맛있는거 먹는건 정말 꿀맛이지.
여기는 코타키나발루. 오늘도 눈은 일찍 떠졌다. 그래도 서아 만큼은 푹 재우고 싶었는데, 나의 인기척 때문인지 아이도 일찍 일어나버렸다. 아이는 일어난 후에도 어제 머리 부딪힌 게 크게 남았는지, 자꾸 머리가 아프다 했다. 어제 많이 놀랐던 건지, 진짜 아픈 건지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좀 추이를 보기로 했다.
공기가 상쾌하니 업그레이드한 발코니로 성큼 성큼 나가 산책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서아를 데리고 나갔는데, 밝게 깬듯한 아이가 매가리 없이 계속 안아달라고 투정을 부리는 게 아닌가. 피곤해서 그런 것 같긴 한데… 한번 조식을 좀 먹여볼까 하고 데리고 가봤으나 아이는 계속 의자에 누워서 자려고 하고, 몸을 제대로 못가누며 나한테 계속 엉겼다. 불안해졌다. 어제 혹시 머리를 크게 다친 게 아닐까. 결국 나는 조식은 포기하고 아이를 데리고 방으로 돌아왔다. 나나 남편 둘 다 이미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 버렸다.
아침부터 손가락을 필요로 했던 둘째.
조금이라도 재워보려 했으나 아이는 잠에 쉽사리 들지 못했다. 그래서 차라리 기분 좋게 놀아보기로 결정했고, 실제로 아이는 수영복과 튜브를 보더니 에너지를 조금씩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래 놀이와 수영을 하며 에너지를 충전하기 시작했다. 감사..
서우는 어제 만난 친구를 한참이나 기다렸는데 도통 오질 않았다. 아이의 서운한 마음을 달래주며 같이 놀았는데, 다행히 그 둘은 오후가 되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서우의 수영복이 달라져서 그 친구는 서우를 알아보지 못했고, 서우도 긴가민가 하면서 쉽사리 말을 걸지 못했다. 결국 내가 나서 “어제 같이 놀았던 친구지?”하고 말을 걸자 그 아이는 기다렸다는 눈빛으로 끄덕였고, 그 둘은 그렇게 드디어 재회했다. 알고보니 그 친구의 동생이 새벽에 급하게 병원에 다녀오면서 아침엔 놀 정신이 없었다더라. 둘째들은 왜 다 그렇게 아픈걸까…
인생 놀이를 찾음.
같이 놀 친구를 기다리며.
친구와의 재회. 언젠가 다시 만나자 친구야.
어쨌든 그 둘은 그렇게 다시 만나 행복해했으나 이를 어쩌나..우리는 오늘 반딧불이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다. 남편은 속상해 했다. 반딧불이 투어 괜히 하기로 했다고 핀잔을 놓기 시작했다. (으잉..? 어쩌라고..?) 애들이 이제서야 잘 노는데 이걸 끊어야 한다는 게 속상하다며.. 그런데 난 남편이 이제는 바꿀수 없는 예약건을 가지고 짜증을 내는걸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남편에게 확 짜증을 내버렸다. “뭐!! 그래서 어쩌라고!! 가지마!! 그럼 그냥 가지마!!” 남편도 자신이 어이 없는 투정을 부렸다는 것을 인정했는지 금방 수그려주었다.
한편, 우리는 서아를 반디불이투어를 나가기 전까지 푹 재웠다. 그리고 깰 시간에 맞춰 또 한번 “먹방”에다가 잡채와 떡볶이, 간장치킨(마늘치킨 이었나? 하여간 너무 바사삭 맛났다)을 시켰다. 서아는 다행히 적당한 때 깼고 역시 잡채는 성공적이었다(사랑해요 먹방 Mukbang). 푹 자고 일어난 아이가 잘 먹으니 이제야 여행이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아이 컨디션 Ok. Good.
열 No.
뇌진탕 Almost No.
반딧불이 투어는 원래는 제셀톤 포인트(?)인가로 가서 흥정을 해볼 것도 고려해보았으나, 애 둘을 데리고 예약만을 위해 나가는 것도 일일 것 같아 출발하는 날 급하게 하이말레이시아를 통해 예약을 했다. 몇 개 한국 업체가 눈에 띄긴 했는데 하이말레이시아라는 이름이 좀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어쨌든 카톡으로 픽업 안내를 받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로비에 갔더니 우리 넷이 어슬렁하고 로비에 진입하자마자 현지인 가이드가 나에게 지윤혜~? 라며 다가와주었다. 가이드 눈치가 하루이틀이 아니시구만..
그렇게 우린 크고 쾌적한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가이드가 갑자기 “날씨가 비가 안오길 바란다” 라는 멘트를 날리는게 아닌가? 이 쨍쨍더워 죽는 날씨에 무슨~? 이라는 순간 창에 맺히는 빗방울들..? 이게 무슨일이고? 그리고 머지않아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세상 황당하게 거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무슨… ㅠㅠ 바리바리 들고와서 숙소에 놓고 온 우비가 너무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비는 좀처럼 멈출생각을 안했다. 비가와도 이런 저런 투어는 진행한다고 미리 알고있긴 했었으나 오늘도 석양은 확실히 나가리일것이었다.
반딧불이 투어 가는 길의 비.
낚시터 같은 집합지에 갔더니 우리 말고도 여러 팀이 더 도착해 있었었다. 간단한 간식과 커피를 마신 후 천막이 달린 편평한 모터배에 탑승을 했다. 다행히 비바람 까지는 아니래서 우비 없이 있어도 크게 비에 젖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미리 의자에 놓여져 있는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아이용으로 작은거를 달라는 3번의 부탁이 결론적으로 다 무시됐다. 결국 서아는 구멍조끼 없이 내가 옆에 앉혀서 신경쓰며 안고 갔다. 실은 그것을 나는 크게 걱정하진 않았는데, 남편은 내내 불안했단다. 특히 구명조끼 달라는 3번의 부탁이 무시된 후 삔또가 나갔었단다. 이러다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뒤집어지면 가뜩이나 깜깜한 밤에 구조될리가 만무하다며..배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갑자기 일어나서 한쪽으로 무게가 쏠리면 배가 넘어가는 건 일도 아닐거라며. 하긴..강에서 쉬고 있는 악어를 보니.. 아찔하긴 하다. (그래도 뭐..우리 막내 빼곤 다 구명조끼 입고 있긴 했다..;; 애기 사이즈도 있는 것 같긴 하니, 아이 동반 시 꼭 챙겨 받아 입으시거나 직접 가져가실 것을 추천드린다)
하이말레이시아 투어. 맹글로브 및 반딧불이 투어를 기다리는 집합지에서.
맹글로브 및 반딧불이 투어를 하는 배. 통통배 같았지만 꽤나 스피드가 빨랐다.
악어.. 혹여라도 배가 뒤집히면 큰일나겠다 싶다.
어쨌든 한국인 가이드의 맹글로브나무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실은 아무기대 없었는데, 이 맹글로브나무의 특성과 가치는 상당히 의미 있었다. 물을 향해 뻗어나가는 나무, 새끼를 낳는(?) 나무, 엄청난 산소의 보고. 그래서 말레이시아에서도 더이상 수출하지 않는다는 나무. 가이드는 그 나무에 둘러싸여있는 그 순간에 복식호흡 하는 것을 잊지말라 강조했다. 공기가 정말 좋았다.
맹글로브의 새끼나무를 들고.
비 가운데 빛을 보여주기 시작한 하늘.
맹글로브 투어를 마친 후 비빔밥과 미역국을 먹었다. 밥은 역시나 흩날렸지만 맛은 꽤 있었다. 그런데 서아가 미역국을 엎어버리는 바람에 옷을 갈아입히느라 선셋포인트를 갈 때는 배의 맨 뒤에 타고 말았다.
그런데 거기는 명당이었다. 엉덩이 마사지 명당. 그곳은 정말 모터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모터의 진동에 엉덩이랑 정수리가 가려웠다. 우리는 어떻게든 그 달달거리는 자리에서 반딧불 투어를 하는 것 만은 피해야 했다.
다행히 우리에겐 선셋포인트가 있었다. 배에서 내렸다가 다시 타는 절호의 기회. 그때를 노리기로 마음 먹었다.
우리의 통통배가 거닐던 강은 바다와 연결되어있었고, 우리가 그 바다에 도착했을 때는 희안하게 비가 멈췄다. 신기한 타이밍에 감사하며 우리는 부랴부랴 가족사진을 남겼다. 여기서 사진 찍는다고 많은 분들이 예쁘게 신경써 입고왔더라. 그러나 우리는 모기 기피를 위한 전투복장으로 왔기에 그냥 기념샷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예쁘게 입고 왔어도 좋았겠다 싶었다. 숙소에서 볼 때와는 확실히 다른 감정이 들더라. 어쨌든 우린 예쁘게 입지도 않았고, 빨리 배를 타야만 했다.
기가 막히게 비가 안 왔다는 것 만으로도 성공적.
급한 보람이 있었는지, 다시 배에 타서는 아까보다는 앞쪽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많은 관광객이 개인 짐으로 자리를 맡아 놓고 석양을 보러 갔던지라, 일단 어디라도 비어있는 앞자리에 자리 잡고 앉은 후, “어? 우리 자리가 어디었더라?”하는 다른 승객의 목소리와 눈빛을 애써 모면해야 했다. 미안.. 어쩔 수 없었어. 우린 애들이 있잖아.
그렇게 우린 약간의 능청과 함께 반딧불이 투어를 시작했다.
이 동네 개똥벌래는 날파리같이 작다했다. 실제로 나무에 조그맣게 전구같이 반짝이는 반딧불이들을 볼 수 있었는데, 가이드가 초록색 불을 비추며 반딧불이를 배로 끌어들였다. 수십마리가 동시에 반짝이며 배로 들어오는 모습은 진풍경이었다. 남편도 나도 아이들도 너무 신기해했다. 다만 서아는 반디불이를 멀리서 볼 땐 좋아 하더니, 반딧불이 제 다리에 앉아 반짝이는 걸 본 이후로는 반딧불이에게 ‘저리가~!!!!’ 하며 반딧불이 날아올 때마다 기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내내 나한테 안겨서 반딧불이들에게 “잘있어~ 나는 갈께~ 안녕~”을 연달아 외쳤다는…
한편, 서우 신발에 앉은 반딧불이도 한참을 반짝이다 떠났는데, 이날 반딧불이 비춰져서였을까..서우는 양 발에 합쳐서 스무방이나 모기에게 물려버렸다. 내가 양말을 신겨놨다가 비가 오길래 젖으면 추울까봐 투어 직전에 벗겼는데, 진짜 후회가 막심하다. 전투복을 입으면 뭐해..
어쨌든 코티카니발루의 반딧불이는 사람말을 알아듣는다(는 동심을 우리는 지켜야지). 서우는 특히 행복하자~ 라고 외쳤던 순간의 반딧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배에 탄 우리 모두는 가이드의 구호에 따라 다같이 반딧불이를 향해 “마리마리~ 찐따~ 우리가족 사랑해~ 행복하자~ 자기이름 부르며 ○○야 사랑해~ “라는 등 신나게 외쳤고, 그때마다 반딧불이가 반짝이며 우리에게 날아왔다. 마지막에는 엄청나게 많은 반딧불이가 동시에 한번 반짝였는데, 남편은 조명을 달아놓은 것 같다 하였고 난 설마.. 하는 그런 상태이다. 그것의 정체는 뭐였을까..조명이었을까 반딧불이었을까? 조명이라기에도 너무 많았고, 반딧불이라기에도 너무 많았다. 그게 뭐래도.. 반딧불이인걸로 하자.
이렇게 반딧불이 투어 패키지가 끝났는데, 남편은 투어 끝에 “비싼 돈 주더라도 한국인 가이드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알겠다”고 했다. 가이드의 설명과 적당한 텐션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여기와서 계속 예민했던 남편으로부터 긍정적 코멘트를 받으니 뭔가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우린 특별한 추억을 남기고 숙소로 돌아왔고, 남편은 여기와서 삼일 동안 망고를 못먹은 게 도대체 말이 되냐고 상심해하다 결국 홀로 필리피노 마켓에 가서 망고 한무데기를 썰어왔다.
와.. 이제야 좀 휴가 같다.
코타키나발루 6월 우기, 비오는 날의 석양
<여행비용: 3일자 지출>
하이말레이시아 반딧불이 투어(성인 2인, 아동 1인, 유아 1인): 계약금 45,000원 + 현장 지급 (360링깃) 105,000원 = 150,000원 먹방(잡채+밥+떡볶이+간장치킨) : 17,556원
아침은 다행히 맑았다. 일기예보 상 일주일 내내 강수확률 8-90프로를 보고 온 상황에서, 비오지 않는 아침을 맞이할수 있는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천천히 일어난것 같은데도 한국보다 1시간 느린 덕분에 우리의 아침은 일찌감치 시작됐다.
남편이 알아본 맛집이 숙소 근처에 있다 했다. 식사하기 위해 나와보니, 아침부터 거리가 많이 분주해보였다. 알고보니 장이 서는 날. 운이 좋은건지, 의도치 않게 가야스트리트 선데이마켓을 마주하게 되었다. 여러 일상 용품도 팔고, 기념품같은것도 팔고 그러긴 했는데.. 언뜻 보기에 눈에 딱 들어오는 것도 없고, 무엇보다 이 찌는 더위가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아서 인파를 뚫고 앞으로 나가기에 바빴다. 심지어 서아가 계속 안아달라는 통에.. 정신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 조금 덜 덥고, 서아가 보채지만 않았다면.. 여름 휴가용 원피스 몇벌은 기념품처럼 샀을수도 있을것 같긴 하다. 어쨌든 우리는 밥집으로 고고.
가야스트리트 선데이마켓, 의도치 않은 보너스를 받은 기분.
남편이 일아봤다는 락사 맛집(이펑락사)이라는 곳에 갔는데, 이른 시간부터 웨이팅이 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먹어봐야지. 다행히 순환율이 높아서 금방 들어가긴 했는데.. 음.. 뭐랄까.. 양도 너무 소박하고..맛도 좀 별로였다. 한국인들이 많이 먹는다는 걸 시키긴 했는데, 서우도 국수는 맛이 이상하고 밥은 탄맛만 났단다. 음.. 그리고 서아는 거의 입에 대지를 않았다. 우리 입맛엔 좀 아닌걸로.. 그래도 서우가 “서우 용돈”으로 산 우리의 “현지식 첫 끼”였다는데 큰 의미가 있었다.
이펑락사. 국수 깨작. 젓가락질하길 좋아하는 28개월 여아.
이펑락사. 할머니가 주신 용돈으로 한국에서 진작에 환전을 해온 첫째가 쏘는 첫 현지식!
이펑락사. 맛은 뭐.. 그럭저럭.. 현지 분위기 느낄 수 있어 좋았음.
다시 숙소쪽으로 돌아오는 길은 거의 사람에 밀려서 가야하는 수준으로 혼잡해져있었다. 서아는 졸려서 정신을 못차리는 상태. 인파에 치여 밀려밀려 앞으로 가다가, 등의 인기척이 괜시리 좀 싸해서 허리 뒤로 가버린 핸드백을 앞으로 확 돌렸는데.. 소름.. 핸드백 지퍼가 열려있었다. 분명히 닫아놓았었는데..우리가족이 환전하기로 하고 뽑아돈 돈 전부와 신용카드, 심지어 서우지갑, 핸드폰이 떡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다. 계속 앞으로 걸으며 모든 게 다 무사하다는 것을 0.2초만에 파악한 후, 인기척을 낸 대상자와 최대한 멀리 빨리 가야겠다 판단하고 발걸음을 빨리 옮겼다. 몇미터 앞으로 간 후 인파에서 떨어져서 모든게 다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남편에게 가방을 넘겼다. 끝도없이 안아달라며 엉기는 둘째와 돈을 동시에 간수하는게 어려울 것 같았다. 아찔했지만 감사했다. 우리의 여행의 시작이 괴로워질뻔 했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마음을 추스린 후 목이 말라 호텔 앞에 위치한 카페로 들어갔다. 올드타운커피. 이게 여기있었네. 숙소 참 잘 잡았다.
식스티3 앞 올드타운커피. 에어컨 너무 좋아. 더위 탈출. 애들은 영혼 가출. 커피는 남편이 라떼랑 가장 비슷하다는 걸 시켜왔는데 왠지모르게 맥심 커피 같았다.
땀을 좀 식힌 후 숙소에 돌아왔는데, 식스티3 건물 입구의 유리가 완전히 아작이 나있었다. 무슨 차량이 급발진 한 것 같이 유리가 통째로 깨져있었는데 한국인 여행객의 이슈였던듯 했다. 한분이 머리로 유리를 깨게 된건지 온가족이 그분의 머리를 살펴보며 발을 동동구르고 있었다. 유리를 피해가며 겨우걸어서 우리 숙소로 들어갔는데,괜찮냐고 말한마디 못걸었던게 뒤늦게 내심 죄송했다. 잘 해결되셨는지요..
그랩 기다리며. 식스티3 건너편의 포토존에서.
그랩 기다리며. 날씨 맑음.
빨리 이 찜통더위를 해결하러 숙소에 가서 수영하자 하고 짐을 싸고 그랩을 불러 출발했는데, 찜통 더위가 황당해하게 비가 어마무시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보통 동남아에서 경험했던 스콜은 전반적으로 맑은 하늘에서 내리는 소낙비였는데, 이 비는 먹구름을 같이 몰고온 비였다. 이럴줄 알았으면 밖에서 점심이라도 먹고 오는건데.. 방 입실 시간을 기다리며 가장 가성비 없고 후회되는 식사를 하게 되었다.. 로비에 붙어있는 식당이었는데 미니햄버거랑 코리안스타일 치킨, 그리고 새우가 들어간 스프링롤, 마실것 4잔을 시켰는대 무려 7만원돈이 나왔고.. 코리안스타일 치킨 때문에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 느껴졌다. 살다살다 그런 이상한 맛의 양념치킨은 처음 먹어본다.
로비의 식당에 앉아 밥을 기다리며. 제일 비싸게 먹었던 식사. 코리안 스타일 치킨은 제발 먹지 마세요.
그래도 돈값만큼은 써야지. 뷰 좋은 레스토랑에서 한참 비멍을 하며 앉아있다가 업그레이드를 한 방으로 입실했다. 업그레이드를 받았으면 좋았을테지만, 그런 호사는 벌어지지 않았고 내돈내산으로 박당 6만원돈을 더 주고 업그레이드를 했다. 원래는 키나발루 씨윙이었는데, 아무래도 아이들을 데리고는 1층이 나을것 같아 탄중윙 씨뷰로 옮겼다. 발코니는 넓었고, 입실후에도 틈틈히 비멍을 하기에 좋았다.
그런데 비가 좀 잦아들어서 남편이 첫째데리고 수영장을 가보겠다 했다. 나는 그래서 흐리긴 하지만 둘째를 데리고 모래놀이를 하기로 했다. 모래놀이는 챙겨오길 잘했다. 리조트에 있는 프라이빗 비치는 아이가 놀기에 아주 적당했다. 요상하게 기운 없어하던 아이가 모래놀이라도 하는 걸 보니 행복해졌다. 바닷물은 비가 한참 왔는데도 따뜻해서 발 담구고 놀기에도 좋았다. 첫째랑 남편도 미끄럼틀 타며 좋아했다. 수영장 물도 따뜻하다고 어서 오라며 아주 신났다. 그래서 아이 몸의 모래를 물로 씻고 수영장을 갔는데 진짜 따뜻했다. 서아도 조금씩 눈치를 보다 적응을 했고, 서우는 또래 여자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도 6살배기 동생이 있긴 했지만 같이 놀 또래를 찾고 있는듯 했다. 둘은 마음이 잘 통했는지 짧고 굵게 놀고 내일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 사이 난 혼자 서아를 씻기다 욕조에서 미끄러져서 손가락을 베었다..
구름 아래 촉촉한 비를 맞으며 수영하기 좋았던 날.
너는 무슨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들어와서 씻을때 보니 또 비가 좀 굵어지는 듯 했다. 그렇게 코타키나발루는 아직까지 우리에게 어떤 석양도 보려주지 않았다.
저녁은 아무래도 서아를 위해 한식을 시켜먹기로 했다. 먹방이라는 한식집이었는데, 진짜 괜찮았다. 밥이야 뭐 날리는 건 어쩔수 없었으나, 잡채랑 마늘맛 치킨, 불닭볶음면. 모두 성공적이었다. 특히 서아가 이제야 제대로된 식사를 했다. 입맛 까다로운 녀석.. 드디어 한끼 먹어 너무 다행이었다. 아! 그리고 도미노 피자도 시켰었지.. 이건 황당하게 그랩기사한테 전화도 못받았는데 배달 완료로 떠서 우리의 짜증을 돋군사건이었다. 리셉션에 나가봤더니 도미노가 그런 사건이 많으니, 그랩에서 나중에 어떻개든 환불을 해주긴 할거라고 해서 포기했었다. 그런데 한 10시쯤 갑자기 방으로 전화가 왔다. 알고보니 그랩기사가 벨보이 구역에 던져두고 떠났던 모양이다. 뒤늦게야 방번호 확인하고 연락이 온것.. 배민이었으면 이래도 환불 받을수 있었겠지. 그랩은 이걸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겠다. 하아.. 식은 피자..
코타키나발루 한식집 “먹방” 잡채와 간장치킨 강추
그랩 기사가 그냥 던져놓고 가서 3시간 후 발견된 도미노피자. 도미노피자는 그랩 관련해서 여러 문제가 많단다. 비추.
그 와중에 벌어진 사건.. 서아에게 두번의 낙상사고가 발생했다. 한번은 침대에 앉아있다가 뒤로 넘어갔고, 한번은 또 침대에 앉아있다가 옆으로 굴러떨어졌다. 침대가드를 안한 쪽에서 생긴, 심장 떨어지는 사건이었다. 샹그릴라 탄중아루 침대.. 폭신하고 좋지만 너무 높았다. 나와 남편은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이렇게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둘째날이 비와 함께 저물었다. 일이.. 아니.. 추억 할 거리가 많다.
이거 가지 말라는 거 같긴 한데..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또 안갈수도 없기에 일단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진짜 오랬동안 fever로부터 자유로웠기에, 아이의 열은 우리 여행의 변수로 설정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밤새 따끈했던 아이는 마음을 노심초사하게 했다.
그동안 어이없다 생각한 수많은 사례들이 생각났다. 아이가 요로감염인데 제주도로 여행을 간다고? 등등. 다 각각의 사연이 있다는 걸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우린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으로 오랜만의 해외 가족여행을 계획했고, 아이들은 비행기를 탄다고 학수고대했고, 특히 첫째는 아주 신나있는 상태였다. 돈도 돈이지만 상심할 마음이 더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단 병원으로 향했다. 다른 건 눈에띄지 않고 목감기라는 것을 확인하고, 열이 오르는 아이에게 잠깐이라도 수액치료를 하기로 했다. 수액을 좀 맞으면서 항생제, 해열제를 맞추고, 아미노산 영양제도 추가해줬다. 수액을 맞으며 조금이라도 쉬기를 바랐지만, 아이는 약 한시간가량을 주사를 빼달라며 울었다. 목감기가 아니랬어도 목이 상했겠다 싶을 정도로. 부디 들어간 약과 영양제가 아이의 회복에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울다 지쳐 잠든 아이. 나도 지친 상태.
다행히 아이는 결국 울다지쳐 잠이 들긴 했다. 그런데 오전진료가 마무리되며 아이는 30분도 못자고 잠을 깨야했고, 그 이후로 아이는 부족한 잠과 사투를 벌였고, 우리는 아이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이미 지친 우리는 단기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우리차는 하이브리드니까 괜찮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비행기에 타긴 탔지만 연착이 되어 뜨지 않는 그 30여분이었다. 지금보니 그때는 비행기 소음도 없더라. 그런데 그때 우리 서아는 어찌나 울면서 떼를 쓰던지. 우리는 왜 오늘 그렇게 많이 젤리를 먹였으면서 비행기에는 하나도 안들고 탔을까.. 앞자리에 앉은 일가족이 서아의 짜증에 많이 힘들어했던듯 하다. 결국 한 아이 엄마가 젤리 세개를 주었는데, 그 젤리가 통하는 시간도 너무 짧았다. 비행기의 지연이 그렇게 원망스러울수 없었다. 아이는 벨트를 매야하는 상황을 좀처럼 견뎌내지 못했고, 바로 앉히게 하면 할수록 짜증 지수와 소음 데시벨이 올라갔다. 그러나 다행히 이륙과 동시에 진정이 되었다. 살다살다 이런 연착은 처음이었는데, 정말 힘들었다. 저가항공을 선택한이의 숙명인건가…
다행히 젤리의 은혜를 갚을 기회가 있었다. 기내식 카트가 지나간 후 젤리 은인이 라면을 먹다가 물을 주문하길 원하셨는데 이미 카트가 지나가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 상황. 우린 물병만 4개를 들고 탄지라, 한병 드렸다. 너무 고마워하셔서 감사.
결국 아이는 잠을 완전히 깼고, 다행히 착륙 한시간 전부터는 좋아라 스티커 놀이를 하고, 패드의 게임을 만지작 거리며 더이상의 불평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첫째는 목이 꺾여서 자고, 찌그러져서 자고… 하다가 착륙길에 귀아프다고 울고..
나와 남편은 두통과 피곤과 싸워야 했다.
아 이건 여행인가 훈련인가. 인간은 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라는 현타에 젖을 때쯤 도착한 코타키나 발루.
도착 했습니다!! 코타키나 발루!
왜 낯선 땅은 우리를 기쁘게 맞이하는가.
모든 괴로움은 땅을 밟는 순간 사라졌다.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은 자유를 찾았다. 찜통에 들어온 것 같은 습도와 어색하지 않은 매연냄새가 여기가 동남아라는 걸 느끼게 하며 뭔지 모를 해방감을 주었다.
우리는 찜통에서 그랩을 15분동안 기다려야 했지만, 그랩이 계획대로 잡혔다는 것은 일단 좋은 신호로 다가왔다. 시원한 그랩택시를 타고 15분간 달려 도착한 호텔 식스티3는.. 막상 그 이름을 식스티3로 봤을 때와는 달리, sixty three 로 읽으니 우리나라 63빌딩이 떠오르며 내가 예약한 데가 그 호텔이 맞았나 혼동이 되긴 했었지만, 젊은 정년의 늦은 시간의 환대에 무사히 짐을 풀게 되었다.
짧은 30여분간의 공기는 우리 모두를 끈적이게 해서 새벽 1시에 우리 모두는 샤워를 해야만 했지만, 어쨌든 쾌적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세면대의 물조절기가 엉성하게 수리되어있고, 모기향이 살짝 배어있긴 했지만, 우리 네가족 피로를 풀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4인 가족 코타키나발루, 6월의 4박 5일 여행 비용. 미리 지출하거나 준비한 돈>
비행기: 1,705,944원(갈 때 티웨이- 1,205,200원, 올 때 에어아시아: 500,744)